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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수필세계] 하반기 신인상 발표
▪ 당선자 : 정경자
동양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흥문학상 수필 은상
동리목월 백일장 우수상
백신애 백일장 입상
한국마사회 60부년 마문화 대상
대구수필가협회 회원
▪ 심사위원 :
박양근(문학평론가, 부경대 영문학고ㅘ 교수
최원현(수필가 문학평론가)
한상렬(수필가 문학평론가 에세이포레 발행인)
수필세계 2011 하반기 신인상 심사평
열린 시각으로 따뜻함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수필
정경자의 <시접> 외 4편
수필이 감동의 문학이 될 수 있는 힘은 작가의 마음이 독자의 마음이 되어 절대적 공감을 이룰 때이다. 설득이나 이해로 마음을 잡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마음과 생각에 독자도 자기 마음과 생각인 듯 착각할 만큼 참여할 때 자연스런 공감의 폭이 형성 된다.
정경자의 수필들엔 특별히 독자를 의식하지 않으면서도 공감대를 불러오는 묘한 흡인력이 있다. 문장에서 풍겨나는 따뜻함과 편안함 때문이다. 작가의 시선이 따뜻하면 바라보는 것들도 다 아름다워 보이기 마련이다. 내 것처럼 정이 간다.
최종 선에 오른 다섯 편의 직품들은 모두 수준작이었다. 글감을 어떻게 형상화 하고 의미화하는가를 알고 또 그것으로 독자에게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까지 계산해 내는 글쓰기를 하고 있다.
현대는 이제 시간의 시대가 아니다. 순간의 어느 한 때도 누군가의 눈에 잡히게 되어있고 그래서 뉴스적 사건도 신기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바로 마음을 잡는 그 무엇이 있어야만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 이미 다 아는 사실이 되어버렸다면 그 무슨 일이 왜 어째서 일어났을까, 그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특히 이토록 바쁜 세상사 중 과연 내가 관심을 가질만한 일인가, 또 나는 그 일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가 오히려 중요하게 되었다. 최소한 웃음을 주거나 어느 정도의 재미나 감동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허접스런 이야기로 시간을 빼앗았다간 욕만 먹기 십상이다. 그래서 작가는 독자에 대한 최대의 서비스를 생각해야 한다. 고객 감동을 넘어 고객 졸도의 차원까지 끌어올리지 못하면 이 바쁜 세상에서 누가 내 글을 읽어줄 것인가.
그런 의미에서 현대의 작가는 특히 자기 이야기를 글감으로 하고 있는 수필가는 더욱 독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고 읽는 맛을 감동으로 승화 시키는 일대 전략을 강구해야 한다.
정경자의 다섯 작품을 보면 작가는 자신의 역량을 다 발휘하여 독자에게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와 결단이 보인다. 바로 사물을 바라보는 눈이 평범한 상태가 아니라 아플만큼 새로운 시각으로 보려 하고 또 그것을 위해 그만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이 보인다.
<시접>은 치매를 앓는 큰댁 형님의 적삼에서 솔기가 터진 것을 발견하면서 형님의 그간 삶과 인고의 시간들을 돌아보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누구보다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왔던 세월들이었는데 어느 날부터 그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만 형님에게서 작가는 인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형님을 통해 어쩌면 머잖아 내게도 도래할 삶의 변화도 생각하면서 당장 현실에서 보여지는 삶의 모습을 안타까워한다.
시접은 옷 솔기 가운데 접혀서 속으로 들어간 부분을 말하며, 솔기는 옷이 되게 하기 위하여 두 천을 맞대고 꿰맨 줄을 말한다. 그런데 시접이 터져 솔기가 밖으로 나와 버린 것이다. 정상적인 상태를 벗어난 형님의 정신 상태도 시접에서 솔기가 빠져나온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곱게 다물어져 있어야 할 솔기가 인고의 세월을 버텨온 형님처럼 올이 미어져서 곧 해질 것만 같았다.’
솔기의 상태와 형님의 정신상태, 작가는 이 두 상황을 같이 본다. 그래서 그가 하게 된 것은
‘마루에서 긴 잠에 빠졌던 재봉틀을 끄집어냈다. 반짇고리를 뒤적여서 손바닥 만 한 모시자투리를 찾아냈다. 딱 맞게 가위로 잘라 적삼 옆선에 덧대었다. 아슬아슬하게 붙어있던 솔기가 행여 해질세라 박음질하는 손길이 더 조심스럽다.
비록 의식은 희미할지언정 육신만이라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시라는 나의 바람을 형님께 두 번 세 번 확답이라도 받을 듯 곁바대를 눌러 박았다.‘
그것은 간절한 기도다.
‘한복의 시접이란 길이와 소매를 잇거나 품을 늘리는 것이지만, 상고시대부터 옷이 귀했던 근세사에 이르기까지 재활용의 역할이 더 컸다고 한다. 한 필의 원단을 폭은 자르지 않고 몸의 치수나 팔 다리 길이대로 마름질하여 옷을 만든다. 입던 옷을 뜯어서 빨고 푸새 질하여 다시 바느질할 때는 그동안 불어난 몸집에 맞추거나 계절에 따라 솜을 누비거나 홑옷으로 만들었던 것도 솔기의 중요한 기능이었다.’
그러나 작가가 본 것은 이런 재생적 솔기 활용이 아니라 안타까움이다. 다시 펼쳐 빨아 늘릴 수 있는 솔기가 아니라 너무 닳고 헤어져 곁바대로 누를 수도 그 위를 박음질 할 수도 없는 안타까움이다. 작가의 형님에 대한 마음은 곧 먼 훗날 자신에 대한 마음일 수도 있다.
<재탕>은 두 개의 갈등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며 이야기를 이뤄간다. 착한 거짓말은 거짓말일 수 없는 것일까. 지쳐있는 아들에게 보약 한 채 지어주고 싶은 어머니는 얻어들은 지식으로 들과 산에서 캐고 꺾은 것들까지 넣어 진하게 보약 한 재 지어 먹이겠다는 마음이다. 그런데 며느리가 걸린다. 생각해 낸 것이 재탕, 그 재탕을 며느리 몫으로 준다. 하지만 세상일이 어찌 다 생각대로만 되랴. 결국 사단이 나고 그 불똥이 탕제원을 하는 작가에게로 튄다. 어쩔 수 없이 공범이 되어버렸지만 사실을 밝히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여기서 작가는 사실과 진실 사이에서 고민한다. 그러나 사실을 진실로 승화시켜야 감동이 생긴다. 수필은 사실보다 진실의 문학이다. 사실을 어떻게 진실로 독자에게 전하느냐가 수필이다.
<재탕>의 구조는 단순하다.
① 할머니는 큰 아들이 요즘 들어서 많이 피곤해 한다며 일간의 사정을 늘어놓았다.
② 진하게 달여 달라고 당부를 거듭하는 얼굴에는 일상의 노곤함이 묻어있다. 아들보다도 정작 당신 약이 더 급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만 달싹거리다가 말았다.
③“재탕도 해서 따로 포장해 주소. 아들 약만 해주려니 며느리한테 미안해서 그라지. 매번 용돈도 받아쓰는데…….”
들고 있던 약봉지를 내던지다시피 탁자위에 놓는 여자의 눈빛에 싸늘한 냉기가 감돌았다.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연신 퍼부어댔다.
“할마시, 돈이 모자라서 그랬다고 말 한마디만 했더라도…….”
며느리는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살면서 선의의 거짓말을 해야 할 때도 종종 있다. 진실로 인해 상처 받는 이가 있다면 어쩔 수없이 거짓말을 하거나 휘돌려 말해야 한다.
전후 사정이야 어찌 되었건 간에 미안하다면서 여자의 표정이 평정을 되찾고 있었다.
