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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겨울 오후 광교, 백운, 바라산 종주
1. 일자 : 2012. 12. 1(토)
2. 장소 : 광교산(582m), 백운산(567m), 바라산(482m)
3. 행로 및 시간
[경기대 입구(12:40) -> 문암재(13:08) -> 백년수정상(13:28) -> (380계단) -> 형제봉(13:46, 448m) -> 종루봉(14:15) -> 토끼재(14:24) -> 시루봉(14:44) -> 노루목 대피소(14:52) -> 억새밭(15:07) -> 전망바위(15:14) -> 백운산(15:27) -> 이정표(15:58, 고분재 625m) -> 고분재(16:09) -> 바라산(16:24) -> 바라산재(16:43) -> 산림욕장 입구(17:06) -> 빨간풍차(1715)]
4. 동행 : 홀로
< 광교-백운-바라 산행을 준비하여 >
한창 등산에 재미를 붙여가던 시절 (아마도 2007년일 것임), 어느 산꾼의 산행기에서 동절기 광교산-백운산-바라산 종주 산행기를 읽고 ‘눈 쌓인 그 험한 산을 무슨 재주로 7시간 이상 걷는 다는 말인가’하고 의아해 하며, 부럽기는 하지만 나와는 딴 세상 사람의 이야기로 치부했던 기억이 있다. 세월은 흐르고 남의 산행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시샘도 내던 그 초보 산꾼이 100대 명산 완주를 눈 앞에 둔 ‘초보 딱지를 떼어낸 산쟁이’로 변해 가고 있다. 아직 베테랑 이라고 칭하기는 이르지만, 광교-백운-바라 종주를 크게 어려움 없이 머리 속에 그리는 수준은 된 것 같다.
토요 오후 산행이다. 회사 출근 했다가 산에 간다 했더니 가족들의 눈초리가 늘 그렇듯 냉냉하다. 평소 우리 어머니 말씀대로 ‘산에 가면 돈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하는 반응이다. 생각해 보면, 등산은 경제성이나 효율과는 거리가 멀다. 휴일의 한가로움과 휴식을 포기하고, 적지 않은 돈을 들여가며 장거리 이동을 하고, 몸을 혹사시키는 행위, 등산은 어차피 산 밑 사람들의 계산법으론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아무래도 산 위 행위의 계산은 눈금이 흐리고 칸이 듬성듬성한 산 저울로만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야 할 길을 그려본다. 광교산은 등산로 주변 소나무가 멋져 명상에 잠기기 좋은 산이며, 백운산은 어느 방향으로 올라도 그 높이에 비해 가파른 산이며, 바라산은 정상에서 바라보는 호수의 풍광이 그만인 산이다. 경기대 입구에서 길을 나선다면 광교산까지 식사 포함 넉넉잡아 3시간, 광교-백운 능선 1시간, 바라산을 거쳐 백운호수까지 2시간 총 6시간의 여정이 될 것 같다. 어둠이 내려 앉을 무렵 백운호수로 내려올 것 같다. 계획을 구체화 하니 마음은 풍선이 된다. 날아올라 보자. 하하!
(실제 산행은 4시간 45분이 소요되었다. 쉼 없이 걸은 결과다.)
< 희망사항 >
지난 10월 초 북한산 12성문 종주를 계기로 다짐했던, 근교 산 종주산행이 관악산-삼성산 종주를 지나 광교산-백운산-바라산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사실 아무리 근교라 하지만 반나절 만에 몇 개의 산을 종주한다는 것이 마음 먹는다고 쉽게 되는 일이 아닌지라, 괜히 헛 공약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었으나, 이렇게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지켜나가게 되니 기쁘다. 습관이라는 것이 무섭고 사람의 의지와 꿈이라는 것은 그 지평을 얼마든지 넓혀 나갈 수 있음을 새삼 확인한다.
이번 산행은 500미터 대의 3개의 산을 반나절 만에 넘는다는 것과 평소와는 반대 반향으로 길을 걷는다는 것이 의미 있다. 퍼즐의 조각을 완성해 가는 느낌이다. 같은 산의 다른 길을 걷는 것은 색다른 느낌일 것이다. 익숙한 것에서 새로움을 찾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산을 종주하고도 토요일 저녁 시간을 휴식과 독서에 쓸 수 있다는 여유가 마음을 가볍게 한다. 근교 산행의 매력이다. 백운호수 하산 후 시원한 막국수 한 사발을 먹었으면 좋겠다. 또, 하하!
