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4회 산행일지 : 하늘다리와 바위의 조화
(경북 봉화군 명호면 청량산)
일시 : 2008년 9월 27(토)
날씨 : 맑음
8월 중순부터 시원해져 가을이 빨리 오나 싶더니만 오히려 추석이었던 9월 15일 부근은 물론이려니와 20일이 넘어서도 낮기온이 30도를 오르내리는 더위가 계속되었다. 세계는 기후변화에 대응한다며 난리들이고 저탄소, 그린에너지 관련 산업이 우리나라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정해진 것도 요즈음 날씨와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이 서브프라임 사태를 이겨내지 못하고 비실 거리더니만 결국 세계 3위 투자회사인 리먼 브라더스가 도산한 이후 세계경제가 휘청거리고 이에 따른 우리나라 경제도 주가급락과 환율 불안, 이율상승 등 여러 가지로 고통스러운 날들을 보내고 있다.
더구나 중국의 싼루 우유회사에서 질소량을 높일 목적으로 식품으로는 사용할 수도 없고 사용해서는 안되는 공업원료인 멜라민(C3H6N6)을 첨가하여 이로 제조된 분유를 먹고 500여명의 어린이가 신장결석에 걸리고 급기야 몇 명이 죽어나는 사태가 발생하여 세계가 발칵 뒤집힌 것도 9월 들어서 일이다.
중국식품이 우리나라를 놀라게 한 적은 간혹 있었지만 이처럼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것은 처음이다. 북경 올림픽을 치르며 한껏 폼을 잡았는데 곧바로 후진타오 주석이 기회있을 때마다 국제사회에 사과하는 모습이 자주 매스컴에 잡혔다.
우리나라에서도 커피크림, 과자 등 중국산 원료가 들어간 제품에서 속속 멜라민이 함유되었다고 발표되고 있어 신문지상마다 연일 식품회사 명의로 사죄의 글이 크게 오르고 다행이 피해간 회사는 역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세상이 참으로 번다하고 어지럽다. 나도 개인적으로 9월부터 대학의 부학장 보직을 맡게 되어 더욱 정신없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바 이럴 때일수록 여유를 가져야한다는 것은 참이론이지만 실천은 다들 쉽지않다.
이번 산행은 비교적 가깝기도 하지만 바위와 단풍이 좋고 잘하면 송이밥 한 그릇이라도 먹어볼 요량으로 많이 아껴두었던 곳이 청량산이다.
놀토여서 일찍 서둘러 먼 곳을 다녀올까도 하였지만 마침 봉화 송이축제도 이날 개막한다기에 아껴두었던 곶감 빼먹는 심정으로 그리 통문을 돌렸다.
8시 청죽의 차로 출발, 서대구 톨게이트에서 최근 건강이 좋아 보이지 않는 매송을 태워 중앙고속도로에 실었다. 흰, 연보라, 노란 들꽃들, 맑은 하늘, 개끗한 공기, 그리고 야산과 들녘들과 잘 어울리는 가을의 풍경을 보고 있노라니 다들 얼굴까지 환해진다.
남안동 IC를 나와 안동의 낙동강변에 이르니 안동탈축제가 크게 장을 벌렸고 35번 국도를 따라 도산서원을 지나 10시 20분 경 청량산에 닿았다. 차도 사람도 많아 주차자리를 겨우 얻어 걸렸다.
김효동과 김신동 그 아들들 합 5명이 우연히 청량산에 왔다. 차를 청량산의 입구, 청량폭포 앞과 이로부터 1km 이상 거리에 있는 입석대의 등산로 입구에 각각 주차하고 10시 40분 산행을 시작한다.
오늘은 입석대-응진전-김생굴-자소봉-탁필봉-하늘다리-장인봉-청량폭포에 이르는 약 5시간 거리의 종주코스를 잡았다.
