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 1월 1일 주일성결회 설교문(신년감사주일)
제목: 새해!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성경: 민수기 6장 22-27절
우리 모두 새해 첫 주일 서로를 위해 멋지게 축복으로 인사 나눌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새해가 되면 많은 성도들이 축복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오늘 민수기 본문에서는 제사장은 오직 축복을 받기보다는 축복을 하기에 전념할 따름입니다.
히브리서 7장 7절에 보면 "폐일언하고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복빎을 받느니라"라는 말씀처럼 축복은 받는 사람이 아니라 하는 사람에게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권세 있는 성도는 축복을 하기에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새해에 우리가 다른 성도님들을 위해 어떤 축복을 해야 할까요?
성경 가운데 많은 축복의 기도문들이 산재해 있지만 민수기 6장의 제사장의 축복의 말씀은 새해 우리 성도들에게 베풀기에 가장 적합한 말씀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그 축복의 내용이 무엇인지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길 원합니다.
민수기 6장은 단 두 가지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첫째는 '나실인의 서원'이요(1-21절)
둘째는 제사장의 축복입니다(22-27절)
이 두 가지 내용이 언뜻 보기에는 서로 관계가 없는것 같지만, 사실은 '제사'와 '축복'이라는 구약의 전형적인 패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레위기 9장 22-24절)
"아론이 백성을 향하여 손을 들어 축복함으로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를 필하고 내려오니라
모세와 아론이 회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에게 축복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매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지르며 엎드렸더라"
나실인의 서원은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 아닙니까? 그것은 일정기간 동안 나실인은 자기 스스로 여호와께 바치는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나실인이 만약 이 기간에 자신의 몸을 더럽히면 지난 기간은 무효가 되며 새롭게 서원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 몸을 구별한 기간이 끝난 다음에 제사를 드리게 됩니다. 따라서 나실인의 서원기간 동안에는 나실인 자신이 제물이요. 그 기간은 결국 자기 몸을 제물로 드리는 제사기간이 되는 셈입니다. 그러므로 나실인의 서원 다음에 나오는 제사장의 축복은 자신의 몸을 제물 삼아 드리는 이 특별한 제사를 위한 축복입니다.
서원이라는 것은 개인의 특별한 소원을 이루고자 할 때 시도합니다(예를들어, 야곱의 서원. 입다의 서원, 한나의 서원).
소원 성취를 위해 일정한 기간 동안 자신의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바치는 것입니다.
새해는 어떤 기간입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원'을 품는 기간입니다. 그리고 그 소원을 위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새롭게 구별하는 때입니다.
첫째,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24절) bless you and keep you
제사장의 축복의 첫 내용입니다. 여기에 보면 복을 주시고 라고 했는데 이 복이 어떤 복입니까? 사람과 때와 장소에 따라 복의 개념이 다르지요. 병상에서 죽어가는 환자에게 가장 큰 복은 회복입니다.
송구영신 예배 때 소원 기도제목들 가운데...
건강 - 가장 많은 성도님들이 기도제목에 가족들의 건강을 위해 간구해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전투에 참여하는 군인에게 가장 큰 복은 전쟁에서 승리하여 살아 돌아오는 것일 것입니다.
대출금 독촉을 받는 채무자에게 가장 큰 복은 빚을 갚는 것일 것입니다.
과거에는 새해 복을 빌어 줄때 만수무강하세요. 오래 오래 사세요...라고 했는데...
"부자 되게 해 주세요. 건강하게 해 주세요. 외롭지 않게 해 주세요. 소일거리가 있게 해 주세요."
이와 같이 복의 개념이 계속 변하고 진화하고 있습니다. 사실 복의 핵심은 바로 뒤에 나오는 것이니다.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입니다. 이 말은 여호와께서 너를 지키시는 것, 그것이 바로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와께서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라고 할 때, 무엇을 지켜달라는 말씀일까요?건강입니까? 생명입니까? 몸입니까? 영혼입니까? 이런 모든 것을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하지만, 이미 말씀드렸듯이, 민수기 6장의 제사장의 축복은 나실인의 서원과 관계가 있다고 했지요.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간절한 소원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몸을 구별하고 여호와께 그 몸을 바치는 순간, 제사장이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사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라고 축복을 한다면 그것은 바로 "서원" 그 자체를 지켜달라는 것입니다. 그 서원이 이루어지길 원하는 것이고 이것이 복이기 때문입니다.
