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 첫째날..
부평에서 버스를 타고 약 1시간 30분 걸려 강화 버스터미널에 도착.
당초 목적지인 갑곶돈대가 강화역사관 내에 있다는 얘기를 듣고 강화역사관까지 도보로 약 40분에
걸쳐서 이동..
이동중 현영이와 현수는 쉬지않고 떠들었고, 쉬지 않고 뒤로 처짐..
다리 짧은 성은이.. 꿋꿋하게 잘 걸어간 기억이 있음..
강화역사관 도착.
인상이 서글서글하신 안내 아저씨를 따라 역사관 건물 내부의 제 1, 2, 3, 4실을 다 둘러보고
밖으로 나와 갑곶돈대와 포, 그리고 멍텅구리 배를 봄..
강화역사관에서는 그곳에서 자원봉사로 일하시는 인상 좋은 아저씨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말도 잘하시고 겉보기와는 달리 해박한 지식, 그리고 설명할 때마다 풍기는 강화에 살고 있다는 자부심과 애국심등등..
원래의 코스가 아닌 곳에서 뜻밖의 수확을 얻어 모두들 좋아했으나, 걸어온 길을 다시 걸어가야하는 말에 몇몇은 시큰둥~~
*강화역사관
강화군은 선사시대의 유물인 지석묘를 비롯하여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고려시대의 팔만대장경 및 금속활자,
고려자기등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웠던 고려의 유적지이다. 이후 조선시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시 인조임금의
피난수도 이기도 했으며 조선말기에는 대원군의 쇄국정치와 천주교의 탄압으로 빚어진 프랑스 함대의 침입 사건인
병인양요, 그리고 신미양요 그 후 운양호 사건으로 강화도조약 체결등 풍운을 겪어낸 역사의 산실로 강화도 전역에
14개의 대소 사찰과 97점의 문화재를 간직한 역사의 고장이다.
국난을 극복한 강인한 민족의 저력과 슬기로운 문화를 계승시켜 민족항쟁의 위업을 선양하고 호국정신의 함양을 위하여
1984년부터 5개년 사업으로 16억 7천만원을 투입하여 1988년 9월 14일 강화역사관을 개관하였다.
*제 1 실
석기시대부터 선조들의 생활흔적인 돌도끼, 돌칼, 환석, 유문토기등을 전시했으며 지석묘, 청동기시대 생활상등이 펼쳐진다.
(구석기시대에서 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
*제 2 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문화전시실로 고려 고종19년(1232)에 강화천도시부터 불심으로 몽고의 침입을 막아보려던
팔만대장경 제작과정, 그외에 강화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고려시대에서 부터 조선시대까지)
*제 3 실
몽고침입에서 병자호란 당시 유품등이 전시되어 있다.
(몽고침입에서 부터 병자호란까지)
*제 4 실
1866년 병인양요와 1871년 신미양요 전투의 생생한 모습과 1875년 운양호 사건으로 말미 암은 강화도조약 체결이후
1910년 한일합방에 이르면서 강화의 3.1운동사가 펼쳐진다.
(신미, 병인양요에서 부터 3.1일 운동까지)
*'수'자 기
1871년 신미양요때 미 육전대가 가져간 어재연 장군의 기(旗)로 현재 미국 애나포리스해군사관학교의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강화역사관에 전시되어 있는 것은 모조품으로 만들어 놓은 똑같은 모양의 "수"자기이다. 안내하시던 분이 꼭 우리가 되찾아와야
한다고 얘기하시던 모습 생생~~
*조선시대 철모
병자호란 당시 갑곶진을 방어하다가 전사한 황대곤 장군의 유물인 조선시대 철모이다.
*갑곶돈대
고려 조정이 고종 19년(1232)부터 원종 11년 (1270)까지 강화도로 도읍을 옮겨 몽고와 줄기차게 싸울 때의 외성으로 강화해협을
지키던 중요한 요새였다. 조선 인조 22년 강화에 여러 진이 설치될 때 제물진에 소속된 돈대로서 숙종 5년(1679) 축조되었다.
고종 3년(1866) 프랑스함대가 상륙하여 강화성, 문수산성을 점령하였으나, 정족산성 전투에서 양헌수 장군 부대에 패주하였다.
돈대 안에는 조선시대의 대포가 전시되어 있다.
다시 강화 버스터미널로 돌아와 버스를 타고 약 25분에 걸쳐 전등사 입구에 도착..
입구에서 전등사 아래 숙소까지 약 10분 도보로 이동..
