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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불교가 불교가 아닌 이유(4) 구름 이경숙(혜능의 피신)
선불교가 불교가 아닌 이유(4)(구름님의 지난 글들)
21.
무협지는 내용이 황당하고 줄거리가 조잡해도 독자들이 그것 가지고 책잡지 않는다.
독자가 무협지에 요구하는 것이 엄격한 논리성이나 수미일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종의 역사와 조사들의 행적을 살펴보면 이건 그야말로 무협지보다 줄거리가 황당한 것이 많다. 조사들의 초능력이나 오묘한 선지식의 경지때문이 아니라 사건의 전개가 무협지보다 논리성을 갖추고 있지 못한 것이다. 그 중 압권이 바로 혜능이 홍인으로부터 6대조사로서 법통을 인계받는 과정이고, 그 보다 더 골 때리는 것이 바로 그 직후에 일어난 사건이다.
밤새도록 혜능과 대화를 나눈 홍인은 선종의 후계자로서 혜능을 결정하였다.
그것은 지금까지 그 과정을 밝힌대로이다. 그렇다면 그 후에 홍인과 혜능 두사람은 무엇을 했을까? 상식대로라면 날이 밝는 즉시 온 사바대중과 스님들을 회당에 다 모아놓고, 교수사인 신수를 일순간에 무색케 만들 만큼 탁월한 선지식과 근기를 갖춘 보석을 부엌에서 발견했노라 공표하고 약속대로 그에게 의발을 물려주는 양위식을 거행하여야 했다.
물론 파격적인 후계자의 발탁에 놀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반발도 있겠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방패로 삼고 혜능의 재주를 창으로 하면 그 정도 역풍이야 잠재울 수 있었을 것이다. 또 그래야 조사로서의 자격이 있다 할 것이다.
석가세존 당시의 인도는 홍인 당시의 중국보다 더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다. 그러나 부처님은 제자를 발탁하고 그 서열을 메기는데 그 사람의 신분에 별로 구애받지 않으셨다. 그 정도 반발 쯤은 안중에도 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하셨다.
그런데 우리 대선종의 5대조이신 홍인선사께서는 어떻게 하셨느냐? 날이 밝기도 전에 몇시간 전에 처음으로 대화를 나눠본 후계자의 손을 잡고 도둑놈처럼 살금살금 절을 빠져나가 제자를 멀리 도망보내고 돌아왔다. 이 제자는 그로부터 꼭 15년 후에 다시 중원무림에 파란을 몰고 등장하게 된다. 불교 이야기가 아니고 완죤 무협지다.
왜 홍인은 자기 후계자를 새벽에 피신시켜야만 했을까?
왜 혜능은 그후 15년 동안 세상에 나타나지를 못했을까?
불교 역사 최대의 미스테리를 추적해 보자. 불교판 역사스페샬이다.
22.
지금까지 홍인과 혜능의 이야기를 읽어온 독자라면 이쯤에서 이 사건의 본질을 눈치채고 있을 것이다.
특히 무협지나 추리소설을 많이 읽은 사람은 더더욱 눈에 보이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사건의 형사적 본질은 바로 증인이 없는 사건이라는 점이다.
혜능이 방아를 찧고있을 때 홍인이 나타난 싯점부터 그 다음날 새벽에 혜능이 사라지기까지의 사건은 선불교의 종통이 누구의 손에 넘어가느냐 하는 불교의 운명이 걸린 중대한 사건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당사자 두사람 외에는 어떤 목격자도 없이 진행된 사건이었다. 역사의 법정에서 이 두사람의 말 외에는 어떤 증인도 부를 수가 없어서 검사가 기소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사건이다.
역대 조사의 후계는 본인들 외에도 목격자가 다수 있어서 그것을 증언하고 있고 기록도 다양하다. 그런데 5대조에서 6대조로 넘어가는 과정은 단 한명의 목격자도 남기지 않았다. 유일한 증인은 그날밤 법당의 서까래 밑에서 찍찍거린 두마리의 쥐뿐이었다. 이 두마리는 그때 마침 짝짓기를 하고 있었다고 전한다.
