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라운드 중 평소와는 달리 너무 잘 치기에 특별지도를 받았느냐고 물었더니 그 친구 껄껄 웃으며 하는 소리가 '내조(內助)의 공(功)'이라고 하면서 하는 이야기인즉,평소에는 골프 나갈 때 마다 못마땅해서 핀찬 한 마디씩 하던 부인이 그 날은 웬일인지 수퍼 가는 길이라면서 골프 옷 가방을 들고 차까지 따라 와 트렁크에 실어 주고는 골프 잘 치고 오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오래간 만에 생긴 희한한(?) 일이라 꿈인가 생시(生時)인가 싶더니 신통하게도 골프가 잘 맞는다는 것이었습니다.글자 그대로 '내조의 덕' 을 톡톡히 보는 셈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잘 생각해 보면 그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해야 겠지요."골프 게임의 90%는 맨탈이다"라고 한 톰 머피(美,프로)의 말을 음미해 보면 말입니다.그 날의 기분이 그 날의 골프를 지배한다는 것은 누구나 경험한 일이 아닙니까? 그러니 가정생활이 원만하지 못한 골퍼가 좋은 성적을 낼 수 없고 잘 나가던 선수도 가정의 평화가 흔들리면 예외없이 몰락이 시작 되며 이혼으로 이어지고 술로 병들어 결국 시들어 버리는 과정을 거치게 마련입니다.'집안이 화목해야 모든 일이 잘된다(家和萬事成)'라고 했는데 골프라고 예외가 될 수 있겠습니까? 2001년 시즌이 개막되자 한때 슬럼프에 빠진 것이 아닌가? 라는 의문이 나올 정도로 성적이 부진했던 타이거 우즈도 아들의 성공으로 갑자기 돈방석에 앉게된 아버지가 백인 애인과 사귀면서 어머니와 불화설,이혼설이 나돈 때문이라는 얘기가 그럴듯하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습니다. 과학적 분석을 좋아하는 분들은 그 당시 타이거의 평균 타수가 그 전의 평균 타수에 비해 나빠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타이거가 잘못한 것이 아니고 다른 선수들이 더 잘한 것이라고 주장 하지만 그 주장을 전적으로 믿기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것은 그의 아버지가 2년간 사귀어 오던 백인 애인 조안나 자고다와 2001년 초에 헤어진 것과 그 후 Bay Hill Invitational, The Players Championship, Masters Tournament우승으로 이어지는 현상과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단언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존 댈리는 무명 시절,출전 자격 조차 없어 웨이팅 리스트 9번에 올라 있다가 닉 프라이스가 아내의 출산이 임박했다는 이유로 출전을 포기하는 바람에 아주 우연히 찬스를 얻어 밤새 800㎞를 자동차로 달려가 동이 틀 무렵에 도착하여 가까스로 대회에 참가했었습니다.적어도 왕복 기름값은 벌지 않겠느냐는 약혼자의 격려로 참가한 메이저 대회(1991년 PGA 챔피언쉽)에서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우승하는 깜짝 쇼를 연출했습니다.당시 언론에서 '세계 모든 신화집(神話集)을 들쳐 봐도,기네스 북을 비롯한 모든 기록을 훑어 봐도,심지어 스타제조공장인 헐리우드를 뒤져 봐도 존 댈리의 스타탄생과 비교할 만한 드라마는 없다'며 감격했을 정도로 혜성과 같이 등장한 후 1992년 B.C.Open,1994년 Bell South Classic,1995년 British Open을 연달아 제패하여 한때 그랜드 슬램을 달성할 것이라고 뭇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하던 그가 한 동안 자기절제에 실패하여 이혼과 술과 도박으로 시들어 버리는 것 같아 그의 호쾌한 장타를 사랑한 많은 사람들이 애석해 했습니다. 