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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40대 이상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 드라마의 인기는 대단했다. LA 경찰 강력반 콜롬보 경위는 볼품없는 체구에 후줄근한 코트를 걸친 남자지만 날카로운 추리로 범인을 궁지에 몰아넣고, 마지막에는 덫을 놔서 범인 스스로 자백하게 만든다. ‘이별의 와인’은 와인을 소재로 한 최고 걸작이란 평을 듣는 작품이다.
내용을 간단하게 소개하면, 죽은 아버지가 남긴 와이너리의 사장이 된 형(범인)은 초특급 와인 마니아로, 채산성이 낮은 고급 와인 만들기에 몰두하거나 값비싼 와인을 사들이는 등 아버지의 유산을 와인에 쏟아 붓는다. 와인에 관심이 없는 이복 아우는 이에 화가 나 와이너리를 매각하려고 한다. 격분한 형은 남동생을 때리고 정신을 잃은 동생을 밀폐된 와인 저장고에 가둔다.
그는 와인 저장고의 에어컨을 끄고 남동생이 질식해 죽자 바다에 던져 넣고 스쿠버 다이빙 중에 익사한 것처럼 위장한다. 남동생이 질식사한 것은 쓰러진 지 이틀째로, 그때 형은 뉴욕에서 열리는 와인 옥션에 참가했기 때문에 알리바이는 완벽했다. 그러나 형이 뉴욕에 가 있는 동안 LA는 40도가 넘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고, 에어컨이 꺼진 와인 저장고 안에 있던 1945년산 포트와인이 열에 상해 버렸다. 이로 인해 형의 범행이 밝혀진다는 내용이다.
나는 10대에 이 드라마를 보고 ‘와인이라는 술은 열에 약한가 보다’라고만 생각하고 말았는데, 와인을 나름대로 알게 된 지금은 전혀 다른 재미를 느낀다. 먼저, 등장하는 와인 애호가들은 “근사한 클라레다!”라고 말하며 여러 차례 적포도주를 마시는데, 클라레(claret)는 영국인이 보르도 와인에 붙인 명칭으로 보르도의 강 왼쪽과 오른쪽 와인을 통틀어 부르는 칭호다.
1급 샤토건 무명 샤토건 전부 클라레. 등장인물들은 마치 “보르도 와인이면 전부 맛있다”고 말하고 싶은 듯하다. 이 드라마가 제작된 해는 35년 전으로 미국 와인이 프랑스 와인과의 블라인드 대결에서 처음 승리한 1976년보다도 3년 앞선다. 이 드라마를 보면 당시 미국인들 사이에 프랑스 와인에 대한 ‘신앙’이 존재했음을 잘 알 수 있다.
또 하나 이상한 점은 셀러의 온도가 올라가서 포트와인이 상한 사실을 콜롬보가 지적할 때까지 범인이 몰랐다는 것이다. 40도가 넘는 고온에 장시간 노출되면 많은 와인은 병 밖으로 액체가 흘러 넘친다. 알코올 도수가 높고 열에 강한 포트와인이 상할 정도면 셀러 안에 있는 와인은 전부 거품을 뿜고 있어야 마땅하다.
이처럼 허술한 부분도 많지만 명장면도 있다. 범인이 비서의 반대를 물리치고 병당 5000달러나 하는 와인을 낙찰받았을 때다. 그는 쓸쓸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이 와인이 지나치게 비싼 것은 사실이야. 하지만 인생은 턱없이 짧아. 슬프도록.” 와인 때문에 인생을 망친 남자의 혼잣말이 내 가슴에 사뭇 크게 와 닿는다. 번역 설은미
와인으로 유명한 보르도는 대서양 연안의 항구도시로, 한때 영국이 지배했던 탓에 지금도 영국풍 느낌을 곳곳에 간직하고 있다. 보르도 시내 ‘보르도투어리즘 센터’에서는 매일 유명 샤토에 들러 와인 테이스팅을 즐길 수 있는 당일 여행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