그런데 이 두사람의 유일한 피의자이자 목격자이자 증인은 두번다시 살아서 만나지 못했다.
홍인이 이로부터 3년쯤 후에 숨을 거둔 것이다. 물론 홍인은 이 유일한 후계자를 찾지도 않았고 후계자 역시 스승의 임종에 나타나지 않았다. 홍인은 그날밤의 범죄에 대해 생전에 누구한테도 털어놓지 않았고, 모든 비밀을 무덤 속에 가지고 가버렸다.
지금 육조단경에 기록되어 전하는 모든 내용은 바로 15년 후에 유령처럼 나타난 혜능의 진술에만 의존한 것이다. 모든 사건의 내막이라는 것은 오직 한사람 혜능이 그렇다고 말한 것 뿐이다. 그런데 이 진술에는 너무나 문제가 많다.
23.
이 사건에서 목격자가 있는 마지막 장면이 바로 홍인이 혜능의 게송을 신발로 문질러 버리는 장면이다.
혜능의 진술에 의하면 홍인은 행자출신의 미천한 오랑캐가 감히 선종의 후계가 걸린 게송에 응모했다는 것 때문에 혹시 사람들의 시기를 받아 위험해질까 염려해서였다고 한다.
과연 그랬을까?
신수와는 달리 혜능의 게송에는 '작자 혜능'이라고 분명하게 응시자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만약에 이게 신변의 안전을 걱정해야 할 정도의 일이었다면 누구보다도 혜능이 잘 알았을 것이고, 혜능이 불러주는 게송을 문자로 적어준 장씨성 가진 스님이 말렸을 것이다.
그러나 혜능의 진술에 의하면 이때 장씨성 가진 스님은 그런 걱정은 커녕, 5조 홍인의 뒤를 이어 선종의 법통을 잇게되고 크게 깨우쳐 부처님이 되거든 자기를 기억이나 해달라고 부탁했다 한다. 혜능은 신변의 위험 같은 것은 느끼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홍인은 왜 혜능의 게송을 신발로 문질러 버렸을까?
논리적으로 유추해낼 수 있는 유일한 답은 '바로 골치가 아팠기 때문'이다.
홍인은 혜능이 동선사에 온 첫날 자기가 비범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 날까지 홍인은 혜능에 대해 그리 깊이 알지는 못했을 것이다. 혜능 자신이 그 사건 이전에 홍인을 한번이라도 배알한 적이 있거나 가르침 한번 얻었다는 말을 안하기 때문이다.
홍인의 기억에 혜능은 다소 당돌하고 당찬 오랑캐 행자쯤 되었을 것이다.
이런 혜능의 게송이 가장 뛰어난 것으로 장원을 했을 경우에 홍인은 감당하기 어려운 골치아픈 일들을 겪게 된다. 그 중에서도 제일 곤란한 것이 바로 동선사의 수준이 만천하에 뽀록이 난다는 점이다. 일자무식의 행자보다 나은 게송을 지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혜능의 탁월함이 아니라 동선사의 수준이 바닥이라는 사실이 먼저 부각될 수밖에 없는 성격의 일이었다.
24.
홍인은 혜능의 게송을 보자마자 '익지않은 풋사과 같은 게송이로다'하면서 신발로 그어버렸는데, 홍인의 속내가 어떤 것이었는지간에 그것으로서 혜능의 응시는 물을 먹은 것으로 봐야 한다. 왜냐하면 선종의 조사인 홍인이 이랬다 저랬다 식언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대중들이 보는 앞에서 '설익은 풋사과'로 단정하고 신발까지 벗어서 문질러버린 게송을 다음날 바로 극찬을 하면서 그 지은이를 후계자로 삼는다면 이건 해괴한 웃음거리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홍인이 혜능의 게송을 보고 그것이 실로 깨달은 사람의 게송이고, 혜능이야말로 선종의 후계자로서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면 홍인은 약간의 여지를 남겨뒀어야만 했다. 그러나 홍인은 어떤 번복의 여지도 남기지 않고 채점관의 최종 판정을 해버렸다. '불합격!'
