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에 대한 7가지 조건
안녕하십니까? 3월 31일 삼월 달 마지막 날 염화실 인터넷 방송법문을 시작하겠습니다. 날로 봄 색이 아주 짙어가는 그런 산색을 보면서 참으로 그 계절의 변화의 어떤 그 신비로움을 한번 더 느낍니다. 한번 더 느끼는 정도가 아니라 매일 매일 느끼고 아침에 본 산색이 다르고 오후에 보는 산색이 다를 정도로 그렇게 새봄의 그 어떤 활기찬 모습과 대지를 뚫고 나오는 봄의 정기를 몸으로 느낄 정도 같습니다. 참으로 좋은 계절이지요.
“무비스님과 함께하는 불교공부” 라 하는 책에도 내가 한번 쓴 적이 있는 기억이 나는데, “사람은 무엇이든지 마음이 날 때 바로 실행에 옮기라.” 라고 하는 그런 표현을 하면서, 특별히 사과할 일이 있으면은 생각났을 때 얼른 하라 하는 그런 이야기구요.
그 다음 고백할 일이 있으면은 그것도 미루지 말고 얼른 고백하고, 또 빚이 있어서 빚을 갚아야 된다. 그런데 빌려올 때 생각은 못하고 또 주저주저 하지요. 아까운 생각이 들지요. 그렇더라도 생각났을 때 바로 하라 하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특히 좋아하는 감정이 있으면은 그것은 멈춰두지 말고, 설사 다음에 그 반대의 감정이 생긴다 하더라도 이 현재 좋아하는 감정은 참으로 아름답고 좋은 것이니까, 바로 고백하는 것 좋아한다든지. 사랑한다든지 하는 그런 고백을 한 마디쯤, 생각났을 때 얼른 전화로라도 해서 한 마디 전해주는 것. 이것이 참 살아가면서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그 마음의 감정을 억누르고 숨기고 하는 것, 이것을 어떤 유교의 전통에 비추어 본다면 그런 것을 미덕이라고, 이렇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지요. 과연 그것이 미덕인지 그것은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법화경 이야기보다 근래에 禪에 대한 그런 관심이 높고, 따라서 사찰마다 선 법문을 많이 열고 있지요. 조계사에 작년인가요? 크게 한번 선원장 스님들을 초청해서 이제 수 십년 그 선방에서만 사신 스님들을 초청해서, 이제 법회를 열고 그 다음에 봉은사에서도 선 법문을 중심으로 그러니까, 육조단경 논 강을 했는데 그 역시 이제 선에 대한 어떤 관심이 현성한 것이지요.
그 다음에 동화사에서 담선 법회라 해서 선을 이제 논하는, 그런 아주 특별한 계기를 그렇게 마련을 했습니다. 이번에 범어사에서도 지금 한창 진행 중인데 매주 토요일 날 상당한 숫자가 모여서, 아주 대 성황을 이루고 있습니다. 역시 그것도 이제 일종의 여기서는 설선법회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지 만은, 담 선이나 설선이나 같은 뜻이지요.
범어사에서 하는 형식도 이제 논 주라면 좀 그렇고, 설법을 하는 그런 설법주가 주제를 가지고 이제 이야기를 한 시간 남짓하시고, 그 다음에 질문자가 있어 가지고 질문을 한 두 세분 질문을 하면, 거기서 따라서 대답을 또 다시 하는 그런 형식이지요. 논선 담선 이라고 나 할까요? 선을 논하는 그런 분위기입니다.
또 그것이 이제 기존의 일반적인 설법하고는 좀 다르기 때문에, 거기에 상당한 새로운 맛을 느끼게 하고 또 궁금한 것을 직접 질문도 응할 수 있는, 그런 것이 되어서 많이 동참을 하는데 불교가 사실은 중국에 일찍이 들어왔지 만은, 한 이천년 뒤에 달마 스님이 들어 오시면서 선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구산선문이 신라 때부터 있어 가지고 선을 생각하지 않고, 불교를 논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같이 그렇게 됐지요. 그렇게 중국이고 한국이고 일본이고 간에 동양으로 흘러오면서 불교는 최후에 선불교로 꽃을 피웠습니다.
아시는바 데로 티벳트라든지 몽골 서북쪽으로는, 밀교로서 꽃을 피워서 지금까지 전해 내려가고 이쪽으로 중국과 한국 일본쪽으로, 이제 불교가 200~ 700년 흘러가면서 선불교로 꽃을 피웠다. 이렇게 정리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을 이제 좀 더 부연을 하면 초기불교라고나 할까요? 또 근본불교라고도 하고 이런 근본 초기불교가 있었고, 그 다음에 한 삼 천년쯤 지나서 대중부와 상좌부 이것이 이제 확연히 나누어지면서, 초기 대승불교. 중기 대승불교. 그 다음에 후기 대승불교 이렇게 이제 발전해가다가 이쪽으로는 선불교로 꽃을 피워서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선에 대해서 선이 불교 안에서 차지하고 있는 그 비중이 큽니다. 또 서구사회에도 그냥 불교라고 하면은 다 알고 있는 것으로 그렇게 생각하지요. 선불교라 그래야 좀 관심을 가질 정도입니다. 그만치 이제 선이 들어가야 만이 불교에서도 가장 발달한 불교 또 불교의 핵심을 드러내는 그런 불교로 인정 받을 정도지요. 뭐 이런저런 역사적인 사실과 아울러 근대에 불교가 포교도 많이 되고, 그래서 불교도 우리 기존의 그 불자들에게는 상당히 일반화 됐어요.
