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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죽음은 그저 한 순간일 뿐일까?
<빨간 내복>
보소, 울 할매 내복이 명태처럼 빳빳하오
마른 비듬 비늘처럼 일어나던
살거죽 덮어주고 모진 바람 견뎌냈소
보소, 울 할매 내복이 꽁꽁 얼어붙었소
굵은 눈물 고드름으로 매달리던
눈가 닦아주며 시린 눈발 참아냈소
보소, 울 할매 내복이 바짝 말라버렸소
햇살처럼 출렁이던 뽀얀 젖
어린 자식 물려주던 젖가슴 감싸줬소
보소, 뻘건 내복이 저승꽃처럼 차갑소
얼음 빨래로 질긴 겨울 보내셨던
검버섯 가득했던 울 할매의 싸늘한 손매냥
위의 시는 돌아가신 할머니를 떠올리며 참회의 마음으로 써놓았던 것이다. 날이 추울 때 마당 한 쪽에 널어 둔 할머니의 빨간 내복은 덕장에 널어둔 명태처럼 꽁꽁 얼어붙어 있었고, 심지어 소매 자락이니 단 아래쪽으로는 고드름이 매달려 있기 까지 했다. 당신은 제대로 드시지도 못하셨을 거면서 자식들 먹이느라 축 처진 젖가슴을 가려주었던 빨간 내복, 할머니가 그 내복을 벗을 때는 살 비늘이 하얗게 일어났다. 검버섯 핀 주름진 손으로 얼음장 같은 찬물에 빨아 널은 빨간 내복, 어린 시절 철없던 마음에 나는 그 빨간 내복이 촌스럽고 싫었다. 그런데 할머니를 뵐 수 없던 나날들이 늘어가던 어느 추운 겨울날, 동해 바다에 갔다 덕장에 널린 명태를 보며 할머니의 빨간 내복이 떠올라 눈시울이 빨개졌다. 그리고 다시 날이 차가워지니 돌아가신 외할머니 생각이 간절해진다. 한 평생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신 우리 할매는 그 빨간 내복을 늘상 ‘삘건 내복’이란 이라고 말하셨다.
먼 타국 땅에서 보고 싶은 자식, 손녀들 보지도 못하신 채 외롭게 돌아가신 할머니는 눈을 감으시기 며칠 전 나를 찾으셨다.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힘없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욱아, 보고 싶구나. 다시 널 볼 수 있으면 좋겠구나.” 이처럼 간절한 소망의 말씀이 외할머니께서 제게 남긴 마지막 말씀이 될 줄 몰랐다. 1998년 여름 외삼촌으로 부터 한 통의 다급한 전화가 왔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단다." 오랜 세월 우리 옆에서 말동무도 해주고 맛 나는 음식도 만들어 주시던 꼬부랑 할머니와는 이 세상에서 다시는 못 만난다는 서글픈 통지였다.
Friedrich, Caspar David
<Cloister Cemetery in the Snow>
1817-19,Oil on canvas,121 x 170 cm, Destroyed in 1945, formerly the National Gallery, Berlin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갈까? 죽는 것은 그저 한 순간일 수 있지만, 죽은 자가 가야할 길이 멀고 멀듯, 산 자에게 남겨진 죽은 이와의 추억도 먼먼 길을 더듬어 가야한다. 지금이야 그러지 않지만, 돌이켜 보니 어린 시절 저는 죽는다는 것을 서글퍼하고 죽음 너머의 것을 떠올릴 때는 목덜미가 서늘해지곤 했었다. 간혹 식은땀에 흠뻑 젖어 꿈에서 깨어나 건넌방에서 주무시고 계신 엄마 아빠의 곤한 모습을 확인하고야 안심하고 다시 잠에 들 수 있었으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나면서 뭔가 남겨놓고 떠나게 되면 유령이 되어 헤맨다했다. 