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국대전(經國大典)’ 이전(吏典)에는 상피법이 규정되어 있다. 친족 등 특별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 같은 관청에서 근무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다. 구체적인 기준도 법으로 정해져 있었는데, 상이 났을 경우 친가 쪽은 아홉 달 동안 상복을 입는 대공복(大功服)의 대공친(大功親) 이상과 외가 쪽은 석 달 동안 상복을 입는 시마복의 시마친 이상이 상피의 대상이었다. 친가나 외가의 사촌(四寸) 이상과 사위·손녀사위·자매의 남편(姉妹夫)과 장인(丈人)·장조(丈祖·장인의 부친)·처남·동서도 상피의 대상이었다. 이런 관계의 사람들이 소송을 내거나 과거 시험에 응시하면 청송(聽訟·재판관)이나 시관(試官)도 될 수 없었다.
성종 4년(1473) 12월 사헌부 지평(持平) 안호(安瑚)와 사간원 정언(正言) 안침(安琛)이 상피를 청했다. 사헌부와 사간원은 서로 다른 관청임에도 상피한 이유는 무엇일까? 양사(兩司)로 불린 사헌부와 사간원은 백관에 대한 탄핵과 언론 활동 등을 했는데, 중대한 일이 있으면 합동 연명 상소인 교장(交章)을 올렸다. 교장을 낼 때는 사헌부와 사간원 관원이 함께 모여서 의논하는데 이 경우 형제가 한자리에 앉아서 국사를 의논하게 되니 사정(私情)이 개입될까 우려된다는 것이었다.
때로는 아무 연관이 없는 관청들이라도 상피하는 경우가 있었다. 중종 11년(1516) 사간원 대사간 김근사(金謹思)는 부친 김면(金勉)이 내자시(內資寺) 부정(副正)이란 이유로 상피를 요청했다. 내자시는 조정에서 쓰는 식품과 옷감, 그리고 대궐의 연회 준비 등을 맡는 부서로서 사간원과 아무런 업무의 연관성이 없었다. 그러나 공회(公會)에 참여할 때 부친이 나가면 아들이 나가지 못하고, 아들이 나가면 부친이 나가지 못하는데, 나가지 못할 때마다 병장(病狀·병가 청원서)을 내야 한다면서 상피를 요청한 것이었다.
국세청이 세무서장 등에 해당지역 출신을 배제하는 향피제(鄕避制)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상피법을 만든 선조들의 지혜를 본받아 근본적이고 종합적인 부정 방지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조선일보 / 이덕일 사랑 2007.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