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거리 (박노해:땅의 안식:레위: 19,23-25;25,2-4)
그 해 가을이 가습게 익어 가도
우리 집 감나무는 허전했다
이웃집엔 발갛게 인은 감들이
가지가 휘어질 듯 탐스러운데
학교에서 돌아온 허기진 나는
밭 일하는 어머님을 찾아가 징징거렸다
왜 우리 감나무만 감이 안 열린당가
응 해거리하는 중이란다
감나무도 산 목숨이어서
작년에 뿌리가 너무 힘을 많이 써부러서
올해는 꽃도 열매도 피우지 않고
시방 뿌리 힘을 키우는 중이란다
해거리할 땐 위를 쳐다보지 말고
밭 아래를 지켜봐야 하는 법이란다
그 해 가을이 다 가도록 나는
위를 쳐다보며 더는 징징대지 않았다
땅속의 뿌리가 들으라고 나무 밑에 엎드려서
나무야 심내라 나무야 심내라
땅심아 들어라 땅심아 들어라
배고픈 만큼 소리치곤 했다
어머니는 가을걷이를 마치신 후
감나무 밑둥에 볏짚을 덮어주며
성호를 그으셨다
꽃과 열매를 보려거든 먼저 허리 굽혀
땅심과 뿌리를 보살펴야 하는 거라며
정직한 비움으로 해거리를 잘 사는게
다시 희망을 키우는 길이라며.
*해거리:순 우리말로 성경의 ‘땅의 안식’이다.
성경본문 말씀을 신앙과 삶의 지혜로 풀어내신 시인의 어머님,
안식이란 성경언어와 신학을 아름답고 쉬운 시로 풀어낸 시인에게
경탄과 감사를........
땅의 안식(레위 19,23-25;25,2-4)
“너희가 그 땅에 들어가 온갖 과일나무를 심을 경우, 그 과일들을 할례 받지 않은 포피로 여겨야 한다. 세 해 동안 그것들은 할례 받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과일들을 먹어서는 안 된다. 넷째 해의 과일들은 주님께 바쳐야 하고(햇곡식) 다섯 째 해부터는 너희가 그 과일들을 먹을 수 있다. 이는 너희의 소출이 많아지게 하려는 것이다. 나는 주 너의 하느님이다.”(레위 19,23-25)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으로 너희가 들어가면 그 땅도 주님의 안식을 지켜야 한다. 너희는 여섯 해 동안 밭에 씨를 뿌리고, 여섯 해 동안 포도원을 갖고 그 소출을 거두어라. 그러나 일곱째 해는 안식년으로 땅을 위한 안식의 해 곧 주님의 안식년이다. 너희는 밭의 씨를 뿌려서도 안 되고 포도원을 가꾸어서도 안 된다(레위 2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