그런데 그래서 이젠 선이 붐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조금 이제 부정적인 그런 표현들도 사실은 없지않아요. 선을 수 십년 했노라고 하면서 좀 선 법문 답지 않게 비춰지는 그런 것들도 아마 있는 모양이지요. 그래서 이제 이런저런 어떤 일에든지 거기에 평은 있기 마련이고, 말은 따르기 마련입니다 만은 그래서 오늘은 선에 대한 그런 어떤 기본적인 그 정신을 한번쯤 짚어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법화경을 조금 미루고 선을 좀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분위기가 그러다 보니까 그래서 서두에 말씀 드렸듯이 마음이날 때 하는 것이고 생각이 났을 때 이렇게 한번 짚는 것이 일리가 있지 않겠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제 선 하면서 선을 붙여서 하는 이야기가 참 많지요. 무슨 선원이 있구요. 또 선실(禪室)이 있고, 선당(禪堂)이 있고 심지어 시내에서 포교당을 열어서 정상적인 포교를 하는데도, 무슨 선원. 무슨 선원 선원을 붙이면은, 상당히 수준 높은 포교당인 것으로 인식이 되어있습니다.
뭐 무당 짓을 하더라도 무슨 이렇게 선원 이제 해놓고 해요. 정작 무슨 선원 해놓고 불교를 포교한다 라고 하지 만은, 정작 가만히 살펴보면은 거의 무당수준에 가까운 그런 포교당도 없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그만치 무슨 선원 해놓아야 상당히 고급스러운 불교, 수준 높은 불교. 불교 중에서는 아주 최상의 불교를 전하는 것으로 이렇게 인식이 된다고 하는 사실이지요.
그래서 그런데 힘 입어서 요즘 선서(禪書) 선화(禪畵) 이런 말을 일찍이 있어왔지요. 글씨도 어떤 선의 정신이 깃 들은 글씨 그래서 선서라 그러고, 그 다음에 그림도 선의 정신이 깃 들어 있는 그런 그림이라 해서 선화그러지요. 요즘 또 선차(禪茶)라고 옛날부터 다선일미(茶禪一味)라고 해서, 선과 차는 한 맛이다. 또 그 정신이 하나다. 같은 것이다. 이렇게 해서 선사들이 선을 하는 여가에 선을 한다는 표현으로서 차를 해서 그 선차가 있어오긴 했습니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 그런 어떤 정신을 좀 더 계승하고 일반화 하자고 하는 뜻에서, 선차 운동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좀 우리가 일상생활에 보급을 해서 그런 선의 정신으로서 우리의 삶을 영위해 가자고 하는 이런 뜻이라면은, 참 좋은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요.
또 심지어 서양에서는 선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화장품에서도 옛날에는, 바이오 화장품 이러다가 선 화장품 이렇게 선전할 정도입니다. 이제 서양 사람들이 선 화장품이라는 이름으로 이제 선전을 하지요. 건축에도 우리나라 건축에도 아파트 광고문 같은 것을 자세히 읽어보면은, 밑에 제법 큰 글씨로 선 스타일이라고 하는 그런 표현을 한 그런 건축 광고를 봤습니다.
그런 정도로 건축 스타일도 선의 정신이 깃들여 있는 그런 건물 또는. 방을 꾸민다든지. 부엌을 꾸민다든지 여러 가지 아파트의 구조를 선 스타일로 선의 정신이 물씬 풍기는, 그런 스타일로 꾸몄다 하는 것이지요. 상당히 고급 아파트고 또 값도 좀 비쌉니다. 그런 아파트를 우리나라에서 광고하는 것을 직접 이제 봤지요.
그래서 이제 배가 고플 때 배부르고 싶어하던 그런 때도 이제 지났고, 질을 찾는 그야말로 무엇을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데 있어서 모든 면에 있어서 질을 우선으로 하는 그런 시대가 이제 바야흐로 도래했기 때문에, 그래서 무얼 하든지 차도 그냥 마시면 됐지 하는 시대는 아니고, 이제 선의 정신이 깃 들고 선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그런 차 한 잔을 우리가 마셔야 되지 않겠는가?
선이 일반화 되서 또 선이 이제 생활 속에 스며 들여야 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선의 맛. 선의 향기. 선의 분위기 이런 것을 상당히 찾습니다. 뭐 선을 통해서 성불을 하느냐? 견성을 하느냐? 이런 이야기는 이미 벌써 뭐라고 할까요? 진보한 이야기이지요. 그런 정도로 됐어요.
이러한 것이 우리가 지금 당면하고 있는 선에 대한 여러 가지 만나는 현상들인데, 그래서 진정 그 선의 분위기 나는 또는 선의 맛이 나는. 또는 선의 향기가 나는. 그런 삶 .또 그런 어떤 그런 방. 그런 사찰. 그런 포교당. 또 그런 차. 그런 글씨. 그런 그림. 그런 건축 이런 것이 되게 하는 데는 우리 일상생활과 아울러서 그런 선의 정신이 물씬 풍기게 하는 데는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이것이 참 중요한 것이지요.