그래놓고 홍인은 어떻게 할 생각이었을까? 다음날 낮에 혜능이 일하는 방앗간에 찾아갔다.
그리고 '방아를 다 찧었느냐'고 묻는다. 혜능이 '방아는 다 찧었는데 키질만 못햇습니다'라고 대답하자 홍인은 주장자를 땅에 세번 짚었다고 한다.
이것을 혜능은 훗날 해석하기를 자기의 말 뜻은 '이미 마음이 다 열려있고 깨쳤으니, 스승님께서 인가만 해주시면 됩니다'라는 뜻이었다고 하고 홍인은 이에 대해 주장자를 세번 두드림으로서 '그리 하겠노라'는 대답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는 야밤 삼경에 홍인의 방에 찾아들었다는 것이다.
과연 두사람은 이렇게 척하면 삼척이고 탁하면 억이었을까? 하회를 보자.
25.
무협소설의 가장 고전적인 스토리는 이런 거다.
부모님을 억울하게 잃은 주인공이 복수를 하기는 해야 하지만 무공을 배운 적도 없는데, 어느날 깊은 산 속이나 동굴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너무나 우연히 은거중인 초절정고수를 만나서 비전의 무술을 전수받은 후 강호에 나와 부모님의 복수를 하고 사부님의 한을 풀고 아름다운 아가씨와 사랑을 한다는... 이런 이야기다.
이럴 때 유심히 보아야 할 것은 초절정무공을 전수하는 방법인데, 대부분의 무협소설에서 주인공의 무공은 어느날 하루밤 사이에 수백, 수천배 파워 레벨이 올라가는 것으로 되어있다. 싸부님이 주인공의 등에 손을 얹고 몇시간동안 진기를 불어넣어주거나, 혹은 신비로운 무공의 비결을 몇구절 외움으로써 주인공은 시골 촌놈으로부터 하루아침에 무림의 최강자와 겨룰 정도의 고수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무협소설이라 해도 주인공이 아무런 계기도 없이, 이유도 없이, 싸부도 만나기 전에 이미 절정고수로 설정되어 있다면 이 무협소설은 만화방에서도 안받으려 할 것이다. 독자들이 보기에 뻥도 어느 정도 쳐야지 무협이라고 해서 이런 터무니없는 뻥을 치면 책이 안 팔린다.
그런데 우리의 호프 선종의 제6대조사이신 혜능은 이런 무협소설의 기본을 간단히 무시해버리고 등장한다.
혜능은 사부를 만나기 전에 이미 절정 고수이며, 그것도 어떤 공부나 수련, 연마의 과정도 없이 그렇다. 혜능은 홍인을 만난 자리에서 당돌하게 말한다. '방아는 이미 다 찧었노라고' 그는 키질만 하면 일이 끝나는 단계에 있었다고 스스로 진술하고 있다.
만화방에서도 안 팔릴 엉터리 무협소설이 천년동안 베스트셀라에 올라있었던 것이다.
홍인은 혜능의 말빨에 밀려서 결국 그를 후계자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였다. 이미 홍인은 결정을 번복할 입장이 아니었다.
[삼처전심]
불교식 - 엄밀하게 말하면 조교식 선문답의 기원은 소위 말하는 삼처전심이라는 것이다.
