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식 (로제리오)
가수 겸 작곡가로 생활성가의 개척자이며,
파리국립음악원에서 그레고리안과 지휘법을 공부하였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돕기위한 자선음악회와
환경보전과 인권회복을 위한 사회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으며
어린이들을 위한 노래와 예술가요 및 연주곡 등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만들고 부른다.
[ 약력 ]
- 수상
1978 제2회 대학가요제 은상 <약속>
1979 VOC대학가요제 금상 <쏭바강의 추억>
1982 제6회 MBC대학가요제 동상 <오! 나의 바람>
1985 제9회 MBC대학가요제 입상 <내마음의 노래>
1987 제1회 가톨릭 어린이 창작성가 공모 작곡부문 금상 <참좋으신 예수님>
1988 제2회 작사부문 금상 <나를 따르라>
1989 제44차 성체대회기념 동상 「생명의 물」
1990 제4회 작곡부문 금상 「하느님을 사랑해」등
- 활동
1987 반예문 신부님과 함께 듣지 못하는 어린이를 돕기 위한
「사랑의 보청기」자선음반 「나의 친구에게」출반을 시작으로 생활성가1집「그대 잊지 않으리(1987)」등
30여개의 음반을 제작 또는 참여했으며 가톨릭교회를 비롯해서 국내외 2,500회 이상의 공연과 피정, 강연을 이어가고 있다.
환경과 자연을 노래하며 기쁨 나누는 가수 김정식
(가수 겸 작곡가)
▶ 현재까지
1955년 생
전남대학교 전자공학과 졸업(1978년)
평화방송 `김정식이 들려주는 맑은 이야기`에 출연
1984년부터 지금까지 명동성당 앞에서 박준씨와 함께 `심장병 어린이 돕기` 거리 공연을 하고 있다.
▶ 특이사항
`가톨릭 생활성가 찬미회`에 소속되어 생활성가(본인이 창시자)를 만들고 보급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천성적으로 악기를 잘 다뤄...
전라남도 장성이라는 시골에서 자란 그는 어려서부터 음악을 배울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가 후일 가수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음악적 재능 때문이었다.
"스스로를 돌이켜보면 나는 아마도 음악에 대한 감각을 선천적으로 타고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음악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지만 주위에 있는 악기는 스스로 터득해 연주를 할 수 있었으니까요. 피리, 하모니카, 풍금, 기타 그런 악기들만 보다가 피아노를 처음 본 것이 중학교에 들어가서였는데, 어쨌든 배우지 않고도 혼자 연습해서 악기를 연주했지요. 노래도 한번 들으면 그대로 연주할 수가 있었습니다. 내가 음악교육을 받은 거라곤 30세가 넘어서 파리 그레고리오 성가대 초청으로 파리 국립음악원에서 1년간 공부했던 것이 전부입니다."
결국 그는 대학가요제에 입상을 했고, 그 인연으로 업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어려웠던 시절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자신의 인생을 노래로 결정짓지는 않았다. 대학을 졸업한 후 그는 종교적인 체험에 의해 사제가 되기로 결심하고, 실제로 `노동 사목`이 되려고 지도 신부를 따라서 구미로 내려가 2년간 생활하기도 했다.
고된 2년간의 생활을 끝내고 나서 그의 지도 신부의 솔직한 의견은 그가 사제로서 잘 맞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유야 어쨌건 사제만을 바라보고 2년을 기다려온 그에게는 당황스럽기도 했고, 생계 문제까지 겹쳐서 정말 앞이 캄캄했다. 바로 그 때 `노래`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전까지 한 번도 노래가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하다가 위기의 순간에 봉착해서야 가장 가까이에서 언제나 그를 지켜보던 `노래`를 보게 된 것이다.
♣ 서른다섯에 다시 태어난 인생
그의 나이 서른다섯이 되던 그 해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비가 아주 많이 내렸다. 그의 아버지는 시골에서 노점상을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와 영등포 야채 무허가 시장에서 식품 노점상을 하셨는데, 집으로 전화가 와서 시장에 나가 보니 아버지가 야채 썩은 진흙탕에서 술에 취해 주무시고 계셨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유년시절부터 노점상을 했다. 어린시절 그의 고향에서는 5일장이 열렸는데, 장이 열리는 곳마다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던 그의 아버지는 종종 술에 취해 쓰러졌고 그 때마다 아버지를 소달구지나 리어카에 태워 집으로 돌아오는 게 그의 일이었다. 그 때마다 그는 몹시도 창피스럽게 느껴졌었다.
그런데 그런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아버지의 모습이 그날은 바로 주님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주님의 모습으로 아버지는 왜 저기 누워 있는지... 왜 그렇게 술을 마시는 지 물으면 `모든 걸 잊기 위해 마신다`고 대답하던 아버지였다.
"고래고래 소리지르다가 잠이 드시는 그 때가 아버지한테는 가장 평화로운 순간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사람들한테 무시당하고, 배고프고, 돈도 없는 그런 현실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바로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이죠. 참그리스도는 바로 그런 사람들 속에 이미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7남매를 키우기 위해 가게터 하나 없이 바둥거리며 힘든 삶을 산 아버지의 모습이 사실은 바로 자신을 위한 모습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가수 김정식은 서른다섯 전까지는 업소에서 노래를 부르며 대중들과 만났다. 그러나 이 이후로는 업소 출연을 그만두고 초청공연이나 음반 수익, 노래책 인세 수입 등으로 생활을 유지했다.