안식하지 못한 영혼이 지상에 남겨둔 것을 찾아 간혹 우리들의 일상 속에 찾아와도 우리는 유령과 조우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이 온 것조차도 눈치 채지 못한다고 한다. 그런데 상상해보자. 추억을 더듬으며 돌아가신 할머니를 그리워하고 있을 때, 조용히 옆에 앉으며 “괜찮다. 애야. 다 좋은 추억이었어. 미안해 할 것 없단다. 그래도 넌 내 귀여운 손녀딸이야. 울지 마라.”라고 말씀하시며 등을 쓸어주시는 할머니의 영혼이 곁에 와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저 무섭기만 한가? 아님 그렇게라도 꼭 다시 한 번 재회하고 싶을 정도로 그리움이 사무치시나? 그렇다. 사랑하던 사람이 죽고 나면, 산 자들과 정을 떼기 위해 으스스한 기운이 남아있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스민다고들 한다. 그래야 애절한 마음도 접고 산 자들은 산 자들 나름대로, 고인을 저 먼 먼 세상으로 보내드릴 수 있으니까. 그래도 남아있는 그리움이 울컥 솟구치는 순간들과 맞닥뜨리는 순간들은 어쩔 수 없다. 내 외할머니는 등이 몹시 굽었었다. 너무 나이가 많으셔서 병원에서는 백내장 수술도 해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런 외할머니가 당시의 어두웠던 우리 부엌에서 탕수육을 만들어주시고, 내가 공부할 때는 옆에 앉아 밤도 깎아서 입에 넣어주시곤 했다. 그런데도 나는 할머니에게 심술만 부렸다. 할머니의 눈에 자꾸 끼는 고름 같은 눈곱이 싫었고, 할머니가 드시지도 않고 박하사탕을 하얀 거즈 수건에 싸두시는 것이 싫었다. 사실 [유령이 된 할아버지]란 그림책을 소개할까 했는데, 돌아가신 할머니가 떠올라서 무엇을 하려 했는지 잠시 잊어버렸다.
이승에 남겨둔 사람들을 만나러 잠시 돌아온 할아버지
에스본이란 아이가 있었다. 그림 속에서 자고 있는 저 아이가 바로 에스본이다. 그런데 최근 에스본에게는 슬픈 일이 있었다. 평소 심장이 안 좋았던 에스본의 할아버지가 그만 길을 가다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게다. 에스본은 펑펑 울었고, 에스본을 달래기 위해 엄마는 "할아버지는 천사가 되어 하늘나라로 가셨단다." 말씀하시며 실의에 빠진 에스본을 달랬다. 장례식이 있던 날, 에스본의 아빠는 관 속에 누워있는 할아버지를 보고 슬퍼하는 에스본을 위로하며 "땅 속으로 들어가시면 흙이 될거야."라고 말씀하셨지만, 에스본은 천사 이야기도 흙 이야기도 믿을 수 없었다. 바로 그날 밤, 그림에서와 같이 할아버지가 에스본이 잠든 사이 에스본을 찾아와 서랍장 위에 앉았다. 에스본은 눈을 뜨고 할아버지를 보고 놀랐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돌아가셨잖아요? 할아버지 혹시 유령이세요?" 에스본의 물음에 할아버지는 슬픈 표정을 지으며 "그런가보다." 라고 대답합니다. 에스본은 자신이 갖고 있던 유령 책을 꺼내고 유령은 벽을 드나들 수 있다는 구절을 읽고는 할아버지도 벽을 드나들 수 있는지 시험해 봤다. 에스본의 엄마, 아빠가 잠든 옆방으로도 쑥쑥, 다시 에스본의 방으로도 쑥쑥,,,,... 유령이 된 할아버지를 보는 에스본은 잠시 슬픈 기분을 잊었다.
