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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4-39회
백복령-생계령-고병이재-석병산-두리봉-삽당령
20230716
1.여름 들꽃은 우뚝하여라
물 난리로 아우성이다. TV를 통해 보는 수해 장면에 가슴이 아프다. 특히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가 너무나 명백해 보이는, 사망자들이 발생하는 물 난리에 가슴이 터지고 눈물이 흘렀다. 사고 발생을 통보한 시민의 전화를 받고도 엉뚱한 짓을 한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에 분노한다. 그렇지만 나는 거기에서 더 나가지 못한다. 피터 브뤼겔의 그림 '이카루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처럼 나는 물 난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산악회를 따라 산행에 나섰다. 산악회에서 문경 지역 산행을, 비 예보가 없는 강릉 지역 석병산 산행으로 바꾸어서 산행을 진행한다. 나는 산악회를 따라 강릉과 정선의 경계를 이루는 백봉령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날씨는 음산하지만 비는 내리지 않는다. 이번 백복령-석병산-삽당령 구간의 백두대간은 백복령을 거쳐 자병산으로 향해야 하나 현재는 석회석광산 개발로 자병산이 훼손되면서 그 산줄기를 산행하지 못하기에 단절된 백두대간을 잇는다. 어디서 끊어져서 어디에서 이어지는지 분명히 알지 못하고 산행을 이어갔다. 4차례나 이곳을 산행하면서 자병산이 파헤쳐진 모습만 보고 산줄기가 어떻게 이어져 백두대간 능선을 이루는지 멍청하게 알지 못한다.
숲으로 들어서니 낙엽활엽 교목인 참나무들이 무성한 푸른 잎을 펄럭이며 여름 숲을 이루고 있다. 참나무는 나무의 진짜(참) 나무이다. 참나무는 계절에 따라 제 모습을 바꾸며 생을 살아간다. 영국의 시인 테니슨의 '참나무' 시는 가슴에 울린다. "젊거나 늙거나/ 저기 저 참나무같이/ 네 삶을 살아라./ 봄에는 싱싱한/ 황금빛으로 빛나며/ 여름에는 무성하고/ 그리고, 그러고 나서/ 가을이 오면 다시/ 더욱 더 맑은/ 황금빛이 되고/ 마침내 잎사귀/ 모두 떨어지면/ 보라, 줄기와 가지로/ 나목 되어 선/ 저 발가벗은 힘을."<알프레드 테니슨(Alfred Tennyson, 1809~1892, 영국)의 '참나무'> 참나무처럼, 봄에는 황금빛, 여름에는 무성하게, 가을에는 더 맑은 황금빛, 겨울에는 발가벗은 힘을 보이는 참나무같이 삶을 살라고 시인은 이야긴한다. 아름다운 사람만이 그렇게 살 수 있다.
이리저리 꼬부라지고, 오르내리며 동쪽 자병산을 나뭇가지 사이로 살피며 걸었다. 진분홍 노루오줌꽃, 주홍빛 동자꽃, 노란 마타리꽃, 주황빛 하늘말나리꽃 등 여름꽃들이 산길에서 제 빛의 불을 밝히며 빛난다. 음산한 날씨에 음울한 마음은 여름 꽃빛에 의해 밝아진다. 그 꽃들에 눈맞추며 산길을 간다. 특히 하늘말나리꽃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하늘말나리꽃에 취하던 지난 시절이 떠오른다. 여름 풀꽃의 여왕은 무슨 꽃일까? 여름 풀꽃의 여왕은 누가 뭐라고 해도 나리꽃이 아닐까? 야생의 나리꽃에서부터 관상 원예용 나리꽃까지 다종다양의 나리꽃이 한 여름철을 풍미하여 우리의 산과 들, 가까이는 안마당 뜰을 수놓는 풍경은 여름의 대표 풍경 중의 하나다.