그의 재능을 아까워한 캘러웨이사(社)가 1999년에 금도박(禁賭博),금주(禁酒)를 조건으로 제의하여 체결한 $3,000,000 후원계약이 자기의 절제(節制) 실패로 파기되자 존 댈리는 엄청난 쇼크를 받았습니다.이 큰 쇼크는 그에게 삶에 대한 자극이 되었고 이를 계기로 자율적인 자기와의 싸움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2001년 들어 쉐리 밀러와의 네 번째 재혼에서 가정의 안정을 찾게 되었는데 이것이 계기가 된 것인지 2001년 7월에 Scotish Open에서 공동 3위를 하더니 이어 8월에 독일 뮌헨 골프장에서 벌어진 BMW International 대회에서 27 언더파 261타의 놀라운 스코어로 우승,실로 6년,151개 대회만에 재기에 성공함으로서 프로 골프계의 탕아(蕩兒)라는 오명을 떨쳐 버렸습니다. 대회 직후 우승 소감을 밝히는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를 포기했다.그러나 나는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나는 인생의 승부사이다"라고 결연한 의지를 들어내 보인 그는 '나는 나의 인생을 의지할 위대한 아내와 가족과 친구들이 있다.나를 아껴 준 세계 모든 팬들에게 우승 컵을 바치고 싶다'라고 예절바른 면모도 보여 주었습니다. 자기가 준수(遵守)하는 규칙은 골프 규칙 뿐이라고 스스로 말할 정도로 자유분방(自由奔放)한 삶을 살아 왔던 그는 밖으로 나타난 생활 모습과는 달리 여린 마음의 소유자이기도 합니다.본인의 말을 빌리면,스스로에게 엉망일지는 몰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엉망이지 않다는 것입니다.그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선뜻 돈을 주고 자선행사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기도 합니다.1991년 PGA챔피언십에서 극적으로 우승하던 날 갤러리 중 한 사람이 벼락을 맞아 죽은 사건이 발생했는데,존 댈리는 그 이야기를 듣고 자기가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는 동안 죽었으니 그 사람이 마치 자기를 위해 죽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면서 죽은 사람의 자녀들에게 대학교육 학자금을 주겠다며 $30,000을 희사(喜捨) 것이 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때 PGA 대회 첫 우승으로 받은 상금이 $230,000 이었는데 빚을 청산하고 남은 것이 $30,000이었으니 보통 사람으로서는 좀처럼 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 해야 겠지만,그는 골프사이트인 CNN-SI의 앙케트조사결과 2001년 가장 큰 발전을 한 선수로 뽑혔으며 2000년 세계랭킹 500위권에서 52위로 솟아 올랐습니다. 2001년 시즌 초반에 2승(Bob Hope Chrysler Classic과 Genuity Championship)으로 PGA 돌풍을 일으켜 화제의 주인공이 된 조 듀란트는 2부 투어 시절인 1991년에 슬럼프를 극복하지 못하고 골프를 포기한 적이 있었으나,모든 샷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연습하면 잘될 것이라는 부인의 거듭된 격려로 심리적 안정을 찾고 화려하게 재기(再起)에 성공했으며 CNN-SI 앙케트 조사에서 2001년 가장 놀랄 만한 선수 1위로 랭크 되었습니다.
2000년 The Players Championship의 우승자이자 Ryder Cup의 영웅으로 각광을 받았던 할 서튼은 프로 전향 2년차인 1982년에 Walt Disney World Golf Classic에서 우승하고 이어 그의 나이 25세 때인 1983년에 PGA Championship과 Tournament Players Championship을 거머쥐고 PGA투어 상금랭킹 1위에 올랐으나 너무 쉽게 얻은 우승으로 인하여 자만에 빠진 나머지 깊은 슬럼프의 수렁으로 들어 가 버렸습니다.
