사진의 발명은, 빛으로 만들어낸 상(像: image)을 어떻게 정지시켜 고정시킬 수 있는가하는 감광판의 발명으로 시작되었다. 1939년 8월 19일 프랑스의 다게르(L.J.M. Daguerre)가 발표한 다게르오 타입(daguerro type)이 사진 발명의 특허를 얻은 이후, 영국의 폭스 탈보트(W. H. Fox Talbot), 존 허셀(Jone. F. W. Herschel), 스코트 아처(F. scott Archer) 등에 의해 사진 감광판은 계속 연구·발전되어 왔다. 그리고 1878년 역시 영국의 하퍼 베네트(C. Harper Bennett)에 의해 노광 시간이 1/25초에 이르는 젤라틴 바닥의 감광판이 개발되어, 사진의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베네트의 젤라틴 감광판은 손으로 들고 찍어도 노출이 충분히 가능하였으며, 움직이는 물체도 찍을 수 있게 되었다. 또 찍는 즉시 현상해야 했던 기존의 감광판과는 달리 보관했다가 현상할 수 있었으며, 다른 사람에게 현상을 대신시킬 수도 있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1888년 미국의 조지 이스트먼(George Eastman)은 두루마리로 된 1백장의 필름이 내장된 코닥 박스 사진기(Box Camera)를 25$에 판매하였다. 그리고 이를 다 찍은 사람이 필름이 들어 있는 사진기를 코닥 현상소에 보내면, 현상·프린트가 된 사진과 새 필름을 넣은 사진기를 10$의 비용만 받고 내 주었다. ‘당신은 버튼만 누르시고, 나머지는 우리에게 맡기시오’란 광고 그대로 코닥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이며, 사람들과 공생적인 관계를 만들었다.
제1차 세계대전 직전, 새로 개발된 스프로키트(Sprocket: 필름 양쪽에 구멍을 뚫어 필름이 레버에 의해 전진)식 35㎜ 영화 제작용 필름을, 소형의 사진기에 사용해 보려는 시도는 1924년 E.라이츠와 코(E.Leitz and Co)에서 성공하였다. 이를 디자인한 오스카 버낵(Oskar Barnack)의 라이카 네거티브는, 오늘날 모든 35㎜ 사진기의 표준인 24㎜×36㎜ 크기였다. 35㎜ 사진은 영화 제작용의 스프로키트식 필름의 출현으로 가능하게 된 것이다.
초기에는 모든 필름이 파랑에만 잘 반응하는 청감성(blue-sensitive) 필름이었다가, 1930년대에 들어서야 모든 색이 반응하는 최초의 전정색(全整色: panchromatic)성의 롤필름이 나오게 되었다. 컬러를 재현하려는 노력은 사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다. 사진이 발명된 초기에, 다게르와 니엡스가 컬러 재현을 시도했지만 이렇다 할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1850년 미국의 힐(L. L. Hill)이 우연히 다게르타입에 컬러를 입히는 것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힐은 그 과정을 정확히 몰랐기 때문에 다시 재현하지는 못했다. 컬러 사진의 첫 시도는, 1861년 영국의 물리학자 클라크 맥스웰(J .Clerk Maxwell)이 런던의 왕립학원에서 실험하여 보여줬고, 최초의 컬러 필름은 아일랜드의 존 졸리(John Joly)가 개발한 것이다. 이후 프랑스의 루미에르(Louis and Auguste Lumier) 형제가 만든 컬러 필름이 1930년대에 시판되기도 했다.
컬러 사진을 실용화하는데 있어 가장 위대한 발전은, 만네스(L. Mannes)와 고도프스키(L. Godowsky)에 의한 코다크롬(Kodachrom)의 탄생이다. 1935년에 발표된 코다크롬은 여러 층(multilayered)으로 된 필름으로 사진기에서 노출이 될 때, 본질적으로 각 층별로 명암만 나타낸다. 하지만 코다크롬은 빛을 통하여 보면 필름 자체 내의 적당한 필터작용으로, 콘트라스트, 선예도(sharpness), 채색도(color saturation)의 면에서 예전의 어떤 것보다도 훌륭한 컬러 슬라이드를 만들어주어, 거의 자연의 색에 버금가는 완전한 컬러라고 이야기된다.