그래서 이것은 절대적으로 거의 절대적인 일곱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선의 정신을 드러내는데 있어서 일곱 가지 조건을 갖춰야 된다는 거예요. 그것을 그림을 그린다든지. 선시(禪詩)를 쓰든지. 선다(禪茶)를 하든지 .무슨 선서, 글씨를 쓰든지 선원(禪院)을 짓든지 무슨 선원 하는 그런 포교당을 하든지 간에 이 일곱 가지 조건 이것이 들어서 어떤 선의 정신을 선의 분위기를 자아내야 된다 하는 그런 이야기지요.
그런데 그런 것도 우리가 생각하지 않고 제처 놓은 채 사실 선을 운운 하는 예가 적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요즘 분위기 편성을 해서 오늘 저녁에는 이제 선의 일반적인 그런 이해와 아울러서, 그 일곱 가지 선의 정신을 나타내는데 일곱 가지 조건이 붙어야 된다. 그러면 일곱 가지 조건이란 것이 무엇인가?
예를 들어서 선서 선의 정신이 깃든 글씨를 쓴다. 선의 정신이 깃든 선화 그림을 그린다. 또는 시를 쓴다. 한편의 시를 쓴다. 라고 했을 때 아니면은 방(房)도 좋습니다. 건축도 좋아요. 선의 정신이 깃 들어 있는 건축을 우리가 생각한다 했을 때,
첫째 조건이 “간소簡素” 입니다. 간소! 간단할 간자 하고. 소박할 소. 흴 소자인데, 아주 간명하고 간단하고 소박하고 질박해야 되요. 그것이 간소입니다. 첫째 조건이 그것입니다. 내가 아는 스님 중에 그 스님은 선을 간판을 내걸고 사는 스님은 물론 아닙니다 만은 평소에 승복을 만들 때 아예 주머니를 없애라. 그리고 주머니 없는 옷을 나는 옷을 입겠다. 그런 스님이 계십니다. 아시는 분은 이 말만 들어도 누구라고 하는 것을 아실 거예요.
그것이 선의 정신에 있어서 첫째 조건인 간소를 잘 보여줍니다. 뭐 속으로야 얼마나 욕심이 덕지덕지 붙어 있을는지 그것은 누가 모른다고 칩시다. 그렇지 만은 우선 겉으로 보기에 옷을 만드는데 주머니를 없애라. 주머니에 뭐 이것저것 주어서 넣겠다고 하는 그런 마음 첫째 그런 마음 첫째 그런 표현마저 거부하고 싶다. 일곱 가지 조건 중에서 이것 하나만으로도 사실은 선의 정신이 그런대로 잘 나타나 있다 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선방(禪房)을 짓든지 선원을 하든지 그림을 그리든지 건축을 하든 간에 첫째는 아주 간단 명료하고 소박하고 질박하고 간소해야 돼요. 그런 맛이 없이 그냥 너덜너덜 이것 저것 붙이고 온갖 것 그렇게 하면은 그것은 참 선을 이야기 하는 자리라고 이야기할 수가 없습니다.
어제도 선 이야기를 하면서 뒤에 배경을 내가 보니까, 온갖 그냥 휘황 찬란한 그런 탱화 그림을 잔뜩 이렇게 걸어놓고 거기에 선사가 떡 앉아 가지고, 법문을 하는 그런 모습을 봤는데 그것은 무당이 하는 짓이지요. 그것은 선 하고 멉니다. 첫째 선 이야기를 그렇게 어떤 계기를 만들어서 하려면은, 분위기부터 선의 분위기가 탁 나도록 누구든지 그 모습만 봐도 아, 저것이 선이구나! 이렇게 느낄 수 있도록 해야 돼요.
그리고 사람이 많다고 해서 덮어놓고 그냥 꾸역꾸역 집어넣을 것이 아니라, 딱 어떤 선의 정신이 조금이라도 거기에 배어 있도록 또 들어오는 사람은 선의 분위기를 조금은 그래도 느끼고 가도록, 어떤 자리든지 그런 것들이 어떤 정돈 되어야 되고 인원제한을 하고 그렇게 해 가지고, 참여한 사람 만이라도. 그 자리에 들어온 사람만이라도 .그래도 선을 조금 한 시간이면 한 시간. 두 시간이면 두 시간 또 선의 맛을 좀 느끼고 선의 향기를 조금은 맞고 갈 수 있도록, 얼마든지 그렇게 꾸밀 수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풍부하고 장소도 넉넉하고 하기 때문에, 그런 연출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했으면 하는 그런 참 안타까운 생각을 많이 합니다. 분위기는 무슨 무당 푸닥거리 하듯이 분위기를 꾸며놓고 거기서, 선. 선 .선하면은 그것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우리가 참 이런 것은 살펴야 돼요. 정말 얼토당토 안 한 짓을 우리가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간소해야 된다는 것이지요.
일차적인 조건은 그 다음에 정적입니다. “정적靜寂” [고요할 정. 고요할 적] 아주 정적한 아주 고요하고 또 고요한 분위기, 그렇다고 숨을 쉬지 말라는 뜻이 아니고, 말하자 면은 그 분위기 속에 매료된다고 할까? 압도 된다고 할까? 그래서 누구든지 그 분위기에 이미 아주 정적한 그런 분위기 속에서 압도되어서, 떠돌고 싶어도 도저히 떠들 수 없도록 그렇게 되면은, 망상을 일으킬래야 망상을 일으킬 수 없는 분위기가 되 버리는 것, 그래서 우리 마음이 간소하고 우리 마음이 정적해진다.