1930년 한 해에 당시 Big 4 대회인 영국 아마추어선수권(5월),영국 오픈(6월),미국 오픈(7월),미국 아마추어 선수권(9월)을 제패하여 지금까지 진정한 의미에서의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유일한 골퍼이면서도 끝까지 프로로 전향하지 않고 '더 이상 점령할 고지(高地)가 없다' 고 하면서 28세로 은퇴한 위대한 아마추어이며,미국인이면서 영국인들로부터 '골프황제'의 칭호를 얻은 보비 존스는 "나는 과거에 여러 번 행운을 누렸다.그 중에서도 가장 큰 행운은 열 네살 때 첫 출전한 메리온G.C.에서 벌어진 US 아마 선수권 경기에서 우승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만일 그 때 우승했더라면 그 결과는 어찌 되었을까? 의심할 나위없이 나는 그 시점 이후 시들어 버렸을 것이다" 라고 그의 명저 'Down the fairway'에서 말한 바 있는데,묘(妙)하게도 할 서튼이 바로 그 함정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게다가,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고 세 번에 걸친 이혼이 겹치면서 10년간을 방황 하다가 어느 프로 암 대회에서 자기보다 훨씬 젊은 아마골퍼와 만나 1년간에 걸친 데이트 후 결혼하게 된 것이 네 번째 부인인 지금의 애쉴리인데 골프를 이해하는 그녀의 극진한 격려로 장장 10년의 긴 슬럼프를 극복하고 1995년에 B.C. OPEN을 제패하면서 재기에 성공한 후 1998년 Westin Texas Open과 The Tour Championship,1999년 Bell Canadian Open,2000년 The Players Championship과 Greater Greensboro Chrysler Classic,2001년 4월 Shell Houston Open 우승으로 화려하게 PGA 무대에 컴백하게 되었습니다. '안정된 개인적 삶과 뛰어난 선수가 되는 것 사이에 상관관계(相關關係)가 있다고 보는가?' 라는 물음에 그는 '뛰어난 선수가 되려면 안정된 생활이 매우 중요하다.나는 오늘 날의 할 서튼이 1983년의 할 서튼과 싸우면 10번 중 7번은 이길 것이란 얘기를 많이 들었다.나에게는 내가 투어에서 실패한다고 해도 여전히 나를 사랑해줄 좋은 아내와 아름다운 세 딸이 있고 내 인생에 대해서도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나에게 골프가 없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그러나 그것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가족이다'라고 대답한 적이 있습니다. 존 댈리가 6년만에 재기(再起)에 성공한 후 "나에겐 인생을 의지할 위대한 아내와 가족이 있다"고 하고,할 서튼이 10년의 슬럼프를 극복하고 나서 "내가 투어에서 실패한다고 해도 여전히 나를 사랑해 줄 좋은 아내와 아름다운 세 딸이 있다"고 토로(吐露)한 것은 역경에 처해 있을 때 얼마나 따뜻한 격려가 간절했는지를 웅변으로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1967년 라스베거스에서 열린 사하라 인터내셔널 대회에서 셋 째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남편 경기를 참관하러 갔던 잭 니클로스의 아내 바바라는 잭이 3라운드를 멋지게 해내고 나서 잠들어 있던 한 밤중에 유산을 했으나,남편이 마지막 라운드를 잘 하려면 푹 쉬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남편을 깨우지 않고 아침 8시에야 잭을 깨워 사유를 차분히 설명해주고 병원으로 갔고 그 경기에서 잭 니클로스는 우승을 했습니다.그 때의 감동에서인지는 몰라도 잭 니클로스는 그의 인생에서 우선 순위는,①가족 ②골프 ③사업 ④나를 위한 기분전환과 여가라고 하면서 이 순위는 변함이 없다고 했습니다.그는 아이들이 어릴 때는 어쩔 수 없었으나 막내 마이클이 대학에 진학해서 집을 떠나고 나서는 아내 바바라에게 선언을 했습니다.투어에 아내가 동반하지 않으면 자기도 투어에 참가하지 않겠다고.....그 날 이후 그녀는 경기에 따라가지 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합니다.