“아니에요, 그럴 수도 있죠. 할머니가 며느님 자랑을 많이 하셨어요. 웬만하면 모른 척 하세요. 못해주는 시어머님 심정은 오죽했을라고요.”
탕제원에는 많은 부류의 사람이 들락거린다. 그러나 작가의 눈이 머문 이 사건에서 ‘재탕’이란 의미를 여러 각도에서 생각게 한다. ‘진하게 우려먹은 뒤의 재탕으로 세상을 감동시키기엔 아무래도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이게 작가의 마음이다.
사람마다 버릇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어떤 한 순간 생기기도 한다. 불안한 심경이 나타난 버릇들이 대개 그렇다. <구두>는 작가 남편의 한 버릇에 얽힌 이야기다. 일련의 과정을 보면 이렇다.
① 벗어놓은 구두에도 표정이 있다.
② 남편의 구두 때문에 우리 집에는 며칠째 한랭전선이다. 싸움의 발단은 남편이 구두 뒤축을 꺾어 신는 데서 비롯되었다.
③ 남들은 투잡(two-job)도 힘들다는데 남편은 꽃가게에 조경공사, 그것도 부족해 갑작스레 인수한 식당까지 일을 벌여 놓았다.
남편은 단지 구두만 꺾어 신었을 테지만 아내의 마음도 덩달아 구겨진다는 사실을 알까? 쌀뒤주 바닥이 드러날지언정 가장의 매무새만큼은 번듯하게 차려주고 싶은 것이 여자의 마음이고 자존심이다. 그런 심중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습관을 고치지 않는 것은 정면대결이나 다름없다.
결국 힘겨웠던 가게를 처분하면서 남편은 아쉬움보단 오히려 홀가분해 했다.
가게를 넘기고 모든 일상이 제자리로 돌아왔건만 한번 굳어버린 습관은 고쳐지지 않았다.
문제는 작가가 꾸겨신는 남편의 구두에 대해 갖는 생각이다. 그 생각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인격이요, 하나는 인생이란 길을 가는 도구다.
‘신발은 육신과 인격을 담는 그릇이다. 스스로 자기 그릇을 홀대하는데 타인이 그것을 소중히 여길 리 만무하다. 비록 헌 구두일지언정 깨끗하게 손질된 신발은 타인도 함부로 짓밟지 못하는 법이다.
신발 없이 기나긴 인생여정을 완주할 순 없다. 신발도 사람과의 인연이 다하면 언젠가 버려지겠지만 육신을 담고 있는 한 몸의 일부분이다.‘
다행히 둘은 합일점을 찾는다. 맛깔스럽게 수필을 엮어간다.
‘남편은 대답대신 새로 사온 구두약과 구둣솔을 신발장 위에 주섬주섬 꺼내 놓는다. 그가 욕실로 들어간 사이 구두를 내려다보았다. 그동안 꺾인 허리 같았던 뒤축이 오늘은 억지로 편 듯 꼿꼿이 세워져 있다. 겨우 구두 한 귀퉁이 펴졌을 뿐인데 단정한 모범생처럼 보이는 것은 삶의 또 다른 착시현상인가.’
<숲속의 길>은 길을 놓친 이야기다. 사실적인 묘사가 조금은 이야기를 장황하게 몰아가기도 하지만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비교적 다 하고 있다.
드라이브나 하자는 옆집 정아엄마의 말에 의견 일치를 본 두 가족은 차 한대에 몰아서 타고 길을 나섰다. 계획도 목적도 없이 무작정 떠나는 여행은 일행들을 가벼운 흥분으로 들뜨게 했다.
왔던 길로 되돌아가면 훤히 꿰뚫는 길이 된다. 미궁 속을 헤매면서도 왔던 길로 되돌아가자는 이는 없었다. 전진을 지향하는 인간이 왔던 길로 돌아가는 데는 그만한 크기의 자존심도 함께 꺾어야 함을 철없는 아이들도 알고 있었을까?
길이나 삶에서 그 경로를 알고 모름의 차이에서 오는 두려움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가다보면 복병도 만나고 늪에 빠지기도 한다. 그것을 잘 극복하면 자신감이 생기고 단박에 높은 곳으로 뛰어오르려다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하는 것이 인생의 행로다. 모름지기 사람은 아는 길보단 모르는 길에서 더 경계하겠지만, 위태로운 길도 철저히 대비하면 극복할 수 있다. 잘 아는 평탄한 길에서 주의하지 않고 자만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까?
순수한 자연으로 돌아가기엔 인간은 물질문명에 너무나 깊이 젖어버렸다. 뛰어난 지능으로 지구 밖의 우주까지도 넘보는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캄캄한 숲속에선 불안에 떠는 한 마리의 노루와 무엇이 다른가?
길을 잃는다는 것은 목표를 잃는 것이다. 그것은 절망이고 의욕상실이고 혼돈으로 삶의 부재다. 두려움이 전재된다. 문제는 이런 길 잃음이 본능적으로 소유한 촉각 등을 상실한 현대인의 문명 선호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의지하는 대상이 인간이 만든 것들이라는 것인데 그것이 얼마나 불완전한 것일까도 생각해 봐야 할 일 아닌가.
<칼과 가위>는 각기 다른 삶과 부부 모습을 갈등과 좌절로 잘 풀어보인 작품이다.
나에게 칼이란 수족과 같은 존재다.
남편에겐 가위가 재산이다.
이 두 문장에서 나타나는 두 길, 두 생각이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남편은 수년 전, 큰아주버님이 하시던 꽃집을 물려받았다.’ 그리고 ’남편은 꽃 배달 외에도 제법 규모가 충실해져가는 조경 일도 도와야 했다.’ 그런 과정에서 탕제원을 하는 작가의 칼과 꽃집과 조경 일을 하는 남편의 가위는 역할이 달리 나타나지만 그에 따른 선호도도 나타난다. 그런데 그 칼과 가위를 언제 어떻게 쓰느냐다.
‘생존의 터전에도 가지치기처럼 먼저 솎아내지 않으면 내가 잘릴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가위는 알고 있었을까?
아름답게 하기 위하여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처럼 가지치기도 솎아내기도 잘라내기도 필요할 때가 있다. 그걸 위해 사용되는 가위야말로 그 위기감을 가장 잘 아는 존재다. 서로의 일을 위하여 필요한 것들이기에 제자리서 제 일을 하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만일 서로 부딪치면 큰 일이 생긴다.
‘서로 반목하여 날을 세우면 칼과 가위는 무기가 된다. 긴 세월을 함께 했던 만큼 남편이 미워서 날을 세운 적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칼과 가위의 임무가 무엇인가.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 내거나 필요한 크기만큼 자르는 것은 칼이나 가위가 하는 본연의 임무다. 건강하고 깨끗한 것만 취하기 위해 연장을 쓰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통일과 조화를 위해 튀는 부분은 가차 없이 잘라내야 한다.’
그런데 ‘부부는 험한 칼과 가위로 일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칼은 약재나 호박 등을 썰어서 몸에 좋은 약을 만든다. 남편은 가위로 불필요하고 못생긴 부분을 다듬고 리본을 달아 아름다운 꽃다발을 만든다.
칼과 가위도 애당초 자른다는 공통과제가 있듯 부부에게도 행복이라는 궁극의 목표가 있다. 칼이 못하는 일은 가위가 하고 가위로 불가능한 것은 칼로써 가능하리라. 부부가 합심하면 세상에 못자를 것이 어디 있으며 이루지 못할 것은 또 무언가.‘
일 때문만이 아니다. 칼은 아내고 가위는 남편일 수 있다. 아내라는 칼, 남편이란 가위가 서로 도울 때 행복이란 궁극의 목표를 달성하며 아름다운 가정이 이뤄진다. 그래서 하나로는 약할 수 있다. 큰 것, 작은 것, 잘 드는 것, 무딘 것, 다 쓸모가 있기 때문이다.