우리 마음이 저절로 고요히 가라 앉아지는 그런 분위기를 좀 연출 했으면 하는, 그런 생각이 아주 절실히 듭니다. 고요함이 이것이 빠져버리면은 선이라고 할 수 없어요. 물론 저기 동대문 시장이나. 남대문 시장이나. 자갈치 시장이 선이 없으라는 법은 없지요. 물론 그렇지 만은 우리가 선의 정신을 이해하는 입장에 있어서는 그런 어떤 시장보다는 고요한 것이, 아주 고요한 수 만 명이 동시에 참여했더라도 고요한 것을 한번쯤 챙길 줄 아는, 그런 어떤 분위기 이것이 또 선의 한 모습이기도 합니다.
선을 형상으로 표현해야 돼요. 선은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 모양으로 그릴 수 없다. 그냥 무책임하게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모양으로 그릴 수 없다. 그냥 덮어놓고 표현이 안 된다. 언어도단하고 “심행처멸”이다. 이렇게만 무책임하게 말 할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도 표현해야 되고, 말로도 표현할 수 있어야 되고. 분위기로도 표현할 수 있어야 되고. 그림 한 장. 글씨 한 획. 시 한수 .행동하나. 차 마시는 어떤 행동하나에 선이 표현될 수 있어야 되는 것이지요.
그 다음에 세 번째는 이제 “불균제不均齊” 혹은 [변화] 라고 그렇게 하는데, 고정된 틀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하는 것입니다. 변화를, 이것은 변화를 말하는 것은 어떤 틀에 박은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인, 틀에 박은 그런 모습은 피하는 것이지요. 그것은 이제 선화도 그럴 수 없는 것이고. 선서도 마찬 가지고 딱 인쇄 한 듯이 선에 딱 박은 그런 글씨를 써놓고, 이것이 선서다 이렇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그것은 이제 균제[均齊] 하지가 않다. 고를 [均]자 가지런할 [齊]자 아닐 [不]자인데 불균제不均齊 라고 해서 그것은 이제 변화를 뜻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변화해 줄 줄 알아야 된다. 생활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늘 틀에 박힌 생활 . 고정된 생활 늘 그런 것은 선의 정신이 깃든 생활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 변화라고 하는 것은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습니다. 내가 언제 한번 무김치를 가지고 그렇게 여러 가지로 변화를 줘서, 대중들 앞에 내어 놓더라고 하는 그런 이야기를 했지요. 그런 것들이 불균제, 선의 정신에서 보는 변화의 한 면이라고 할 수가 있지요.
그 다음에 “탈속脫俗” 이라고 하는 것인데 이것은 참 어려운 주문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선의 일곱 가지 중에서 꼭 필요한 것이지요. 탈속! 속기가 다 떨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 이제 옛날에 그 선화를 하는 스님에게 선화 이야기를 하다가 “ 선화의 정리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렇게 이제 논했는데, 금강경의 오가해에 있는 말 한 마디로써 표현을 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범정이 탈락하고 범부의 생각이 다 떨어져 나가고 성혜도 성인의 알음알이 까지도 붙지 않는 자리라 그랬어요. 성인이라고 하는 알음알이도 다 붙지않고. 범부의 정도 다 떨어져 나간 그런 자리 그것이 이제 모든 속기가 다 벗어난, 그런 어떤 생활. 그런 글씨. 그런 건축. 그래서 탈속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어려운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사량 분별로서 요량할 수는 있습니다. 어떤 분위기가 이런 탈속한 분위기고, 그리고 탈속한 사람 우리가 알잖아요.’아 그 사람 탈속한 사람이야.’ ‘아주 정말 탈속한 사람이야.’이런 소리 가끔 합니다. 그러면 탈속은 우리의 어떤 100% 생활화는 못한다 하더라도, 그래도 탈속의 경지가 뭐라는 것은 압니다.
그러면은 우리가 선을 운위할 때는 최소한도 탈속한 분위기를 자아내야 된다는 것이지요. 한 순간이고 좁은 공간이라 하더라도 어 좁은 한 공간에 어느 제한된 시간 안에서라도, 최소한도 그런 것이 나와야 되고 또 선 법문 할 때는 당연히 탈속한 이야기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뭐 심한 평으로 무슨 삼류법사가 잘 하는 그런 소리나 하면서, 선 법문이다 이렇게 하면은 참 그런 소리 들으면 정말 곤란하지요.
그 다음에 이제 다섯번째는 자연해야 된다. 이것은 보통 우리가 말하는 자연이라는 말 그대로인데, “자연自然” 스스로 그러하다. 자연 현상을 두고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닌데, 물론 자연현상도 저절로 그러한, 그렇게 되어가는 모습들이지요. 그런 모든 행위와 움직임과 동작과 그 조작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람이 예를 들어서, 건축을 전부 일일이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의 조작으로 해 놓은 것이지 만은, 그래도 거기에 조작이 보이지 않게 하는 것 이것이 이제 선 스타일이라는 것이지요. 방을 꾸미되 어떤 조작이 보이지 않게 꾸미는 것은 다 사람이 꾸미지요. 조작이지요. 조작했으되 조작이 보이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이제 자연이다.
