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깝고 여행경비도 저렴하여 가끔씩 찾는 곳이 중국이다.
그래서 계모임을 비롯하여 사정에 의하여,
몇 번씩 간 곳도 있지만
소림사는 꼭 가볼 계획 이었는데 이번에 제주도 여행비와
비슷한 가격과 짧은 일정이 있어서 만사를 제쳐두고
보따리를 싸서 출발 하였다.
저녁에 비행 출발하여 중국 정주 국제공항에 밤 11시경에
도착하여 가이드의 안내로 호텔에 투숙 하였다.
아침 7시에 모닝콜을 받고 간단한 세면 후에 1층에 위치한
식당에서 조식 후 객실로 올라가 가방을 싸서 8시30분에
로비에서 여행객 15명(각지에서 모객한)을 미니 버스에 태워서
하남성 박물관을 구경 시켜 주었다.
1~3층의 대형 박물관에는 하남성에서 구석기 시대부터 근대에까지
골고루 출토된 물건들이 엄청 많아서 약 두시간 가까이 관람 하였다.
그리고 또다시 버스를 타고 몇십분을 달리니 소림사 중턱에 다달아
비구니들이 운영하는 사찰음식 식당에서 일명, 웰빙식 점심을 먹었는데,
전부 채소 뿐이었지만 그런대로 먹을만 하였다.
다시 버스를 타고 중국 불교 선종의 발원지이면서 소림무술의 본산이고,
달마대사로 유명한 소림사를 관람 하였는데 그 규모는 참으로 엄청났다.
그 엄청난 사찰의 건물들이 그 오랜 세월을 견디어 왔으나,
중국 문화혁명 당시에 장개석이 소림사를 자기편으로 만들려고 하였으나,
말을 듣지않자 부하를 시켜서 하루에 한 채의 절간을 태워 없애 버려,
약 40일 이상을 태워 잿더미로 만들었다고 들으니,
공산주의 모택동에 대응한 민주주의 장개석이 패하여
타이완(대만)으로 도망가 정착 하였다고 들었지만,
정치적인 목적에 거대한 문화유산을 태웠다는 것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 외에 각종 유적지인 탑림을 비롯하여,
체육관 비슷한 곳의 공연장에서 각종 무술 시범이 시간차로
이어져서 영화에 나오는 무술들을 관람 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어느덧 해는 서산으로 기울고 저녁식사를
현지식으로 하고 야간에 벌어지는 소림음악대전을 관람하였는데,
거대한 산 두 개 사이에다가 각종 조명 시설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시설하고 중간의 계곡에는 귀곡산장 비슷한 것과
대형 사찰과 목조탑을 건설하여 엄청난 조명에다가
웅장한 음향과 음악을 산울림과 함께 연출 하였고,
스님과 비구니들 및 진행자가 600여명 이라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지만,
조금은 무료하고 잠이 오는 공연이었다.
모든 일정을 끝내고 1시간이상 이동하여 낙양이라는 도시에 도착
호텔에 투숙 하였다.
호텔에서 조식 후(어제의 호텔보다 음식이 좋았음)
오전 9시에 버스에 승차 하였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문화유산이며,
중국 3대 석굴로 유명한 용문 석굴을
약 2시간 이상을 관람 하여 좋았지만,
코스가 길어서 다리가 많이 아팠다.
여러 가지 탕국물 비슷한 음식인 수석식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오후에는 각종 유적지와
황화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관광을 하였다.
그리고 첫날의 호텔로 달려가 투숙하여 녹초가 되었다.
호텔 조식후 약 2시간을 달려가 관광 버스로 옮겨타고
운대산 풍경구를 구경하며 산기슭을 관광 하였는데,
장가계 원가계의 풍경과 다른 웅장한 산이었고,
중국 황산과 비슷한 웅장함을 나타낸 중국 5대 명산 다웠다.
버스에서 내려 약 두시간 정도 협곡을 둘러 보았는데,
그 규모를 보면, 약 100m 높이의 깎아지른듯한 절벽에 한 두사람
겨우 지나갈 정도의 폭으로 2km를 굽이굽이 내려가면서
협곡을 구경하고, 14억년전에 만들어진 독특한 붉은 암석의 홍선협의
양측 절벽 사이에서 흐르는 맑은 물과 곳곳의 바위 웅덩이 모양에
담긴 쪽빛 물결을 바라보는 우리들은 신선이 된듯하였다.
또한 천폭협의 곳곳에 높고 낮은 폭포가 있으니,
필리핀의 팍상한 폭포를 닮은 폭포도 있고,
여느 산에서 내려오는 폭포의 물줄기보다 커다란
314m의 낙차를 바라보면 웅장함 그 자체이다.
점심에는 농가요리라는 중국인 식으로 중식을 하고,
또다른 담폭협과 그 주변의 풍경구를 감상하는데 신선노름이 따로 없는 것 같았다.
