學文과 孝行이 뛰어난 이응거(李膺擧) 한성판윤
公은 공주이씨 시조 휘 이천일(李天一)의 51세이시며, 참의공파(參議公派) 휘 이명윤(李明尹)의 11세이시다.
公의 字는 사징(士澄)이고 號는 덕암(德巖)이다. 1715년 1월 16일 평안북도 영변에서 출생
증 판서 이세린(李世麟)의 장남으로 學文과 孝行이 뛰어난 조선후기의 文臣이다.
公의 5대조이신 이지현(李之賢)은 임진왜란 때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부장이며, 고조이신 이명달(李明達)은 요동백 김응하와 같이 후금 여진족 정벌에서 전사하였고, 증조이신 이시영(李時英)은 정묘호란 때 남이흥의 주장으로 같이 전사하여 숙종33년(1707년) 삼절열전(三節列傳)의 충효삼대(忠孝三代)가 정려(旌閭)를 받았다.
公은 1788년(정조 12년) 영변 참봉으로 있을 때 좌의정 이성원이 자세와 인품이 훌륭한 서북지방의 인재로 천거하여 숭령전 참봉, 숭례전랑이 되었다. 그 뒤 강릉참봉을 역임하고, 1791년 가선대부에 올랐으며, 1794년 80세의 나이로 지중추부사로 임용되었다.
1798년 도총부 도총관이 되었고, 1799년(정조 23년) 5월에 85세로 한성부 판윤(지금의 서울시장)의 자리에 올랐다.
저서에 <덕암집>이 있으며, 시호는 돈희(敦僖)이시다.
1807년 3월 7일에 운명하시니 수한 나이 93세 이었다. 묘는 평안북도 덕산 간좌이다.
참고문헌 - 정조실록. 순조실록. 덕암집. 청선고. 공주(공산)이씨대동보. 두산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