청량산은 완전 돌산으로 봉우리가 12개에 이르며 일명 이를 육육봉이라고도 한다. 다행이도 날씨가 맑고 시원하다. 20여분을 오르면 좁은 여유 땅들을 가득 채운 응진전 앞의 예쁜 채전을 만난다. 고추, 배추, 무, 청경채, 상추, 호박, 들깨, 열무, 몇몇 과수까지 정말 없는 게 없다. 보기만 해도 입맛 도는 무공해 식물들이 오늘은 더욱 귀해 보인다. 채전 옆에는 귀여운 정낭이 바위 밑에 자리 잡았다.
응진전은 고려 공민왕의 부인인 노국공주의 상이 법당에 있다고 하며 뒤쪽으로는 거대한 바위가 버티고 있는데 이를 동풍석이라 한다. 이 動風石은 사람이 밀거나 바람이 불어도 흔들린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사람이나 바람이 흔들기엔 너무나 크고 견고해 보였다.
청죽도 간파한 것이지만 이곳의 바위와 돌들은 마치 마이산의 바위나 돌들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 돌들이 시멘트와 함께 이겨져 있는 듯 바위 속에 여러 크기와 모양, 색을 지닌 또 다른 돌들이 박혀 있다.
응진전 앞에는 기와불사를 안내하는 작은 부스가 있는데 지붕과 몸통을 굴피로 둘러놓아 보기에 무척 눈에 든다. 절집에는 들러보지도 못하고 최치원이 마셨다는 총명수를 맛보지도 못하고 지나쳐 버린다.
청량사가 아늑하게 보이는 조망 좋은 어풍대 부근에서 사진을 찍고 좀 더 오르면 김생폭포다. 가을 가뭄이 심해 떨어지는 물은 없으나 높이는 그만하다. 교매가 폭포라는 글자를 몸으로 가리며 사진을 찍는다.
곧 김생굴인데 이곳은 통일신라시대 서예가 김생이 글쓰던 곳이라 하는데 9년 정도 이곳에서 정진 후 하산하려하자 청량봉녀가 나타나 길쌈과 글쓰기 솜씨를 겨룰 것을 제안하게 되고 어두운 이 굴에서 시합한 결과 김생의 글이 처녀의 길쌈솜씨보다 못하여 1년간 더욱 정진하여 10년을 채웠다는 설화가 있다는 곳이다. 한석봉 얘기가 여기서 나왔는지, 아니면 한석봉의 얘기를 후대사람이 이굴에 덧칠하였는지는 모르지만 요즈음으로 말하자면 표절에 가까운 시나리오다.
김생굴을 돌아서니 이제는 약 30여분이나 계속되는 급경사의 흙길을 만난다. 안부에 올라서 사과를 먹으며 청죽은 “청산가리를 먹고도 견딜 수는 있지만 나이 먹고는 못견딘다”는 명언은 남긴다. 이제부터는 능선길이다. 12시경 주능선에서 우측으로 빠진 능선에 자리를 잡고 늘 같은 메뉴의 식사 준비. 매송은 고기 구워 먹기에 좋다며 돌판 하나를 주워 와서는 청죽의 배낭에 넣고 자신의 배낭과 바꾸어 메고 점심자리를 일어선다. 큰 길가에서는 간 큰 중년의 부부가 버너에 팬을 얹고 고기를 구워먹고, 취사를 하고 있다.
광화문에 선 이순신 장군의 동상 모습 아래 띄어쓰기도 없이 ‘이순신장군다음으로산’이라고 적힌 시그널을 떼었다.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궁금해 나중에 적힌 사이월드 주소로 들어가 보았지만 잘못된 주소라고 한다.
점심 전 헤어졌던 가족들을 아직도 못 만난 듯 김신동과 아들이 되돌아갔다가 오는 길이라며 오히려 뒤에서 나타났다. 다소의 오르내림이 있지만 30여분 정도면 자소봉 아래의 삼거리를 만난다. 물론 도중에 하산하는 길이 많다. 산악회 이름과 화살표시가 그려진 A4 사이즈의 흰 종이들이 바닥을 어지럽히고 있다.