(여기까지는 산행 전 준비과정을 기록한 것이고 실제 산행은 이와는 달랐다.)
< 광교 저수지 가는 길 >
회사에 출근해서 오랜만에 한가하게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11시가 조금 지난 시각 길을 나선다. 의왕시청 앞에서 301번 버스를 탔는데 1번 국도를 타지 않고 파장동에서 지방도를 따라 수원 외곽을 돈다. 덕분에 평소 보지 못했던 수원의 모습을 차창으로 나마 둘러 보았다.
장안문에 내려 버스를 갈아 타러 가는 길, 수원성의 잘생기고 도도한 모습이 눈을 자극한다. 늘 길 건너서만 보다가 성문 바로 밑을 지나는 행운이 생긴 김에 카메라로 그 멋진 모습을 담아본다. 성곽과 문루의 조화가 환상이다. 수원성은 세계에 자랑할 만한 우리의 유산임에 틀림없다.
< 장안문의 위용 >
12시가 다 되어 산행 들머리 광교 저수지 입구에 도착했다. 날이 참 좋다. 그래서인지 배가 고프다. 망설이다.‘동태찌개 잘 하는 집’이라는 허름한 간판에 끌려 안으로 들어간다. 왠지 모를 고수의 풍모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자리에 앉는다. 고수가 운영하는 대개의 맛 집이 그렇듯 주인은 무뚝뚝하다. 동태찌개를 주문하고 물을 따르는데 단제손님이 들어오고 순십간에 가게 안은 만원이 된다. 반찬이 놓여지는 순서가 바뀐다, 이 경우 우선순위는 소위 ‘쪽수’인가 보다. 잠시 기다리다 항의를 하려는 순간 내 몫의 반찬이 나온다. 갓 무쳐진, 양념에 듬뿍 버무린 콩나물 과 통짜 김 두 장과 양념장에 서운한 마음은 녹아 버린다. 찌개가 오기도 전에 밥은 반이 내 입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후 나온 동태찌개는 그 양도 재료의 질도 최상급이다. 게다가 일 인분 인데도 냄비에 다시 끊여 준다. 제대로 된 대접을 받은 기분이다. 공기밥 한 그릇을 뚝딱하고 라면사리 하나를 더 먹었는데도 찌개는 남아 있다. 이렇게 맛나고 푸짐한 동태찌개는 처음이다. ‘동태찌개 끝내주게 잘 하는 집’은 허언이 아니었다. 계산을 마치고 주인장께 잘 먹었다고 인사를 건네자 그제서야 입가에 미소가 옅게 미친다. 고수에게서 만이 느끼는 여유이다.
포만감을 안고 광교 저수지 앞에 선다. 이리 부른 배로 산에 오를 수 있을까 모르겠다. ㅋㅋ
< 광교저수지에서 시루봉 >
반딧불이 화장실 옆으로 난 비탈을 따라 길을 나선다. 가능한 천천히 천천히를 속으로 되내이며 길에 적응한다. 올 겨울 가장 춥다는 예보와는 달리 등산하기에 최적의 날씨이다. 기온은 차지만 바람이 없어서인가 보다. 완만한 기울기의 걷기 좋은 숲 길이 계속된다. 연인끼리 부부끼리 때론 나처럼 혼자인 산객들이 한가한 휴일 오후를 즐기고 있다. 길가 나무는 일본산 리기다 소나무가 대세다. 이 겨울에도 녹색의 기운을 뽐내고 있는 모습이 고맙다.
< 광교 저수지 풍경 / 소나무가 있는 길 >
출근 30여 분 만에 문암재에 닿는다. 형제봉까지 1.8km가 남았다. 해지기 전에 하산하려면 서둘러야겠다. 다시 20분 후 백년수 정상에 도착했다. 이제부터는 형제봉으로 가는 오름이 시작된다. 긴 계단이 놓여 있다, 일명 형제봉 380계단이다. 인공시설물이 없었을 때도 별 어려움 없이 산길을 다녔는데 자꾸 늘어가는 데크 길이 반갑지 만은 않다.
< 형제봉에서 / 형제봉에서 본 용인 시가지 >
1시 45분 형제봉에 도착했다. 개인적 의견일지 몰라도 형제봉에서 보는 전망이 그래도 광교산에서는 최고이다. 바위 전망대에 서면 시야가 거의 360도로 트여 있어 좋다. 연무와 역광으로 인해 좋은 그림이 나오지는 않는다. 형제봉까지 1시간이라, 예상보다 빠른 행보다. 몸도 산에 적응이 다 되었겠다. 이제부터 속도를 내어 보자.