‘장바구니에 가위 하나를 더 담는다. 건망증 탓에 옆에 놓아둔 가위도 못 찾는 남편을 위해 요긴한 것을 제때 내어주는 조력자이고 싶다. 남편이 나를 위해 마련해준 두툼한 숫돌처럼.’ 아내의 마음은 남편의 자신에 대한 배려의 바람이기도 하다.
수필은 따뜻하고 편안한 글이다. 따뜻하다는 것은 편안도 하다는 말이다. 여유롭다, 느긋한 자유로움이다.
정경자의 수필이 갖는 ‘따뜻함과 편안함’은 글감에서부터 독자에게로 이르는 내내 마음이 배려적이고 독자의 마지막 마음상태까지 생각한다는 점이다.
<시접>과 <재탕>이 주는 따스한 인간애, <구두>와 <칼과 가위>가 주는 삶을 통한 부부간의 갈등과 조화와 배려, <숲속의 길>이 주는 자연에 대한 사고(思考)는 편협적이고 이기적인 자기 이야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요즘 신변잡기적 수필에 나름의 소재에 대한 변화를 추구하는 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신변이야기가 다 잡기일 수 없다. 신변이야기를 문학화 하는 놀라운 힘이 수필의 힘이다. 수필문단의 새 식구로 자랑스럽게 함께 하게 되어 반갑다. 더욱 좋은 수필을 기대하는 마음이 크다.
심사평/ 최원현(수필가. 문학평론가)
수필세계 신인상 당선작
시접 외 4편
밤이 이슥하도록 시댁은 시끌벅적했다. 어머니 혼자 계셔서 고적하던 집안이 시동생의 때늦은 결혼으로 모처럼 사람 사는 집 같았다. 뒤풀이도 끝나고 시댁에 남아 주무시고 가실 몇몇의 친척들만 남았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눕거나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는 무리 속에 미동조차 않는 이가 있었다. 잔칫집이면 으레 질펀한 술자리 끝에 노랫가락과 한바탕 춤사위로 어우러질 만도하련만 큰댁의 형님은 하루 종일 침묵할 뿐이었다. 누구보다 작은 집 ‘막내 되림’의 혼사를 학수고대했던 손윗동서였는데 가타부타 말이 없다. 질부(姪婦)가 저고리를 벗겨주는 대로 멍하니 몸을 내맡기는 형님은 치매를 앓고 있다.
“저고리 이리 주게.”
그녀의 저고리를 받아 쥐고 옷걸이에 걸려던 내게 문득 적삼의 옆선이 눈에 들어왔다. 곱게 다물어져 있어야 할 솔기가 인고의 세월을 버텨온 형님처럼 올이 미어져서 곧 해질 것만 같았다.
형님이 지나온 삶의 질곡을 들여다보니 저고리의 시접을 닮았다.
청송읍에서 이름난 부잣집의 고명딸이었기에 유년에는 손끝에 구정물 한 방울 튀기지 않는 호사를 누렸다. 그런 소싯적의 호사가 노랑저고리에 꽃분홍치마 같은 시절이었다면 그녀의 시집살이는 행주치마 같은 세월이었다. 읍에서도 두어 시간 가량 더 들어가야 하는 두메산골에 땅 부자로 부풀려진 집안으로 시집을 온 것이다. 시골에서 땅이 많다는 이야기는 곧 일이 많고 거느려야 할 식구도 많다는 말이다. 곱게 자란 그녀가 엄살 한번 부릴 법도 했지만 농사, 살림, 자식의 일까지 어느 것 하나 데면데면 하는 법이 없었다.
반면에 한집안의 장손이며 가장이었던 아주버님은 집에서 연장을 손보거나 들일 나가는 것보다 하얀 모시적삼에 중절모차림으로 읍이나 면소재지로 출타하는 일이 더 많았다. 바깥출입이 잦았던 남편을 대신하여 파종부터 추수에 이르기까지 놉을 맞추고 곁두리를 내가는 일은 거의 형님의 일과였다.
어쩌다가 집안 잔치가 시내에서 벌어져도 늘어진 술자리를 아쉬워하는 아주버님과는 달리 식사만 끝나면 곧장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형님이셨다. 농부가 게으름을 피우는 시간은 밭에 잡초가 웃자라고 농작물에 병이 깊어지는 시간이라며 휑하니 나가는 형님이 모처럼의 잔치 분위기를 깨는 것 같아 못내 섭섭할 때도 있었다.
거의 다달이 끼어있는 큰댁의 기제사 참석은 나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다. 가끔 명절 때에나 들른 형님 댁은 비록 시골의 묵은 세간이었으나 티끌하나 없이 반들반들했다. 뽀얗게 삶아 마루에 얌전히 개켜진 걸레는 도시생활에서 편한 것만 찾아 대충 살림을 때우던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오래전에 상처하신 시아버지가 노경에 들어 재혼을 하셨다. 몇 해 뒤 시아버지는 돌아가셨고 홀몸이 되신 새어머니의 봉양도 고스란히 형님의 몫으로 남았다. 그 일도 불평 한마디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그녀의 태도에 친지들은 ‘똥도 버릴 것이 없는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아주버님의 강직한 성품 때문에 상처받은 자식들이 뻗나갈세라 마음 다독이는 일도 형님에겐 지뢰밭을 밟는 심정이었으리라.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볼품없이 실밥이 너덜거려도 시접이 없다면 옷은 옷이 아니라 한낱 헝겊조각에 불과하다. 층층시하의 시집살이와 육촌만 모여도 백 명은 족히 넘는 대식구. 그 중심에 서있는 종부의 고충이야말로 열두 치마폭엔들 다 담을 수가 있을까?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앞길과 뒷길을 붙이고 길과 소매를 잇듯 의지의 끈으로 마음을 봉합하였을 것이다. 안으로는 공경과 자애를, 밖으로는 근면으로써 스스로를 독려했으리라.
한복의 시접이란 길과 소매를 잇거나 품을 늘리는 것이지만, 상고시대부터 옷이 귀했던 근세사에 이르기까지 재활용의 역할이 더 컸다고 한다. 한필의 원단을 폭은 자르지 않고 몸의 치수나 팔 다리 길이대로 마름질하여 옷을 만든다. 입던 옷을 뜯어서 빨고 푸새 질하여 다시 바느질할 때는 그동안 불어난 몸집에 맞추거나 계절에 따라 솜을 누비거나 홑옷으로 만들었던 것도 솔기의 중요한 기능이었다.
치매가 찾아온 이후 형님이 가족에게 힘을 실어주던 재활의 기능은 마비된 셈이다.
그동안 형님의 노고가 헛되지 않았는지 여섯이나 되는 조카들은 무사히 공부를 마치고 출가를 해 평범한 삶을 그럭저럭 잘 이어가는 듯했다. 그러나 아주버님이 농사일이 힘겹다며 선산을 제외한 문중 땅을 헐값에 넘기고 도심으로 이사를 한 것이 화근이었다.
형님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질부의 전화가 온 것은 큰댁이 도시의 아파트로 이사한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을 무렵이었다. 어느 날부턴가 그녀는 챙 넓은 모자에 수건을 둘러쓰고는 아파트 마당의 잔디를 호미로 파헤치거나 정원의 꽃을 모가지 째 따다가 치맛단에 담곤 했다. 그 때문에 경비실의 호출도 빈번했던 모양이다. 생각다 못한 아주버님이 장조카 네와 살림을 합쳤지만 그녀의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올해 고추농사 잘 돼야 큰 아 등록금 만들지…….”
거실에 깔아놓은 대자리 위에 장롱의 옷가지들을 죄다 늘어놓으며 중얼거리는 그녀의 기억은 십여 년 전 가뭄이 극심했던 그 해 여름 끝자락에서 타들어가고 있었다.