♣ 그리스도의 사랑을 노래하는 가수
화곡 본동 화곡터널 위쪽 산동네에 자리잡고 있는 김정식씨의 집은 흡사 녹색가게를 연상케 한다. 집 마당에는 샤시로 막아 만들어 놓은 창고가 있는데, 그 안엔 공구, 전기용품, 신발, 의자, 고물, 잡동사니 등이 즐비하여 그야말로 만물상이다. 그는 신발이나 옷, 가구 등 재활용이 가능한 물건은 무엇이든 주어다가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손질을 한다.
"우리가 물건을 주어다 놓거나 수리를 해 놓으면 동네에 소문이 나서 필요한 사람이 찾아오죠. 동네 사람들은 이런 우리집 사정을 잘 알고 안 신는 신발이나 수선하기 귀찮은 구두들을 우리집에 갖다 놓기도 합니다. 그런 덕분에 우리집이 동네 사람들의 만남의 장이 되기도 하고, 이웃들이 직접 만나서 필요한 것이나 재활용 할 수 있는 것을 주고받는 직거래하는 장이 되기도 합니다."
그는 이것이 바로 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일이며, 모든 생명을 창조한 하나님의 뜻을 실생활에서 실천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들은 그의 노래에 잘 나타나 있다. 그가 부르는 노래의 주제와 소재가 되는 것은 언제나 `자연과 환경`이었다. 자연과 환경을 함께 나눈다는 것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그가 84년부터 박준씨와 함께 명동성당 앞에서 `심장병 어린이를 위한 거리공연`을 가져온 밑바탕에도 이런 생각이 깔려 있다. 즉 그에게 있어서 노래를 한다는 것은 일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는 것이고, 그것이 그가 살아가는 방식인 것이다. 그가 만든 생활성가 또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가 생활 속에서 재활용을 강조하여 이젠 그의 가족들도 재활용에 익숙해져 있는데, 그의 아들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한번은 아들의 여름 반바지에 구멍이 두 군데 나서 적당한 천이 없기에 조금 표시가 나는 천으로 기워 주면서 "괜찮겠니?" 하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의 아들은 "아빠, 두 군데 더 붙여 줘. 남들이 무늬인 줄 알게" 하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 환경과 자연을 소중히 다룰 때 맛보는 기쁨
김정식씨는 그리스도의 정신을 강조하는 종교인이다. 그러나 굳이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그의 그리스도 정신은 의미가 있다. 그가 생각하는 그리스도의 정신은 바로 기쁨이기 때문이다. 생활 속에서 이웃과 기쁨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기쁨은 `가난`을, `근검절약`을 선택함으로써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는 돈이 궁핍해서 다른 사람들이 내다 버린 물건들을 줍는 것이 아니다. 그가 물건을 줍는 것은 이웃과 기쁨을 나누기 위함이다. 환경과 자연을 소중히 다루었을 때의 기쁨을 전달하기 위해, 그런 기쁜 소식을 이웃에게 귀띔해 주기 위해 버려진 물건을 줍는 것이다.
그는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기쁨을 느끼지 못하면 중단해야 한다고 한다. 또한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기쁨이 있으면 계속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그가 말하는 기쁨이라는 것이 자위·자족적인 기쁨은 아니다. 이웃과 함께 나눌 때 그 기쁨이 몇 배로 상승한다는 의미에서의 기쁨이다. 그의 나이 서른다섯이 되던 해에 야간업소 출연을 그만둔 것도 가난해지려는, 이웃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자 하는 의지가 아니었을까.
♣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는 푸른 소나무처럼
그는 앞으로도 자신이 변함없이 항상성을 간직하고 살기를 바란다.
"내가 계속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생활 속의 모든 부분에서, 모든 장르를 이용해서 확산시키는 일입니다. 내가 부르고 있는 생활성가란 것도 비록 가사에는 없어도 희망으로 차 있는 삶의 영성을 노래하는 것이고, 그런 면에서 동요, 가요, 민요 등 여러 소재와 장르를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아무 변화도 없는 노래를 수십 년간 불러온 것 같다고 자신의 노래에 대한 솔직한 심정을 토로한다. 하지만 모든 게 변하는 세상이라 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이 때로는 사람들에게 위안이 될 수 있다. 늘 그 자리에 서 있어서 언제든지 찾아가면 반갑게 맞아주는 나무와도 같이 말이다.
가수 김정식은 그것을 `고향` 혹은 `하느님의 본질`이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중요한 것은 그 자리에 그가 오늘도 서 있다는 것이고, 내일도 그곳에서 그를 만날 수 있다는 느긋함이 좋은 것 아닌가! 자꾸 빠르게만 흐르려 하는 세상을 타이르는 커다란 소나무처럼 말이다.
첫댓글 좋은자료 감사합니다 잘보았습니다
워디에 있었던 글인지..
검나게 궁금하네.
역시. 로제는 남다른 삶의 궤적이 있었군요.
그에게서는 유목민의 묶이지 않는 자유로움이 느껴져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