저절로 그러하게, 그럴 수 밖에 없도록 그래서 전혀 눈에 거슬리지 않는 것이지요. 눈에 거슬리면 이미 이것은 저절로 그러하지 않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제 이 자연이라고 하는 것도, 선의 일곱 가지 조건에 아주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제 “고고枯高”라고 하는 말이 있는데, 마를 枯 높을 高 마를 고자는 아주 엄격함, 그리고 정말 그 수준이 높고 높아서 아무리 우러러 볼래야 우러러 봐질 수 없는, 비슷하게 비유를 하나 하자면은 아주 높은 바위로 된 벼랑에 수 백년 된 고목이 서서 말라 죽은 듯 하고, 그러면서 그 엄격함과 그 견고함 그리고 그 높음이 말하자 면은, 도저히 보통 사람들이 범접할 수 없는 뻔히 손을 뻗어도 닿지 않고, 올라 갈래야 올라 갈수가 없고 하는 그런 아주 엄격함, 이것이 깃 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에는 그것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 어떤 분위기가 나타나야지 그냥 아무나 다 좋고, 누구나 다 용납하고 그것은 이제 그것은 일반불교는 이제 그럴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선. 선 .선했을 때 선의 분위기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선은 그래서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또 한다고 아무나 되는 것은 아니지만 할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선의 수준에 아무나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말하기 좋아서 그냥 선. 선하기는 하지만은, 이 고고함의 경지를 우리가 생각한다면은 누가 사실은 거기에 미치겠습니까? 너무 푸르러서 눈이 시릴 정도의 청정한 하늘을 배경으로 해서, 높은 그런 바위 벼랑에 수 백년 된 고목이 척 아주 푸른 하늘을 이렇게 배경으로 서있는 그런 모습, 거기에 하나의 비유입니다 만은 그런 엄격함과 고고함이 풍겨 나는 그런 어떤 삶, 그런 어떤 인생 .그런 어떤 선사 .우리가 상상할 수 있지요.
그런 것을 그런 분위기. 그런 스타일 .그런 건축. 그런 글씨 그런 그림. 그런 집. 좀 어딘가 그런 분위기가 있어야 그래도 무슨 선원. 무슨 선원.선원 붙인 그 포교당이 얼마나 많습니까? 참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지 만은 선을 그렇게 엉망으로 만들어 놓기도 하는, 그런 뭔가 잘못을 범하기도 하면서 또한 그러한 것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선에 어떤 다리를 놓아주는 그런 물론 긍정적인 면도 충분히 있다고 이제 봐야겠지요.
그 다음이 이제 일곱 번째는 “유현幽玄”이라 해서 그윽할 幽자 하고 깊을 玄자인데, 아주 이것이 참 어려운 경지입니다. 탈속. 자연. 고고. 유현. 그 중에서도 이제 탈속. 고고. 유현이 이것이 참 더욱 어렵지요. 정말 그윽하고 깊고 어딘가 저절로 어떤 예를 들어서 선원하면 그 선원이라고 하는 제대로 된 선원이라면은, 그 선원 마당에 떡 들어서면 이미 어딘가 깊숙해 보이고, 아주 그윽해 보이고 .그리고 아주 거기에는 뭔가 참 범부의 마음으로 가 닿을 수 없는 끝 모를 그런 깊이. 끝 모를 그런 높이. 그 선원 마당에 이런 것이 느껴져야 된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선방을 제대로 선방답게 차리려면은, 그런 분위기가 자아 나와야 된다. 정말 선을 중심으로 해서 포교를 한다 이렇게 이제 우리가 마음을 먹었다면은, 법당을 꾸미는 것도 그렇고. 선방을 꾸미는 것도 그렇고. 절 전체를 꾸미는 것도. 그렇고 일체 꾸미는 것은, 이 일곱 가지 조건에 가능하면은 갖추어 가지고서, 이 일곱 가지 조건은 가능하면 갖추어서 그렇게 연출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방은 아주 깔끔하게 .간소하게. 그리고 적절하게 잘 했는데 법당에 가보니까 온갖 황 칠을 다 해 가지고, 어디 뭐 무당 절 비슷하게 그렇게 돈만 많이 들이면 제일인양 그렇게, 그냥 그야말로 쳐 바르듯이 전혀 의외의 법당을 꾸민다든지, 그렇게 해가 지고서 어떤 참 그런 것이 안 맞아요. 내 세우고 하는 말은 선.선.선하면서도 이렇게 한번 돌아보면은 정말 또 아니지요. 돌아보면은 전혀 선 하고 거리가 먼 그런 것들을 많이 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것들을 뭐 기본적인 조건이니까 선을 운위한 사람들은 다 알거예요. 알면 최소한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현상적인 것만이라도 내용으로는 욕심이 덕지덕지 눌어있고, 뭐 어떻더라도 우선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만이라도, 그렇게 좀 일곱 가지가 조건이 잘 갖추고 지고, 아주 끝 모를 그런 깊이가 있었으면 하는 그윽할 유자 하고, 깊을 현자. 검을 현자 입니다.
