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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시 (할을 하고 말씀하되)
억!
흰 뼈가 산처럼 이어 있고 흐르는 피가 개울을 이룬다.
(또 한 번 할을 하고 말씀하되)
억!
일천 해가 함게 솟고 만민이 함게 즐거워한다.
(또 한 번 할일을 하고 말씀하되)
억!
붉은 갓 쓴 도시는 연화경連華經을 외우고 둥근 머리 스님은 주역周易을 강한다.
말해 보라, 이 무슨 도리인가?
(한참 묵묵한 후에 말씀하셨다.)
만법이 없어질 때 전체가 드러나고
군신君臣의 뜻 합하는 곳이 바른 가운데 삿됨이로다.
◎ 일체 만법이 사라진다고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일체 만법이 사라질 때 비로소 전체가 드
러납니다. 임금과 신하의 뜻이 완전히 맞아떨어질 때 정중정正中正이 되어야 할텐데 왜 정중사
正中邪가 된다고 했을까요? 이 말을 알면 앞의 법문과 뒤의 법문을 다 알 수 있습니다.
본칙 흥화스님이 상당하여 말하였다. "오늘 이렇다 저렇다 하지 말고 곧 단도직입함을 바라노니 흥화가
그대들을 위하여 증명하리라."
이때 민덕장로가 대중 가운데서 나와 절을 하고 일어나서 갑자기 할을 하니 흥화스님도 또한 할을
하였다. 민덕장로가 절을 하고 대중 속으로 돌아가자 흥화스님이 말하였다.
"조금 전에 만약 딴 사람이라면 삼십 번 몽둥이질에서 한 몽둥이도 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저 민덕은 한 할이 한 할의 작용을 쓰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 "어떤 때 할은 금강왕의 보배칼과 같고 어떤 때 할은 땅에 버티고 않은 사자와 같으며 어떤 때 할
은 탐간과 영초같고 어떤 때 할은 할을 할로써 '쓰지 않고 쓴다"고 한 임제스님의 법문이 있습니다.
흥화스님이 민덕 장노를 때리지 않느 까닭이 민덕 장노는 할의 작용을 하지 않는 할을 분명히 알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명한 흥화와 민덕의 법문입니다. 내 두 스님의 뜻을 거두어 한마디
하겠습니다.
착어 장안 집집에 밤마다 달이 밝은데 몇 집에서 피리 불고 노래하며 몇 집에서 근심하는가?
◎ 온천지를 치우침 없이 고루 미추는 달빛 아래 그 달을 보고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도 있고 그 달
을 보고 슬퍼서 우는 사람도 있다는 이 소식을 바로 알면 흥화스님과 민덕 장노가 맞받아 할한
소식과 할이 할로써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송 대혜 고선사가 송하였다. 어둠 속에서 손을 잡고 높은 산에 올랐다가 날이 밝으니 제각각 길을 간
다. 중도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한없는 손이 밝고 밝게 눈을 뜨고 깊은 구덩이에 덜어졌네.
◎ '캄캄한 밤중에 험한 산길을 가자니 혹 넘어지거나 위험한 지경에 처할까봐 손을 잡고 올라가고
날 밝으면 위험할 것 없으니 손놓고 제 갈 길로 간다고 했겠지'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거
기에 뜻이 있는게 아닙니다. 여긴엔 아주 깊은 뜻이 있습니다.
어두울 땐 서로 손을 잡고 산으로 올라갔다가 밝으니까 서로 손을 놓고 제 갈 길로 간다는 이것
이 흥화와 민덕이 서로 할한 소식을 바로 전한 것입니다.
"밝고 밝게 눈을 뜨고 깊은 구덩이에 떨어졌네"라고 했는데 왜 봉사도 아니면서 두 눈 뻔히 뜨고
깊은 구덩이에 떨어졌을까요? 이것이 실지에 있어서 두 분이 할을 한 근본소식입니다. 여기에 대해
내 한마디 하겠습니다.
착어 집에서는 가난하고 길에서는 부하도다.