먼저 숙소를 잡고 전등사를 올라가기로 했는데 '99년 동아리 징크스'인 비가 그때부터 주륵주륵 내리기 시작함.. 쩝...
(맨날그래..)
할 수 없이 모두 우산을 들고 전등사로 올라감.. 비가와서인지 사람들이 별로 없었음.
가기전부터 일화등을 조사해서 모두들 알고 있던 전등사 대웅전 나녀상이 가장 관건이었으나 기대에는 못 미침..
전등사 주위에서 사진을 몇장 찍고 기념품 판매점에서 영이하고 성은이한테 앞으로 잘하라고 하면서 열쇠고리를
선물함... (근데... 잘하고 있지??^^)
!!막간소개 : 전등사를 올라가는 중턱에 전통찻집이 있음. 분위기 좋고 왠지 차맛도 괜찮을 듯.. 연인들끼리의 데이트 코스로
적극 추천..
답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서 저녁을 해먹고 하루의 총화 후에 내일의 마니산 등반을 위해 일찍 자려고 했으나, 다들
집을 떠나 들떠있었는지 밤늦게까지 얘기들 많이함.. 난 민영성과 강화 인삼동동주를 무지하게 먹음..
!!또 막간 소개 : 강화의 인삼동동주.. 걸쭉.. 톡쏘는 맛.. 몸에 좋은 약재 듬뿍.. 이정도면 좋겠죠??
*전등사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삼랑성 안에 위치한 이 절은 고구려 소수림왕 11년(서기 381)에 고승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축조하였다고 전하여 오는데, 창건 당시에는 진종사(眞宗寺)라 불리었습니다.
고려 충렬왕비 정화궁주가 이 절에 옥등 (玉橙)을 헌납하면서부터 전등사라 명명되어졌으며,
경내의 주 건물은 석가삼존을 봉안한 대웅보전(大雄寶殿-보물제178호)을 비롯하여 약사여래를 봉안한 약사전(藥師殿-보물 제179호),
명부전, 극락전, 대조루, 강설당 등이 있으며, 동종과 열매가 열리지 않는 은행나무, 법화경 104매의 목판등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전등사 대웅전
고구려 소수림왕 11년 아도화상이 창건하여 진종사라 하였으나, 고려 충렬왕 8년(1282)에 원비 정화궁주가 옥등을 헌납한 후
전등사라 개칭하였다한다. 1916년 대웅전 수리시 발견된 양간록에 의하면 조선 선조 38년(1605) 및 광해군 6년(1614)에
화재를 인하여 소실 된것을 철종 6년(1855)에 규영화주에 의해 중건되었다 한다. 이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집이다.
*전등사 악사전
조선시대 다포계열의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지붕 건물로, 내부 천장은 중앙 부분에 우물 천장을 두고 주위에는
빗천장을 만들고 거기에 돌아가면서 화려한 연화당초문을 그려 놓았다.
*전등사 범종
중국 북송 철종 4년(1097, 고려 숙종 2년) 하남성 회경부 수무현 백암산 숭명사에서 주조된 철제 범종이다.
종의 용두에는 두마리의 용이 등진 형상을 하고 있고, 종견(종의 어깨)에는 16엽의 연꽃잎을 돌렸다. 또한 종신에는
2개에서 4개의 횡선을 배치하여 상.중.하단으로 구획하였으며 그 안에 각각 8개씩의 가사문대를 양각하였다.
*전등사 대조루
상량문에 의하면 조선 영조 25년(1749) 총섭(주지) 초윤등에 의하여 개건되었고, 헌종 7년(1841) 총섭 연홍등이 중수하였다고 한다.
경내 입구에 세운 누각으로 공포는 초익공형식이며 팔각지붕으로 되었다. 내부에는 현종 원년 향산에서 이곳으로 옮겨 세웠다는
선원각, 장사각의 현판과 영조 2년(1726) 왕이 이곳에 친임하여 써 주었다는 취향당 현판등이 있는데 이들 건물들은 현존하고 있지
않다.
*전등사 나녀상
대조루(對潮樓) 한 문에 붙어 있는 안내문에 간략하게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전등사 나녀상 :
벌거벗은 여인의 상으로 절을 짓던 도목수의 부인이 변절을 하고 다른 남자와 재산을 모두 갖고 도망을 하였다.
화가 난 목수가 벌을 세우기 위해 여인의 조각을 대웅전 네 귀퉁이에 새겨 놓았다는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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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둘째날...광성보, 덕진진, 마니산으로...
답사셋째날...석모도 보문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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