오후 4시가 지나서 우리 일행들(여행사에서 모아준 15명)은 버스를 타고 정주를
2시간 가까이 달려서 즐거운 저녁 식사를 하고 2~30불씩 내고서는
각각 발맛사지와 전신 맛사지를 받고 피로를 풀었으나,
다음날 새벽에 출발하는 비행기 때문에 쇼핑센타를 두 곳이나
들렀으나 전부 구경들은 잘 하였으나 물건 사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가이드는 수입 없이 입맛만 다시어, 우리들이 조금씩 거두어 팁을 주니
즐거워하는 것을 뒤로하고 정주국제공항을 떠나 한국으로 날랐다.
술,담배를 끊으니 친구와 모임도 줄어지고,
놀러 갈데도 없어지고 돈쓸 곳이 없어지니,
여행 가는데로 지출이 늘었지만,
과거의 술, 담배값 보다 저렴하게 드는 것 같았다.
중국 여행의 과거 20년전의 황량함과 옷 모양과 씻지 않은 외모들이
이제는 완전히 달라졌고, 각 도시마다 엄청난 발전아래
이제는 대한민국이 위축 되어가는 느낌 이었다.
17억 인구에 1억 5천만명은 부자들이라,
그 부자들은 우리나라 재벌들 돈은 돈도 아니라는 이야기도 있으니,
그 규모를 가히 짐작하고,
우리나라에 와서 수천만원씩 싹쓸이 쇼핑하는 사람들은
그리 부자들이 아니고, 유럽에 가서는 명품 가게의 물건들을
전부 찜하고는, 수억도 넘는 가격을 일시불로 싹쓸이하여
친척들에게 선물하는 부자들도 많다니?
그들은 과거 공산당 간부들 이었고,
지금은 갑부로 바뀌었다네,
하기야, 북한 주민들 대다수는 밥을 굶지만,
당 간부들은 양주에 외제차타고,
고기가 맛이 없다고 푸념 한다는 이야기와 비슷하다.
세계 어느 곳이든 부익부 빈익빈이 많고,
그 정도 차이는 조금씩 있으나,
인간사는 곳은 다 비슷하고,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부자는 아니지만,
자기 자신의 처지를 만족해하고,
즐거워 행복해하는 사람도 무수히 많다.
얼마전에 TV를 보니 인도의 채석장과,
인도네시아의 화산 골짜기에서 유황 덩어리를
나르는 사람들과 아프리카의 지하 갱도에서
보석을 채취하는 노동자들에게,
위험하고 무섭지 않느냐?고 질문하니
그들은 한결같이 비슷한 답변 이었는데,
과거에 이러한 일도 없어서 하염없이 굶은 것이 무서웠고,
가족들이 굶었을때는 더욱더 무서웠다.
그러나, 지금은 일을 하여 나와 가족들이 하루 두끼의 밥을 먹으니,
이정도의 위험은 무섭지 않다 라는 말들을 듣고는 참으로 숙연해 지면서,
이제껏 살아온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그러나,
가난은 나랏님도 어찌할 수 없다는 옛말이 있고,
신이 내려준 현 상황에 만족해하며,
감사히 살아가는 이웃들의 모습들에,
사람사는 정을 느낀다.
우리는 가끔은 주변에 봉사 하러들 가지만,
조그마한 여유로의 마음으로 이웃에 더욱더 귀 기울여,
거듭나는 삶의 즐거움을 조금 이라도 나누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몇달후,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라는,
옛 노래 가사도 있었다.
술끊고, 담배 끊으니,
그 돈으로 여행밖에 할게없네,
몇 달전에 계획해오던 미국 동서부 보름 동안의 여행 진행을
친구들이 출발 열흘전쯤에 몇명이 펑크를내어 여행은 물건너 갔다.
어느 모임이든 단체 해외여행은 말로만 약속하면,
삼분의 이 정도가 깨지는걸 보았고,
계약금 30%를 총무가 받아놓고 돌려주지 않는 원칙을 세워도
소수의 숫자가 빠지는데, 커다란 벌금이 없으면 사소한 이유에
불참을 통보해버려 단체 여행의 진행은 참으로 어렵다.
그런데, 몇일뒤 아는 여행사에서 전화가 왔다.
장가계 여행 갔다가 오세요. 라고 한다.
몇년전에 갔다 왔네,
그래도 또 갔다 오시지요.
두분이 이번에 가시면 여행비 왕창 줄여 주겠습니다.
그래도 안 간다네,
두명을 못채우면 저희 여행사에서 손해배상을 많이 해야 되는데...
그래, 언제인데?
8월6일 월요일에 출발하여 10일 금요일에 들어옵니다.