형님은 아주버님보다 땅에 더 의지하셨던 것 같다. 아주버님은 아주버님대로 멀쩡한 사람을 환자로 만들었다는 자격지심에 풀이 죽은 지도 오래다. 젊은 시절, 집안을 지키는 아내가 있었기에 양복이나 모시적삼에 백구두를 차려입고 출타하는 보무도 당당했으리라. 그 때만 해도 끼니때마다 아내의 입에 밥이나 찬을 넣어주고 얼굴 닦아주는 것으로 속죄하리라는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
“풀 약 쳐야 되는데……보소, 오늘 비 온다 카등교?”
“예, 비 온다 카디더.”
잠잠하던 형님이 새퉁스럽게 내뱉는 말에 아주버님도 늘 해오던 일 인양 대꾸를 한다.
누구의 제삿날, 아무개의 돌날, 잔칫날을 앉은 자리에서 줄줄이 꿸 만큼 그녀의 기억력이 펄떡펄떡 살아있을 때가 있었다. 그때는 친척집에서 하룻밤 묵고 갈 만큼의 여유도 없어보였다. 의식의 한쪽이 희미하게 지워진 지금에서야 일상의 울타리에서 벗어난 듯 조금은 여유로워 보인다.
그동안 열심히 살았으므로 아주 잠깐 몸도 마음도 휴식하라는 절대자의 배려였으면 좋겠다. 내일 아침, 잠에서 깨어나면 잠시 외출에서 돌아온 듯 평상심을 되찾았으면 더욱 좋겠다.
마루에서 긴 잠에 빠졌던 재봉틀을 끄집어냈다. 반짇고리를 뒤적여서 손바닥 만 한 모시자투리를 찾아냈다. 딱 맞게 가위로 잘라 적삼 옆선에 덧대었다. 아슬아슬하게 붙어있던 솔기가 행여 해질세라 박음질하는 손길이 더 조심스럽다.
비록 의식은 희미할지언정 육신만이라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시라는 나의 바람을 형님께 두 번 세 번 확답이라도 받을 듯 곁바대를 눌러 박았다.
구두2
벗어놓은 구두에도 표정이 있다. 작고 하찮게 생각하는 신발에도 주인의 삶의 방식이나 철학이 고스란히 배여 있음이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첫 대면일수록 인상은 참으로 중요하다. 첫인상이라면 흔히들 얼굴이나 옷차림을 떠올린다. 얼굴이나 옷차림이 의도된 것이라면 땅바닥에 붙어 옷에 가려진 채, 무심해질 수 있는 차림새는 신발인 셈이다. 그것으로 나는 사람들의 습관이나 개성, 성품까지도 미루어 짐작 해본다.
남편의 구두 때문에 우리 집에는 며칠째 한랭전선이다. 싸움의 발단은 남편이 구두 뒤축을 꺾어 신는 데서 비롯되었다. 올바르게 착용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벗은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황이 딱 남편의 유들유들한 성격을 닮았다. 모질지 않는 유순한 심성 때문에 오늘날 한 이불을 덮는 식구가 되었지만 남편의 그 매력이 가끔은 단점이 되기도 했다. 바깥일만큼은 무 썰듯 완벽하게 처리했으면 좋으련만 철두철미하게 처신하지 못하고 느슨한 탓에 크고 작은 말다툼의 단초가 되었다.
큰마음 먹고 산 비싼 구두도 몇 해 신고나면 볼품없는 중고품으로 전락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꺾어 신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행동은 아니다. 더군다나 양복차림에 꺾어 신은 구두란 스스로 품위와 인격을 깎아내리는 행위다.
바가지도 긁어보지만 남편의 습관도 살아온 세월만큼 견고하기만 하다. 그때마다 깜빡 잊었다는 핑계로 위기만 모면할 뿐, 개선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내가 양보할 마음이 추호도 없다. 그의 허허실실 작전에 휘말려 유야무야 넘긴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부아가 치밀어 통제력을 상실한 나는 잔소리보다 강도 높은 묵비권을 앞세워 시위 중이다.
남편은 단지 구두만 꺾어 신었을 테지만 아내의 마음도 덩달아 구겨진다는 사실을 알까? 쌀뒤주 바닥이 드러날지언정 가장의 매무새만큼은 번듯하게 차려주고 싶은 것이 여자의 마음이고 자존심이다. 그런 심중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습관을 고치지 않는 것은 정면대결이나 다름없다.
처음부터 구두를 꺾어 신는 엉성한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부부의 연도 희박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 데에는 남편의 지나친 일 욕심에 연유했다.
서너 해전이었다. 남들은 투잡(two-job)도 힘들다는데 남편은 꽃가게에 조경공사, 그것도 부족해 갑작스레 인수한 식당까지 일을 벌여 놓았다. 세 군데나 뛰어다녀야 하니 그의 일과는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다람쥐 쳇바퀴였다. 꼭두새벽에 출근하고 첫새벽에 퇴근하는 고단한 일상이 안쓰럽기도 했지만 아내 몰래 친구의 식당을 덜컥 인수받은 일은 괜히 서운했다.
사전준비 없이 뛰어든 식당업은 결국 남편 발에 맞지 않는 불편한 구두였다.
공사현장, 사무실, 가게로 뛰어다니며 하루 두어 번은 흙 묻은 작업화와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가게로 돌아와 구두나 편한 신발로 갈아 신고 뒤꿈치를 편히 앉힐 사이도 없이 식탁으로, 주방으로, 카운터로 바쁘게 움직여야만 했다. 자신감에 찼던 탄탄한 계획들이 고된 일과 탓에 서서히 꼬여만 갔다. 식당운영이 신발 갈아 신듯 그리 호락호락한 것이 아님을 시간이 흐를수록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의지만 앞섰을 뿐, 남편의 체력은 그렇지를 못했다. 아마도 마음은 바쁘고 몸은 따르지 않았던 그즈음에 신발을 구겨 신는 버릇이 그에게 생긴 듯했다.
피곤한 주인장에겐 손님을 감동시킬만한 서비스정신은 찾아볼 수 없었다. 주변식당에서 경쟁하듯 보다 나은 서비스로 손님의 마음을 잡는 동안 남편의 가게는 점점 한산해졌다. 그의 체력도 한계에 부딪혔는지 조용한 날은 가게서 졸기 일쑤였고 일찍 문을 닫는 날도 잦아졌다. 결국 힘겨웠던 가게를 처분하면서 남편은 아쉬움보단 오히려 홀가분해 했다.
가게를 넘기고 모든 일상이 제자리로 돌아왔건만 한번 굳어버린 습관은 고쳐지지 않았다. 원인이 사라지면 결과도 변하리라 여겼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내가 더욱 화가 치민 것도 바로 며칠 전 식당에서였다. 친구네와 우리 가족이 모여 오랜만에 식사를 하게 되었다. 식사도, 이야기도 거의 끝날 무렵 내가 화장실로 갈 때였다. 식당에서 여벌로 준비해둔 실내화로 화장실을 가려는 찰나, 화장실에서 방금 나온듯한 남자 손님의 발에 낯익은 구두가 신겨져 있었다. 왜 남의 구두를 신었느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그 말은 목에 가시처럼 걸려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얼른 신발을 거두어 신발장에 넣으며 쓰린 마음을 삭혀야만 했다. 내가 봐도 허술한데 남의 눈엔들 오죽했을까?
신발은 육신과 인격을 담는 그릇이다. 스스로 자기 그릇을 홀대하는데 타인이 그것을 소중히 여길 리 만무하다. 비록 헌 구두일지언정 깨끗하게 손질된 신발은 타인도 함부로 짓밟지 못하는 법이다.
신발 없이 기나긴 인생여정을 완주할 순 없다. 신발도 사람과의 인연이 다하면 언젠가 버려지겠지만 육신을 담고 있는 한 몸의 일부분이다.
