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추석이 되면 사람들은 고향을 찾아간다.
고향에는 살아계신 부모님과 돌아가신 조상님들의 육신이 묻힌 산소가 있기 때문이고 자신이 태어난 곳이기 때문이다.
고향에는 부모님과의 추억이 있고 고향을 떠나올 때까지의 추억이 있는 곳으로 사람의 일생에서 가장 소중한 추억이 있는 곳이라
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구태여 회귀(回歸)본능이라는 말을 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신을 키워주었던 고향을 그리워하고 가
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하다.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서 살다가 죽을 때가 되면 고향에 가서 살다가 고향의 산천에 묻히기를 원한다.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타향에서 생을 마감한다고 하더라도 죽은 몸이라도 고향의 산천에 묻히기를 원하며 대부분이 고향의 선
산에 묻히게 된다.
요즈음은 사회가 변하여 그렇게 할 수 있는 여건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선산에 묻히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지지만 가능하다면 그렇
게 하기를 원할 것이다.
고향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동그라미의 시작점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곳이 고향이 아닐까?
동그라미를 완성하려면 출발했던 시작점으로 되돌아와야만 한다.
출발점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은 완성을 의미하는 것과 동시에 마감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자신의 인생의 출발점이었던 고향에 돌아와 묻힘으로 인해서 비로소 자신의 인생이 온전하게 종결짓는 의
미를 가지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변해서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화 하면서 고향에 대한 의미도 퇴색되고 고향도 없어져 버린 사람들이 많아
졌지만...
2
우리가 고향에 돌아가서 묻히는 것은 죽은 육신이다.
죽으면 사람의 마음(영혼)까지 같이 죽어서 땅 속에 묻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육신과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영혼)으로 이루어져 있는 복합적인 존재로 본다면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육신
과 영혼이 분리되는 현상이다. 곧 죽음은 육신이라는 집 속에 있던 영혼이라는 알맹이가 집 밖으로 나오는 현상이다.
나무에서 과일이 익어서 떨어지는 것과 같은 것이며, 콩이 익어서 콩깍지 속에서 튀어나오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또 사람이 죽었을 때 돌아가셨다는 표현을 하게 되는데 돌아가는 것은 육신과 영혼으로 육신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고 영
혼은 하늘(어딘지 모르기 때문에)에서 왔으니 하늘로 돌아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돌아가는 주체(主體)는 죽어서 땅으로 돌아가는 육신이 아니고 하늘에서 왔다가 하늘로 돌아가는 영혼일 것이다.
그 영혼이 어디에 있다가 어떻게 육신 속으로 들어왔는지도 모르고, 영혼이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지만, 육신을 떠나가는 것은 분
명하므로 그곳이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왔던 곳으로 되돌아갔을 것으로 추정하여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죽은 사람에게 명복(冥福)을 빈다는 것은 죽은 영혼이 돌아가는 길이 평안하기를 바라고 고 곳이 좋은 곳이기를 바란다
는 의미이다.
육신이 태어나서 자란 곳은 고향이라고 부르는데 그러면 영혼이 있었던 곳을 부르는 말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있는데 영혼이 있었던 곳을 본향(本鄕)이라고 하는데 곧 영혼의 고향인 셈이다.
그곳이 어디인지를 살아 있는 사람들은 정확하게 알 수가 없지만, 합리적인 추론으로는 분명히 어디엔가 있었기 때문에 왔을 것
아니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영혼이 있는지 없는지 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고, 따라서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설령 생각해 본다고 하더라도 알 수가 없는 것이 보통사람들이다.
그러나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일부 사람들중에는 자신이 왔던 곳이며 죽어서 돌아가야 할 곳을 먼저 가보는 사람도 있다.
그곳을 보고 온 사람들이 그 곳이 어떤 곳이라는 것을 알려 주지만, 그런 세계를 자신의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믿지 못하게 된
다.
그러나 그런 다른 세계를 믿거나 말거나와는 별개로 영혼이 존재한다면 그 세계도 반드시 존재할 수밖에 없을 것이므로 자신의 믿
음과는 별개로 존재하는 것을 인정해야만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세계는 나의 믿음과는 상관없이 존재하는 것이다.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는자라로 하더라도 자신에게 영혼이 없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빠질 수밖에 없는데 자신이 영혼의 존재
를 인지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영혼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3
우리에게 영혼이 없다면 죽음과 더불어 인간관계의 모든 관계는 끝이 나버린다.
인간관계의 모든 관계는 육신으로 맺어지는 관계가 아니고 영혼과 영혼이 맺어지는 관계이다.
영혼이 없다면, 그리고 죽음과 더불어서 영혼이 소멸이 된다면 죽음과 더불어 부모와 자식의 관계, 부부의 관계, 친구의 관계가 다
끝날 수밖에 없게 된다.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일방(一方)이 없어져 버렸으니 어떤 관계도 성립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영혼은 있을 수밖에 없고 영혼이 존재하는 세계도 있을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만약 영혼이 없고 영혼이 가는 곳이 없다면 영결식(永訣式)이나 장례의 절차들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그런 절차를 거치는 것은 영혼과 영혼의 세계를 아는 사람들이 그런 절차를 거쳐서 영혼을 보내야 한다고 알려 주었기 때문에 나
름대로 격식을 갖추어서 영혼을 보내는 것일 것이다.
육신의 고향은 자신이 태어나서 자라난 곳이다. 그러므로 죽은 육신은 자신이 자라난 고향산천에 돌아가서 묻혀서 다시 흙으로 돌
아가는 것이 순리이기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고향에다 묻는 것이다.
그러나 영혼은 육신과 같이 땅속에 묻히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고향이 하늘나라(그곳이 어디이든) 곧 본향(本鄕)으로 간다고 보아
야 할 것이다.
그곳이 어디인지 어떤 곳인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존재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 않겠는가.
4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에 대해서 동양의 종교와 서양의 종교가 입장이 다른데 서양의 종교(기독교)는 영혼이라는 씨가 육
신 속에 들어와서 지상에 사는 동안 자라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서 영혼의 열매를 가지고 다시 돌아가기 위해서라고 본다.
그 영혼의 열매는 ‘백만 송이 장미’의 가사의 내용 그대로인 셈이다.
이 세상에서 영혼은 자랑스럽게 그 열매를 가지고 본향으로 돌아가게 되어있다고 보는 것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사는 것이 더 보
람되고 알찬 인생을 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사람이 항상 고향을 그리워하고 마음이 항상 그곳에 가 있게 되는 것은 그곳이 어머니와 같은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고 거기에서
자신의 인생을 종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악하보다는 선(善)한 삶을 것을 추구하는 것도 그 세계가 선한 세계이고 자신이 선한 존재가 되어서 거기
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추석 같은 명절을 맞아서 고향에 돌아가거나 죽어서 고향에 돌아가더라도 자랑스러운 모습이 되어서 돌아가기를
바라고 최소한 고향에 부끄럽지 않을 모습이 되어서 돌아가기를 원한다.
우리가 본향에 돌아갈 때도 마찬가지로 자랑스럽게 돌아가기를 원할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최소한 부끄럽지는 않은 모습으로
돌아가기를 원해야 할 것아니겠는가.....
본향이 있는 것을 모르는 것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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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맞이해서 고향을 가는 사람들 잘 다녀오시기를....
그렇지만 인간에게는 고향만 있는 것이 아니고 본향도 있다는 것을 알아 두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