그런데, 그런데. 할아버지 표정이 정말 어두웠다. 무릎에 깍지를 끼우고 앉은 에스본은 슬퍼하는 할아버지를 보고만 있었다. 그날 잠을 이루지 못한 에스본은 들뜬 마음으로 아침 식사를 하면서 엄마 아빠에게 지난밤에 할아버지가 오셨다고 말씀드리지만, 엄마 아빠는 에스본의 그리움이 헛것을 보게 했다고 생각하며 유치원을 하루 쉬게 했다. 그날 밤에도 할아버지는 어젯밤에서 에스본 앞에 나타나셨다. 에스본은 할아버지 '우후후후' 소리를 내보라고 부탁했다. 할아버지가 "우후후후"라고 소리 내자 에스본은 다시 깔깔거렸다. "우아, 할아버지 대단해요!" 그렇지만 할아버지는 시큰둥하기만 했다. "무얼 빠뜨리고 갔는지 찾아봐야겠다. 에스본아." 할아버지는 이 세상에 남긴 것이 무엇인지를 떠올려보려 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금방 생각해낼 수 없었다. 그래서 에스본과 함께 전에 살던 집으로 갔다. "음, 뭘 빠뜨렸더라?" 할아버지는 골똘히 생각했다. 그러자 할아버지의 머릿속에는 많은 지난 일들이 떠올랐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 형의 빨간 자전거를 물려받았던 것, 에스본의 할아버와 사랑에 빠져 입맞춤을 했던 일, 에스본의 아빠가 갓난아기였을 때 할아버지의 새 양복에 오줌 쌌던 일.... 그래도 그래도 이런 것은 아니었다.
할아버지가 옛 추억을 더듬으며 말씀해주실 때, 에스본은 자신이 몰랐던 할아버지를 더 많이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박제된 코끼리가 있던 커다란 박물관을 좋아했던 것, 할머니와 단 둘이서 비행기로 모로코에 가서 낙타를 구경했던 일, 아무도 발견하지 못할 수도 이단 것을 알면서도 빈 병에 편지를 넣어 바다에 띄워 보냈던 일. 하지만 아직도 할아버지가 남겨두고 간 것은 이런 일이 아니었다. 이 세상에 남겨둔 것을 찾아온 할아버지 유령을 매일 밤 기다리는 것이 에스본의 즐거움이 되었지만, 에스본의 부모님은 에스본이 헛것을 본다고 믿으면 걱정이다. 그런데 어느날 할아버지가 밤이 깊었는데도 나타나시지 않자 에스본은 실의에 빠져 기다리다 못해 할아버지를 직접 찾아 밤거리로 나선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계세요?" 그렇지만 그 어디에도 에스본의 할아버지는 계시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자기 방으로 돌아온 에스본은 서랍장 위에 앉아 계시는 할아버지를 보게 된다. 에스본은 조금 심술이 났는데, 할아버지는 싱글벙글 웃고 계신다. "할아버지 뭐가 그렇게 좋으세요?"
"응, 우리 에스본과 함께 했던 시간들을 떠올리니 할아버지 마음이 편안해지는구나. 그래 무얼 남겨놓았는지 이제야 기억이 났단다." 에스본은 할아버지가 드디어 잃어버린 것을 찾게 되어 좋았지만, 이것으로 마지막 인사를 나누어야 한다는 사실에 우울해졌다. "에스본, 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즐거운 때를 이야기 해주겠니?" 에스본은 낚시 가서 단 한 마리도 물고기를 잡지 못하고 돌아왔던 추억, 할머니가 간 요리를 해주었지만 내키지 않아 할아버지와 함께 얼굴을 찌푸렸던 기억을 이야기한다. 가만히 조용한 미소를 띠우며 웃고 계시던 할아버지는 에스본의 손을 잡고 "그래, 바로 그거야. 네가 말한 그 모든 일들, 그리고 말하지 않은 다른 것들". 이라고 말씀하셨지만, 할아버지의 얼굴에서 미소는 사라졌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의 추억을 나누고 잠깐 울었다. 할아버지는 에스본에게 착한 아이가 되라고 했고, 에스본은 가끔 할아버지를 생각할거라 약속한다. 이제 에스본을 찾아올 수 없는 할아버지는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고 에스본의 곁을 떠난다. 할아버지가 에스본의 귀에 후 하고 바람을 불었고, 그 바람을 에스본은 발가락 끝까지 느끼게 되었다.