취향이라는 말은 개인의 기호와 연관되기에 그 취향에 대하여 이성적으로 비판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철학자 칸트는 우리 인간이 좀더 고상하고 도덕적이고 숭고한 미적 취향을 지니기를 바랐다. 그러나 나의 들꽃 취향은 고상, 도덕, 숭고와는 무관하며, 음식의 취향처럼 내 감각을 자극하는 동경과 추억에 기울어진다. '하늘(하늘을 향하여)+말(크다)+나리'의 합성어인 하늘말나리. 하늘말나리의 선명한 주황빛 꽃송이를 보면, 시간의 단층을 뚫고 그 얼굴이 나타난다. 빛나는 주황 등불의 하늘말나리를 내게 가르쳐 준 그 얼굴, 그때의 얼굴들이 하늘말나리 꽃들처럼 피어오른다. 숱한 나리꽃들을 만나고 보고 반가워하지만 나의 나리꽃은 하늘말나리 꽃이다. 되바라지지 않고 하늘을 향하는 이상을 품었으며, 크다는 의미의 '말-'이 붙었지만 소담한 모양의 하늘말나리 꽃은 진주처럼 영롱한, 숲의 요정이다. 그 요정은 까불거리거나 재치있거나 화려하지 않으며, 은은하고 단순소박하며 성실하여 뭇 요정들의 귀감이 된다. 하늘말나리 같은 사람을 만나 그 곁에 그냥 머물고 싶다. 나의 하늘말나리여, 나의 천사여.
노란 마타리꽃은 언제나 소년과 소녀의 사랑으로 가슴을 물들인다. 황순원(1915~2000) 작가의 소설 '소나기'에서 마타리꽃은 소년과 소녀의 사랑을 이어주는 매개 역할을 하는 꽃이어서 더욱 사랑스럽고 순수해 보인다. 수줍어 부끄럼 타던 순진한 소년이 산에 핀 수많은 들꽃을 소녀에게 설명해 주는 장면에서, 소녀가 소년에게 묻는 꽃이 있다. "노란 꽃, 노란 양산같이 생긴 꽃, 이름이 뭐지?" "마타리꽃!" 노란 마타리꽃이 세상 최고의 사랑의 꽃으로 피어나는 순간이 이 장면에 있다. 그 마타리꽃을 나는 서른 살이 넘어서야 알게 되었고, 그 마타리꽃이 '소나기'에 나오는 것은 더 나중에 알게 되었다.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서 '소나기'를 배워 놓고도 마타리꽃이 작품에 나온다는 것을 몰랐으니 얼마나 엉터리 공부를 했던가? '소나기'를 다시 읽으며 마타리꽃을 확인하는 그 순간부터 마타리꽃은 내 사랑의 마음을 달구는 노란빛이 되었다.
이번 산행에서 만난 들꽃들은 그 외에도, 짚신나물꽃, 산꿩의다리를 닮은 좀꿩의다리꽃, 선녀처럼 신비하게 피어난 솔나리꽃, 흰여로와 다른 푸른여로꽃, 개구릿대와 비슷한 구릿대꽃, 송장풀꽃과 비슷한 속단꽃, 물레처럼 돌아가는 물레나물꽃 등이다. 이름을 불러주지 못하는 무수한 꽃들이 길손을 야속해 한다. 이름을 불러주지 못한 들꽃들에 미안하다. 그러나 너희들 수많은 여름꽃들에 나는 도취하여 정신이 돌았다.
922m 산봉에 오르기가 가장 어려웠다. 힘겹게 올라간 922봉에서 조망이 탁 트여 얼마나 감격했던가. 아쉬움은 날이 흐려서 투명한 풍경을 볼 수 없는 것이다. 922봉에서는 내리막길이다. 이 내리막길에서 비가 듣기 시작한다. 비는 배낭을 적시지도, 등산복에 스며들지도 못한다. 그만큼 내리다가 고병이재 내려가는 언덕에서 멈추었다. 여름 장마철의 비치고는 가볍다. 배낭커버를 씌우지 않았고, 비옷도 입지 않았다. 비는 재롱을 피우다 그만두었다. 이번 산행의 어려움은 비가 아니라 덤불숲을 헤치는 일이었다. 미역줄나무 덩굴은 끊임없이 앞을 막아서고 배낭을 걸고 놓아 주지 않는다. 힘겨웠다. 키 높은 수풀을 헤치며 힘겹게 어려움을 이겨냈다.