여자가 아기를 배태하면 가장 먼저 신발부터 준비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당히 한몫을 감당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또한 삶의 한가운데서 마음의 고삐가 느슨해졌을 때, 사람들은 신발 끈을 다시 묶으며 재도약을 다짐한다. 끝내 헝클어진 삶을 풀지 못하고 스스로 짐을 내려놓는 사람은 마지막으로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놓기도 한다. 신발은 생각보다 우리의 삶에 훨씬 깊이 연관되었음이 분명하다.
언젠가 작은 아이도 제 아버지처럼 운동화를 꺾어 신다가 나한테 아주 혼난 적이 있었다. 한 가족이기에 윗사람의 습관이 때로는 좋고 나쁨의 판단 없이 그대로 아이들에게 답습되거나 내리 유전된다. 심지어 ‘밉다 밉다’하면서 배우는 것이 가족 간의 허물 아니던가?
“내가 다시는 당신 구두 사나봐라.”
퇴근한 남편에게 묵비권을 대신해 엄포를 놓았다. 남편은 대답대신 새로 사온 구두약과 구둣솔을 신발장 위에 주섬주섬 꺼내 놓는다. 그가 욕실로 들어간 사이 구두를 내려다보았다. 그동안 꺾인 허리 같았던 뒤축이 오늘은 억지로 편 듯 꼿꼿이 세워져 있다. 겨우 구두 한 귀퉁이 펴졌을 뿐인데 단정한 모범생처럼 보이는 것은 삶의 또 다른 착시현상인가.
칼과 가위
소일거리로 운영하는 탕제원엔 칼이 많다. 칡뿌리 자르는 무쇠 칼, 호박을 자르는 큰 칼, 중간 칼, 과도, 택배 보낼 때 쓰는 문구용 칼까지 셀 수 없이 다양하다. 그 쓰임새도 제각각이라 하나라도 없으면 일에 지장이 있을 뿐 아니라, 마음조차도 께끄름하다.
나에게 칼이란 수족과 같은 존재다. 칼이 잘 들어야 일에 속도가 붙고 신이 난다. 칼날이 무뎌지면 일이 힘들 뿐만 아니라 하루 일과도 꼬인다. 시간 날 때마다 칼을 갈아서 손님 받을 채비를 하곤 한다.
남편에겐 가위가 재산이다. 가게 한쪽 벽면엔 가위가 종류별로 걸려있으면서 또 욕심을 내는 것도 일종의 직업병이 아닐까 싶다. 정원수용 전지가위부터 위시하여 꽃꽂이용, 철사절단용, 리본 자르는 재단용, 핑킹가위까지 크기대로 걸려 있다. 차의 짐칸도 그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한 달에 한두 번은 남편이 대형 마트에 동행한다. 심성이 특별히 자상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필요한 것을 얻고자 함은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쇼핑카트를 밀던 남편이 홀연히 사라졌다 나타나면 어디로 갔었는지는 카트를 보고 짐작한다. 가위 두 개가 담겨져 있다.
남편은 수년 전, 큰아주버님이 하시던 꽃집을 물려받았다. 가게규모는 작지만 남의 손에 넘기기 아까운 목이라 동생을 불러들인 것이다. 아주버님은 꽃집을 하던 노하우를 살려 조경 사업을 시작했다. 남편은 꽃 배달 외에도 제법 규모가 충실해져가는 조경 일도 도와야 했다. 인력시장의 인부들을 공사현장으로 태워 가고 관리감독하거나, 차떼기로 나무를 사러 외지로 다니기도 했다.
생존의 터전에도 가지치기처럼 먼저 솎아내지 않으면 내가 잘릴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가위는 알고 있었을까? 가끔은 품삯만큼 움직이지 않고 술버릇마저 고약한 일꾼 때문에 남편이 난감하기도 다반사였다. 좁은 동네가 그렇듯 그 일꾼의 어려운 처지를 뻔히 알면서도 남편은 형님을 대신하여 악역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날은 남편의 술자리도 유난히 길었다.
서로 반목하여 날을 세우면 칼과 가위는 무기가 된다. 긴 세월을 함께 했던 만큼 남편이 미워서 날을 세운 적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아이들이 잠든 야심한 시각, 아파트 주차장은 부부의 전쟁터였다. 잔소리 같아서 할까 말까 망설였던 말들은 가슴속에 빼곡히 들어차서 독을 뿜어댔다. 꼬깃꼬깃 구겨졌던 그것들은 입 밖으로 화살이 되어 남편에게 쉴 새 없이 날아갔다. 칼날이 도마를 두드려대듯 남편을 들볶았다. 당최 술을 못하는 나였지만, 때론 술기운을 빌어 칼로 무 자르듯 끝을 볼 작정으로 그의 가슴에 생채기를 냈다. 그래봤자 번번이 독백으로 끝나는 싱거운 전투였다.
“됐다. 고마 해라.”
한참 듣기만 하던 남편은 이 한마디로 모든 싸움의 꼬리를 자르려 했다. 미안하다거나 잘못했다는 진심어린 사과가 듣고 싶은 내겐 턱없이 부족한 대답이었다. 그것에 더 약이 올라 격분하지만 벽에 대고 싸우는 게 차라리 나을 성 싶다. 바위보다 더 무거운 묵비권 앞에 나는 결국 백기를 들고 만다. 차 시트를 뒤로 젖히고 지그시 눈을 감은 남편이 석고대죄라도 하는가 싶더니 잠시 후, 드르렁 코고는 소리가 잔잔한 밤공기를 흔들었다. 제아무리 칼을 갈고 전의를 불태워도 적군이 자는 데는 정면 돌파를 무슨 수로 하겠는가. 머리만 닿으면 전쟁터에서도 잠을 잘 수 있는 느긋함에 기가 막혀 내가 쏜 헛총질만큼 실소가 터지고 만다.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 내거나 필요한 크기만큼 자르는 것은 칼이나 가위가 하는 본연의 임무다. 거친 것을 화급하게 다루다 보면 가위 날은 금세 터실터실해지고 틈은 어긋나기 십상이다. 가위는 칼과 달리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날을 벼리고 갈아서 다시 쓰기도 어렵다. 오래 부려먹은 노복(老僕)처럼 내치지도 못하고 고물상자로 내몰린 녹슨 가위도 새로 산 가위 수만큼 늘었다.
쓸모없이 잘려 나간 것들을 보면 나는 과연 세상에 필요한 존재였나를 돌이켜 본다. 화려한 겉치레를 쫓으며 엄살 부린 적이 많았고 속상해서 화를 낼 땐 가족들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믿는다고 말하면서 스스로를 믿지 못해서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식구들을 챙겨주고 편히 쉬게 한 날보다 오히려 닦달하고 상처 낸 날이 더 많았다. 오랫동안 그 사실조차도 깨닫지 못하는 무지몽매한 엄마고 못난 아내였다. 인내와 사랑으로 덮어주지 않았다면 나도 이미 가족의 눈 밖에 났을 지도 모를 일이다.
건강하고 깨끗한 것만 취하기 위해 연장을 쓰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통일과 조화를 위해 튀는 부분은 가차 없이 잘라내야 한다. 엄마, 아내, 며느리로서 지혜롭게 처신했는가를 돌이켜보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바쁘다는 구실로 아이들에겐 엄마의 부재가 길었고 남편의 지나간 잘못을 끄집어내어 내 잘못을 덮으려 했었다. 일을 핑계 삼아 부모님 찾아뵙기도 게을리 해서 이래저래 고집 세고 불경스런 며느리였다.
날을 갈고 벼리듯이 스스로를 독려해본다. 거칠고 고집스런 성미는 누그러뜨리고 모난 곳은 원만하게 다듬어라 한다. 깊고 넓은 통찰력으로 주변을 살피라 한다. 줏대 없이 휩쓸리지 말고 올곧으며,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키며 살라고 칼날이 내게 이른다.