새해에 우리가 품은 소원이 오래 가지 못하여(작심삼일) 곧 사라져 버리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현실이라는 높은 장벽 앞에서 사람들은 스스로 그 소원을 포기합니다. 때로는 시험과 환란 앞에서 소원들을 모두 빼앗겨 버리기도 합니다. 소원 자체를 지키는 것, 이것이 중요한데 말입니다. 따라서 제사장의 첫 번째 축복은 이 소원이 지켜지길 축복합니다. 이것이 소원성취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일반 사람들이 사용하는 새해 인사에도 '소원성취 하십시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사말이지 축복이 아닙니다. 축복과 인사말의 차이는 누구의 이름으로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27절에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내 이름으로' 즉 '여호와의 이름으로'하지 않는 것은 제사장이라고 할지라도 아무리 멋진 내용이라고 할지라도 복이 되지 않습니다. 복의 주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요"(요15장 16절)
복의 주체가 주님이시기 때문에 당신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에는 우리 모두의 소원이 지켜질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기도제목들이 사단에게 빼앗기지 않고 그 소원이 지켜 질 수 있도록 서로가 축복 기도해 주셔서 그 모든 기도제목들 소원들이 주안에서 다 이루어지길 축복합니다.
저는 오늘 새벽기도회에 무릎 꿇어 기도하면서 저는 목회자로 금년 새해에 여러분들의 기도제목과 소원들을 보면서 제가 그중에 하나도 해 줄 수 없고, 도와줄 수 없는 내용임을 솔직히 고백했습니다.
제가 무엇인관대 여러분들을 부자로 만들어 드릴수 있겠습니까?
제가 무엇이관대 유명한 의사도 아닌데...여러분의 건강, 가족의 건강을 회복시킬 수 있겠습니까?
제가 무엇이관대 무슨 대기업의 사장도 아니고 여러분의 간절한 직장을 일터를 제공해 줄 수 있다 말입니까?
제가 무슨 결혼 전문가도 아니어서 여러분에게 가장 적합한 배우자를 구해 줄 수 있단 말입니까?
주님, 저는 목회자로서 성도님들의 각자의 기도제목에 소원들을 이루어 줄 수 없습니다.
그런데요, 제가 오늘 아침에 힘을 얻는 것은요, 제가 단지 한 가지 정말 단 한 가지 해 줄 수 있는 길이 있더라구요. 그것이 바로 오늘 민수기 6장의 제사장의 축복기도문의 내용입니다. 주님께서 제사장의 축복을 통해 내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주님의 이름으로 성도들을 위해 축복을 하면(27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내가(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나는 다만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의 소원에 축복을 빌어 주면 이루어 주실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이 간단한 사실을 새삼 느끼며 그래 계속 성도들을 위해 성도들의 기도제목과 소원들을 위해 축복해 주면 하나님이 이루어주실 것이다. 할렐루야!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 성도들의 기도제목을 놓고 축복해 주는 것 밖에는요...다른 길이 없습니다. 목회자로서...
둘째,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25절)
밤하늘을 밝히는 커다란 보름달을 보면 무엇인가 풍성함을 느낍니다. 달덩어리 같은 얼굴...
뉴질랜드 달은 더 크게 보임.
정월 대보름엔 아마 더 큰 보름달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보름달도 자기 스스로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우리가 소위 달빛 달빛 그러는데 달은 빛을 발할 수가 없다고 하지요. 단지 지구 반대편에 있는 태양의 햇빛을 받아 반사되어 달이 빛을 발하는 것 처럼 비취어 진다고 하지요. 과학적으로 달빛이 아니고 햇빛이 달에 비추어 반사되어 비추어지는 것이니 사실 분명히 말하면 달빛이 아니라 햇빛이지요. 따라서 빛의 근원인 태양이 가리워진다면 달은 단 한 줄기 빛도 발하지 못한다고 하지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는 곧 그 분의 얼굴로 비추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 분의 빛을 받아 우리도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지요. 사실은 은혜는 주님이 비추어 주셔야 하는 것이지요.