석병산에 오르기는 지루하다. 힘겨움은 없다. 낙엽송 군락지, 참나무 숲, 솔숲을 돌고 돌아 철쭉꽃 군락지를 돌아서, 나올 듯 나타날 듯 보이지 않는 석병산은 석병산 갈림길에 이르러서야 마음이 놓인다. 잠시 석병산에 올랐다가 오기로 한다. 돌 병풍처럼 펼쳐진 바위산이어서 석병산 이름을 얻은 곳에 언제 다시 올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없다. 그래서 이번 석병산 산행이 더 소중하다. 석병산에서의 조망은 일품이다. 그런데 구름안개가 피어오른다. 산봉을 휘감는 안개구름은 세속과는 멀리 떨어진 백운의 세계, 나는 신선의 세계에서 노니는 느낌이다. 그런데 조망이 투명하지 않다. "세속의 조망을 바라지 말라!" 구름 속에서 신선의 소리가 들려온다. "조망은 흰 구름 피어나는 이 풍경이면 족해야지 세속의 먼지티끌을 찾아서 무엇하겠다는 말이냐?" "네, 그럼에도 세속세계를 확인하고 싶습니다. 저곳이 동해 바다, 저곳이 대관령, 세속세계가 그립습니다." "이런, 쯧쯧! 그러면 하산하는 수밖에 없지 않느냐." 나는 안개구름 산봉을 조망하며 흐린 날씨를 탓하다가 신선에게 꾸중을 들었다.
석병산 정상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노란 금마타리와 돌마타리 꽃에 사랑의 마음을 물들이며, 나는 일월바위 문으로 내려갔다. 큰 바위에 동그랗게 구멍이 뚫려 있다. 동그란 액자 모양 속에 풍경을 담는다. 아찔하다. 도취의 끝은 죽음이다. 약삭빠르게 거리를 두고 그 풍경에의 도취를 막는다. 적절하게 도취하는 세속인으로서 풍경을 즐겼다.
이번 산행의 절정이요 전부는 여기까지이다. 이제는 하산하는 길, 길게 이어지는 하산길은 숲 속에서 이정목을 따라 내려가는 길이다. 이 길에는 그 많던 들꽃들이 보이지 않고 과음죽밭이 펼쳐져 끝까지 이어진다. 하산길은 산오름길을 추억하는 길이 된다. 수많은 여름꽃에 취하고 구름안개 피어오르는 신선의 풍경을 맛본 산행은 행복하다. 여름꽃들은 위대하다. 자연의 풍경은 신비하다. 박노해(1957~) 시인의 '여름 꽃은 우뚝하다'를 음미하며 이번 산행을 마무리한다.
세계가 불타고 있다는 듯/ 때이른 폭염이 오고/ 세상이 비관에 휩싸인 듯/ 기나긴 장마가 오고 // 먹구름 인 무거운 일상에/ 천둥이 치고, 바다가 울고,/ 거센 비바람이 대지를 휩쓸고/ 언뜻, 빛이 비춰올 때// 풍우 속에서도 수국꽃은 우뚝하다/ 장맛비 속에서도 백일홍은 의연하다/ 백합꽃도 초롱꽃도 꽃댕강도 바늘꽃도/ 그 가늘고 여린 몸 흔들며 피어나고 있다// 장마도 폭풍도 불볕도 지나간다고/ 것들이 없이는 강해질 수 없다고/ 아름답고 고귀한 것들은 다/ 온몸으로 견뎌내며 태어나는 거라고 // 난폭한 자들은 악을 쌓으며 자멸해가고/ 비바람 속에서도 여름 꽃은 우뚝하니/ 이 아침, 꽃들이 전하는 격려를 담아/ 그대의 안부를 타전한다" - 박노해의 '여름 꽃은 우뚝하다' 전문.