부처가 세 번 가섭존자에게 말이 아니라 마음을 전했다 하는 이야긴데, 한번은 설법장소에 늦게 나타난 가섭존자한테 부처님이 자기 자리를 나누어 주고 같이 앉게 한 것(반분좌의 전심), 두 번째는 꽃 한송이를 들어보였을 때 가섭존자만이 그 뜻을 알고 미소지었다는 이야기(염회미소의 전심), 마지막에는 부처님이 적멸에 들었을 때 가섭존자가 늦게 와서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므로 관속에서 부처가 두 발을 내밀어 보여줬다는 얘기(곽시쌍부의 전심), 이 셋을 삼처전심이라고 한다.
삼처전심의 주인공은 모두 가섭존자다. 이 사람은 원래 지각을 잘하는 모양이다.
세 번의 전심 중에 두 번이나 늦게 온 것이 행운으로 작용했다. 부처님한테 사랑을 받으려면 지각을 해야 된다. 시간 맞춰 오는 넘은 반분좌의 마음을 받을 수가 없고, 곽시쌍부의 은혜도 누릴 수가 없다. 시간 맞춰 제 시간에 온 넘들은 제자도 아니고 부처의 마음도 알지 못하는데 유독 늦게 온 가섭존자만이 그 마음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후학들의 꿈보다 좋은 해몽이다.
부처님이 유달리 가섭을 이뻐하셨기 때문에 제자들이 질투 반, 부러움 반으로 미화시킨 이야기라고 보면 된다.
늦게 와서 지 자리를 못 찾고 두리번거리니까 같이 앉자 하시는 것은 스승의 도량이지 마음을 전하는 일이 될 수 없고, 꽃 한송이 보고 미소지은 것은 마음이 통했던 때문일 수 있지만 그것으로 해서 가섭이 한 경지 더 올라간 것도 없다. 오히려 평소에 스승님 말씀을 잘 듣고 공부를 했으니까 그 마음을 알아본 것이지, 꽃을 보고 미소지은 것이 공부에 도움이 되거나 깨달음을 얻은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염화미소는 깨달은 결과이지 깨달음의 원인이나 이유, 혹은 동기가 아니다.
가섭존자가 스승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다가 꽃 한송이를 들어서 보여주는 그 순간에 번쩍하고 깨달아 알게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먼저 알고 있었으므로 웃을 수 있었다가 맞는 말이다.
곽시쌍부도 마찬가지다.
스승이 살아있을 때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가 죽은 스승 발을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면 그건 깨달은 자도 아니다. 부활을 믿지 못하다가 다시 살아난 예수의 몸을 살펴보고 만져보고 나서야 믿었다는 열두명의 돌대가리들과 다를 바가 없다.
깨닫지 못한 넘은 발이 아니라 죽은 스승이 관속에서 일어나 춤을 춰도 소용이 없다.
다시 말하면 삼처전심이라 하는 일들은 가섭존자의 수행과 공부의 결과일 수는 있어도 그것이 깨달음이나 수행의 완성에 어떤 도움이 될 일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스승과 제자간의 신뢰와 애정을 보여주는 하나의 에피소드다.
그런데 조사라 하는 자들이 이 삼처전심을 들고 나와 부처님 가르침의 정수는 교(설법에 의한 가르침)가 아니라 이와 같이 말을 떠난 상태에서 전해주는 마음에 있다라는 택도 없는 나발들을 불어댄 것이다. 그것이 교외별전이다. 교를 떠나서 별도로 전해준다는 것이다.
달마가 교외별전을 떠든 그 날부터 불교는 노장쪽 도가들이 그렇게 하듯이 스승과 제자간에 은밀하게 전해주는 법통이라는 것이 생겼다. 불교의 깨달음이 대중적이고 보편적이며, 만인류적인 것으로부터 극소수의 음모가들 사이에서 은밀하고 비밀스럽게 전해지는 신비스러운 비법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법통을 전수하는 의식이 바로 선문답이라는 것이다.
선문답이 뭐냐?