헨리 포드가 동네 사람들의 조롱 속에서,심지어는 아버지조차 미친 짓이라고 야단을 치는 가운 데에서도 뜻을 버리지 않고 창고 작업장에서 자동차 만들기에 성공한 것은 그의 아내의 격려 때문이었습니다.힘든 시기에 큰 힘이 되어 준 아내의 고마움을 잊지 않던 그는 만년(晩年)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으냐?" 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내와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무엇으로 태어나든 상관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좋을 때보다 어려울 때 필요한 것이 가족입니다.동락(同樂)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동고(同苦)는 가족이 아니면 하기 어려우며 어려울 때 고통을 함께 나누며 격려를 하지 않으면 이미 가족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가족이 지니는 의미는 그냥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지켜봐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상대방에게 알려 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역경(逆境)에 처했을 경우 정신적인 안정이 필요한데 가족이 지켜봐 주고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 바로 정신적인 안정을 준다는 것입니다.이런 안정감은 오직 가족만이 줄 수 있으며 돈도 명예도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가족은 어려울 때 헤쳐 나갈 힘을 주고 살아가는 희망이 되기도 합니다.
할 서튼은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 스스로 체득한 행복론을 감동적으로 우리들에게 던져 주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돈을 벌기 시작했을 때 처음에는 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주 빠른 자동차일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래서 나는 포르쉐를 샀다.두 번째로 나는 집을 한 채 갖고 있으면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했다.그래서 나는 집을 샀다.세 번째로 나는 자가용 비행기가 있으면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비행기를 샀다.그 모든 것을 사들인 뒤 나는 마침내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아울러 행복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내 스스로 무엇인가를 해야 얻어지는 것이었다.내가 그것을 깨닫기 까지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비단 골프 뿐이겠습니까? 모든 일들이 마음의 평화를 잃으면 깨어 지게 되고 마음의 평화는 가정생활의 평화가 깨지면 함께 깨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늘 잊고 살아가는 것이 탈이지요. 더욱이 가정이란 깨어지기 쉬운 유리공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이지요.제임스 피터슨은 '베텔스만의 일기'에서 가정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인생은 두 손으로 다섯 개의 공을 던지고 받는 게임같은 것이란다.
그 다섯 개의 공은 일,가족,건강,친구 그리고 자기자신이야. 우리는 끊임없이 다섯 개의 공을 던지고 받아야 하는데,
그 중에서 일이라는 공은 고무공이라서 땅에 떨어뜨려도 다시 튀어 올라오지.
하지만,가족,건강,친구,자기자신이라는 나머지 네 개의 공은 유리공이란다.
그래서 한 번 떨어뜨리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흠집이 생기거나 금이 가거나
아니면 완전히 깨져 버리지.
그 다섯 개의 공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해야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는 거야." 휴일을 골프장에서 보내게 되는 Weekend Golfer들은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되는데 이 때 마음이 약해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조자룡이 헌 칼 쓰듯이 '비지니스 접대론'을 장황하게 늘어 놓는 것이 통상 수법이나 가정이 화목해야 골프도 잘 되는 법이니 '家和 골프成'을 잊지 마시고 골프 출동에도 내조(內助)를 얻도록 지혜를 짜내 보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어떤 분은 귀가할 때 빈손으로 가는 법이 없다고 하는데 방법이야 궁리하면 나오겠지요.미국 테네시에 사는 조지 웨스키라는 분은 일주일에 5라운드를 하는 골프 매니아인데,그의 아내 제니퍼의 반응은 이렇습니다."나는 골프가 고맙다.골프를 하고 난 다음엔 가족을 위해 두 배로 노력한다.라운드 후 집에 돌아오면 그 때부터 아이들과 놀아주는데 모든 심경을 집중한다" 골프를 치는 5시간은 너무도 빨리 지나가 늘 아쉬움이 남지만,집에서 아빠를 기다리는 가족의 5시간은 너무도 긴 시간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가정의 평화를 이루기 어렵습니다.'골프 후 가정 서비스 배가(倍加) 운동'같은 캠페인(?)을 해서라도 '골프 아빠,좋은 아빠'라는 이미지를 확립하는 것이 우리 아마추어 골퍼들의 사명(使命)이 아니 겠습니까!
(月刊 Import 揭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