3.산행 과정
전체 산행 거리 :18.15km
전체 소요 시간 : 7시간 3분
국도제42호선 서동로의 강릉시 옥계면과 정선군 임계면의 경계를 이루는 백복령에서 북진한다.
백복령 표석 옆을 통과하여 철조망 쪽문을 열고 숲길로 들어가 북진한다.
백복령 표석 기단석 옆면에 백복령의 지명 유래에 대한 안내글이 적혀 있다.
「택리지」에서 백봉령으로 「여지도서」편에는 백복령, 일명 희복재라 하였으며 「증보문헌비고」에는 백복령으로 표기되어 있다. 현재 사용하는 백복령은 복령이라는 약초가 있는데, 이 중에서도 흰 복령이 많이 자생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1961. 4. 22 건설교통부고시」에 백복령으로 고시하였다. 1937년 42번 국도가 개설되기 전까지는 영동과 영서를 잇는 교통로로서 옛 조상들의 애환과 숨결이 묻어 있는 길이다.
백복령은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과 정선군 임계면 사이에 위치한 고개이다. 이 고개는 사료마다 한자가 달리 쓰여 있는 것이 특징이다. 『척주지』에는 백복령(白卜嶺), 『여지도서』에는 백복령(百福嶺), 『해동지도』에는 백복령(百腹嶺), 『1872년 지방지도』에는 백복령(白伏嶺), 『대동여지도』에는 백복령(白福嶺)으로 되어 있다. 현재 사용하는 백복령은 복령이라는 약초가 있는데, 이 중에서도 흰 복령이 많이 자생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1961. 4. 22. 건설교통부고시』에 백복령으로 고시하였다. 1937년 42번 국도가 개설되기 전까지는 영동과 영서를 잇는 교통로로서 옛 조상들의 애환과 숨결이 묻어있는 길이다. 원래 백두대간은 백복령을 거쳐 자병산으로 향해야 하나 현재는 석회석광산 개발로 자병산이 훼손되면서 백두대간이 단절되었다.
백복령 설명안내판에서 남진하는 원방재 방향을 뒤돌아 보았다.
백두대간 마루금은 자병산 방향인데 석회석광산 개발로 자병산이 훼손되면서 백두대간이 단절되었다.
왼쪽은 국도제42호선 서동로로 나가는 임도이다.
백두대간 마루금은 오른쪽 자병산 방향으로 이어지는데 자병산이 단절되어 임도를 가로질러 숲으로 들어간다.
백복령 0.5km, 생계령 4.6km 지점이다.
노루오줌 꽃 진분홍 빛이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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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에서 숲길로 들어와 올라오면, 바로 앞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올라가서 철탑을 통과한다.
철탑들이 이어지는데 철탑을 따라 올라왔다가 다시 철탑을 보면서 내려간다.
신갈나무가 우뚝하게 솟아 무성한 푸른 잎을 펄럭이고 있다.
향토음식점 갈림길에 카르스트 지형 설명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이 지역이 카르스트 지형인 것 같다.
고생대의 조선계 지층에 분포하는 석회암의 주성분인 탄산칼슘이 빗물과 지하수(이산화탄소를 함유한 물)의 작용으로 화학적 변화를 일으켜 물에 용해됨(용식)에 따라 암석이나 지층이 침식되는 일종의 화학적 풍화작용이다. 카르스트 지형의 가장 특징적인 것은 지하에 하천이 흐르고 있다는 점이며, 때때로 대규모의 석회암동굴(예: 종유동)과 표면에 돌리네라고 불리는 원형의 와지(움푹패여 웅덩이가 된 땅)가 형성 된다는 것이다. 강원도 삼척, 정선, 영월과 충북 단양 등지에 발달되어 있다.