부처가 제자들에게 꽃 한송이를 들어보이고 가섭이 그 뜻을 알아차린 에피소드의 흉내를 내자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부처의 가르침을 공부해서 제대로 깨우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특별한 행동 하나를 모방해서 저거가 마치 부처이고 가섭인 것처럼 쑈를 하자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가섭은 삼처전심으로 얻은 것이 없다. 있다면 다른 제자들의 부러움과 질투와 시기를 얻었을 뿐이다.
그것으로 해서 가섭이 공부와 해탈에 어떤 진전이 있었다는 말인가? 공부를 잘하니까 선생이 이뻐한 것이지 선생이 이뻐해서 공부를 잘하게 된 건 아니다. 이것을 거꾸로 해석해서 받아들인 것이 달마이다.
원래 달마는 도가 쪽 사람이다.
불교를 받아와서 접목을 하다보니 이 세 가지 에피소드를 아주 요긴하게 써먹은 것이다.
그 뒤부터 불교는 논리와 철학적 사유와 치밀한 설명 대신에 꽃 한송이 쳐드는 모션과 연기에 몰두하게 되어 너도나도 게나 고동이나 꽃장수로 변해 버렸다. 한가지 웃기는 것은 꽃장사는 흉내를 내면서 반분좌는 모른 척 한다는 점이다. 어떤 조사, 선사도 지 제자한테 자리 내준 넘이 없다.
절에 한번 가봐.
코딱지 만한 암자에 주지도 무슨 권위가 그리도 높은지 지 깔던 자부동 하나 신도들이 잘못 앉아봐 눈이 도끼눈이 된다고. 그리고 곽시쌍부는 능력이 없어서 말도 못 꺼내. 부처님 흉내를 내면서 평생 공짜밥을 먹고 큰소리치고 살았으면 마지막 죽을 때도 부처님 흉내는 내고 죽어야될 거 아냐.
법통을 물려준 제자한테 두발을 못 내밀어도 손가락 하나는 관 밖에 내보여 줘야지. 삼처전심을 모방해서 선문답은 잘하면서 왜 곽시쌍부는 못해?
오늘날, 천지분간을 못하는 돌중들이 부처의 제자가 아니라 달마의 제자가 된 채로 눈감고 앉아서 지랄육갑을 하는 그 선이란 것은 이미 부처님 이전에 인도에서 유행하던 것이었고, 부처님도 해보신 바이다. 그리고 나서 그런 것은 소용이 없으니 하지 말라 하셨다.
부처님의 명상은 정견, 정각, 정사유를 위한 고요한 상태 속에서의 묵상이다.
요가에 기원을 둔 인도식 명상, 달마의 간화선, 단이나, 기공단체들의 명상들은 부처님의 삼매경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진리가 무엇인지 찾고 생각하는 명상이 아니라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상태에 도달하려고 용을 쓰는 헛지랄들이다.
수없이 많은 생각들을 비교하고 바루고, 다듬어서 진실로 옳은 법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말도 안 되는 화두라는 것을 하나 붙들고 그것 외에는 어떤 생각도 안하려고 몸부림을 친다. 미래세에 이런 미련곰탱이들이 생길 줄 알았다면 부처님은 꽃을 보여주지 않았을텐데 왜 그노무 꽃 한송이를 잘못 들어서 이 모양을 맹길어놨는지 알 수가 없다.
간화선 외의 다른 선들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
의식을 내려놓고 무의식 또는 초월의식의 세계에 도달해야 한다고 나발부는 책들도 많이 본 바인데 그런 초월의식의 세계에서 만날 것은 귀신들밖에 없다. 그 곳에는 깨달음은 커녕 뽁은 깨도 한 접시 없다. 그런 명상 장사꾼들을 한번 보라. 그게 깨달은 넘들인지. 마카 책장사꾼들이다.
오죽하면 구름이 마카꽁주의자가 됐겠나?
제대로 눈을 떠야 한다. 미혹 속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불국토가 열린다.
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