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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파랑길 42코스
원천항-금평-앵강다숲-화계마을-용소-용문산임도-미국마을 입구-서포문학공원-두곡해변
일년 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길다는 12월 22일 동짓(冬至)날 새벽, 남해군 이동면 신전리 원천항 입구에서 남파랑길 42코스를 시작한다. 남파랑길 42코스는 '앵강다숲길'이라 명명된 남해바래길 10코스와 동일한 길이다. 헤드랜턴을 끼고 어둠을 쫓으며 앵강만 해안을 걸었다. 어제 41코스를 끝내고 42코스의 앵강만을 조금 걸으며 살핀 위치를 가늠하며 앵강만 해안을 걷는다. 어둠 속에서 바람이 바다를 건너 불어와 얼굴에 부딪고 바람이 일으키는 물결 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파도 소리가 앵무새 소리처럼 들린다고 하여 앵강만(鸚江灣)이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앵강만 해안의 어둠 속에서 귓가에 들려오는 파도 소리를 앵무새 소리로 환청한다. 어둠 속에서 멀리 노도는 앵강만 입구를 지키고 있고, 거북 모양을 한 목단도는 앵강만 깊숙이 들어와 마을 앞에서 앙증스럽게 재롱을 피우고 있다.
동그랗게 원을 그리고 있는 앵강만 해안의 가로등 불빛이 새벽의 미명을 밝혀 주고 있다. 밤의 어둠이 걷히고 어서 찬란한 태양이 떠올라 앵강만의 아침이 밝아오기를 바라며 어둠을 헤친다. 이 밤의 시간을 싹뚝 잘라내 보관하였다가 필요할 때 그 시간을 꺼내어 쓰면 얼마나 좋을까? 이 마음을 표현한 황진이의 명품 시조가 떠오른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 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론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구비구비 펴리라.' 황진이는 임 없이 홀로 지내는 동짓달 기나긴 밤의 시간을 잘라내었다가 사랑하는 임이 오신 날 밤에 그 시간을 쓰겠다고 한다. 내게는 지금 밝음이 필요하다. 하짓(夏至)달 기나긴 낮의 밝음을 잘라내어 보관하였다면 지금 앵강만의 어둠을 걷어내고 싶다.
앵강만 해안로를 돌아서 화계마을로 올라서며 헤드랜턴을 껐다. 호구산 능선이 늠름하다. 지난 시절 호구산에 얽힌 추억이 솟아오른다. 한 번은 친구들과 남해 관광 때 용문사에 들렀었다. 어스름이 깃들 무렵 친구들이 말리는데도 용문사에서 홀로 호구산에 오르다가 정상 직전에서 포기하고 내려왔었다. 그 철딱서니 없던 시절의 호기가 부끄럽기도 하고 그립기도 하다. 또 한 번은 안내산악회를 따라서 괴음산-송등산-호구산 능선을 산행하고 용문사 입구로 내려와 서포 김만중의 동상과 서포시비를 보며 감격했었다. 지난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화계마을 당산나무와 마을회관을 거쳐 마을 입구의 곡포식당이 있는 지방도 1024번 '남서대로'로 올라섰다.
남파랑길은 '남서대로'에서 화계교를 건너 오른쪽 개천둑길로 들어서 용소공동묘지가 있는 앵강고개로 이어진다. 가파른 고갯길을 걷기가 싫다면 '남서대로'를 계속 따라가면 꼭두방펜션 입구에서 남파랑길과 재회한다. 남파랑길은 호구산 아래 앵강고갯길로 이어져 용문사 입구 아래 미국마을을 거쳐 송등산 아래 꼭두방펜션까지 산허릿길을 걷다가 지방도 1024번 '남서대로'로 내려온다. 힘들기는 하지만 남파랑길을 따라가야 앵강고갯길에서 앵강만을 조망하고, 미국마을과 그 위 용문사 입구에서 서포문학공원을 만나는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미국마을 입구에서 남파랑길은 미국마을 위쪽 산길로 이어진다. 이곳에서 남파랑길을 벗어나 용문사 입구의 '서포문학공원'을 잠깐 살피고 돌아왔다. '서포문학공원'은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 1637~1692)이 유배생활을 하던 노도(櫓島)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조성되어 있으며 서포 입상과 서포 시비 '南海謫舍有古木竹林有感于心作詩(남해적사유고목죽림유감우심작시)'가 세워져 있다.
