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아비 냄새 [청국장]
허수아비 혼자서 빈 들판을 지키는 이맘때쯤이면 월동준비로 바쁜 어머니는 다른 집보다 한 가지 더 준비해야 할 것이 있었다. 평소 냄새나는 음식은 드시지 않으셨지만 찬바람만 불면 담북장이라며 주문을 외우는 아버지 때문이었다. 집안 구석 쾨쾨한 냄새가 가득했다. 이 고약한 냄새를 어머니는 홀아비 냄새라고 했다.
콩을 불려서 푹 삶고 소쿠리에 담아서는 짚으로 덮고 두터운 솜이불로 덮어서 아랫목에 자리 잡았다. 방바닥은 엄청 뜨거웠다. 어쩌다 아랫목에 발이라도 뻗치면 화상이라도 입은 듯 화끈 거렸다. 며칠이 지나면 특유의 홀아비냄새가 이불에 베어들고 걸어놓은 옷에도 베어 들어 방안은 홀아비 냄새로 가득했다. 한방에서 냄새를 맡으며 먹고 자며 담북장과 하나가 된다. 그동안 콩과 볏짚은 뜨겁게 만나 짙은 갈색으로 변하여 미끈거리고 끈적거리며 냄새도 더 지독하게 되어있다. 월동준비 한 가지는 끝이 난 것이다.
담북장은 단박에 먹을 수 있어서 담북장이라고 한다.
보통 장은 메주 쑤어 띄우고 장 담그고 우려내고 하는 데 서너 달이 걸리는데 청국장은 사나흘이면 먹을 수 있게 되는, 겨울철에 마련하는 영양분이 많고 소화가 잘 되는 인스턴트식품이다.
어느 겨울에 메주를 만들려고 콩을 삶았는데 전쟁이 났다고 한다. 콩을 찧어서 틀에 넣고 밟아서 광에 매워 달아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콩 자루를 가지고 다녔다. 전쟁이 끝나고 한참 만에 자루를 여니 자루 안에는 또 다른 된장이 되어있더라는 이야기이다. 전시 중에 먹었다고 전국장이 변해 청국장이 되었다고 한다.
해마다 홀아비 냄새로 한바탕 소란을 피우며 만들어 먹던 청국장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집에서 한번도 만들지 않았다. 아버지가 즐겨 드시던 음식은 식탁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사십년 동안 길들여진 입맛은 찬 바람이 불거나 아프고 난 뒤, 입안이 소태처럼 쓰서 아무것도 먹지 못할 때에는 쾨쾨한 냄새나는 청국장이 생각나고 먹고 싶었다. 별일 이었다. 칼칼하게 끓인 청국장이면 잃어버린 밥맛을 찾을 수 있고 기운이 날것만 같았다. 시장에서 파는 청국장은 보기에는 먹음직스러워 보여 모두 사와서 끓여보았지만 맛도 이상하고 역한 냄새만 나서 모두 버려야 했다. 제대로 띄우지를 않아 맛이 변해 있었다. 멸치 우려낸 물에 담북장 풀어 넣어 두부 몇 조각 넣으면 되는데. 그 맛을 찾으려 청국장이 있는 곳을 기웃거렸다. 맛있게 한다는 음식점도 가보았지만 어디에서든지 그 맛은 찾을 수 없었다. 친구들은 별난 음식도 아니고 청국장 타령을 한다고 핀잔을 주었지만 나는 홀아비 냄새를 찾아 다녔다.
청국장을 만들고 난 며칠간은 옷에 냄새가 배어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냄새난다고 많이들 놀렸었다. 아무리 씻어도 냄새는 쉬이 없어지지 않았다. 냄새가 나도 그 냄새에 익숙한 어른들은 청국장이야기를 나누셨다. 요즘은 기계를 이용하여 청국장을 만들어 먹는다고 한다. 나이 많으신 분들이 예전에 즐겨 드시던 청국장을 찾으시는데 냄새 때문에 집에서 만들지도 못하다가 냄새가 없는 기계가 발명되어 옛 맛을 즐기신다고 한다.
아무리 편리해진 세상이라지만 며칠씩 한방에서 같이 기거하며 뜨거운 아랫목에서 잘 띄워진 청국장의 깊은 맛을 제대로 낼 수 있을까? 통통한 콩들이 할머니의 얼굴처럼 주름지고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끈끈한 진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청국장 특유의 냄새 때문에 식탁에 올리는 것을 꺼려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수한 건강식품으로 알려지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청국장은 영양학적으로 좋은 식품일 뿐만 아니라 성인병을 예방하고 치유시킬 수 있는 여러 가지 기능성이 알려져 왔으나 최근 연구에 의하면 청국장에 들어있는 낫도키나아제(NK)가 혈전을 분해시켜 혈관계 질환, 특히 혈전에 의한 고혈압, 협심증 등에 탁월한 효과가 있고 숙변제거, 다이어트는 물론 혈전용해 작용이 뛰어난 청국장이지만 요즈음 된장과 김치를 먹지 않는 아이들이 점점 더 늘어가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있다.
쾨쾨한 홀아비 냄새가 그립다. 밥상에 둘러 앉아 청국장을 먹으며 두부를 건지려고 숟갈을 부딪치며 서로의 정을 나누던 그 시절이 그립다. 올 겨울에는 시골에 사는 친구에게 부탁해서 제대로 된 청국장을 만들어서 냄새를 기억하고 있는 친구들과 밥이라도 한 끼 나누어 먹을까
속담에 "청국장이 장이냐 거적문이 문이냐?"
사람이 못되면 사람 축에 들 수 없고, 물건이 물건답지 못하면 제값을 못하는 법이라는 뜻으로 풀이되어 있다. 장으로 치면 청국장 같은 그런 존재가 아닌가 나는 잠시 생각해본다.
첫댓글 저도 청국장에 대한 미련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어디를 기웃거려도 그 때 그 맛을 찾을 수 가 없었읍니다.한번은 시장 한켠 할머님이 파시는 청국장을 사와 끓여 내었는데 맛은 먹을만했지만 그놈의 홀아비(ㅎㅎ)냄새 때문에 울 딸 버스안에서 눈총 많이 받았답니다.갑자기 청국장 먹고 싶네요.
ㅎㅎ 그 냄새가 홀아비 냄새였나요?...ㅎㅎ 사실 저도 가끔 먹고 싶을때가 있지만 아이들 냄새난다 싫어해서 못해먹고 삽니다...글구 한번 끊이면 왜그리 온 집안에 냄새가 그리 진동하는지??.......ㅎㅎ
과부 냄세는 없나요?흥흥흥 어디를 가야 날꼬 하하하......
남자 혼자살면 정말 홀아비냄새 무척나요 아들녀석 방에만 들어가도 냄새가 쾌쾌하던데,,
일본에 사는 조카녀석 청국장 끓여서 맛있게 먹다가 냄새난다고 이웃집에서 신고해서 경찰의 방문을 받았답니다, 누가 무어라 해도 우리몸엔 우리것이 제일입니다. 신토불이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