수많은 직업 중에 어쩌다가 부부는 험한 칼과 가위로 일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칼은 약재나 호박 등을 썰어서 몸에 좋은 약을 만든다. 남편은 가위로 불필요하고 못생긴 부분을 다듬고 리본을 달아 아름다운 꽃다발을 만든다. 그로써 사람을 더 기쁘게 하거나 슬픔을 위로하는 마음의 약이 된다. 도구는 비록 험할지라도 사람에게 이롭게 쓰인다면 그 또한 얼마나 축복받은 직업인가. 쓰임새에 따라 그것으로도 세상을 아우를 수 있다.
칼과 가위, 비슷하면서 언뜻 어울리지 않는 면이 있다. 푸르렀던 신혼시절, 다른 집처럼 누가 먼저 칼자루를 쥐느냐 마느냐를 놓고 어리석은 기 싸움으로 기운을 뺀 적도 있었다.
‘칼이 옳다, 가위가 옳다’와 같은 우매한 흑백논리는 이제 그만두련다. 칼과 가위도 애당초 자른다는 공통과제가 있듯 부부에게도 행복이라는 궁극의 목표가 있다.
칼이 못하는 일은 가위가 하고 가위로 불가능한 것은 칼로써 가능하리라. 부부가 합심하면 세상에 못자를 것이 어디 있으며 이루지 못할 것은 또 무언가.
장바구니에 가위 하나를 더 담는다. 건망증 탓에 옆에 놓아둔 가위도 못 찾는 남편을 위해 요긴한 것을 제때 내어주는 조력자이고 싶다. 남편이 나를 위해 마련해준 두툼한 숫돌처럼.
숲 속의 길
긴 장마가 잠시 숨고르기를 하던 날이었다. 드라이브나 하자는 옆집 정아엄마의 말에 의견 일치를 본 두 가족은 차 한대에 몰아서 타고 길을 나섰다. 계획도 목적도 없이 무작정 떠나는 여행은 일행들을 가벼운 흥분으로 들뜨게 했다.
넓고 편한 국도를 벗어나 우측 농로로 차머리를 돌렸다. 익숙한 탄탄대로를 버리고 낯선 길을 선택한 까닭은 결국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 내지는 호기심 때문일 것이다.
노폭이 좁은 길가에 나지막한 시골집들이 정겹게 어깨를 맞대고 수런거리는 듯 했다. 담장너머 능소화가 기웃대었고 낮은 울타리에는 오동통하고 순하게 생긴 강아지가 졸고 있었다. 장마철이라 경운기도 한가로이 쉬는 모양이었다. 수련과 왜개연, 개구리밥의 동글동글한 잎사귀사이로 소금쟁이가 동그라미를 그리는 연못은 한가로웠다. 물 만난 고기마냥 죽마고우 두 남자의 왁자지껄한 대화는 시골의 고즈넉함을 깨고도 모자라 개구리도 놀라 도망가게 했다.
“옛날엔 물 반, 고기 반이더라 카이.”
“다른 연못이라카이, 고기가 어딨노?”
티격태격하던 두 강태공의 낚시 본능은 그렇게 잠재우고 아쉽게 그 자릴 떠나야만 했다. 낚싯대 하나 없이 무작정 길을 나선 까닭이다.
산비둘기 울음이 아련하던 농가도, 인적도 뜸해지더니 좁은 농로도 끝이 났다. 연이어 산길이 숲 속으로 펼쳐졌다. 울퉁불퉁한 꼬부랑길엔 신작로와는 또 다른 맛이 있었다. 풀숲을 헤집던 유년시절의 낭만도 언뜻언뜻 되살아나는 듯했다. 방금 장맛비에 씻긴 숲의 녹음은 정갈하다 못해 청아했다. 채도가 제각각인 초록 이파리는 도시의 네온사인으로 지친 눈을 살살 헹궈주는 듯했다.
“우와! 산딸기 좀 봐.”
산중턱 길 양쪽으로 산딸기덩굴들이 지천으로 뻗어 빨간 얼굴을 디밀고 있었다. 애어른 할 것 없이 차에서 내린 일행들은 산딸기를 따는데 여념이 없었다. 풀빛이 선명한 만큼 붉은 색은 더 매혹적이었다. 아이들에겐 그림책이나 식물도감에서만 보던 신기한 열매였을 것이다. 동네 언니들 치맛자락 붙잡고 뒷동산에 올랐던 어린 시절, 손끝과 입술이 시뻘겋게 따먹던 추억이 있었는데.
숲 속의 이방인 때문에 꿩들도 놀라서 푸드득거리며 달아났다.
인간이 태초에 사냥과 열매채집으로 연명하고 살았던 유전자는 수백만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유효한 것 같았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더니 딸기 따는 재미에 석양이 넘어가는 줄도 몰랐다. 산속에 성급한 어둠이 내리자 그제야 갈 길을 서둘렀다.
말이 길이지, 토사가 흘러내린 자갈밭 가운데를 잡초가 이랑을 만든 꼴이었다. 비에 일부가 씻겨나간 비탈길이라 차는 크게 요동을 쳤다. 사람의 발길이 쉬이 닿을 수 없는 험한 산세 탓에 숲은 그나마 원시림 형태로 유지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하늘로 일제히 뻗은 나무의 위용이 장엄하다 못해 경이롭다.
팻말이 없어 산의 이름도, 깊이도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우듬지 사이로 운무가 깔리는 풍광을 보아 웅장한 산세를 짐작만 할 뿐이었다.
무심히 떠나는 길의 목적지도 결국 출발점일 수밖에 없다. 사람도 태어난 흙으로 돌아가고 원점이 곧 도착지인 것처럼 시작과 끝은 결국 만나게 되리라.
방향을 전혀 가늠할 수 없는 어둑어둑한 숲은 마치 미로 같았다. 빨리 벗어나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았다. 한참을 달렸건만 지나가는 차도, 민가도, 그 흔해빠진 전봇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길을 잃을까봐 두려운 나머지 차안은 일순간 서늘해졌다. 정아아빠가 연신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통화권이탈’이라고 중얼거려서 얼굴들은 끝내 하얗게 질렸다.
말은 삼켰지만 나 역시 차타이어를 교체한 지 몇 해가 지났는지를 짚어보며 조마조마했다. 하필이면 그것이 그때 궁금해질 건 또 뭔가? 자갈길에서 타이어가 펑크라도 난다면 일행은 꼼짝없이 산속에 갇힐 수밖에 없다. 기도하는 심정으로 불길한 입방정조차도 경계해야만 했다.
갈림길이었다. 남편은 지름길이라 여긴 우측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선택의 기로에서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 중에 하나는 습관이다. 오른손잡이들이 오른쪽 길을 선택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마땅히 지름길이라 여겼던 좁은 길은 결국 계곡 쪽으로 빠지면서 끊어지고 말았다. 아이 키만큼 자란 개망초 군락이 이제는 자기네 영토라는 듯 길을 막고 시위를 했다.
우회전을 했을 땐 모두들 무언의 동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차의 뒷바퀴가 헛돌고 발이 푹푹 빠지면서 일행들이 차의 후미를 온몸으로 밀었을 때는 한번쯤 반대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운전대를 잡은 사람인들 일행을 곤경에 빠뜨리고 싶었겠는가? 말해본들 서로 미안할 것이 뻔하다.
천신만고 끝에 빠져나온 막다른 길 때문에 일행들을 더욱 의기소침해졌다. 서늘한 산의 기온과 두터운 어둠 탓에 소름이 돋았다. 차창너머로 낯선 일행을 향해 호기심어린 손을 내미는 나무들이 반가울 리가 없었다. 산림욕을 하겠다고 열어놓았던 창문도 모두 닫아버렸다.
왔던 길로 되돌아가면 훤히 꿰뚫는 길이 된다. 미궁 속을 헤매면서도 왔던 길로 되돌아가자는 이는 없었다. 전진을 지향하는 인간이 왔던 길로 돌아가는 데는 그만한 크기의 자존심도 함께 꺾어야 함을 철없는 아이들도 알고 있었을까?
