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믿거나 말거나’식 제보 하나 믿고, 초복이었던 14일 열차에 몸을 실었다. 벌교로 가기 위함이었다. ‘벌교 장날에 가면 50년째 팥칼국수를 파는 할머니가 있다’는 말을 듣고서였다. 마침 이날은 벌교읍에 5일 장이 서는 날이었다. 세 번이나 기차를 갈아타고 6시간 만에 도착한 벌교는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주무대다. 또 ‘돈 자랑, 주먹 자랑 하지 말라’는 바로 그곳이기도 하다. 벌교장은 일제 강점기 때만 해도 ‘전국의 10대 5일장’ 중 한 곳이었지만 이미 지금은 그때의 번화함은 없다. 그 시장에서 전봇대 옆의 담벼락 밑에 있는 팥칼국수 할머니의 ‘좌판’을 발견했다. 테이블이라고 하기엔 너무 미안한 앉은뱅이 식탁 2개가 있는 작은 좌판에서 김귀례(71) 할머니가 반죽을 치대고 있었다. 22세에 시작한 장사가 어느덧 49년째다. 좌판 한 구석에서 2000원짜리 팥칼국수를 시켜놓고 할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할머니, 팥칼국수가 복날 먹는 음식 맞아요?” “그건 모르겠어. 하여튼 푹푹 찌는 더위에 먹으면 더 맛있지. 시원해. 여름 음식이야.” “복 더위에는 삼계탕을 많이 먹잖아요?” “그건 부자들 이야기지. 우리 같은 가난한 서민들이 닭을 어떻게 먹어. 그냥 몸에 좋다고 하니까 팥칼국수를 먹었지.” 그런데 벌교 하면 꼬막 등 해산물이 풍부한 곳인데 왜 굳이 팥으로 국물을 냈을까. “그거야 지금 생각이지. 옛날 전라도에는 해산물로 국물을 내는 칼국수가 없었어. 주위에 팥이 많아서 그냥 그걸로 만들어 먹었어.” 누가 만들었느냐고 물었더니, 할머니는 “모르지. 내 어릴 때부터 있었던 음식이니…” 한다. 벌교시장연합회 윤두봉 회장은 “벌교뿐 아니라 화순 등 전라도 시골에서는 옛날부터 팥칼국수를 많이 먹었다”고 했다. 100년도 더 된 전통 음식이라는 것이다. 한방에서 팥은 ‘몸의 열을 내려주고 갈증을 해소시켜주는 역할’을 한다고 하는데, 그 때문에 여름 건강식을 찾다가 팥을 먹게 된 것인지 모른다는 말도 나왔다. 옛날 전라도에서 팥죽은 동짓날만 먹는 음식이 아니었다. 매달 보름 때도 먹었고, 더위가 시작되면 더 자주 먹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더워지면 옹심이 대신 칼국수를 넣어 먹었다. 윤 회장은 “그것이 ‘초복에 먹는 별미’로 인식하게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맛은 팥죽과 별반 다르지 않다. 국물은 팥죽보다는 덜 걸쭉하지만 달착지근하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그냥 팥죽이라고도 부른다. 멸치국수나 바지락 칼국수가 ‘패스트 푸드’라면 팥칼국수는 ‘슬로 푸드’다. 한 그릇을 만들어내기까지 준비 기간이 길다. 한국전쟁 때 이념 대결의 장이었던 소화다리 앞에서 팥칼국수를 팔고 있는 김정덕(55) 아주머니는 “장사를 하려면 전날 하루를 온전히 준비해야 나오는 음식”이라고 말했다. 준비과정은 이랬다. 점심 때쯤 깨끗한 팥을 골라 씻어서 애벌로 한 30분간 삶는다. 그러면 팥의 독성이 빠져나온다. 그 물을 버리고 다시 3시간 이상 솥에서 삶아 굵은 체로 걸러낸 뒤 다시 고운 체로 거른다. 그러면 팥은 마치 앙금처럼 고와지는데 다시 물을 붓고 끓이면 팥칼국수 국물이 된다. 밀가루 반죽도 숙성을 위해 하루 전에 만들어 놓는다. 손님이 주문한다고 곧장 내놓지도 못한다. 주문과 동시에 반죽을 다시 밀고 썰어서 끓여야 한다. 20분은 족히 걸린다. 팥칼국수 한 그릇이 손님 앞에 나오기까지 거의 하루가 걸리는 셈이다. 글=이석희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기자 블로그 http://blog.joins.com/center/report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