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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증저널 (2003년 6월호) |
이덕환(서강대, 화학과) |
대부분의 때는 물에 넣고 주무르거나, 방망이로 두들겨 주기만 해도 말끔하게 빠져 버린다. 무엇이나 잘 녹여서 '만능 용매'라고 부르는 물이 섬유에 약하게 붙어있는 때를 잘 녹여내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때는 단순한 물빨래만으로도 깨끗하게 씻어낼 수가 있다. 그러나 땀과 함께 배출되는 지방(脂肪) 성분은 물만으로는 쉽게 제거하기 어렵다. 화학적으로 비극성의 지방 분자들이 극성인 물에 잘 녹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에는 물의 극성을 줄여주는 계면 활성제가 필요하다. 볏짚을 태운 재를 우려낸 '잿물'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오래 전부터 사용되던 전통적인 계면 활성제였다. 잿물에 소량 들어있는 수산화 포타슘(KOH)와 같은 알칼리 물질이 물의 표면 장력을 감소시켜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알칼리를 쉽게 구할 수 있게 된 것은 1790년 프랑스의 르블랑이 소금에서 소다회(탄산 소듐, NaCO3)를 대량으로 생산하면서부터였다. 그 후 1865년에는 벨기에의 솔베이가 암모니아를 이용해서 소다회를 더욱 값싸게 만드는 법을 개발했다. 소다회는 유리 제조 등에 사용되는 중요한 산업 원료이지만, 세탁에도 많이 사용되어서 지금까지도 '세탁 소다'라고 부른다. 소다회를 물에 녹이면 잿물처럼 '염기성'이 되면서 표면 장력이 줄어들어서 세탁력이 향상된다. 소금물을 전기분해해서 얻은 수산화 소듐(NaOH)도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양의 잿물'이라는 뜻으로 '양잿물'이라고 불렀다. 찌든 광목을 삶을 때 넣었던 '양잿물'이 바로 그런 수산화 소듐이나 탄산 소듐이었다. 잿물보다 세탁력이 월등히 뛰어난 비누는 고대 이집트에도 알려져 있었다. 동물성이나 식물성 지방이 알칼리와 반응해서 만들어지는 비누는 친수성 부분과 친유성 부분을 함께 가지고 있는 긴 사슬 모양의 분자다. 비누 분자의 친유성 부분이 지방 성분의 때를 둥글게 감싸면, 바깥쪽에 비누의 친수성 부분이 노출되어 물에 잘 녹는 덩어리를 만들기 때문에 세탁 효과가 향상된다. 비누는 세탁력이 뛰어나기는 하지만, 천연 원료인 지방과 알칼리를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일부 귀족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고급 사치품이었다. 비누가 대량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솔베이법이 일반화된 19세기부터였고,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1950년대부터였다. 비누를 만드는 데는 식용으로 사용할 수 없는 저급의 천연 지방을 사용하지만, 여전히 그 공급량은 한정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개발된 것이 바로 합성세제다. 원유에서 분리한 길이가 긴 탄화수소 사슬을 가진 친유성 화합물에 친수성의 설폰기(-SO3)를 붙여서 비누와 같은 계면 활성제의 성질을 갖도록 만든 것이 바로 합성세제다. 1930년대에 처음 개발된 합성세제는 가격이 저렴하고, 세탁력이 뛰어나서 그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더욱이 합성세제에는 목적에 따라 다양한 첨가제를 넣을 수도 있다. 세탁력을 증진시켜 주는 세탁 소다나 인산염을 비롯한 '세탁 조제'와 옷감을 더욱 희고 밝게 만드는 표백제, 그리고 방향제와 탈취제까지 첨가한 합성세제는 기계식 자동 세탁기의 등장과 함께 주부들을 힘든 세탁의 노동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방향제와 피부 또는 모발 보호제를 첨가한 주방용 세제와 샴푸는 우리의 위생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시켜 주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너무 많이 사용하면 문제가 된다. 생활 수준이 향상되고, 위생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세제의 사용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이제 세제는 수질 오염의 주범이 되고 말았다. 최근에는 부영양화로 심각한 환경 문제를 일으키는 인산염을 첨가하지 않은 '무린'(無隣) 세제가 보급되었고, 세제의 무분별한 사용에 대한 경각심도 높아지고 있다. 한편, 가정에서 폐식용유로 비누를 만들어 사용하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지만, 가정에서 독성이 강한 알칼리를 취급해야 하고, 그렇게 만든 비누의 품질도 떨어지기 때문에 크게 권장할 일은 아니다. 화학적 지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옷감에서 때를 제거하는 세탁의 효율도 향상시킬 수 있다. 물을 뜨겁게 가열하면 표면 장력이 줄어들어서 때가 더 잘 빠진다. 그러나 동물의 피가 묻은 빨래를 삶으면 피 속에 들어있던 화합물이 파괴되면서 지울 수 없는 흔적이 남게 된다. 그래서 피가 묻은 옷은 차가운 물로 씻어내야 하고, 소독약으로 쓴 과산화 수소(H2O2)를 이용하면 쉽게 제거할 수 있다. 철이 산화된 녹이 묻은 경우에는 옥살산을 쓰고, 립스틱은 알코올과 아세트산 아밀을 이용하면 된다. 시중에 널리 알려져 있듯이 식초, 레몬, 달걀 껍질을 사용하는 세탁법은 화학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 한편, 실크나 모직과 같은 경우에는 물에 젖으면 섬유 자체가 변형되기 때문에 물빨래를 할 수가 없다. 그런 경우에는 '퍼클로르'라고도 알려진 사염화에틸렌(Cl2C=CCl2)이나 '신너'라고도 알려진 스토다드 용제를 사용하는 '건식' 세탁(드라이클리닝) 방법을 사용한다. 친유성인 유기 용매를 사용하면 비누나 합성 세제로도 뺄 수 없는 때를 손쉽게 제거할 수 있다. 그러나 휘발성이 강한 유기 용매는 화재의 위험이 크고, 대기 오염의 가능성도 높아서 문제가 된다. 아무리 좋은 비누와 세제가 개발되어도 한 번 입은 옷과 수건을 과량의 세제와 함께 세탁기에 마구 던져 넣어서는 심각한 환경 오염을 막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세탁의 명백한 과학적 원리를 완전히 무시한 신비의 세탁기가 해결책이 될 수도 없다. 오래 전부터 써오던 세탁 소다를 교묘한 이름으로 감추고, 고등학교 교과서 수준의 전기 분해 상식도 무시한 '환경 친화적' 세탁기를 국기 기관이 '인증'해 준다고 세탁의 화학적 원리가 바뀌고, 환경오염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후손에게 물려줘야 하는 환경은 알 수 없는 신비술이 아니라, 화학인된 과학으로 지켜내야만 한다. 오히려 세탁물의 상태에 따라서 그 원리가 확인된 여러 가지 과학적 세탁법을 혼합해서 사용하는 '다과정 습식 세탁법'을 개발하고 있는 것이 과학 선진국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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