◎ 집에서는 추위와 가난이 뼈에 사무칠 지경인데 길에 너서면 부자라 했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일
까요?
집에 있을때는 끼닛거리도 없어 쩔쩔매는데 어째서 길만 나서면 천하갑부냐 이말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대혜스님 게송의 뜻을 알 수 있고 아울러 흥화와 민덕이 할을 한 소식도 알 수 있습니다.
송 나암 추 선사가 송하였다.
민덕의 한 할은 우레같이 울리고
흥화와 한 할은 울림이 우레 같다.
비단 도포 옥띠가 참으로 산뜻하니 그때의 늙은 만회萬回를 생각한다.
◎ 흥화와 민덕 두 분의 고함 소리가 청천백일의 뇌성벽력 같아서 천지가 무너지고, 천하에 둘도 없
이귀한 비단도포에 옥으로 만든 띠를 두른 것처럼 산뜻하고 보기가 좋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할하고 무슨 관계 있기에 뇌성벽력같다고 하고 비단 옷에 옥대같다고 할까요? 앞 뒤가 서
로 연결이이 되지 않는는 것 같지만 큰 맥이 분명히 통해 있습니다.
" 늙은 만회를 생각하게 한다"고 하였는데, 당나라 때 만회萬回스님이라고 유명한 분이 계셨습니
다. 하도 유명해 고종황제가 궁중에 모셔놓고 비단으로 옷을 해 입히고 옥으로 띠를 만들어 둘러주
며 극진히 대우한 일 있습니다. 그래서 금포옥대를 한 것을 보니 이전에 만회스님을 생각하지 않으
려야 않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무슨 뜻인가? 두분의 할이 뇌성벽력처럼 무시무
시하다고 하고선 다시 금포옥대처럼 휘황찬란하다고 하니 아것이 무슨 뜻입니까? 그 뜻을 표현해 내 한마디 하겠습니다.
착어 모자를 버리고 구름을 뚫고 가며
도롱이를 입고 비를 맞으며 온다.
송 설암 흠선사가 송하였다.
조와 용을 함께함과 함께하지 않음이여
권과 실이 쌍으로 나아가니 깨달은 이는 안다.
또한 얻음도 있고 잃음도 있으나
저 용과 범이 스스로 엇바꾸며 달음박질친다.
◎ 임제정맥의 설암 흠선사는 고봉 원묘선사의 스승입니다. 조와 용은 법신을 말합니다. 법을 쓸 때 조
와 용을 동시에 스기도 하고, 어떤 때는 먼저 조를 쓰고 나중에 용을 쓰기도 하고, 또 먼저 용을 쓰고
나중에 조를 쓰기도 합니다. 결국 말하자면 조와 용을 같이도 쓰고 시간적으로 선후를 두어 따로 쓰기
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확철히 깨쳐 자성을 분명히 본 사람만이 이 깊은 소식을 알 수 있지, 그
이외 사람은 모른다는 말입니다.
얻음도 있고 잃음도 있다 했는데, 얻었으면 분명히 얻었지, 어째서 어떤 때는 분명히 얻고 또 어떤
때는 분명히 잃는다고 할까요? 그리고선 용과 범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자유자재로 노닐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 무슨 뜻이 있는가? 여기에 대해 내 또 한마디 하겠습니다.
착어 얼굴 검은 노파는 흰 실을 쓰고 흰머리 노옹은 검은 적삼을 입었네.
◎ 얼마나 못났는지 얼굴이 먹같이 새카만 노파는 흰 옷을 입고, 머리가 허연 늙은이는 새까만 옷을 입
었다고 했습니다. 앞뒤가 반대지요. 할멈은 얼굴이 새카만데 흰 옷을 입었고 할아범은 멀리는 허연데
검은 옷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도리입니까? 이것을 바로 알면 조와 용을 동시에 쓰고 조
와 용을 따로 쓰는 것도 알 수 있고, 할이 할의 작용을 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깨
쳐야 알지 사량분별로는 절대 모릅니다. 그러니 어떻게든 부지런히 공부해서 확철히 깨쳐야만 합니
다. 또 임제정맥의 수산성념선사가 이 공안을 들어 법문하신 것이 있습니다.