검을 현자는 색이 검다는 뜻이 아니고, 아주 천지현황 아닙니까? 하늘은 현하다. 검다는 뜻이 아니지요. 아득하고 멀다는 그런 현자입니다. 아득하고 멀다. 끝 모를 그런 그윽함 참 좋은 낱말들이지요. 지상에서 이제 최고의 낱말들만 모아 놓았지 않았나 그렇게 봅니다. 이것이 선의 일곱 가지 조건인데, 우리불교 역사 속에서 불교가 발전하고 불교가 발전해서 이쪽으로 와서, 최고조로 발전한 것이 선불교로 발전했습니다.
그 최고조로 발전한 선 불교는 말하자 면은, 어떻게 표현 되야 되는가? 무턱대고 말로 표현할 수 없고 또 생각으로 미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하고 말 것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충분히 생각으로 우리가 요량해서 알 수 있고,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고. 조각으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이고 .시로서. 한편의 시로서도 나타낼 수 있고. 그림이나 글씨로도 나타낼 수 있고. 심지어 한잔의 차를 마시면서도 나타낼 수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심지어 지금은 어떤 아파트를 짓는데도 건축 스타일까지도 어떤 선의 스타일로 나타낸다는 그런 시대에 살고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제 일반불교 보통불교는 이제 식상했고, 그야말로 이제 최고급 불교 가장 앞선 불교 불교의 어떤 발전 사를 통해서 보더라도, 최첨단에 와있는 불교 그것이 곧 선불교라고 할진 데, 그래서 그것을 숭상하고. 그것을 좋아하고. 그것을 어떻게 하더라도 일반화 해서, 우리 생활에 그것을 이제 선 생활로 만들고. 생활에 도입을 해서, 뭔가 이제는 어떤 질적인 생활. 그 질적인 생활도 그 질이 선으로 질이 되는. 선으로서 질을 삼는, 그런 생활 이것을 우리가 바라고 선을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까?
궁극적으로는 사실 그래요. 궁극적으로 그 아주 고고한 선을 좋아해서, 이렇게 선 생활이 좋아서 선에 사람이 모입니다. 이럴 때 정말 선의 올 곧은 정신을 바로 세워야 되고, 우리가 그것을 좋아하고 싫어하고 그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또 내가 그런 경지에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도, 또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선이라고 우리가 명명 했을 때, 선이 가지고 있는 일곱 가지 선의 정신에서 말하는 일곱 가지 조건 이것은, 우리가 도저히 빼놓을 수 도 없는 일이고, 거부할 수도 없는 일이고 이것은 당연히 선 본래의 정신이고, 맛이고. 선 본래의 향기기 때문에 우리가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러한 수준이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것은 그것은 다른 문제지요. 선은 선대로 우리가 이해를 해야 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제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불교가 있는 한 선은 계속될 것이고, 또 선을 하는 사람들도 자꾸 불어날 것이고, 선원이라는 간판을 걸고 포교를 하는 사람들도 자꾸 이제 불어날 것입니다.
왜 그런고 하니 선불교는 불교의 첨단입니다. 갈수록 이제 일반불교에서 첨단 불교인 선불교로 돌아올 것은 자명한 일이기 때문에, 이럴 때쯤 우리 염화실 우리 법우님들 이라도 이 선에 대한 냉철한 일곱 가지 정신을 잘 숙지해서, 좀 이렇게 여러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 하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다시 정리해서 말씀들이면은 간소[簡素], 첫째 간단명료하고 소박하고 간소해야 된다. 어떤 스님이 꼭 옷에 주머니를 안 단다고 해서 그 사람 정신 모든 것이 간소하다 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런 간소한 모습 그러한 형식적인 것이 상당히 선의 정신을 잘 표현한 대목이기도 하다 하는 그런 말씀이고, 그 다음에 “정적[靜寂]” 고요해야 된다. 이것은 뭐 정말 빼놓을 수 없는 조건이지요. 뭘 하든지 선을 앞세우면은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변화" 이것은 불균제[不均齊] 라고도 표현하는데, 고정된 틀을 벗어나야 된다는 것이지요. 그 다음에 “탈속[脫俗]”, 속기가 없어야 된다. 속기가 덕지덕지 묻어 가지고 그냥 모습에서나 말에서나 생각에나 속기가 덕지덕지 묻어난다면 그 어디 선을 한다고 할 수 없지요. 사실은 뭐 화두는 고사하고 우선 속에서 벗어나야 되지요. 그것이 선에서 갖추어야 할 아주 기본적인 조건입니다. 탈속하는 것
그 다음에 “자연[自然]” 자연스러워야 된다. 저절로 그러해야 된다. 조작이 없어 보여야 된다. 조작하고 조작해서 조작이 없는데 이르러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면은 전부 조작이지요. 그런데 조작이 조작이 없는데 이르러야 되는 것, 이것이 이제 말하자 면은 선의, 선 스타일의 어떤 건축이라 할까? 선화라고 할까? 선서라고 할까? 선의 일곱 가지 조건 중에서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고고[枯高]”, 이것은 참으로 엄격함이지요. 아주 높고 높은 것이고 그런 아주 서릿발 같은 그런 엄격함이 배어있는 것, 그리고 아주 누구도 움직일 수 없는 그런 고집도 나타나는 것이지요. 이것이 이제 고고,
그 다음 일곱번째가 “유현[幽玄]”, 아주 깊고 그윽하고 정말 끝 모를 그런 깊이 끝 모를 넓이, 이것이 이제 선이 갖추어야 할 일곱 가지 조건입니다. 사람이 그래야 되고. 시를 썼다면 시가 그래야 되고. 그림을 그렸다면 그림이 그래야 되고. 방을 하나, 선방이라고 꾸몄다면은 그 선방이 또한 그래야 하고, 선원이라고 하는 그런 어떤 집을 하나 지었다면은, 정말 그 집이 전체 밖에서부터 안에까지 통째로 그런 조건들이 갖춰져 있고, 그래서 누구든지 거기에 들어가기만 하면은, 이미 그런 어떤 분위기에 젖어 들도록 이렇게 되었으면 선의 어떤 조건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나,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서 오늘은 선에 대한 일곱 가지 조건을 이렇게 말씀 드렸습니다. 3월 31일 마지막 가는 날 염화실 인터넷 방송법문을 이것으로 마칩니다.
