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지만 고창 선운산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이곳에 옮겨본다.
김용성. 그 친구는 지금 고창에 있는 천주교 기념시설물 감독일을 하고 있다.
금년 초에 공사준공하면 타 근무지로 옮겨가야 한다며 작년 말 친구들을 초대한 것이다.
고창은 잘 알려져 있듯이 선운산, 선운사, 풍천장어, 복분자가 유명한 곳이다.
그 고장 풍광과 풍미가 어우러지는 추억을 우리 고건 73친구들에게 선사하고 싶다는 용성의 마음을 실현시켜주기 위해
나와 박상봉 둘이서 그 곳을 다녀왔다.
함께 가기로 했던 하천필과 송영경이 불참해 아쉬웠지만 그 친구들의 빈자리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았다면 그 친구들이 섭섭해 할까? 아니면 함께 못한 마음, 조금은 위안이 될까?
나는 21일 저녁 강남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갔고 상봉이는 평택에서 차를 몰고 내려와 고창버스터미널에서 조인했다.
네비가 안내해준 용성의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밤 10시가 다 된 시각.
용성은 한 5인분 정도 되는 저녁밥상을 차려 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상에는 신부님이 잡았다는 붕어로 조리한 붕어찜과 두부김치, 그리고 복분자주와 누른밥이 올라왔다.
고창, 한 밤중의 풍요로운 만찬이 용성이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하루를 보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식사후에는 윈맥스라는 음악프로그램의 반주로 용성이는 하모니카를 불었고 우리 둘은 노래를 불렀다.
잠은 소리없이 오고
우리를 12월 22일, 고창의 새벽으로 안내해주었다.
선운사 입구는 한겨울 '상사화' 그 푸른 잎들이 여기저기 깔려져 있었다.
잎이 다 지고 9월이 되면 붉은 꽃이 피는데 입은 꽃을 볼 수 없고 꽃은 입을 볼 수 없다고 해서 상사화(相思花)로 불렸다 한다.
우리가 오르는 선운산 입구는 선운사를 우측으로 감고 이어져 있었다. 주변에는 스님들이 가꾸는 차 밭이 많았다. 겨울 산이라 그런지 산은 담담했고 그래서그런지 쓸데없는 생각만 많이 피어 올랐다. 생각을 많이 하면 상사가 되는가보다. 禪雲山. 禪雲寺. 누가 이름을 붙였을까. 참선하는 구름. 구름이 뭉개뭉개 모여들듯이 마음공부하려는 스님들이 이 곳에 구름처럼 몰려 들었을까? 구름도 선일까? 얼음이 물이 되고 물이 수증기 되고 상이 바뀌면 자유로워질까? 자유자재로 넘나들을까? 산행 초입부터 뿌리치지 못하고 품고 왔던 선운의 의미 해독은 이름모를 무덤가, 바람 잔 한 따뜻한 공간에 앉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상봉이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사온 마른안주와 용성이가 챙겨온 복분자주가 나의 산행길 선수행의 굴레를 벗게 해주었다.
담담하지 않았다. 숨겨져있던 선운산의 진면목이 우리들 앞에 펼쳐졌다. 속리산을 닮았을까. 규모는 그 보다 적지 않았다. 기암으로 둘러 펼쳐진 시원스런 산의 모습이 장관이었다. 남은 하산 길, 인상 깊은 동굴 같은 장소를 지나고 큰 바위에 부조로 새겨진 미륵불을 친견하고 그리고 동백숲을 한 무더기 뒷산에 품은 선운사를 탐방한 후 산행은 마무리 되었다.
당초 용성의 계획은 산행 후 인근 바닷가로 가서 장어로 뒷풀이를 하는 것이었는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군내에 있는 한 한정식집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조양관]이라는 음식점이었는데 지금은 지방 문화재로 지정된 왜식건물에 내부는 한국 전통적인 느낌이 드는 인테리어로 마감이 되어있었다. 음식의 맛은 아주 훌륭했다. 복분자를 가미한 막걸리의 감칠 맛이 아주 좋았다.
내게 고창은 첫 발걸음을 디딘 땅이었다.
친구가 아니었다면 영원히 들리지 못할 땅이었을지도 모른다.
늦었지만 그 인연을 만들어준 용성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못 다 옮긴 사연은 함께 흐르며 담겨진 영상으로 공개한다.
계사년 새해에는 우리 고건73동기들 모두 건강하고
원하는 일들이 원만하게 이루어지기를 기원한다.
첫댓글 고창만의 맛과 멋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에 친구들이 좀 더 많이 왔으면 좋으련만그래도 영주와 상봉이 두친구가 와주어서 너무도 반가웠고 거운 시간이 되었다네멋진 후기로 그 때의 거운 추억을 복기시켜줘 고맙고 감사하네
동행하지 못해 속 쓰렸는데...사진을 보니 더욱 아쉽구먼..
특히 저 복분자주... 요즙 잘 안되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