가까운 이의 죽음을 다룬 그림책 중 수작으로 평가받는 [유령이 된 할아버지]는 어린이들에게 죽음이란 어렵고 무거운 문제를 쉽고, 따듯하고 담담하게 그러면서도 가슴 뭉클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림책이기 때문에, 독자가 어린이들이기 때문에 작가는 사람의 죽음이라는 어둡고, 무겁고, 두려운, 대면하기 싫은 문제를 담담하게 보여주기 위해 섬세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옛 시간 속의 추억을 꺼내본 뒤 부둥켜안고 우는 장면에서도 '에스본과 할아버지는 서로 껴안고 잠깐 같이 울었답니다.'라고 '잠깐'이라는 표현을 쓰고, 에스본은 할아버지에게 늘도 자주도 아닌 '가끔' 할아버지를 생각할거라고 약속한다. 그럼으로써 지나치게 무거운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지 않도록 경계하고 있다. 그림 역시 파스텔 톤의 부드러운 색조와 단순화된 윤곽선들로 전체적으로 따듯한 분위기를 전달하고 있다.
이 그림책의 책장을 넘기면서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꼈다. 외할머니가 어둔 눈으로 내가 쓰던 헌 공책에 몽땅 연필로 그리신 자화상, 마치 다섯 살 아이가 그린 것처럼 쭈뼛쭈뼛 머리가 뻗치고, 귀가 크고 손가락과 발가락이 유독 길었던 그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리석게도 전 할머니의 유품을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제 사진을 거즈 수건에 싸서 베개 속에 넣어두셨다고 하는데도 말이다. 가끔 할머니가 꿈속에서만이라도 찾아와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잠에 들곤 했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할머니가 아껴둔 박하사탕, 그거 제가 가끔 몰래 훔쳐 먹었었다. 하여 이제라도 용서를 구하고 싶다. 이렇게. "할머니 용서해주실 거죠? 할머니, 듣고 계신 거 알아요. 늦었지만 사랑해요."라고.
떠나는 마음, 남겨진 마음을 건조하게 표현한
지난봄과 여름 군산에 다녀왔다. ‘세풍제지선’과 ‘경암동’을 다룬 동화 한 편을 쓰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내친 김에 월명동까지 갔다. 일제시대 때 지은 적산가옥이 아직 남아 있다는 말에 호기심이 동했기 때문이다. 그곳에 가서야 내가 좋아해 몇 번이고 즐겨 보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세트장이 그곳에 세워졌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시한부 삶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알고 담담하게 생을 정리하는 정원(한석규)와 주차 단속하며 찍은 사진을 맡기러 들른 다림(심은하)와의 애달픈 사랑과 이별이 오히려 덤덤해서 누선을 자극했던 영화를 그곳에서 찍었다는 게 지극히 당연하게 느껴졌다. 군산이 주는 스산한 이미지에 영상이 그대로 얹어진다. 영정 사진을 찍으며 죽음을 준비하는 정원의 차분한 모습도 함께 얹어진다. 날이 무더웠는데도 마음으로는 서늘한 바람이 일었다.
비디오테이프를 빌려 <8월의 크리스마스>를 감상할 때면 엔드 타이틀이 올라갈 때 나오는 한석규의 주제가를 반복해서 듣곤 했다. 자신이 찍은 영정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정원의 모습과 소박하게 웃고 있는 사진 속 다림의 모습에서는 슬픔이라곤 느낄 수 없다. 하지만 울지 않는 슬픔이 얼마나 기막히게 아픈 것인지 겪어본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수 있으리라. 쪼그려 앉아 필름을 되감아가면서 주제가를 들으며 나는 마지막으로 내 이름을 불러주셨던 외할머니의 손을 떠올렸다. 곁에 계셨다면 손이라도 한 번 잡아들이고 보낼 수 있었을 턴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보고 싶다고 말씀하셨지만 헤어져 있던 시간 동안 훌쩍 자란 내 모습을 보여드릴 수 없었다. 그런 것이 한이 되었는지, 서울에서 함께 지낼 동안 못되게 굴었던 내 옹졸한 행동들에 대한 죄책감이 옥죄어 왔다. 사죄의 마음으로 음악을 들었다. 그 흔한 사진 하나 제대로 갖고 있지 못한 죄. 사랑하면서도 사랑한다는 말 한 번 해드리지 못했던 죄. 누추하다고 촌스럽다며 까탈을 부린 죄. 그렇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죄송하다’라고 고백할 수 없어 그것이 한이 된 것이었다. 누군가를 영원히 떠나보내고 나면 미처 하지 못한 말이 한이 된다. 할 수 있을 대 했어야만 했던 말이 화살이 되어 마음에 꽂힌다. 할머니는 살아생전 입버릇처럼 돌아가신 후에는 화장하여 산새들 밥이 되도록 산에 뿌리라 하셨지만, 외삼촌은 바다에 뿌렸다. 그것도 지구 반대 쪽 바다에 뿌렸다. 군산 앞바다, 그 쓸쓸한 바다를 마주 보고 있자니 당신의 마지막 소원까지 지켜드리지 못해 서럽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십 오년이 되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리움은 커간다. 내겐 미처 하지 못한 말이 너무나도 많은데, 당신은 그런 것이 없는지. 할머니는 내 꿈에도 오시지 않았다. 그 곳이 어디든 간에 편안하신 것이라 믿고 있지만, 간혹은 서운하다. 살아가며 힘겨울 때, 조용히 ‘할머니’하고 불러보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다.