(기록;수경심,정리;진여혜)
첫댓글 미륵골님....수고하셨습니다....잘하셨네요...합장
.()()().
이리보아도....저리 보아도 신통방통한 일입니다. 하루 동안 열심히 훈련?하여 3월의 마지막 '선'에 관한 무비스님의 법문을 재방송으로 올려주신 미륵골님....선재선재입니다...합장
스님, 법문 감사합니다. 이제 선의 정신과 아름다움을 잘 알았습니다. 이 7가지 조건을 모두 갖추어 선의 맛과 향기가 나게 생활하고, 또 선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공간을 꾸민다는 것이 어려워 보이나, 늘 기억하고 서서히 집안 구석구석부터 가꾸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게는 큰 가르침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스님께서 말씀하신 그 선(Zen)화장품은 전혀 효과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이름만 보고 구입했는데 오히려 피부를 악화시키는 것 같습니다.(제 경우는...) 앞으로 광고에 속지 않겠습니다. 미륵골님, 반갑습니다. 이제 미륵골님께서 재방송을 올려 주시나요? 정말 잘 하시네요. 감사합니다.
날마다좋은날 사부님께서 총 여섯시간에 걸쳐서 컴터로 원격 지원, 비기를 전수하여 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앞으로 제가 하게될 작은 일은, 그간 생방 끝나자 마자 올리시느라고, 해우소 출입도 제대로 못 하셨을 사부님의 그 시간을. 약간 지켜드리는것 이상은 아니라고 사료됩니다.
날마다사부님! 문명의 이기를 전법륜의 도구로 활용할수있는 방편을 베풀어 주심에, 찬탄드립니다. 제자의 극히 미약한 행이, 사바제일의 사이버도량 염화실을 장엄하는 대불사에, 잡석으로라도 자리할수있도록, 좀더 이끌어 주시고, 깨우쳐 주시옵소서! - 미륵골 합장근배-
미륵골님 축하합니다,앞으로는 미륵골님이 올려주시나요? 훌륭한 스승의 훌륭한 제자십니다,저들을 위해 베풀어 주신 고마움 ,,,열심히 공부하면서 갚겠습니다,날마다님게도 너무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선의 정신을 드러내는 7가지 조건ㅡ 간소,정적,변화,탈속,자연적,고고,유현, 선에대한 공부 ,법문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미륵골님 톤입니다. 지금까지도 많은 수고를 하셨는데... 새로 맡으신 소임이 여법하게 이루어지기를 여러 도반님과 함께 합장 기원합니다. 나무영산회상불보살!
미륵골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함께 동참하여 염화실 포교당을 운영해 가시니 법석이 더욱 빛납니다. 큰 의지가 되겠습니다.
날마다좋은날님의 공덕으로 벌써 미륵골님께 전수가 되셨네요...언제나 감사를 드립니다...고맙습니다.._()_
미륵골님. 감사합니다. 계절의 신비를 매일 매일 느낍니다, 새봄의 활기찬 정기를 느낍니다. 일상생활이 선아님이 없고 간소,정적,변화,탈속,자연,고고,유현 한 선의 맛과 향기가 나는 아름다운 생활에 힘쓰겠습니다....*^^큰스님 아름다운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아이구~~ 여섯 시간 동안 얼마나 머리가 아프셨겠습니까.. 정말 대단한 일을 하셨습니다. 역시나입니다. 고맙습니다._()_
미륵골님 감사합니다,,그러면 방송전수(법) 몇 대가 되시는지요(?). 6시간이면 아주 대단하십니다, 두 분다.다시 감사드립니다_()_
禪의 7조건= [간소=무소유] [정적=묵언] [변화=무상] [자연=순응] [탈속=수행] [고고=엄격] [유현=무량]을 내는...[모습] [색갈] [느낌] [표정] [말씨] [배려] [진실] [편함] [몸짓] 등등이 드러나는 세계. 미술학도 딸이 요즘 불교미술에 관심을 가지던데 알아야할 공부 입니다. 감사 합니다. ()()()
_()()()_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오늘 부터 법화경 복습 겸하여 녹취 요약부분을 녹취全문으로 대체작업에 들어갑니다.
