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버스를 타고
오늘 오랫만에 시내버스를 탔다. 아침 느지막한 시간에 버스를 타니 버스 안은 한층 여유로웠다. 자리를 찾아 앉고 주위를 둘러보니 묵묵히 차창 밖을 보는 사람, 보따리 짐을 안고 있거나 어물시장에 가는지 손카트를 무릎사이에 끼고 있는 아주머니들, 장년층 등산복차림 남자들이 앉아 있었다. 차창 밖 거리 풍경만 다를뿐 차 안은 시골버스처럼 평화로웠다.
마침 라디오 소리도 않나 조용해 등을 좌석 깊숙히 기댄 채 눈을 감고 여유를 즐겨본다. 창 밖에는 추위에 몸을 움추린 사람들의 총총걸음 모습이 정겨웠다. 바깥의 행인들보다 차 안의 승객들이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 버스 안 승객들은 버스 탄 곳과 내릴 곳이 저마다 다를 것이지만 같은 공간에 있다는 생각이 들자 '인연'과, 또 차도를 따라 함께 가고 있으니 '삶'이란 단어가 떠 올랐다. 승객들은 각자 버스 탄 곳이 다르듯 태어남도 다르고 또 각기 버스를 내릴 곳이 다르 듯 자신의 삶을 마감하는 날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버스가 달려가듯 자신에게 주어진 시공간에서 잠시 머물다 각자가 내려야 하는 승객일 뿐이라는 점이다. 이것이 우리네 '삶'과 무엇이 다른가?
또 버스는 노선을 따라 가면서 새로운 승객을 태우고 내려 준 후 뒤돌아 보지 않고 떠나지만 승객들은 버스 안에서 서로 '인연'속에 머문다. 그러기에 삶은 인연의 시작이고 진행이며 종결이 아닐까? 어디 삶을 영위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는 '인연'이 없었던 사람 어디 있고 그 '인연'들과 헤어짐이 없었던 사람 어디 있는가?
버스 속의 이런 '인연'은 따뜻한 인정이 오가는 시골버스에서 가장 잘 익어가는 것 같다. 간혹 내가 지리산 천왕봉을 찾아 갈 때 이용하는 버스는 '산청, 덕계'를 출발해서 중간 중간을 들린 후 '중산리'까지 하루에 몇 번을 오고 간다. 타고 가다가 보면, 버스정류소에서 승객이 승차하면 운전기사는 면식이 많은지 안부인사도 하고 무거운 곡식자루를 승객이 싣지 못하면 내려 도우기도 한다. 또 평소 잘 아는 사이인지 승차는 않해도 기사에게 가는 길 어디에다 짐을 내려주라는 부탁도 하니, 버스 안은 밝은 미소와 싱거운 농담이 오가는 풍경이 되고 꽤 정겹기까지 하다.
언젠가 어느 추운 겨울, 승차한 할머니 한 분이 지갑을 찾는라 주머니를 이리저리 뒤지다가 "아이쿠 이 정신봐라. 돈지갑을 집에 두고 왔으니 담에 두 배로 차비를 내면 안되겠소? " "버스비는 다음에 주셔도 됩니다. 어서 자리에 앉으세요. 버스출발합니다."
기사님 때꾸에 승객들은 미소를 지었고, 바깥은 영하의 추운 날씨였지만 버스 안의 공기는 더할 나위없이 훈훈했다. 삭막한 세상이지만 그래도 저런 인정이 있어 그나마 돌아가고 있다. 그러기에 이 시골버스와 가사님은 승객을 운송하고 짐을 실어나르는 것이 아니라 포근함 믿음, 인정, 사랑을 실어나르는 것이다.
부산과 같은 도시에서 이런 정이 오가는 버스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오늘 내가 타고 간 시내버스는 승용차를 이용할 때 보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볼 수도 있게 해
주어 참 행복했다. 시골버스처럼 친절한 시내버스를 찾기 어렵겠지만 그래도 팍팍한 세상에 시내버스라도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잠시 승객으로 서로 만났다 헤어지더라도 여정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버스 안에서 머물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