캄캄한 길옆의 풍경은 있으나마나였다. 일행들의 눈엔 이미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아는 길이었다면 숲길을 거닐거나 계곡에 발 담그는 한유도 부렸을 텐데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다. 혹시 농막이라도 나올까 싶어 모두들 앞 유리창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숲을 꼭 벗어나겠다는 결연한 의지였다.
차는 멈추는 일없이 달렸다. 밤새 산을 휘돌아가는 한이 있어도 체념하고 산속에서 밤을 보낼 수는 없었다.
그렇게 두어 시간을 달리자 그제야 희미한 불빛 하나가 나타났다. 그것 때문에 차안의 분위기는 180도로 바뀌었다. 미아신세는 겨우 면한 것 같아 마음이 놓인 모양이었다.
“소변 보고 싶어요.”
“배고프다. 뭐 좀 먹고 가자.”
긴장이 풀린 일행들은 갑자기 주문이 많아지면서 다시 재잘대기 시작했다.
불빛은 자양 댐 입구의 가로등이었다.
산을 빠져나온 그 곳은 보현산 정상에도 한참 못 미치는 겨우 산자락의 옆길이었다. 첩첩산중에서 두 시간여를 헤맨 것을 생각하면 형편없이 낮은 고도였고 무심히 지나쳤던 길목이라 도리어 허탈했다.
정아아빠의 말 한마디는 일행들을 아연실색케 했다.
“전에 송이버섯 따다가 실종된 사람 구하려고 출동했던 길이네. 알았던 길인데 거꾸로 오니까 또 모르겠네. 허허, 그거 참!”
길이나 삶에서 그 경로를 알고 모름의 차이에서 오는 두려움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가다보면 복병도 만나고 늪에 빠지기도 한다. 그것을 잘 극복하면 자신감이 생기고 단박에 높은 곳으로 뛰어오르려다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하는 것이 인생의 행로다. 모름지기 사람은 아는 길보단 모르는 길에서 더 경계하겠지만, 위태로운 길도 철저히 대비하면 극복할 수 있다. 잘 아는 평탄한 길에서 주의하지 않고 자만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까?
순수한 자연으로 돌아가기엔 인간은 물질문명에 너무나 깊이 젖어버렸다. 뛰어난 지능으로 지구 밖의 우주까지도 넘보는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캄캄한 숲 속에선 불안에 떠는 한 마리의 노루와 무엇이 다른가?
재탕
황사가 심해서 손님이 없을 줄 알았다. 쇼윈도 너머 주차된 차들이 분첩을 두드린 것처럼 희뿌옇다. 꽁꽁 닫아둔 실내는 바깥 공기와 무관하게 맑고 싱싱하다.
두꺼운 유리문을 힘겹게 밀치고서 머리카락 희끗한, 칠십 줄은 족히 넘은 할머니가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양손 가득 거머쥔 보따리들을 내려놓고 휜 등허리를 더디게 펴면서 가게 안을 쭉 훑어보았다.
오래전 며느리를 맞이할 때 얌전하게 예단을 쌌을 법한 참꽃색 보자기는 곱디고운 색은 아득하게 바래지고 성질 뾰족한 오가피를 품어, 군데군데 올은 미어지고 가시가 뚫고 나왔다. 부직포 가방은 지난 가을에 거둔 인진쑥, 민들레, 엄나무 등을 꾹꾹 눌러 담아 아가리가 다물어지지 않을 지경이었다. 한낱 밭두렁 잡초에 불과했던 푸성귀들은 할머니의 부지런한 손끝에서 다듬어지고 말려져서 약초로 환생했을 것이다.
할머니는 큰 아들이 요즘 들어서 많이 피곤해 한다며 일간의 사정을 늘어놓았다. 슬하의 근심을 덜어주겠다는 일념으로 무거움도 잊고 바리바리 싸들고 온 것들을 이리저리 풀어 헤쳤다. 향촌에서 귀동냥으로 듣고 몸에 좋다는 것을 캐고, 꺾어서 손질해 온 것들과 한약방에서 따로 지어 온 보약을 내보이며 같이 써도 궁합이 맞느냐고 물었다. 약재를 살펴보니 환자를 위한 처방약이 아닌, 보통사람들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보약들이었다. 같이 달여도 된다고 흔쾌히 대답했다. 진하게 달여 달라고 당부를 거듭하는 얼굴에는 일상의 노곤함이 묻어있다. 아들보다도 정작 당신 약이 더 급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만 달싹거리다가 말았다. 노인네의 의지에 비해 나의 설득력은 형편없이 약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예, 염려 마세요, 진하게 해 드릴게요.”
연락처를 남기고 문을 나서던 할머니가 멈칫거렸다.
“새댁, 재탕도 되는교?”
“재탕이 되긴 하지만, 별로 진하진 않아요. 보리차 드시듯 하면 모를까. 초탕이 곰탕이면 재탕은 소가 발 담근 물입니더.”
알기 쉽게 설명을 해드렸지만 탐탁스럽진 않았다.
옛날 집에서 약탕관을 쓸 때는 처음 달인 약 두어 첩을 모아 재탕하던 시절도 있었다. 요즘의 대형 기계 솥은 120도 이상의 고온에 압력게이지 1600의 고압에서 약의 유효성분을 우려내는 방법을 쓴다. 그러다보니 재탕은 하나마나 한 묽은 농도로 나오기 때문에 권하지 않는 추세다. 손님 입장에서 본다면 똑같은 비용을 들이고도 맹탕을 끓여 먹는 뻔히 손해나는 일이 아닌가.
“재탕도 해서 따로 포장해 주소. 아들 약만 해주려니 며느리한테 미안해서 그라지. 매번 용돈도 받아쓰는데…….”
말끝을 흐리며 가게 문을 나섰다. 아마도 며느리 보약까지 챙길 여유는 없는 허술한 가세였나 보다.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이런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리면 좋으련만. 노모의 정성들을 찬찬히 안쳐 놓고 솥뚜껑을 닫았다.
탕약을 찾으러 온 날, 며느리에겐 솔직히 ‘재탕’이라고 알려주는 게 낫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할머니는 미안해서 그럴 수는 없다고 완강히 손을 내저었다. 오히려 며느리가 묻거든 그 말은 꺼내지도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고나서야 수공을 치렀다.
걱정이 현실로 나타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삼십대 후반의 여자 손님이 노기등등한 기세로 가게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들어섰다. 손엔 맑은 보리차 같은 약봉지가 쥐어져 있었다.
“어제 판 이 약, 기억나시죠?”
“예, 어떤 할머니가 해 가신 것 같은데요.” 말 한마디라도 잘못하면 바로 큰 불로 번질 태세여서 분위기는 사뭇 긴박했다.
“젊은 사람이 이렇게 장사 하시면 안 되죠. 노인네를 상대로 사기를 쳐도 유분수지. 이것도 약이라고 팔았어요? 도대체 얼마를 받았어요?”
들고 있던 약봉지를 내던지다시피 탁자위에 놓는 여자의 눈빛에 싸늘한 냉기가 감돌았다.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연신 퍼부어댔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심호흡을 가다듬었다. 며느리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어 허탈했다. 아들 약과 더불어 재탕을 내놓으면서 며느리 것도 따로 맞춘 것이라 말했고, 며느리는 뜻밖의 선물에 감복하여 특별히 두둑한 봉투까지 시어머니께 건넸단다. 그러나 약맛을 보고는 이내 속았음을 알았고, 졸지에 나는 선량한 할머니를 속인 악덕상인이 되어 있었다.
할머니가 당부했지만 이실직고하지 않으면 사태는 진정 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전날 했던 약조는 와르르 무너지고 나도 빠져 나갈 탈출구를 찾기에 급급했다. 기고만장했던 며느리는 자초지종을 다 듣고는 기가 막혔는지 표정이 누그러졌다.