선의 7가지 조건 : 簡素, 靜寂, 不均齊(변화), 脫俗, 自然, 枯高, 幽玄
감사합니다._()()()_
^^ _()()()_
선의 모습은 절대 말로만은 안된다는 것은 확연하다 하겠습니다. 나무묘법연화경,,,
簡素, 靜寂, 不均齊(변화), 脫俗, 自然, 枯高, 幽玄....어찌 다 알아채야 할까요?? 나무묘법연화경
큰스님! 현이 깊고 그윽하면 황은 어찌 풀어야 할까요??? 천자풀이를 하다 그곳에서 꽉 막혀서리..
아주 간명하고 간단하고 소박하고 질박해야 함....나무묘법연화경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_()()()_
첫댓글 미륵골님....수고하셨습니다....잘하셨네요...합장
.()()().
이리보아도....저리 보아도 신통방통한 일입니다. 하루 동안 열심히 훈련?하여 3월의 마지막 '선'에 관한 무비스님의 법문을 재방송으로 올려주신 미륵골님....선재선재입니다...합장
스님, 법문 감사합니다. 이제 선의 정신과 아름다움을 잘 알았습니다. 이 7가지 조건을 모두 갖추어 선의 맛과 향기가 나게 생활하고, 또 선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공간을 꾸민다는 것이 어려워 보이나, 늘 기억하고 서서히 집안 구석구석부터 가꾸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게는 큰 가르침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스님께서 말씀하신 그 선(Zen)화장품은 전혀 효과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이름만 보고 구입했는데 오히려 피부를 악화시키는 것 같습니다.(제 경우는...) 앞으로 광고에 속지 않겠습니다. 미륵골님, 반갑습니다. 이제 미륵골님께서 재방송을 올려 주시나요? 정말 잘 하시네요. 감사합니다.
날마다좋은날 사부님께서 총 여섯시간에 걸쳐서 컴터로 원격 지원, 비기를 전수하여 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앞으로 제가 하게될 작은 일은, 그간 생방 끝나자 마자 올리시느라고, 해우소 출입도 제대로 못 하셨을 사부님의 그 시간을. 약간 지켜드리는것 이상은 아니라고 사료됩니다.
날마다사부님! 문명의 이기를 전법륜의 도구로 활용할수있는 방편을 베풀어 주심에, 찬탄드립니다. 제자의 극히 미약한 행이, 사바제일의 사이버도량 염화실을 장엄하는 대불사에, 잡석으로라도 자리할수있도록, 좀더 이끌어 주시고, 깨우쳐 주시옵소서! - 미륵골 합장근배-
미륵골님 축하합니다,앞으로는 미륵골님이 올려주시나요? 훌륭한 스승의 훌륭한 제자십니다,저들을 위해 베풀어 주신 고마움 ,,,열심히 공부하면서 갚겠습니다,날마다님게도 너무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선의 정신을 드러내는 7가지 조건ㅡ 간소,정적,변화,탈속,자연적,고고,유현, 선에대한 공부 ,법문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미륵골님 톤입니다. 지금까지도 많은 수고를 하셨는데... 새로 맡으신 소임이 여법하게 이루어지기를 여러 도반님과 함께 합장 기원합니다. 나무영산회상불보살!
미륵골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함께 동참하여 염화실 포교당을 운영해 가시니 법석이 더욱 빛납니다. 큰 의지가 되겠습니다.
날마다좋은날님의 공덕으로 벌써 미륵골님께 전수가 되셨네요...언제나 감사를 드립니다...고맙습니다.._()_
미륵골님. 감사합니다. 계절의 신비를 매일 매일 느낍니다, 새봄의 활기찬 정기를 느낍니다. 일상생활이 선아님이 없고 간소,정적,변화,탈속,자연,고고,유현 한 선의 맛과 향기가 나는 아름다운 생활에 힘쓰겠습니다....*^^큰스님 아름다운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아이구~~ 여섯 시간 동안 얼마나 머리가 아프셨겠습니까.. 정말 대단한 일을 하셨습니다. 역시나입니다. 고맙습니다._()_
미륵골님 감사합니다,,그러면 방송전수(법) 몇 대가 되시는지요(?). 6시간이면 아주 대단하십니다, 두 분다.다시 감사드립니다_()_
禪의 7조건= [간소=무소유] [정적=묵언] [변화=무상] [자연=순응] [탈속=수행] [고고=엄격] [유현=무량]을 내는...[모습] [색갈] [느낌] [표정] [말씨] [배려] [진실] [편함] [몸짓] 등등이 드러나는 세계. 미술학도 딸이 요즘 불교미술에 관심을 가지던데 알아야할 공부 입니다. 감사 합니다. ()()()
_()()()_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오늘 부터 법화경 복습 겸하여 녹취 요약부분을 녹취全문으로 대체작업에 들어갑니다.
선의 7가지 조건 : 簡素, 靜寂, 不均齊(변화), 脫俗, 自然, 枯高, 幽玄
감사합니다._()()()_
_()()()_
_()()()_
^^ _()()()_
선의 모습은 절대 말로만은 안된다는 것은 확연하다 하겠습니다. 나무묘법연화경,,,
簡素, 靜寂, 不均齊(변화), 脫俗, 自然, 枯高, 幽玄....어찌 다 알아채야 할까요?? 나무묘법연화경
큰스님! 현이 깊고 그윽하면 황은 어찌 풀어야 할까요??? 천자풀이를 하다 그곳에서 꽉 막혀서리..
아주 간명하고 간단하고 소박하고 질박해야 함....나무묘법연화경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