앵강만과 앵강만 입구를 지키는 노도(櫓島)를 바라보며 지극한 효심의 김만중의 마음을 생각해 본다. 서포(西浦)라는 호는 김만중이 평안북도 선천으로 유배갔을 때 그곳에서 지었다고 하며, 그곳에서 소설 '구운몽(九雲夢)'을 창작했다.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한 남편 김익겸을 잃었고, 강화도에서 한양으로 오는 배(船)에서 유복자 둘째 아들 김만중을 낳았다. 홀로 키운 두 아들이 벼슬길에 올랐지만 정치적 격랑으로 아들이 유배를 당하였다. 김만중의 어머니 해평 윤씨부인은 인생의 이런 고통을 당하였다. 김만중은, '인생은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어머니, 고통스러워하지 마시고 인생을 받아들이십시오.'라고,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인생무상이라는 주제로 유배지 평안북도 선천에서 소설 '구운몽(九雲夢)'을 지었다. 김만중은 유배지 노도(櫓島)에서 어머니의 임종 소식을 이듬해가 되어서야 듣게 된다. 서포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1년이 지나서 어머니의 살아서의 행적 <정경부인해평윤씨행장>을 지어 어머니를 추모한다.
서포가 남해 노도(櫓島)에 유배되었을 때 집안의 큰조카 김진구(金鎭龜, 1651~1704)는 제주도로, 둘째조카 김진규(金鎭圭, 1658~1716)는 거제도로 유배되었다. 서포는 그때의 심정을 '재남해문양질배절도(在南海聞兩侄配絶島, 남해에서 두 조카가 절해고도에 유배된 소식을 듣고서)'라는 시로 표현하였다.
倉茫三島海雲邊(창망삼도해운변) 푸르고 아득하게 세 섬은 바다 구름 끝에 있고
方丈蓬瀛近接聯(방장봉영근접연) 방장과 봉래와 영주가 가까이 잇닿아 있어라
叔姪弟兄分占遍(숙질제형분점편) 숙부와 조카님 형제가 두루 나누어 차지하고 있으니
可能人望似神仙(가능인망사신선) 사람들이 보기엔 신선 같다 할 만도 하겠구나
방장산과 봉래산과 영주산은 신선이 산다는 삼신산(三神山)으로 일컬어진다. 숙부와 조카형제가 유배온 남해도, 거제도, 제주도, 세 섬은 삼신산과 가까이 잇닿아 있다. 숙부와 조카형제가 세 섬을 각각 차지하고 있으니 남들이 보기에는 신선 같다고 할 만도 하다는 아이러니(反語) 표현에 그의 미어지는 가슴이 느껴진다.
서포문학공원에서 내려와 빛나는 아침햇빛을 받으며 송등산 자락길을 돌아나간다. 앵강만과 앵강만 서쪽 설흘산에도 아침 햇발이 환하게 펼쳐진다. 오늘 하루도 아침빛처럼 반짝이기를 바라며 일행을 따라가기 위해 발걸음을 빠르게 내닫는다. 꼭두방펜션 아래로 내려오면 지방도 1024번 남서대로와 만난다. 왼쪽 건너편의 꼭두방주야간센터를 바라보면서 이동면 용소리에서 남면 당항리로 넘어간다. 언덕을 돌아가면 여러 펜션들이 들어서 있고, 도로 바닥에는 남해바래길을 상징하는 그림- 머리에 바구니를 이고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어머니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바래'라는 말은 남해 어머니들이 가족의 먹거리 마련을 위해 바닷물이 빠지는 물때에 맞춰 갯벌에 나가 파래나 조개, 미역, 고둥 등 해산물을 손수 채취하는 작업을 일컫는 토속어라고 한다. 그래서 남해뱌래길은 '엄마의 길'이다.
남서대로에서 해안쪽 재미들펜션 골목으로 내려가 두곡방파제에 이르니 앵강만 서쪽이 활짝 열리고 앵강만의 지킴이 노도가 앵강만 입구에서 손짓한다. 반짝이는 아침빛이 쏴아 앵강만 바다에 눈부시게 물결친다. 서포의 소리가 들려온다. 뒤이어 어머니의 소리도 들려온다.
-어머니, 어머니, 이렇게 소리쳐도 가슴은 억눌립니다. 편하게 모시지 못하여 죄송합니다.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불효자는 오늘도 앵강만의 혼으로 떠돌고 있습니다.
-아이야, 아이야, 무슨 소리냐? 아비 없는 자식이라고 손가락질 당할까 봐 이 애미가 너를 모질게 교육시키고,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여 죽어서도 한(恨)이 풀리지 않는구나.
제2부로 이어짐
2021년 12월 21일 오후에 살핀, 원천항 입구와 42코스 출발지 모습
송등산과 호구산(오른쪽), 거북 모양의 섬 목단도 오른쪽에 화계마을과 그 왼편 뒤쪽에 용소마을이 보인다.
2021년 12월 22일 새벽 6시 10분 원천항 입구에서 남파랑길 42코스를 출발한다.
