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의 사자성어(56)>
구밀복검(口蜜腹劍)
입 구(口), 꿀 밀(蜜), 구밀 이라함은 ‘입속의 꿀’이라는 뜻이고, 배 복(腹), 칼 검(劍), 복검 이라함은 ‘뱃속의 칼’이란 의미이다. 따라서 ‘구밀복검이라 함은 “입 속에는 꿀을 담고, 뱃속에는 칼을 지녔다”는 뜻으로, 겉으로는 친한 체하지만, 속으로는 해칠 생각을 품고 있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구밀복검이라는 말은 십팔사략(十八史略)에 나오는 말이다.
당(唐)나라 현종(玄宗)때 이임보(李林甫)라는 재상이 있었다. 뇌물과 아첨으로 재상이 된 이임보는 양귀비에 빠진 왕을 부추기며 나라 일을 자기 마음대로 휘저었다. 충신이 나타나면 모함하여 해쳤다. 그런데 그가 타인을 해치는 때에는 먼저 상대방을 추켜 올린 다음, 해치는 방법을 썼다. 상대방이 모르게 뒷통수를 치는 격이다.
한 가지 예를 들면, 현종이 “엄정지(嚴挺之)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 사람을 다시 썼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엄정지는 강직란 인물로서 이임보의 전임자였던 장구평이라는 재상에 의하여 발탁되어 요직에 있었으나, 이임보가 집권한 이후에는 그의 시기를 받아 지방으로 쫓겨나 지방의 태수로 있었다. 엄정지는 물론 그것이 이임보의 농간인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임보는 엄정지가 다시 중앙으로 돌아오게 될 가봐 겁이 났다. 그날 밤으로 업정지의 아우인 손지(損之)를 불러들여 웃는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폐하께서 당신 형님을 매우 좋게 생각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한번 페하를 배알(拜謁)할 기회를 만드는 것이 어떻겠소. 폐하께서 반드시 높은 벼슬을 내리실 것입니다. 우선 신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서울로 돌아가고 싶다는 상소문을 올리는 것이 좋지 않을 가 하는데...”
손지는 이임보의 호의에 감사하고, 그런 내막을 그의 형인 엄정지에게 연락했다. 엄정지는 즉시 이임보가 시킨 대로 휴양차 서울로 올라갔으면 한다는 상소문을 올렸다.
이 상소문을 받아든 이임보는 현종에게 말했다.
“앞서 폐하께서 물으신 임정지에게서 이 같은 상소문이 올라왔습니다. 아무래도 나이도 늙고 몸도 약해서 직책을 수행하기가 힘이 드는 모양입니다. 서울로 불러 한가한 직책을 맡기는 것이 좋을 줄로 아옵니다.”
현종은 멋도 모르고 “그래, 안됐지만 하는 수가 없군”
엄정지는 이임보의 술책에 넘어가 태수의 직책이 빼았기고, 서울로 올라와 있게 되었다. 이임보의 농간인 줄 깨달은 엄정지는 쌓이고 쌓인 울분이 한꺼번에 치밀러 올라 그만 홧병으로 죽고 말았다.
우리말에 “나무에 오르라 해놓고 흔든다”라는 말이 있다. 이를 권상요목(勸上搖木)이라고 한다. 이임보가 그런 짓을 많이 한 인물이다. 그래서 십팔사략에서 이임보를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어진 사람을 미워하고 재주 있는 사람을 시기하며,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밀어내고 내리 눌렀다. 성질이 음험해서 사람들이 말하기를 ”입에는 꿀이 있고, 배에는 칼이 있다.(口有蜜 腹有劍:구유밀 복유검)라고 했다.