< 광교산의 소나무들 >
계단을 내려와 볕이 잘 드는 무덤을 지나 종루봉으로 향햔다. 광교산에서 비고(比高) 가장 큰 지역으로 길이 만만치 않다. 다시 긴 계단이 이어진다. 계단 중간에 큰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 출발 전 말했듯이 광교산은 멋진 소나무 군락이 많은 산이다. 고도가 높아갈수록 초입의 리기다와는 비교를 거부하는 순 토종의 잘 생긴 소나무들이 힘겨운 발걸음에 청량제가 되어 준다.
김준용 장군 승전비 위쪽 긴 오르막은 쉼 없이 걷는 길의 최대 고비였다. 된비알을 올라서자 종루봉의 정자가 나를 반긴다. 출발 후 처음으로 물 한 모금을 마신다. 이곳은 여러 번 와 보았지만 현판에는 눈 길을 주지 않았는데 오늘은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산 중의 좋은 친구는 숲 속의 새요, 세상에서 가장 맑은 소리는 돌 위에 흐르는 물소리다” 평범한 글귀지만 힘겨운 비탈 길을 지난 산객에게는 글을 읽는 동안 잠시 쉼을 가져볼 수 있어 좋았다.
< 종루봉에서 >
계단 길을 내려선다. 소나무 사이로 미군 통신부대의 모습이 아스라하다. 모처럼 보는 먼 풍경이다. 종루봉에서 시루봉 가는 길은 상대적으로 거리도 짧고 길도 덜 가파르다. 길을 나선 지 2시간이 가까워진다. 홀로 걷는 산행 길에는 쉼이 없다. 그저 사진 찍고 물 마시는 순간이 쉼이다. 토끼재를 지나 언덕을 치고 오르자, 광교산의 정수리 시루봉이 나타났다. 작은 공간이 인파로 붐빈다. 삼각점 위에 앉아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긴다.
이리 맑은 날인데도 옅은 연무로 시야는 그리 멀리 가지 않는다. 대도시 산의 한계인가 보다. 짧은 휴식 끝에 다시 길을 나선다.
< 시루봉에서 >
< 시루봉에서 백운산 >
용인방향으로 난 대로에는 눈 길만 주고 바위로 시작되는 백운산 길로 접어든다.
< 노루목 대피소 / 억새밭 >
시루봉에서 백운산으로 향하는 길은 고도 차가 거의 없는 그야말로 ‘꽃 길’이다. 광교산을 지나서인지 인파에서도 자유로운 호젓한 산 길은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들기 그만이다. 오랜 시간을 꿋꿋이 산 길에 동반자가 되어 준 굽은 소나무가 주는 풍경도 근사하다. 못 보던 새 통신 철탑들이 스카이라인을 새롭게 만들고 있다. 말이 나온 김에 백운산 인근의 철탑을 살펴보면 한국군, 민간 통신사, 미군의 미적 감각 차이를 확연히 알 수 있다. 우중충한 군대 문화를 대변하는 한국군의 볼품없는 탑, 새로 지어 형상은 거대하나 촌스러운 주황색이 눈에 거슬리는 민간 통신사의 탑, 높지는 않지만 흰 색과 진한 붉은색의 조화가 멋진 미국 통신탑. 이 작은 차이는 힘의 크기로도 보여진다. 언제나 우리 군에도 디자인의 감각이 살아날런지, 그 좋은 인적 자원을 어디다 쓰는지 자못 궁금하다.
< 광교-백운 능선의 통신탑 >
억새밭을 지나고 (상징적 의미로 억새밭을 조성해 놓았는데 그 규모가 초라하다.) 평소 오르던 바위 전망대에서 수도권 남부의 산군을 조망해 보고는 백운산으로 향한다. 예전에는 매디슨 부대 정문 양 옆으로 길이 나 있었는데 이제는 우측으로만 일방통행이다. 대신 부대 뒤편으로 나무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응달이어서 겨울철에 늘 다니기 쉽지 않았던 길이 정비되어 있었다.