알았다. 여행사에 보관 되어있는 우리 둘 여권 복사분으로
단체비자 내고, 여행비 계좌번호는 내 휴대폰으로 날려라.
오후에 부쳐 줄테니, 그리고 그 날자에 공항에서 보자,
중국 정주의 공항에 내려서 약30분도 안되어 정주시에 도착하여
마당과 풀장이 넓은 호텔에 투숙하여 욕조에 몸을 담구니,
잠은오고,
장가계의 천자산을 케이블카로 올라가니,
산수화의 극치를 내려다보며,
우리나라 풍수학에서 말하는 문필봉이
헤아릴수 조차 없을 정도로 널려있네,
신선들이 노닐다간 계곡이라 하는 금편계곡을
가이드가 들고 다니는 깃발을 따라 갈라치면 못다본 경치가 아깝더라.
또한, 기이한 봉우리 계곡인 십리화랑을 구경하러
모노레일 기차를 탔는데 시원한 계곡이라
돗자리 깔고 몇 시간을 낮잠자고 싶은 생각이었다.
풍경구 올라가는 길이 가파르고 길어서 2만원을 주어
대나무로 만든 가마를 타고 정상에 올랐는데,
가마꾼 두명이 땀을 흠뻑 흘리며 가마를 태워주어 미안한감도 있었네,
가마에 내려서 계단을 내려가,
유람선을 승선하여 보봉 호수를 둘러보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든다.
종유석 동굴의 규모가 세계적 이라는 황용동굴을 두시간 가까이 둘러보니
두 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아팠지만, 구경하는 재미로 상세해 버렸다.
토가족 마을을 둘러보는 것은 우리나라 민속촌과 비슷하였고,
과거에 없었던 여행코스 중에 대협곡을 보았는데,
산 정상까지는 버스로 올라가 엄청난 높이 계곡의
계단을 내려 오는데;
약 7~80도 정도의 경사에 수천개의 계단을 내려가니
다리도 후들후들, 온몸이 후들들 떨리더니 산아래
마지막 몇백 미터는 봅스레이 경기장같은 미끄럼틀에
미끄럼 치마를 입고 내려오니 힘을 많이 썼던지
팔 다리에 알이베겨 계곡밑의 배타는 곳까지
걸어오는데 무척 힘들었던 것 같았다.
그것도, 한시간 이라더니 두시간 반이나 걸렸네,
그리고 귀곡잔도라는 여행코스도 새로이 만든 여행 프로그램인데,
엄청난 높이의(해발1700m) 산기슭에 두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길을 만들어 한시간 정도의 코스로 만들어 놓았는데,
천길 만길 낭떨어지 산기슭을 걸어 갈려니,
고소 공포증이 있거나 노약자는 못 지나갈 코스라,
그냥 삭도타는 휴게실에서 기다리는 것이 좋을듯하다.
미니버스로 천문동에 30분간 올라가는 코스도
심장 약한 사람들은 곤란한 코스일 것 같았다.
정상에 올라가 매점에서 사먹는 옥수수맛은
우리나라 대학 찰옥수수만 못 하드라.
마지막날 밤에 90분간 본 공연인 천문산사 쇼는 웅장함 그 자체 이지만,
우리나라 학생들 전래동화의 장면들을 보는 느낌이라 싱거웠다.
어찌되었던,
다시가본 장가계 이지만 달라진 모습들이 많았고,
맜있는 음식과 편안한 숙박 이지만,
많이 걸었던 탓에 돌아와, 몇일 정도는 다리에 파스를 붙이고,
어그정 거리며 걸어갈 정도로 중노동의 여행이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라는 노래가 실감날 정도로
이제는 내몸도 늙어 가는구나를 세삼느껴 보는 것 같았다.
중국 장가계 여행이,
중노동인지?
즐거움인지?
그래도 좋았다.
더 늙기전에 또.....
7~80된 선배님들 말씀에,
먹을거 안먹고 입을거 안입어 자식 물려주던 시절은 지났네,
젊어서 놀러 다니고,
자신의 노후계획 세워놓고,
내일 죽드래도 오늘 자식들 물려 주지말고,
내일 죽거든 알아서 남는거 가져 가도록 하라는 선배님들의
조언을 따르려니, 조금은 이상 하지만,
그래도 놀러 다니니 좋구나.
여행은 중독 이라더니,
조금은 그런거 같기도 하고,
아직은 환갑도 몇년 남았으니,
칠순 까지는 여행 다닐수 있을런지?
그래도 술먹고 돌아 다닐때가 좋았는데........
장가계 사진 찍은거 실수로 다 날아가 버렸고,
첫댓글 같이 갔다온 느낌의 여행기 잘 읽었다.
여행도 여유가 있어야 할 수 있고
건강해야 할 수 있는게지...
좀더 젊었을때 많이 다니시게
구구절절 옮은 말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