성경에 은혜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사도바울은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빚(보수)로 여겨지거니와"(롬4:4) 다시 말해 "은혜"란 수고의 댓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나실인의 서원‘에 대하여 은혜를 축복한다는 것은 서원의 성공이 혹독한 고생의 결과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성공이 다만 우리의 노력과 공로만으로 된다면 무슨 하나님의 은혜이겠습니까? 자신의 공적일 따름이지요.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 무자비한 고행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면 실제로 그 소원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백의 한명이나 될까 말까이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성공이 보장되어 있어도 통과할 수 없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그 성공은 그림에 떡일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아야 하고 주님의 은혜가 우린 늘상 필요합니다. 이 은혜는 서원의 결과를 위한 것이 아니라 서원의 과정을 위한 것입니다. 결과에 도달하는 과정이 고행이 아니라 은혜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렇다고 나는 주님의 은혜만 기다리고 노력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사실 내가 오늘 노력할 수 있는 힘도 의지도 생각도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가 아니겠습니까?
새해에 많은 사람들이 소원 성취를 위해 굳은 결심들을 합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노력은 항상 한계에 도달합니다. 그 한계를 벗어나게 하는 것이 은혜가 아닌가?
"너희 안에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니"(빌2:13절).
사실 여기에 보면 우리만 행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께서도 우리 안에서 행하십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행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소원 자체를 우리 안에 내 인생 삶속에 두신 분도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나에게 주신 꿈이요. 비젼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더 큰 은혜입니다. 솔직히 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말하고 있지만 우린 때로 자신에게 가장 유익한 소원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합니다.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주님께서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는 덕분에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 아니고 무엇이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금년에 세운 기도의 제목들이 소원들이 성취되는 과정에도 서로를 위해 축복하기를 소원합니다. 주님의 풍성한 은혜로 그 기도의 제목들이 이루어지고 그 과정... 과정...을 통해 주님의 역사로 은혜로 이루어지길 축복합시다.
주님의 얼굴이 나에게 비추어져서 그 빛이 나에게 은혜가 되어...그 환한 빛으로 이웃을 비추게 하소서...
우리의 기도제목. 소원이 시작부터 이루어지는 과정은 물론이고 결과까지 성취까지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로 되게 해 달라고 주님의 빛으로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셋째,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26절)
제사장의 마지막 축복의 내용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평강은 샬롬입니다.
샬롬은 평화를 말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나실인의 서원'을 하는 사람에게 제사장은 마지막으로 평화를 축복합니다. 평화의 반대는 전쟁이고 불안입니다. 개인에게는 평안이 없을 때 불안이 오지요. 나실인의 서원에 불안의 요소가 있다면 그 이유는 의심일 것입니다. 소원성취에 대한 의심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의심은 죄악입니다. 의심은 곧 불신으로 이어지지요.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롬14장 23절). 이 말씀의 핵심은 평강은 서원에 믿음을 더함으로 서원이 죄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소원의 성취는 서원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원을 하는 사람의 믿음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지요. 간절한 소원에 믿음과 확신을 갖게 되면 우리는 평강(샬롬)을 갖게 되지요. 이러한 평강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가능합니다. 그래서 제사장 축복의 평강은 '여호와께서 그 얼굴을 향하여 드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다음과 같이 찬양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시4:6-8).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르다고 하셨지요. 그 평안이 내게 우리 모두에게 넘쳐나길 새해엔 기도해 봅니다. 마음이 평안해야 무엇이든 되질 않겠어요.
찬송가 470장....내 평생에 가는 길...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아니면)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저 마귀는 우리를 삼키려고 입 벌리고 달려와도 주 예수는 우리의 대장되니
끝내 싸워서 이기겠네 /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새해엔 주님의 얼굴이 여러분 한 분 한분에게 임하여 마음속에 평안이 넘쳐 흘러 주어진 기도제목에 확신을 갖게 하고 기쁨이 충만한 삶이 이어지길 축복해 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에는 우리 오늘 본문의 제사장의 축복기도문으로 다른 성도님들을 위해 축복해 주십시다. 주님의 이름으로 서로를 축복합시다. 그래서 주님의 복과 은혜와 평강을 누리는 금년 새해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축도...
여호와는 우리 구세군 성도님에게 복을 주시고 우리 구세군 성도님들을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우리 구세군 성도님들에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우리 구세군 성도님들에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