임도에서 오른쪽 산길로 들어가 본격적인 백두대간 산행을 시작한다. 백복령 2.36km, 석병산 9.9km 지점이다. 임도를 따라 진행하면 향토음식점이 0.7km 지점에 있다.
주황색 꽃잎이 단정하다. 어느 겨울날 스님을 기다리다가 얼어죽은 동자를 묻은 곳에서 피어났다는 전설이 있다.
가파른 비탈길에서 산행의 어려움이 시작된다.
이곳 쉼터를 지나 짚신나물 노란 꽃들, 하늘말나리 주홍빛 꽃들이 줄지어 피어있는 완만한 산길을 오르내리다 빈터에 이른다.
마타리 노란 꽃들이 빈터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산길을 가며 동쪽으로 보면 자병산이 파헤쳐진 모습이 보인다.
해발 610m 생계령에 도착,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다.
생계령은 강릉시 옥계면 산계리와 정선군 임계면 직원리를 연결하는 고갯길로 임계지역에서 재배한 농산물과 옥계지역의 감, 소금, 해산물 등을 교류했던 교통로 역할을 했던 곳이다. 산계리로 넘나드는 고개라 하여 '산계령(山溪嶺)' 이라 일컫던 것이 강릉 사투리인 '생계령'으로 불렀다는 것이 유력한 지명유래이나, 옛날에 지관이 닭 두 마리를 울게 한 뒤 묘터를 잡았다 하여 '쌍계 雙鷄嶺)'으로 부르던 것이 생계령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생계령의 동쪽으로는 해안으로 산맥이 흘러내리는 형상이며, 서쪽으로는 석회암이 용해 · 침전되어 생기는 카르스트지형이 펼쳐지고 북쪽으로는 석병산, 남쪽으로는 자병산이 위치하고 있으나 안타깝게도 대규모 석회광산 개발로 인해 자병산이 훼손되어 백두대간 마루금이 단절된 구간이다.
생계령은 정선군 임계면 직원리와 강릉시 옥계면 산계리를 이어주는 고개이다. 석병산 6.8km 지점이다.
1.백두대간(白頭大幹)이란 : 백두산 장군봉에서 지리산 천왕봉까지 작은 내 하나 건너지 않고 높은 산의 능선으로만 연결된 총 연장 1,400km의 산줄기로 한반도의 등뼈라고 할 수 있습니다.
2.백두대간의 유래 : 18C 조선 영조대의 실학자 여암 신경준이 「산경표」에서 우리나라의 큰 산줄기를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구분하여 정리하고, 이중 기둥이 되는 가장 커다란 산줄기를 백두대간으로 정의하였습니다.
3.백두대간의 가치 :
◆ 우리민족의 상징 : 백두대간은 대륙을 향해 힘차게 뻗어 나가는 형상으로 우리민족의 기상을 담고 있습니다.
◆생태계의 중심축 : 우리나라 산줄기의 대부분은 백두대간에 뿌리를 두고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어 동물의 서식이나 이동 및 식물군의 개체 확산이 용이하여 종 다양성의 공급원이기도 합니다.
◆ 문화적 특성을 구획하는 울타리 : 백두대간은 한반도를 동서로 구분하여 영동·영서권, 영남 호남권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각 지역은 오랜 세월 동안 서로 다른 특색을 지니고 발전해 왔습니다.
4.생태계의 중심축으로서의 백두대간
자연은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후손들에게서 빌려 왔다고 합니다. 우리 삶의 터전이며 수많은 동·식물의 서식처이고 또한 이동 통로입니다. 맑은 공기와 각종 자원을 공급해 주는 고마운 존재입니다. 오로지 인간만이 자연을 파괴하고 질서를 어지럽힙니다. 자연이 없으면 인간도 없습니다.
생계령에서 829m 산봉으로 오르는 비탈길이 힘겹다. 오르는 도중에 강릉서대굴 설명안내판이 세워져 있는 곳을 통과한다.
