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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밤이면 어김없이 들리는 소리가 있다. 바로 ‘메밀묵 사려~’하는 묵 장수들의 소리다.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들리던 그 소리. 그래서 겨울밤이 더 정겨운지도 모르겠다. 그 맛 좋은 묵이 몸에도 좋고 다이어트에도 그만이라고 하니 오늘 저녁에는 고소한 묵 한사발이 어떨까.
묵은 곡식 또는 나무열매나 뿌리 따위를 맷돌이나 분쇄기에 갈아서 가라앉힌 후 그 앙금을 물과 함께 죽 쑤듯이 되게 쑤어 식혀서 굳힌 것으로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음식이다. 묵은 포(泡), 묵 등으로 불렸다. 묵을 언제부터 식용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도토리묵의 주재료인 도토리가 신석기시대의 유적지에서 출토된 것으로 보아 묵의 역사가 상당히 오랜 된 것으로 보인다. 묵의 종류는 도토리묵, 메밀묵, 청포묵 등 재료에 따라 다양하다. 지금은 계절에 상관없이 먹지만 청포묵은 봄, 올챙이묵은 여름, 도토리묵은 가을, 메밀묵은 겨울에 먹어야 제격이다.
옛 정취 느낄 수 있는 우리의 오래된 기호식품 묵이 가지고 있는 영양소를 보면 묵은 수분 함량이 80% 이상으로 열량이 적으면서 포만감을 주는 다이어트 식품이다. 밥 한 공기(약 210g)가 300㎉인 것을 기준으로 보면 묵의 칼로리는 100g 당 약 40~60㎉ 정도이다. 메밀묵, 청포묵 등은 수분 비율이 85~90% 정도 되기 때문에 칼로리는 비슷하다. 묵은 칼로리는 낮고 포만감이 커서 배부른 느낌을 주기 때문에 다이어트에 좋은 식품이다. 최근의 각종 연구에서도 항암 효과에 좋다는 발표가 있다. 그러나 1~2회 식용으로 의약적인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건강식품으로 혹은 옛 고향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기호식품으로 자리 매김 하여야 할 것이다.
도토리, 메밀, 녹두 등 묵의 재료는 약리적인 효과가 있는데, 도토리는 피로회복 및 숙취해소에 좋고 당뇨 등 성인병에도 좋다. 특히 도토리 속에 함유된 아콘산은 인체 내부의 중금속 및 여러 유해물질을 체외로 배출시키는 작용을 한다. 메밀은 루틴이 모세혈관의 투과성을 억제하여 약해지는 것을 방지하며 장과 위를 튼튼하게 하고 정신을 맑게 한다. 청포묵을 만드는 녹두는 성질이 차고 해열 및 해독에 효과가 있고, 피부미용에 좋다.
묵 만들어지는 과정은 메밀, 녹두, 도토리 등을 물에 불려 갈아서 앙금을 내어 윗물은 버리고 가라앉은 전분만 말린 다음 가루를 내어 풀 쑤듯이 쑤어 식힌 음식이다. 묵은 전분에 물을 넣고 가열하여 끓으면 전분이 열에 의해 걸쭉하게 호화 된다. 걸쭉해진 전분을 식히면 다시 굳어지면서 칼로 썰 수 있을 정도가 되면 묵이 완성된 것으로 쫀득한 맛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전분이 열에 의해 호화되고 식으면 다시 굳어 겔화되는 원리이다. 묵을 집에서 만드는 방법은 묵의 재료로 쓰일 수 있는 각종 전분 가루를 구입해서 만들 수 있다. 도토리가루, 청포가루, 메밀가루를 이용해서 가루 1컵, 찬물 6컵을 준비하여 섞은 후 서서히 끓이기 시작한다. 끓기 시작하면 양에 따라 5~10분간 약한 불로 충분히 더 끓여서 뜸을 들인 후 묵을 적당한 용기에 담아 자연 응고시킨 후 썰어서 양념과 같이 먹으면 된다.
묵 떫은맛에는 식초, 살짝 데쳐 탄력 살리는 센스
묵을 이용해 만든 음식으로는 메밀을 깨끗이 씻어 불려 껍질을 제거하고 맷돌에 갈아 앙금을 내어 풀을 쑤듯 끓인다. 일정한 틀에 붓고 차게 식혀서 썰어 먹는 메밀묵, 밤 껍질을 벗겨 물을 조금씩 부으면서 맷돌에 간 다음 고운체로 거른다. 가라앉은 녹말을 말려 녹말가루를 만든 다음, 물을 4배 넣어 걸쭉하게 끓여 묵을 쑤어 용기에 부어 굳히는 밤묵, 옥수수 알을 물에 담가 충분히 불려 물을 계속 부으면서 맷돌에 간다. 고운 체 또는 자루에 담아 짜서 녹말을 가라앉힌다. 맑은 물을 따라내고 앙금과 녹말가루를 합한 것에 물을 5배 부어서 섞는다. 중불 위에 올려 계속 저으면서 묵을 쑨다. 주걱으로 가운데에 세워 쓰러지지 않을 정도가 되면 불을 끄고 구멍이 있는 틀에 쏟아 밑에 냉수를 받은 자배기에 대고 흔든다. 뜨거운 풀이 냉수에 떨어지면서 올챙이처럼 굳는 모양이 생기게 만드는 올챙이묵, 청포묵은 가늘게 채 썰고 쇠고기는 채 썰어 간장 양념하여 볶고, 미나리, 숙주는 데쳐서 잘라 소금 양념한다. 준비된 재료와 깨소금, 참기름, 식초를 넣고 김을 부숴 무치는 청포묵 등이 있다.
냉장고 속에 들어 있는 묵은, 오래 두면 다시 노화되는 현상이 있기 때문에 먹을 만큼만 직접 집에서 만들거나 구입하는 게 가장 좋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 구입해서 쓰고 남은 것은 랩에 싸서 냉장보관을 하여 먹을 때 끓는 물에 1~2분정도 데치면 탄력이나 투명한 빛깔이 다시 살아난다. 묵의 떫은맛을 없애려면 물에 담가두거나 조리 시에 식초를 넣어 신맛을 주게 되면 떫은맛을 줄일 수 있다. 묵과 감은 함께 먹지 않는 것이 좋아 도토리묵과 궁합이 맞지 않는 식품으로는 감을 들 수 있다. 도토리는 주성분이 녹말이고 특수 성분으로 탄닌을 가지고 있다. 도토리묵을 먹고 후식으로 감이나 곶감을 먹는 것은 좋지 않다. 감이나 곶감에도 떫은맛을 못 느끼는 불용성 탄닌이 존재하기 때문에 탄닌이 많은 식품을 곁들여 먹으면 변비가 심해질 뿐 아니라 적혈구를 만드는 철분이 탄닌과 결합해서 빈혈증이 나타나기 쉽다. 그러므로 도토리묵과 감은 궁합이 안 맞는 식품이다.
묵의 구입 및 감별법으로는 묵은 손가락으로 누르면 탄력 좋게 눌린 자리가 바로 원상태로 돌아가고 살짝 두드리면 탱탱하게 탄력이 있으며 색이 말갛고 투명한 것이 좋은 녹말로 만든 것이다. 메밀묵은 색이 일정하며 툭툭 끊어지는 것이 좋은 메밀로 만든 것이고, 도토리묵은 연한 갈색이 나며 손으로 만졌을 때 하늘하늘한 탄력이 있어야 한다. 청포묵은 색이 하얗고 투명한 것이어야 하고 올챙이묵은 노릇하고 뿌연 색감이 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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