자소봉을 오르는 철계단은 이제 교통체증을 느낄 정도이다. 자소봉 정상은 인산이해다. 그 틈에 식사를 하거나 표지석을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찍는 등 왁짜하다. 한켠으로 물러서 주변을 돌아보니 소나무, 바위, 청량한 시선들이 선계(仙界)같다. 매송은 ‘황산을 닮았다’ 한다. 정작 자소봉 정상은 오르지 못할 뾰족한 바위로 우리의 발보다 더 높은 곳에 있고 표지석은 자소봉이 840m라고 적고 있으나 오르지 못할 정상을 가리키는 것인지 발 닿은 곳의 높이를 말해주는 지 알 수가 없다.
자소봉을 내려와 우측 하늘다리 방향을 향하면 석현봉, 탁필봉(820m) 등의 봉을 지나 700m 거리의 안부, 뒷실고개에 이르면 여기서 하늘다리는 500m 거리에 있다.
청량산 하늘다리는 그 규모가 크다. 해발 800m 위치에서 선학봉과 자란봉을 연결하는 현수교로서 지상고 70m, 길이 90m의 국내 최장 산악현수교이다. 국내의 산에 걸쳐진 다리로는 월출산, 대둔산, 강천산, 서대산 정도가 유명한데 유교문화권관광개발을 목적으로 봉화군에서 금년 5월 설치한 것이다. 이 다리 덕분에 관광객이 많이 늘었다는데 과연 경치가 좋다.
하늘다리를 지나 500여미터를 진행하면 좌측으로 청량폭포로 하산하는 길이 있고 오르막 방향 300m 지점에 정상인 장인봉이 있다는 이정표가 있다. 전망은 그다지 좋지 않지만 장인봉 정상(870m)에도 사람은 많다.
김생의 글에서 집자하여 새겼다는 정상석 앞에서 줄서서 사진을 찍고는 곧 전망대 방향을 자리를 피했다. 전망대는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데 여기서 보이는 명호천과 산골짜기 등 내려다보이는 경치는 물론 구절초와 바위봉, 그리고 푸른 하늘 등 눈높이에 맞닿은 경치도 볼만하다. 돌아오다 정상석을 보니 뒷면에는 조선 중종 때 풍기군수를 역임하고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 서원을 세웠고 유명한 소수서원의 사액을 받은 주세붕이 지은 ‘登淸凉頂’ 시가 한문으로 그리고 ‘정상에 올라’의 제목으로 번역본이 새겨져 있다.
장인봉에서 조금 내려오니 김효동의 아들 수현이가 몸이 불편한 기색이다. 배가 아프다기에 눌러보니 체한 것 같아 지압과 일회용 침으로 손을 따주는 동안 오늘 등산을 시작한 모든 가족이 함께 모이게 되었다.
하산은 청량폭포 1.5lm 방향으로 하는데 계단과 경사가 아주 심하다. 한참을 내려오니 양철지붕의 집이 있고 주변에는 감나무, 뽕나무, 모과나무, 콩밭 등이 있어 사람이 사는 것 처럼 보인다. 두 기사가 차를 가지러 간 사이 청량폭포 위쪽에서 탁족, 아직은 참을 만한 온도이다. 아이스크림까지 먹고 두 대의 차로 헤어져 각자 봉화읍의 송이축제장으로 갔다.
먹는 골목과 송이를 비롯한 각 면의 생산물을 파는 골목, 그리고 공연장이 강을 주변으로 펼져져 있다. 올해는 가물어서 생산량이 적어 kg당 55만원을 호가하는 귀하신 송이들, 장윤정과 현철 등 가수는 8시에 출연한다는 공고를 보면서 주변을 돌아 나왔다.
저녁은 봉화의 돼지고기로 유명한 봉성면의 풍성식당에서 맛있게 먹고 20kg도 넘어 보이는 사과 1box를 만원에 사서 나누었다. 뒤에 들은 얘기지만 김효동 가족들도 풍성식당 옆집에서 저녁을 들었단다.
登.苦.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