사람들은 죽음이 삶의 반대쪽에 위치해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삶의 연장에서 죽음을 바라본다. 아마 <8월의 크리스마스>를 만든 허진호 감독의 마음도 그러했으리라. 그러니 그토록 담담하게 죽음을 그린 영화를 제작했겠지! 사람들만큼 죽음의 세상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 역시 삶 너머의 세계에 대한 아무런 확신이 없다. 다만 그 세상으로 먼저 떠난 사랑하는 이에 대해 이제는 아무런 것도 해줄 수 없음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아무도 같은 이유 때문에, 이와이 슈운지 감독의 영화 <러브 레터>를 보면서 “오겡기데스까?”라는 안부인사에 나도 무너져버렸는지 모른다. 보내야 할 사람은 보내고 가야할 사람은 이승에 미련을 두지 말고 편히 저승으로 가야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별이 쉽지가 않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푸르던 나뭇잎들이 누렇게 말라 바람에 떨어진다. 생명 있는 모든 것은 늙고 병들고 죽어간다. 사랑이란 말이 흔한 것 같지만 남녀 사이에나 유행가사에나 흔하지, 바로 옆 사람, 피붙이들한테는 좀처럼 하기 힘들다. “있을 때 잘 해”라는 그 진부한 말이 절절하게 마음에 와 닿는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겨울이 되면 날이 차가워지면 빨간 내복이 떠오른다. 빨간 내복을 입은 할머니도 떠오른다. 있을 때 잘해 드렸어야 했는데 뒤늦은 후회이다. 한석규가 부르는 <8월의 크리스마스> 주제가를 듣는 내내 코끝이 찡하다. 마음이 울컥하고 목젖이 달각거린다. “할머니, 사랑해요. 미안해요.”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없지만 영원히 내 마음에 새겨진 빨간 내복 입은 할머니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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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승과 저승이 연결되어 있다는, 그래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분리가 아니라는, 그런 영화 <천국의 책방>을 보았더랬습니다. 오늘 서점에 가보니 책도 나와 있더군요. 할머니 사랑하는 마음은 아마 벌써 가 닿았을 거예요. 할머니한테...
그 영화 보고 싶어집니다. 한번 볼게요. 재미있을 거 같아요. 그리고 써주신 말들... 정말 그럴거 같아요.
<천국의 책방> 저도 보고 싶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이번주군요. 화이팅, 전해주세요.
넵!
아.. 그렇군요. 저역시 지금 친정엄마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있어요. 이런저런 많은 마음들이 오고갑니다. 아마 거울님이 느끼는 마음들... 제 안에 있습니다. 눈물이 나려는 걸 보니, 쉬운 일은 아닌 거 같아요. 유령이 된 할아버지... 읽어보고 싶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유령이 된 할아버지 읽고 나서 샀습니다. 두고 두고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요. 그림도 마음에 들어요. 정말 따뜻한 느낌입니다. 그런데요. 할아버지가 바람을 불고 에스본이 발가락 끝까지 그 바람을 느끼는 부분 말이에요. 서로에게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그런 얘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