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의 8번째 장편소설. 2007년 겨울부터 2008년 여름까지「창작과비평」에
연재된 작품이다. 지하철역에서 아버지의 손을 놓치고 실종된 어머니의 흔적을 추적하면서
기억을 복원하는 과정을 그렸다. 각 장은 전단지를 붙이고 광고를 내면서 엄마를
찾아 헤매는 자식들과 남편, 엄마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늘 곁에서 보살펴주고 무한정한 사랑을 주기만 하던 엄마가 어느날 실종됨으로써
소설은 시작된다. 시골동네에서 태어나 교육도 받지 못하고 오남매를 낳고 자식들만
바라보며 살아온, 이 땅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엄마의 인생과 가족들의 내면을
그린 작품이다.
나는 엄마처럼 못사는데 엄마라고 그렇게 살고 싶었을까? 엄마가 옆에 있을 때
왜 나는 이런 생각을 한번도 하지 않았을까. 딸인 내가 이 지경이었는데 엄마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얼마나 고독했을까.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로 오로지 희생만
해야 했다니 그런 부당한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어.
언니. 단 하루만이라도 엄마와 같이 있을 수 있는 날이 우리들에게 올까? 엄마를
이해하며 엄마의 얘기를 들으며 세월의 갈피 어딘가에 파묻혀버렸을 엄마의 꿈을
위로하며 엄마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올까? 하루가 아니라 단 몇시간만이라도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엄마에게 말할 테야. 엄마가 한 모든 일들을, 그걸
해낼 수 있었던 엄마를,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엄마의 일생을 사랑한다고. 존경한다고.
- 본문 262쪽 중에서
이젠 당신을 놔줄 테요. 당신은 내 비밀이었네. 누구라도 나를 생각할 때 짐작조차
못할 당신이 내 인생에 있었네. 아무도 당신이 내 인생에 있었다고 알지 못해도 당신은
급물살 때마다 뗏목을 가져와 내가 그 물을 무사히 건너게 해주는 이였재. 나는 당신이
있어 좋았소. 행복할 때보다 불안할 때 당신을 찾아갈 수 있어서 나는 내 인생을
건너올 수 있었다는 그 말을 하려고 왔소.(…)…… 나는 이제 갈라요. - 본문 236~237쪽
중에서
너는 내가 낳은 첫애 아니냐. 니가 나한티 처음 해보게 한 것이 어디 이뿐이간?
너의 모든 게 나한티는 새세상인디. 너는 내게 뭐든 처음 해보게 했잖어. 배가 그리
부른 것도 처음이었구 젖도 처음 물려봤구. 너를 낳았을 때 내 나이가 꼭 지금 너였다.
눈도 안 뜨고 땀에 젖은 붉은 네 얼굴을 첨 봤을 적에…… 넘들은 첫애 낳구선 다들
놀랍구 기뻤다던디 난 슬펐던 것 같어. 이 갓난애를 내가 낳았나…… 이제 어째야
하나 (…) 고단헐 때면 방으로 들어가서 누워 있는 니 작은 손가락을 펼쳐보군 했어.
발가락도 맨져보고. 그러구 나면 힘이 나곤 했어. 신발을 처음 신길 때 정말 신바람이
났었다. 니가 아장아장 걸어서 나한티 올 땐 어찌나 웃음이 터지는지 금은보화를
내 앞에 쏟아놔도 그같이 웃진 않았을 게다. 학교 보낼 때는 또 어땠게? 네 이름표를
손수건이랑 함께 니 가슴에 달아주는데 왜 내가 의젓해지는 기분이었는지. 니 종아리
굵어지는 거 보는 재미를 어디다 비교하겄니. (…) 봐라, 너 아니믄 이 서울에 내가
언제 와보겄냐. - 본문 93~94쪽 중에서
너를 도시에 데려다주고 다시 시골집으로 돌아가는 밤기차를 탔던 그때의 엄마의
나이가 지금의 네 나이와 같다는 것을 너는 아프게 깨달았다. 한 여자. 태어난 기쁨도
어린 시절도 소녀시절도 꿈도 잊은 채 초경이 시작되기도 전에 결혼을 해 다섯 아이를
낳고 그 자식들이 성장하는 동안 점점 사라진 여인. 자식을 위해서는 그 무엇에 놀라지도
흔들리지도 않은 여인. 일생이 희생으로 점철되다 실종당한 여인. 너는 엄마와 너를
견주어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한 세계 자체였다. 엄마라면 지금의 너처럼
두려움을 피해 이렇게 달아나고 있지 않을 것이다. - 본문 275쪽 중에서
신경숙 (작가프로필 보기) - 1963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85년「문예중앙」신인문학상에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1993년
한국일보문학상, 오늘의젊은예술가상, 1995년 현대문학상, 1996년 만해문학상, 1997년
동인문학상, 2000년 21세기문학상, 2001년 이상문학상, 2006년 오영수문학상 수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소설집 <강물이 될 때까지>, <풍금이 있던 자리>, <감자
먹는 사람들>, <딸기밭>, <종소리>와 장편소설 <깊은 슬픔>,
<외딴방>, <기차는 7시에 떠나네>, <바이올렛>, <리진>,
짧은소설집 <J이야기>, 산문집 <아름다운 그늘>, <자거라, 네 슬픔아>
등이 있다.
오늘의 우리들 뒤에 빈껍데기가 되어 서 있는 우리 어머니들이 이루어낸 것들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그 가슴 아픈 사랑과 열정과 희생을 복원해보려고 애썼을
뿐이다. 이로 인해 묻혀 있는 어머니들의 인생이 어느 만큼이라도 사회적인 의미를
갖기를 바라는 것은 작가로서의 나의 소박한 희망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 - 신경숙
세상 모든 자식들의 원죄에 대한 이야기.
엄마에게 기대며 동시에 밀어낸 우리 자신의 이야기.
아직 늦지 않은 이들에겐 큰 깨달음이 되고, 이미 늦어버린 이들에겐 슬픈 위로가
되는,
이 아픈 이야기. - 이적 (대중음악가, <지문사냥꾼> 저자)
<엄마를 부탁해>는 신경숙의 작품 중에서도 확실한 성공작이지만 요즘 세상에선
거의 멸종 위기에 처한 희귀종 소설이다. 피붙이 식구들의 끈끈한 정을 이렇듯 절절하고
아름답게 그려낼 작가가 오늘날 몇이나 될까. 더구나 세련된 현대 작가가 '눈물 없이
못 읽을' 장편을 써낼 엄두조차 내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놀라운 것은 신경숙이 이런 위태로운 작업을 촌티 없이 멋지게 해냈다는 사실이다.
시골서 올라온 엄마가 서울의 지하철 역에서 어이없이 실종됨으로써 시작되는 이야기는
마치 추리소설 같은 긴장감을 유지하며 진행된다. 딸, 아들, 남편 등으로 관점을
바꾸면서 한 장, 한 장 펼쳐질 때마다 평생을 자신들을 위해 헌신해온 어머니의 모습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그러나 소설은 ‘남편과 자식밖에 모르고 산 옛날 어머니’를
복원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그 어머니에게도 엄연히 실재했던 자신만의 욕구와 고뇌와
방황을 드러내는 마지막 한 방의 충격을 선사하고야 끝나는 것이다. - 백낙청 (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1장 아무도 모른다
2장 미안하다, 형철아
3장 나, 왔네
4장 또다른 여인
에필로그_장미 묵주
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