강릉서대굴(江陵西臺窟), 강원도 기념물 제36호, 소재지 :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산계리
서대굴은 하부고생대 오르도비스기 [약 4억 8천만년전]에 퇴적된 조선누층군 석병산층 석회암 내에 형성되어 있다. 이 석회암지대에는 서대굴 외에도 옥계굴, 동대굴, 남대굴 등 수많은 석회동굴이 발달되어 있다. 석병산층은 주로 결정질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석회암 내에는 변성작용의 영향으로 변성광물이 포함되어 있다. 서대굴은 전형적인 석회동굴로, '동굴의 총 길이는 약 500m에 이른다. 동굴 내에는 수많은 작은 통로가 있으며, 주 통로의 길이는 약 300m이다. 동굴은 수평 통로와 수직 통로가 복합적으로 형성된 계단형 경사 동굴이며, 동굴은 전체적으로 여러 층을 보이는 다층 구조로 발달해 있다. 동굴 내에는 종유석, 석순, 석주, 유석, 커튼, 곡석 등 여러 종류의 동굴 생성물이 성장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 대규모로 발달한 휴석과 기형 종유석, 계란후라이형 석순과 동굴방패는 서대굴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지금까지 서대굴에서 발견된 동굴생물은 모두 19종이며, 이 중에서 갈르와벌레와 꼬리치레도롱뇽은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경위도 좌표 표지목이 세워져 있는 829m 산봉에 올랐다.
소나무 숲과 참나무 숲 지대를 지나면 기품 있는 노송 지대가 나온다.
쉼터전망대에서 동쪽으로 전망이 열려 있다.
쉼터전망대에서 동해 방향을 조망한다. 동해를 굽어보는 자병산의 몸이 파헤쳐져 있다.
급경사 비탈길을 올라가야 하는 922m 산봉이 앞에 보인다.
922m 산봉 오른쪽 뒤로 이어지는 석병산(왼쪽 나뭇잎에 가린 산봉)과 그 오른쪽 뾰족한 일월봉을 조망한다.
922m 산봉 오르는 비탈길이 힘겹다. 그늘사초들이 비탈길을 가득 채우고 있다.
922m 산봉 오르는 비탈길에 좀꿩의다리 꽃이 거센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922m 산봉 비탈길 물푸레나무 군락지를 통과한다.
922m 산봉 바로 아래에 오른쪽으로 열린 곳이 있다. 그곳에서 중앙의 석병산과 그 오른쪽 아래 뾰족한 일월봉을 조망한다.
석병산과 일월봉을 조망한 곳에 솔나리꽃이 피어 고개 숙이고 있다.
922봉을 오르다가, 석병산과 일월봉을 조망하고 솔나리꽃이 피어 있는 곳을 내려보았다.
힘겹게 올라온 922m 산봉에서 조망이 활짝 열려 있어 통쾌하다.
동해 바다가 보여야 하는데,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정중앙에 석병산이 보인다.
오른쪽에 석병산, 그 왼쪽에 두리봉, 왼쪽 뒤에 대관령을 가늠한다.
푸른여로 꽃은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오랜만에 만난다.
뒤돌아보니 922m 산봉이 우뚝하다.
개망초꽃 흐드러지게 핀 수풀을 헤치며 어렵게 전진한다.
삼각점봉에서 동쪽으로 동해 바다가 조망된다.
자병산 너머는 강릉시 옥계 지역의 동해 바다일텐데 투명하지 않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출발한다. 13:32
이정목에 거리 표시가 없으며, 오른쪽은 석회동굴로 이어진다.
백두대간(白頭大幹)이란 우리 땅의 근골을 이루고 있는 산줄기로서,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지리산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의 물줄기로도 끊이지 않고 이어진 산줄기를 말한다. 1,600여㎞에 달하는 백두대간은 백두산을 뿌리로 하여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한 개의 정간, 13개의 정맥으로 갈라진다. 마치 나무의 뿌리와 가지, 줄기가 펼쳐지는 것과 같다. 백두대간과 13개의 정맥들은 우리나라의 산줄기뿐만 아니라 물줄기 [水界]를 구분짓는다. 대간에서 갈래쳐 나온 산줄기는 모두 14개이다. 이것들은 열개의 큰 강을 가늠하는 울타리들이다. 석병산(石屛山, 바위가 병풍을 펼친 듯하다)의 높이는 1,055m이며, 백두대간이 지나는 하나의 산줄기로 웅장함과 화려함이 겸비된 산이다.