건너편은 금평마을, 바로 왼쪽은 앵강다숲
해안에는 가로등 불빛이 밝혀져 있고, 설흘산과 거북 모양의 목단도가 떠오르는 태양빛을 받아 좀더 분명하게 보인다.
벽사와 풍어를 기원하는 대나무부적이 바람에 날리고, 앵강만의 설흘산과 바다의 노도와 목단도가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왜 곡포식당이라고 이름지었을까? 화계(花溪)의 옛 지명이 곡포(曲浦), 이 식당 주인은 옛 지명을 사랑하는 분이다.
뒤쪽에 송등산과 호구산이 우뚝하고, 그 아래 용소마을이 펼쳐져 있다.
이동면 화계리에서 화계교를 건너서 용소리로 들어간다. 다리 건너서 바로 오른쪽으로 꺾어 개천둑길을 따라 진행
돗틀바위를 올려보며 용소공동묘지가 있는 앵강고개까지 올라간다.
호구산 돗틀바위가 내려보고 있다.
호구산 돗틀바위 아래 앵강고개에 용소공동묘지가 조성되어 있고, 용소공동묘지 도로확장·포장준공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남파랑길은 아래 보이는 마을 오른쪽 길을 따라 내려가서 갓목산(오른쪽) 왼쪽을 우회하여 미국마을 입구로 이어진다.
위쪽으로 오르면 용문사로 이어진다.
앵강만 입구를 노도가 외로이 지키고 있다.
남파랑길은 왼쪽으로 꺾어 이어지지만 직진하여 서포문학공원을 살피고 되돌아오기로 한다.
김만중은 1637년(인조 15) 2월 10일 오시(午時)에 출생하여 16세에 진사에 합격하였으며, 29세에 문과로 장원급제하여 홍문관에서 관직을 시작하였다. 1687년 51세인 우참찬 재직 당시에 희빈 장씨(禧嬪張氏)의 비리를 탄핵하다가 평안북도 선천으로 유배되었고, 다시 1689년 남해로 유배되어 1692년(숙종 18) 4월 30일 5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그러나 1694년(숙종 20)에 복관되었으며, 1702년(숙종 28)에 문집이 간행되었다. 1711년(숙종 37) 장단부 서쪽에 묘를 옮겼으며, 1715년(숙종 41)에 표석을 세우고 영정을 봉안하였다.
南海謫舍有古木竹林有感于心作詩(남해적사유고목죽림유감우심작시)
남해 유배지에서 고목죽림을 보고 느낌이 있어 시를 짓다
其一
龍門山上同根樹(용문산상동근수) 용문산 위에 있는 같은 뿌리의 나무
枝柌摧頹半死生(지사최퇴반사생) 가지는 꺾이고 시들어 죽었는지 살았는지
生者風霜不相貸(생자풍상불상대) 산 가지는 풍상이 너그럽게 보아주지 않고
死猶斧斤日丁丁(사유부근일정정) 죽은 가지도 오히려 날마다 도끼가 찍어대네
億我弟兄無故日(억아제형무고일) 생각하노니 우리 형제 탈 없던 날
綵服壎篪慈顔悅(채복훈지자안열) 색동옷 입고 재롱부리면 어머니 기뻐하셨지
母年八十無人將(모년팔십무인장) 어머니 나이가 여든인데 돌볼 사람 없으니
幽明飮恨何時歇(유명음한하시헐) 이승과 저승에서 머금은 한 어느 때나 그칠까
其二
北風蕭蕭吹竹林(북풍소소취죽림) 북풍이 쏴아하고 대숲에 불어
今朝憶我兩阿咸(금조억아양아함) 오늘 아침 두 조카 생각나게 하네
自我南邊汝心苦(자아남변여심고) 내 남쪽으로 쫓겨오면서 너희 마음 괴롭더니
何知汝亦海天南(하지여역해천남) 어찌 알았으랴 너희마저 바다 위 하늘 남쪽인 것을
風濤滔天不可越(풍도도천불가월) 바람과 물결 하늘에 넘쳐 넘을 수가 없는지
六月曾無一書札(육월증무일서찰) 여섯 달 동안 지금까지 편지 한 장 없네
我今病瘴日昏昏(아금병장일혼혼) 나 이제 풍토병 앓아 날로 어질어질해지니
死去誰收江邊骨(사거수수강변골) 죽어서 떠나면 누가 강변의 뼈를 거두어주나
서포 김만중은 노도에서 유배생활 중 숨을 거두었다. 서포문학공원은 앵강만 입구의 노도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조성되어 있다.
길 건너편 꼭두방주야간보호센터를 보며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에서 남면 당항리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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