< 백운산 정상에서 >
3시 30분 무렵 오늘의 두 번째 목표 백운산에 도착했다. 못 보던 정자가 나를 반긴다. 그러고 보니 정상석 앞, 예전에 낭떠러지였던 곳에도 전망대가 세워져 있고 커다란 지도도 보인다. 그간의 변화에 놀라고 의왕시의 백운산에 대한 투자에도 놀란다. 벌써 석양의 기운이 느껴지는 벤치에 앉아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긴다. 정상 주변의 달라진 풍광을 보니, 세상은 참 빠르게 변하고 있다.
< 백운산에서 바라산 지나 백운호수 >
백운산의 변화는 바라산으로 향하는 내리막 길에서도 확연히 확인되었다. 긴 응달 비탈길이 이어져 겨울에는 눈으로, 봄에는 진흙 뻘로 변하던 길이 목책과 계단으로 깨끗이 정비되어 있다. 등산을 막 시작하던 무렵 아이젠 없이 내려가던 이 길은 그야말로 공포였는데,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길의 변화는 이 뿐이 아니었다. 조금만 위험하다 싶으면 영락없이 계단과 목책이다. 의왕시에서는 산 길이 아니라 산책로를 만들 작정인가 보다.
< 백운산에서 바라산 가는 길의 전경 >
4시가 가까워진다. 하늘에 주황색의 기운이 느껴진다. 짧은 겨울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나 보다. 고분재를 지나 바래산으로 오르는 언덕에서 바라보는 바라산 정상은 온통 주홍빛이다. 산의 갈색이 빛을 받아 붉은 기운들 토해내고 있다.
이윽고 도착한 바라산 정상. 백운호수의 전망이 눈에 들어온다. 생각만큼 감동적이지 않다. 그 뒤로 모락산과 수리산의 산그리메가 보인다. 역시 별로이다. 모두 연무란 놈 때문이다. 한가할 것이라고 생각한 바라산 정상에는 비박을 하려는지 커다란 배낭을 멘 산꾼들로 분주하다. 초겨울 산에서의 불편한 잠자리를 마다하지 않는 그들의 기상에서 진정한 산사나이의 풍모를 느껴본다.
< 바라산 정상에서 >
4시 30분, 이제 어째야 하나! 답은 뻔하지만 그래도 걷는 행위에 관성이 붙었는지 그냥 산을 내려가기가 싫어진다. 바라산재로 향하는 긴 계단 앞에 선다. 이제 산도 어두워져 간다. 새로 놓인 계단의 붉은 목책이 시선을 자극한다. 바라산은 붉은색이 어울리는 곳인가 보다.
무심코 내려가던 계단 길, 동양화가 그려진 작은 간판이 발 길을 멈추게 한다. 계단을 따라 24절기의 변화가 목판에 새겨져 있다. 소설(小雪)에서부터 내 인지는 시작된다. 아, 대설이 다음 주로 구나, 동지를 지나 한 겨울로 접어든다. 이렇게 계속된 계단 길 표식은 입춘에서 끝이 났다. 입춘이란 글자를 보니 이제 막 접어드려 하는 겨울의 초입에서 벌써 봄을 찾으려 한다. 그래, 겨울보다는 봄이라는 말이 훨씬 희망적이지. 하하
바라산재에서 길이 나뉜다. 우측으로는 고기리 서광사 방면, 직직하면 우담산 넘어 청계산 길, 좌측으로 북골로 가야 하는데 금줄이 처 있다. 바라산산림욕장 공사 관계로 들어갈 수 없단다. ‘누구 맘대로’ 하는 생각에 금줄을 넘는다. 한동안 예전 숲 길이 이지더니, ‘천지개벽’ 거대한 공사판이 벌어지고 있다. 두 대의 포크레인이 길을 막는다. 우회 길을 찾아 한참을 돈다. 아차 했지만 앞으로 만들어질 산림욕장에 대한 궁금증으로 내처 길을 내려간다. 입간판 정보에 따르면 내년 12월에는 우리 동네에도 근사한 산림욕장 하나가 만들어진단다. 고마울 따름이다.
< 가을의 잔재 >
< 에필로그 >
어둠이 내려 앉을 무렵 백운호수 근방 빨간풍차 앞에 선다. 감나무 가지에 붉은 열매가 애처롭게 남아 있다. 또 한 해의 가을은 이렇게 가나 보다.
광교-백운-바라산 종주 산행이 마무리된다. 생각보다 짧았고, 화려한 풍경은 없었지만 평범한 속에서 계절의 흐름을 느꼈던 산행이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