모든 컬러 필름의 표준이 되는 코다크롬은, 복잡한 현상과정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코닥이나 다른 몇 군데 현상소에서만 현상이 가능해,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하와이까지 보내야 하는 불편함이 따르고 있다.
오늘날 흑백·컬러·슬라이드 필름은 다양한 종류가 나와 있다. 그리고 그 사용목적에 따라 사진인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필름마다 큰 차이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물리적·화학적 특징과 감광도(필름속도), 입상성(粒狀性: graininess), 채도(彩度: color saturation), 콘트라스트(contrast), 선예도(sharpness), 최대 농도(maximum density)에서 드러난다.
먼저 필름은 감광도에 의해 다양하게 분류된다. 감광도는 흑백·컬러·슬라이드 필름에서 동일하며 필름 속도로써 나타내는데 ISO의 수치로서 표시된다. ISO는 국제 표준 규격(International Standards Organization)의 약자로 지금은 쓰이지 않는 ASA(American Standards Association)의 수치와 일치한다. 이러한 수치는 필름 곽에 크게 인쇄되어 있어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고, 또 필름 내부 통 속에도 표시가 되어, 신형 사진기에서는 사진기 속에 필름을 넣은 채로도 볼 수 있다. 현재 시판중인 필름은, ISO 25에서부터 50, 64, 100, 125, 200, 400, 800, 1,600, 3,200까지 다양하게 존재한다.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는 필름은, 보통 100을 기준으로 그 이하는 저감도 필름, 그 이상은 고감도 필름이라고 한다. 필름은 ISO 수치가 작을수록 더 많은 빛을 필요로 하고, 수치가 커질수록 적은 빛을 필요로 하게 된다. 수치가 적은 필름은 크게 확대 인화해도 화질이 선명하지만, 수치가 큰 필름은 확대 인화할 경우 현저하게 거친 화면이 된다. ISO 100인 필름이 f/8.0에서 1/250초의 노출이 적정이라고 하면, ISO 25인 필름은 f/8.0에서 1/60초를, ISO 400인 필름은 f/8.0에서 1/1,000초를 요구하게 된다. 그러므로 필요에 따라서 거기에 맞는 감광도의 필름을 선택해야 한다. 실내 경기장에서 플래시를 쓰지 않으려면, f/2.8 이하의 조리개에 ISO 400 이상은 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입상성은 ISO 감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입상성’이란 사진을 확대 인화했을 때, 화면에 보이는 알맹이의 크기를 말한다. 흔히 그레인(Grain)이라고 하는데 그레인의 크기나 양은 사용되는 필름의 종류, 노출, 그리고 필름 현상에 따라 결정된다. 필름을 과도하게 노출시키거나 현상시키면 그레인이 심해진다. 또, 잘못하여 필름에 빛을 받게 하였거나, 필름 보관이 잘못되었을 때도 그레인 때문에 사진 전체가 흐리게(fog) 나타난다. 그레인은 ISO 50 이하의 필름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으므로, 그레인 때문에 신경이 쓰이는 분들은 저감도 필름을 사용하면 좋을 것이다.
1980년대 초, 코닥에서 개발한 고감도의 코닥 컬러 VR-1000 필름에 사용한 T입자(T-Grain) 공법은, 50여 년의 필름 제조공법 중 최고의 기술혁신으로 평가받는다. T입자 공법은 고감도 필름에서도 그레인을 현저하게 줄여 확대 인화해도 화면이 거칠어지지 않는 장점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컬러 필름에서 문제가 되는 채도는 필름이 지닌 컬러의 강도로써 결정된다. 즉 어떤 컬러 필름은 원래보다 컬러가 더 현란하게 나타나고, 또 어떤 필름은 파스텔조의 차분히 가라앉은 색조를 보여준다. 어느 것이 더 좋은가의 판단은, 필름을 선택하는 사람이 해야 되지만 이 채도가 콘트라스트와 반드시 상관되지는 않는다.