입에 꿀 발린 말을 조심해야한다. 말 못하는 사깃꾼은 없다. 한결같이 그럴듯하게 상대방을 현혹(眩惑)시킨다. 말을 아주 잘하는 사람을 표현할 때 ‘언변(言辯)이 좋다’, ‘달변이다’ 또는 ‘청산유수(靑山流水) 같다’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이와는 반대로 말을 유창하게 하지 못하고 떠듬떠듬하는 면이 있을 때 ‘어눌(語訥)하다’라는 표현을 쓴다. 말을 자꾸 더듬는 점이 있다는 뜻으로 ‘구눌(口訥)하다’ 같은 표현도 쓸 수 있다. 공자님은 순직한 사람은 말이 어늘하다고 말하고 있다. 논어에 군자는 욕눌어언이민어행(欲訥於言而敏於行)이라고 했다. 말은 어눌하게 하고 행동은 민첩하게 한다는 것이다.
기생하면 평양기생이 유명했다. 평양기생에게 가진 돈 다 털리고, 별 수없이 기생집을 떠나는 사내에게 어여쁜 기생이 눈물을 글썽이며, 이별을 아쉬워했다. “정든 님 떠나시면 나는 어찌 살라합니까 ” 입에 꿀발린 소리이다. 구밀(口蜜)이다. “정표로 님의 이빨이나 한개 남겨두시면 님보고 싶을 때 보리다” 구밀의 연속이다.
그래서 기생의 간청에 따라 생이빨 한 개를 뽑어 기생에게 주고 길을 떠났다. 고갯마루 넘어가다가 기생을 한번이라도 더 보고 가자는 욕심에서 되돌아 와서 기생집에 들어섰다. 기생이 반갑게 맞이할 줄 알았는데 표정이 얼음장 같이 싸늘하게 되어 ‘떠난 사람이 왜 또 왔느냐’고 묻는다. “그대를 못잊어 한번이라도 더보고 가기위해 왔다”고 대답하자, 기생방에 어떤 낯선 사내가 얼굴을 삐죽 내미는데, 기생이 “사내가 한번 떠났으면 그만이지 칠칠 맞게 왜 되돌아 왔느냐”고 힐책(詰責)한다. 사내는 기가 막혀 주춤거리다가 문득 이빨 생각이 나서 ”그러면 내 이빨이라도 되돌려 달라“고 했다. 기생이 문 앞의 곳간을 가리키며 ”저 안의 큰 항라리 속에 들어있는 이빨 중에 당신의 이빨을 찾아가라“고 말했다. 돈 떨어진 사내를 냉혹하게 짤라버리는 기생의 표독한 마음이 복검(腹劍)에 해당한다.
옛말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다. 한문으로는 ‘수심가지 인심난지’(水心可知 人心難知) 라고 한다. 자기보고 웃는다고 해서 내가 좋아서 웃는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그 웃음 뒤에 무슨 칼이 들어있는 지, 송곳이 들어있는 지 알 수 없다. 김정은이 자못 통 큰 듯이 웃을 때가 있다. 그러한 김정은의 웃음 뒤에는 칼이 아니라 핵(核)이 감추어져 있다. 이런 것을 모르고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 믿고, 한반도 비핵화 회담장에 들어서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했다. 국제사회에서는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될 수도 있고,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될 수도 있다.“라는 말이 있다. 변화하는 국제사회에서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냉철한 판단이 필요하다. 구밀복검인 지의 여부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면전에서는 순종하지만 속으로는 배반하는 면종복배(面從腹背)도 유사한 의미이다. 웃음 뒤에 칼을 감추고 있다라는 소리장도(笑裏藏刀)나 또는 웃음속에 칼이 들어 있다는 소중유검(笑中有劍), 역시 모두 면종복배와 같은 의미이다. 바둑을 둘 때, 싱대방이 놓는 돌의 의미를 간과한 채 자기대로만 바둑을 두다보면 덜컥 대마가 잡혀버리는 불상사가 벌어지기도 한다.
그러니 세상 제대로 살아가려면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냉철하게 판단해서 대처해야 할 것이다.(2023.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