미역줄나무 덩굴이 우거져 진행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거리 표시 대신 소요 시간이 표시되어 있다. 걷는 속도는 산객에 따라 다르다. 일월봉까지 1시간 15분이 소요된다.
낙엽송 군락지, 신갈나무 군락지, 관음죽밭, 철쭉 군락지가 있는 완만한 능선을 오르면 백두대간 수목원 갈림길에 이른다
왼쪽이 백두대간 수목원, 오른쪽이 석병산 방향이다. 이정목의 백두대간 수목원 날개가 오른쪽에 떨어져 있어 옮겨놓았다. 백두대간 수목원 5.9km, 석병산 0.6km, 생계령 5.7km, 백복령 102km 지점이다.
석병산 140m 지점에 폐헬기장이 있다. 마타리꽃이 노랗게 피어 있다.
석병산 갈림길 백두대간 보호지역 안내판에 석병산 안내도와 석병산 안내글이 적혀 있다.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과 강릉시 옥계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는 1,055m 이다. 산 전체가 돌로 싸여 있어 바위(石)가 마치 병풍(屛)을 두른 것과 같다 하여 석병산이라고 한다. 백두대간의 웅장함과 화려함이 겸비된 산으로 바위 한가운데 둥근 구멍이 뚫린 일월문과 온 산이 불붙은 것 같은 철쭉 군락지가 있다.
석병산 앞쪽에 돌탑이 세워져 있고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는 산봉이다.
돌탑봉에서 맞은편에 보이는 석병산으로 간다.
왼쪽 뒤에 두리봉이 보인다.
오른쪽에 동해 바다가 길게 뻗쳐 있을 것이다. 앞의 바위는 일월문 바위이다.
백두대간이 두리봉에서 왼쪽으로 내리벋는다. 오른쪽 뒤는 대관령 방향, 왼쪽 뒤는 고루포기산 방향이다.
중앙에 골폭산과 발왕산을 어림한다. 백두대간 능선은 중앙 뒤쪽 두리봉에서 내리벋는 능선이다.
잎이 가느다란 돌마타리와 잎이 갈래진 금마타리가 석병산 정상에 함께 자라며 노란 꽃을 피우고 있다.
약 13분 동안 석병산 정상에 오르고 되돌아왔다. 두리봉 1.6km, 삽당령 6km를 향하여 내려간다.
석병산 0.8km, 두리봉 0.8km, 삽당령 5.2km 지점의 폐헬기장을 지난다.
물푸레나무와 신갈나무들이 자라고 관음죽밭이 펼쳐진 곳을 통과하여 내려갔다가 두리봉 비탈길을 오른다.
두리봉에는 넓은 터에 식탁이 마련되어 있으며, 삽당령 4.4km, 석병산 1.6km 지점이다. 두리봉은 만덕지맥 분기점이다.
강릉바우길 덕우리재 11.8km, 삽당령 4.3km 지점이다.
분포 : 전국의 주로 높은 산악지대에서 자란다.
형태 : 숙근성 여러해살이풀로 관엽, 관하식물이며 꽃은 3~4월에 핀다.
생육환경 : 깊은 산속의 낙엽수림 하부의 비옥한 땅에서 자란다.
잎 : 잎은 길이 6~12cm, 폭 2.5~5cm로서 엽병이 있으며 좁은 달걀모양 또는 긴 타원형이며 가장자리가 밋밋하지만 약간 주름이 지고 표면은 녹색바탕에 자주색 무늬가 있다.