필름이 피사체의 밝고 어둠을 구별짓는 정도를, 콘트라스트(contrast)의 정도로 나타낸다. 흑백이나 컬러 필름이 회색의 중간 톤을 잘 나타내지 못하면, 콘트라스트가 높은 필름(high-contrast film)이라고 하고, 검정과 흰색은 보기 어렵고, 회색의 중간 톤이 지배적이면 콘트라스트가 낮은 필름(low-contrast film)이라고 부른다. 콘트라스트와 함께 얘기되는 선예도(Acutance & Sharpness)는, 가장자리의 선예도, 혹은 두 톤(tone)간의 선을 구분 짓는 필름의 능력을 얘기할 때는, 어큐턴스(Acutance)라 하고, 사진에 찍히는 물체를 정밀하게 나타내는 정도를 말할 때는, 샤프니스(sharpness), 혹은 해상력(解像力: Resolving power)이라 한다. 이는 필름의 특성뿐 아니라 렌즈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최고의 필름과 최상의 렌즈가 결합될 때, 콘트라스트와 선예도가 다 좋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최대 농도(Maximam Density, D-Max)는 컬러 필름에서 가장 적게 노출된 부분의 농도를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현상된 필름의 불투명, 혹은 검게 나온 부분은, 화상의 질적인 문제에 있어서 무척 중요하다. 반투명이거나 낮은 D-Max의 원인은 필름이 잘못 현상되었거나 오래된 필름, 보관의 문제, 현상 중 잘못 반전, 필름 제조과정이 잘못된 경우이다.
필름의 선택은 어떠한 필름이든 장단점이 다 있기 때문에 그 장단점과 개인적 취향과 상황에 따라 결정하면 된다. 현재 시판중인 필름 중에서 가장 완벽에 가까운 것은 코다크롬(Kodachrome) 25이다. 이 필름은 선예도와 해상력이 높으면서 그레인이 거의 없고, 또 열, 습기, 오랜 보관기간 등의 나쁜 환경조건에서 컬러가 변하지 않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하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구하기도 어렵고, 현상을 할 수가 없다.
나는 사진을 시작하던 초창기에는 주로 컬러 네가 필름을 썼지만 지금은 컬러 슬라이드 필름을 많이 쓴다. 슬라이드 필름은 그 자체의 가격도 네가 필름의 3-4배 정도 비싸고 현상 인화의 가격도 휠씬 비싸지만 사진의 질은 크게 높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많이 쓰게 된다. 네가 필름은 사진을 인화할 때 마다 색상이 달라져서, 아주 마음에 드는 사진을 확대하려고 현상소에 다시 맡기면 똑 같은 사진이 나오질 않는다. 여기에 비해 슬라이드 필름은 필름 원판 그대로 색상이 나오기 때문에 사진이 그렇게 나오지 않으면 얼마든지 재 인화를 요구할 수 있어 좋다.
사진을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진인이라면 흑백사진을 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거기에 대해서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나도 흑백사진에 관심은 많다. 그러나 흑백 필름을 사용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흑백사진에 관심이 많으면서도 흑백필름을 쓰지 않는 이유는 필름도 컬러에 비해서 비싸려니와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하는 일을 직접하지 않는다면 컬러 필름과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흑백사진의 묘미는 스스로 찍은 것을 스스로 현상 인화하는 것에 있는데 나는 암실도 갖추지 못했고 또 사진을 현상 인화할 시간도 없다. 그리고 흑백필름은 전문으로 취급하는 현상소에 가야 제대로 사진을 뽑는데 거기에 갈 시간도 없고 그런 곳은 가격도 많이 비싸다. 그래서 흑백사진이 필요할 때는 그 대용으로 일포드 XP2 필름을 쓴다. 이 필름을 쓰면 완전한 흑백사진은 아니더라도 흑백사진과 거의 같은 효과를 가져 오고 현상 인화를 칼라 필름 현상소에서 할 수 있다. 앞으로 언젠가는 나도 흑백사진에 심취할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아직은 그러저런 이유로 흑백필름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코닥필름을 주로 사용한다. 내가 코닥필름을 쓰는 것은 후지필름이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고, 일제 사진기를 쓰기 때문에 필름이라도 미국 것을 써야 무역수지에 보탬이 될 거라는 알량한 생각에서이다. 예전에는 코닥 엑타크롬(Ektachrome) 64(E. P. R)를 오래 쓰다가 요즘엔 엑타크롬 E100S를 주로 쓰고 있다. 컬러 네가 필름은 자주 쓰지는 않지만, 중요한 자리에는 코닥 엑타컬러 64를 쓰고, 보통은 코니카 VX 100을 쓴다. 코니카 필름은 코닥에 비해 2/3 정도 가격인 36컷 1롤이 2,000원이어서 가격에 부담이 없다. 또, 다른 필름과 비교할 때 사진의 질 차이를 얘기하는 분들도 있으나 나는 아직 그 차이를 모르고 있다.