“할마시, 돈이 모자라서 그랬다고 말 한마디만 했더라도…….”
며느리는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녀의 화살은 이미 시어머니를 향하고 있었지만, 기실 전후사정을 알아보지도 않고 식전 댓바람에 남의 가게에 와서 난리부터 친 자신의 좁은 소견을 질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당신의 속내를 좀 더 솔직하게 내보였더라면 일이 이렇게 확대되진 않았을 텐데 진실이 호도되어 고부간에 불신의 골만 더 깊어지는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살면서 선의의 거짓말을 해야 할 때도 종종 있다. 진실로 인해 상처 받는 이가 있다면 어쩔 수없이 거짓말을 하거나 휘돌려 말해야 한다. 정직보다 더 설득력 있는 미사여구는 없다. ‘아가, 내가 가진 돈이 모자라서 네 약은 따로 준비를 못했다만 아범 약을 재탕해 왔으니 물 마신다 생각하고 마셔라. 마음은 항상 네 걱정도 하고 있단다.’ 비록 재탕이었지만 이렇게 말하면 섭섭해 할 며느리가 몇이나 될까. 오히려 시어머니 사랑을 마심으로써 마음의 병 하나쯤은 치유될 것도 같다. 말로써 천 냥 빚도 갚는다 했다. 죄질이 나쁜 사형수의 죽음을 면케 하는 것도, 형량을 줄일 수 있는 것도 진정 자기반성의 말로부터 기인한다.
진하게 한번 우려먹은 뒤의 재탕으로 세상을 감동시키기에는 아무래도 무리가 있어 보인다. 노래도, 영화도, 예술작품도 원작으로 우려먹은 재탕은 관객을 감동시키는 데는 역부족인 듯싶다. 처음 관객을 매료시켰던 주요성분은 쥐어 짜여서 어느덧 함량미달이 된 탓일 테다.
악의적인 목적으로 누굴 속이려는 의도는 없었지만, 나의 가슴 한 편이 묵직한 몽돌에 짓눌리는 것 같았다. 잠시나마 공범이 되어 며느리가 눈치 채지 못하고 할머니의 꿍꿍이셈이 성공하기를 바랐던 탓이다.
전후 사정이야 어찌 되었건 간에 미안하다면서 여자의 표정이 평정을 되찾고 있었다.
“아니에요, 그럴 수도 있죠. 할머니가 며느님 자랑을 많이 하셨어요. 웬만하면 모른 척 하세요. 못해주는 시어머님 심정은 오죽했을라고요.”
닳고 닳은 장사치의 처세술로 돌아서는 그녀의 어깨를 토닥거린다. 명치끝을 누르던 몽돌의 무게도 점차 가벼워진다.
<당선 소감>
가벼웠던 시작, 가볍지 않은 여정
예전부터 본업 외에 늘 한눈을 팔고 다녔습니다. 스탠드글라스, 자수, 뜨개질, 유리공예, 지점토, 빵 공예, 십자수, 그림 그리기, 퀼트, 벽화…… 끊임없이 손을 움직이는 작업에 매료되었고 새로운 기법에 익숙해질 즈음에는 또 다른 무엇을 찾아 여기저기 옮겨 다녔습니다.
깃털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수필에도 발을 들여놓았지요. 싫증을 잘 내기에 수필쓰기도 그렇게 끝이 날 줄 알았습니다.
그럴 즈음에 희한한 꿈을 꾸었습니다. 옥색 도포를 입은 선비로부터 ‘건(巾)’자가 쓰인 비단족자를 받았습니다. 건이라 하면 옛 선비들이 머리에 쓰는 유건, 망건, 탕건 등에 들어가는 글자가 아닙니까? 지금의 모자쯤 될 겁니다. 꿈이 너무나 생생해서 그때야 비로소 글쓰기가 필연으로 다가왔습니다.
오라버니의 권유로 입문한 수필은 늦게 배운 도둑질이나 마찬가지였어요. 글쓰기에 빠져 밤새는 일이 즐거웠지만 아이들 준비물을 예사로 빠뜨렸고 찌개 냄비와 밥솥을 태우고 때로는 세탁기에서 빨래 꺼내는 것조차 잊어버려 그 쉰내 때문에 세탁기를 다시 돌려야 했어요.
길지도 짧지도 않은 내 삶은 수필 때문에 판이하게 달라졌습니다. 수필을 알기 전, 인생의 목표는 막연히 잘 먹고 잘 입고 잘 사는 것으로 결정짓고 그렇게 살고자 했었습니다. 큰 부침(浮沈) 없이 일상은 그런대로 잘 굴러왔지만 가슴 속에 채워지지 않은, 한구석에는 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소소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 휑한 구석을 채워주고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스승은 바로 수필이었습니다. 자랑거리가 있어도 남들 앞에 섣불리 나서지 말고 겸손할 것이며, 남에게 상처가 될 말은 상대방이 스스로 느끼도록 넌지시 돌려 말할 것이며, 때로는 하고픈 말도 발설하지 않고 그대로 눌러두는 것이 낫다는 것을 수필을 통해 배웠습니다. 아는 만큼 말하는 것보다 모르는 척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일은 얼마나 힘이 들던 지요.
사람이 얼마나 잘 사느냐는 경제적인 잣대보다 얼마나 인간의 도리를 하고 사느냐는 것으로 생의 지표를 바꾸었습니다.
또 다른 변화라면 글을 통해 새로운 인간관계가 정립되었다는 것이지요. 두 분 교수님을 비롯하여 선배님, 그리고 문우님들이 제겐 힘이 되는 가족과 진배없습니다.
장거리 여행을 할 때 선두에 선 기러기는 큰 체력소모에도 불구하고 상승기류를 만들어준다지요. 그 상승기류를 탄 다른 기러기는 체력을 아꼈다가 교대로 선두를 맡습니다. 그 가족들은 옆에서 하나 둘, 하나 둘 구령을 붙이거나 힘내라고 파이팅을 외친다지요. 기러기는 이미 알았을까요, 오래 달리려면 함께 해야 한다는 사실을요? 벗들의 그 구령 때문에 저도 여기까지 왔습니다. 옆에 가만히 계셔도 힘이 되는 문우님들, 고맙습니다. 이제는 제가 다른 문우님께 구령을 붙여드릴 순서입니다.
과거를 돌이켜 보았습니다. 20년 동안 썼던 일기, 팔 년에 걸친 편지, 연설문 등 글다운 면모는 갖추지 못하고 글의 주변만 늘 서성거렸네요.
며칠 전, 또 꿈을 꾸었답니다. 이렇게 좋은 소식이 오려고 그랬는지 누군가 보낸 말을 타고 궐내로 들어갔습니다. 궐내로 들어갔으니 이제는 이에 걸맞은 품위를 갖추는 일이 관건입니다.
차분히 가라앉지 않고 자꾸만 들뜨는 졸고를 선하여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올곧은 작가정신을 자존심처럼 지키며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길을 가겠습니다.
등단하신 선생님이 하도 부러워서 등단부케(?)도 생떼 부리며 두 번이나 받았답니다.
생애 잊을 수 없는 겨울이 될 것 같습니다. 올겨울은 거리에 뒹구는 낙엽도 춤을 추는 것만 같네요.(끝)
첫댓글 수필세계 가족이 됨을 축하합니다.^^
축하드립니다. 수필의 자존심을 지키는 작가로 거듭나실 거라 여깁니다. ^^
'때로는 하고픈 말도 발설하지 않고 그대로 눌러두는 것이 낫다는 것을 수필을 통해 배웠습니다.' 장하십니다 경자씨. 곱배기로 축하합니다.
정경자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당선작 잘 읽었습니다. 축하합니다.
정경자 수필가님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