꽃 : 봄철에 길이 25cm의 꽃대가 나오고 그 밑부분에 2개의 잎이 지면 가까이에 달린다. 꽃잎은 6개이고 피침형이며 길이 5~6cm, 폭 5~10cm로서 뒤로 밀리고 자주색이지만 안쪽 밑부분에 더욱 짙은 W자형의 무늬가 있다.
삽당령 3.3km, 석병산 2.7km 지점의 쉼터 앞쪽에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관음죽밭이 계속 펼쳐진다.
삽당령 2.2km, 두리봉 2.3km 지점이다. 왼쪽으로 내려간다.
관음죽밭이 계속 펼쳐진다. 석병산 4.1km, 삽당령 1.9km 지점이다.
수풀 속에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서 비탈길을 내려간다.
오른쪽 위 정선군 임계면에서 내려왔다. 왼쪽 아래 강릉시 왕산면으로 내려간다.
왼쪽은 외고단, 오른쪽 삽당령으로 꺾어간다.
앞에 이정목이 있는 곳에서 왼쪽으로 꺾어 내려간다. 석병산 5.3km, 삽당령 0.7km 지점이다.
삽당령 0.1km 지점이다. 임도를 가로질러 삽당령으로 내려간다.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송현리와 목계리 사이에 위치한 삽당령은 남북으로 놓여 있는데 백두대간이 지나가는 줄기에 있어 서쪽에는 대화실산과 대봉산이 있고 동쪽에는 두리봉과 석병산이 있다. 또한 강릉을 지나 동해로 흘러드는 강릉 남대천과 남한강 상류인 골지천으로 만나는 송현천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예부터 강릉시와 정선군 임계면을 오가는 길로 이용되었으며, 현재는 강릉과 정선을 잇는 35번 국도가 지나간다. 삽당령은 산 정상의 생김새가 삼지창처럼 세 가닥으로 생겨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또한 이 고개를 넘을 때 길이 험하여 지팡이를 짚고 넘었으며 정상에 오르며 짚고 왔던 지팡이를 꽂아 놓고 갖다 하여 꽂을 '삽(揷)'자를 써 삽당령이 되었다고도 한다. 삽당령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강릉부의 서쪽 60리에 있는 정선으로 가는길'이라 하였고 정상에는 야생동물 이동통로가 있다.
왼쪽 서쪽에 백두대간 닭목령 방향으로 북진하는 곳에 삽당령 표석이 세워져 있다.
강릉시 왕산면 송현리 방향으로 야생동물 생태이동통로가 조성되어 있고 오른쪽에 삽당령 성황당이 있다.
조선 영조 재위 시절(1724~1776) 당시 삽운령이라 불리던 이곳 삽당령으로 갓 시집 온 새 신부(경북 안동 출신)가 밭일을 마치고 물동이를 이고 샘물을 길러 나갔다가 밤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아 마을 사람들이 온 골짜기를 뒤지며 찾기 시작 했는데 3일이 지나 찾게 된 새 신부는 헝클어진 머리만 남아 넓적한 바위 위에 놓여 있었다. 이에 마을사람들은 호랑이에게 화를 당했다고 생각했으며, 너무나 처참하고 괴이한 모습에 새 신부의 한이 깊을 것이라 여기고 시신을 수습하고 그 위치에 신각(성황당)을 세워 억울하게 호랑이에게 목숨을 잃은 새 신부의 혼을 위로하는 한편 삽당령을 오르내리는 길손의 안녕과 우마차의 무사고를 기원하며 매년 음력 8월 초정일이 되면 익히지 않은 제물과 황소의 머리 및 주요 부위를 정성껏 마련하여 마을 원님을 모시고 성황제를 지내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2014. 12. 31
국도제35호선이 삽당령을 남북으로 가른다. 삽당령은 강릉시 왕산면 목계리와 송현리의 경계를 이룬다. 삽당령에서 동쪽은 석병산 방향(오른쪽), 서쪽은 닭목령 방향(왼쪽)이다. 백봉령에서 석병산으로 북진하여 오른에서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