사진작가 사이의 해묵은 논쟁 중 하나가 ‘코닥이 좋으냐? 후지가 좋으냐?’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필름의 차이를 알지 못한다. 또한 찍는 필름도 중요하지만 찍을 때의 문제와 현상소의 문제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특정 필름이 더 낫다고 말하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대개 미국은 90% 이상이 코닥, 일본은 70% 이상이 후지, 유럽은 60% 이상이 아그파를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명성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외국의 유명 전문가들은 코닥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어느 필름이든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그 장점 쪽을 생각하여 선택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필름 자체도 중요하지만 찍은 필름을 현상 인화하는 현상소도 매우 중요하다.
사실이라고 믿고 싶지는 않지만, 우리 나라의 현상 인화 기술이 일본의 70% 수준이고, 또 일본은 미국의 70% 수준이라는 얘기가 떠도는 것을 보면, 현상과 인화가 필름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얘기가 웬만큼 신빙성을 갖는 것은 미국이나 일본에서 들여온 책에서 사진을 보면 우리 나라에서 나온 것과는 색상과 화질에서 차이가 많다는 것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필름이 좋아지고 렌즈가 좋아져도 현상과 인화 기술이 따라주지 못하면 원하는 사진을 얻을 수 없으니 사진은 어느 한 가지만 가지고 얘기하기는 어려운 것이라고 본다.
내가 아는 어느 전문가는 좋은 사진을 얻기 위해 모든 촬영에 코닥크롬을 쓴다고 한다. 이 코닥크롬은 국내에서 현상을 하지 못해 하와이로 보내어 현상을 해 오는데 필름의 평소 보관도 까다롭고 찍은 즉시 현상해야 되기 때문에 꼭 항공편을 이용한다고 들었다. 이런 열정도 없으면서 코닥이 좋으니, 후지가 좋으니 하는 얼치기들을 보면 연민의 정을 느낄 때가 많다. 사진은 필름이 다 해주는 것이 아니다. 사진인의 관심과 열정이 좋은 사진을 만드는 것인데 렌즈가 어쩌고 필름이 어쩌고 하는 목소리 큰 사람들은 자신이 사진을 찍는 것은 잊고 늘 렌즈 타령, 필름 타령만 한다.
모든 필름은 열, 습기, 오랜 보관기간 등에 피해를 입는다. 필름 박스에는 그 필름의 유효 기간이 적혀 있으므로 유효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많이 사 놓거나 기간이 지난 것을 사서는 문제가 있으니 필름을 살 때 유의해야 한다.
사진기에 넣은 필름은 가급적 빨리 찍어서 빼어내는 것이 좋으며, 찍은 필름도 가능하면 빨리 현상시켜야 한다. 사진기 속에 들어 있는 필름이나 빛에 노출된 필름은 스스로 화학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뚜껑을 열고 꺼낸 필름은 빨리 처리하는 것이 좋다.
필름은 서늘하고 그늘진 곳에 보관해야 된다고 하니까 냉장고나 냉동실에 보관하는 사진인이 많다고 들었다. 슬라이드 필름처럼 아주 민감한 필름은 냉장실에 보관하는 것이 바람직할지 모르지만 일반 칼라 필름은 굳이 냉장실이 아니라도 관계가 없다. 특히 냉장실이나 냉동실에 보관했던 필름을 그대로 가지고 나가 사진기에 넣으면 온도 차이 때문에 결로 현상이 생기므로 주의로 요한다. 밖으로 나가기 30분에서 1시간 전에 꺼내어 온도를 조절해주는 것이 좋다. 어느 것이든 다 그렇겠지만 직사광선이 닿는 곳이나 습기가 많은 곳, 밀폐된 공간에 필름을 두어서는 좋지 않다. 그리고 사진기에 필름을 오래 넣어둔 채로 방치하거나, 찍은 필름을 현상하지 않고 놓아두는 것도 사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카메라는 나의 도구이다. 나는 카메라를 통하여 내 주위에 있는 모든 것에 이유를 부여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