염 수산 념 선사가 상당하여 이 법문을 들어 말하였다. "저 흥화가 이렇게 작용함을 보니 어째서 저
민덕의 허물을 놓아주었는가? 모든 상좌들아, 말해 보라. 어떤 곳이 한 할이 한 할의 짓지 아니함인
가? 이 앞의 할인가, 이 뒤의 할인가? 어느 것이 손이며 어느 것이 주인인가? 그러나 모름지기 자세
히 살펴야 옳다."
한참 묵묵한 후에 말하였다.
"둘 다 허물이 있고 둘 다 허물이 없다."
◎ 흥화스님은 분명 "할이 할의 작용을 하지 않는 도리를 민덕이 알기 때문에 때리지 않는다"고 했는데, 수산
스님은 "왜 저 민덕의 허물을 그냔 두느냐?"고 했습니다. 흥화스님과는 반대로 하는 말씀입니다.
또 민덕이 두 번 할을 했는데, 앞의 할의 작용을 하지 않은 것인가, 도 임제스님께서 한 할에 빈주, 즉 손임
과 주인이 분명하다고 했는데, 어느 것이 손임이며 어느 것이 주인인가 하고 수산스님이 대중에게 물은 것입 니다. 그리고선 "머름지기 자세히 살펴야 옳다"고 하셨습니다. 분명히 확철히 깨쳐야 되지, 깨치기 전에는 이 도리를 모른다는 말씀입니다. 한참을 묵묵한 뒤에 "민덕과 흥화 두 사람이 다 허물이 있다. 그런 동시에 둘 다 허물이 없다"고 했는데 이건 통 말이 되지 않는 소리 아닙니까? 흥화스님과 민덕장노 두 분 모두 분명히 임제의 정맥을 이는 조사들이신데 어찌 허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또, 허물이 있다고 하고선 다시 두 분 다 허물이 없다고 하니 이것이 무슨 소립니까? 수산스님이 미친 사람이라 이런 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두 분이 분명 허물이 있는 동시에 허물이 없다는 것을 알면 실지에 있어서 흥화스님과 민덕 장노가 한 이 법문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법문의 골자는 어디에 있는가? "두 사람 다 허물이 있고 두 사람 다 허물이 없다"는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은 논리로 이리저리 따져서는 절대모릅니다. 오직 깨쳐야 알 수 있습니다. 쓸데없는 망상으로 이리저리 처년만년을 천착한다 해도 " 두사람 다 분명 허물이 있는 동시에 허물이 없다"는 이 소식은 끝내 알 수 없습니다. 오직 공부를 열심히 해서 깨쳐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어떤 도리인가? 여기에 대해 내 한마디 하겠습니다.
착어 한 번 즐거워하고 한 번 슬퍼함이여
한 손은 내리고 한 손은 내리지 않는다.
염 장산 근선사가 염하였다.
"깨친 이들이 서로 만남에는 모름지기 이렇게 해야 하니, 기틀은 번갯불 같고 눈은 유성 같으며, 시작이 있으 면 끝을 마쳐야 하고, 머리를 붙들어 꼬리에 닿게 한다. 이른바 깃과 털이 서로 비슷하고 말과 기운이 서로 합한다. 다만 두 집이 서로 번갈아 할을 하니, 도한 어찌하여야 한 할이 한 할의 작용을 짓지 않음을 가릴 수 있을 것인가. 임제의 정법안장을 이어받으려면 모름지기 두 노스님의 뜻을 밝혀야 한다. 말해 보라,뜻이 어떠한가? 백 척 장대 끝에서 한 것음 더 나서니 자줏빛 비단 장막 속에서 진주를 흩는다."
첫댓글 나모 땃서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붇닷서! 존귀하신분, 공양받아 마땅하신분, 바르게 깨달으신 그분께 귀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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