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2개 점포 문닫아 … 돼지고기 판매로 전업도
'예전엔 하루 10톤 팔았는데 요즘은 1톤도 안돼'
적자만 쌓여 … 갈비탕·설렁탕집까지 한파
[조선일보 김남인, 허윤희 기자] 28일 낮 12시 서울 성동구 마장축산물시장. 600여m에 이르는 티(T)자형 대로와 이를 중심으로 잔가지처럼 얽혀있는 골목에 크고 작은 점포가 4200여개 들어서 있지만 사람의 발길이 뚝 끊겼다. 팔리지 않아 수북하게 쌓인 애꿎은 사골을 이리저리 뒤적이는 상인들만 눈에 띌 뿐이다. 이 시간이면 도·소매상들이 잔뜩 고기를 싣고 가다 족발가게에서 요기를 하거나, 육회를 안주로 소주 한두 잔이 돌아야 하지만 시장은 쥐죽은 듯 조용해 어쩌다 틀어놓은 트로트 선율만 쩡쩡 울렸다. 서울시와 수도권 일대에 육류 총공급량의 65%를 차지해온 이 쟁쟁한 마장동 우시장이 광우병 파동으로 맥없이 주저앉은 것이다.
10년째 쇠고기와 소뼈를 팔고 있는 소(小)도매상 양순자(여·59)씨는 단골마저 뚝 끊겨 지금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는 심정으로 돼지 머릿고기를 팔고 있다. 한달 내내 단 사흘만 개시했을 뿐 다른 상인들과 ‘가게를 비울지, 어쩔지’ 신세한탄으로 한나절이다.
대형 도매상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Y축산유통의 박모(38) 사장은 ‘절대판매 금지(미국산 곱창)’라고 써붙인 냉동고 문을 멍하니 바라보다 따라놓은 소주잔을 들이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15년만에 도매상 업계 최악이에요. 예전엔 하루 10t 나갔는데, 지금은 1t도 안나가요. 믿어져요? 그 중 뼈매출이 30%였는데, 내장뿐 아니라 뼈도 하나 안팔리거든. 예전엔 한달 매상 6000만원이었는데, 직원 한명당 인건비 250만원에, 가게세·세금에다 고깃값도 올라 요즘은 한달째 적자가 4000만원이오, 4000만원”
12년째 이곳에서 소 내장을 팔고 있는 배승희(48)씨 부부는 아예 장사할 생각이 없는 듯 오가는 사람만 쳐다보고 있다. 설날대목이 지난 이맘때면 쌓여있던 재고까지 전량 다 빠져나갔어야 하지만 배씨는 “입질조차 안 된다”며 체념한 듯 피식 웃었다. 새벽 2시에 소가 들어오면 배씨부부는 습관처럼 뼈 추려내고 내장을 다듬지만, 한달째 정육점이나 식당들에서 도통 사러오질 않는다는 것이다. 예전엔 소 5마리 양의 내장도 없어 못 팔았지만, 지금은 들어오는 족족 다 냉동고 행이다. 배씨는 “기다렸던 설대목엔 손님이 없어 어이없이 지나가고, 이젠 날도 풀리니까 우리상인들은 굶어 죽을 일만 남았다”며 “예전에는 저녁 8시쯤 문닫고 들어갔는데 요즘은 저녁 5시면 미련없이 장사 접는다”고 한숨을 쉬었다.
대로를 벗어나 꾸불꾸불 이어진 골목 상가에 들어서니 중간중간 불 꺼진 상점이 눈에 띄었다. 내장찌꺼기가 말라붙은 도마와 한 가득 소 내장을 담았을 고무 대야만이 주인을 잃은 채 뒹굴고 있었다. 마장축산물시장 상점가진흥사업협동조합 손정성 상무는 “TV에서 광우병 걸린 소가 비틀비틀 거리면서 넘어지는 장면을 계속 보여주면서 우리는 완전히 망했다”며 “1개월째 하루에 1~2개 점포가 적자와 빚에 허덕이다 빠져나가고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한우값도 올랐다. 조합의 한 관계자는 1개월전 kg당 경매가격이 1만 8000원정도 했던 한우암소는 현재 2만원이 넘는다고 귀띔했다.
전문가들은 “현재까지 유럽 이외 지역에서 광우병이 인간에게 전염된 사례가 없고 그 가능성도 극히 희박하다”며 “광우병 소가 유입되지 않은 국내에서 쇠고기 먹는 것을 전면적으로 피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