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을 맞았습니다
- 속물이 진국으로 바뀌는 역사적 계기에 관하여
부활 제3주간 금요일; 2016. 4. 15
사도 ; 요한
사도의 모후집; 이기우 신부
지난 2008년은 ‘사도 바오로의 해’였습니다. 그가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소아시아를 누비며 활동하다가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해를 기점으로 정해진 것 같습니다. 그는 교회 이천 년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교사였기로, 온 세계 가톨릭 신자들이 그를 기리며 필요한 은총을 전구하자던 특별한 해였습니다.
소아시아에서 이집트에 이르자면 반드시 들러야 하는 교통의 요지 타르소에서 태어난 그는 그리스식 국제 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기하학, 수사학, 논리학이 그 주요 과목이었습니다. 그의 편지들을 찬찬히 훓어보면 그가 받은 교육의 영향이 느껴집니다. 논리적인 어법에다가, 반어법과 과장법 그리고 직설법과 은유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수사 기법은 현란하기까지 합니다. 게다가 기하학적인 상상력을 유감없이 발휘해서 동원하는 갖가지 비유들도 논리의 정곡을 찌르지요. 그 중에 압권은 코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에 담겨 있습니다. 코린토 항구를 내려다 보는 산의 정상에는 산당이 있어서 이집트에서 실려온 온갖 교역 물자의 무역으로 돈꽤나 번 코린토 사람들이 그 산당에 가서 여사제와 몸을 섞으면 풍요로운 재산과 다산의 축복을 받는다는 허무맹랑한 미신에 빠져 몸을 더럽히고 있던 코린토인들에게, 사도 바오로는 성전의 비유를 들려주었습니다. 그 결론은, “여러분의 몸은 성령께서 사시는 성전입니다.”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사도 바오로는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상대방의 부끄러운 경험을 소재로 하여 거룩한 권고를 폐부를 찌르듯이 던질 줄 아는, 그래서 처음에는 사적인 편지 글이 성경의 하나가 되게 하는 탈란트를 받은 선교사였던 것이지요.
여기서 더 나아가서 사도 바오로는, 몸의 신학도 전개했습니다. 기하학적인 입체 공간 지능이 물질로 이루어진 성전에 그치는 게 아니라 살아있는 하느님의 피조물인 몸으로까지 발전되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스도는 그 몸의 머리이시고 우리는 그 지체들입니다,” 지체들은 하나하나의 관절로 연결되어서 성령께서 부어주시는 은총의 혈액이 온 몸을 돌아 건강하게 하고 살아있는 몸이 더욱 성장하게 합니다. 그래서 온 교회가 한 몸이 됩니다. 더 나아가 죽은 다음에는 새로운 몸을 받아 부활하신 그분의 몸과 더욱 온전하게 하나되게 합니다. 이것이 코린토 전서 15장에 나오는 부활의 신학입니다. 놀라운 몸의 변화를 그는 부활로 이해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애초에 사울이라고 불리웠던 그를 벼락을 맞게 해서 돌려 세우신 데에는 제법 오랜 역사적 사연이 있어 보입니다. 그는 벤야민 지파 출신임을 늘 자랑스럽게 내세웠습니다. 비록 조국을 떠나 타국 땅 디아스포라에 살고 있었지만 조상의 정신적 뿌리를 잊지 않고 대대로 살아온 자부심의 표현이었을 것입니다. 벤야민 지파에서 역사상 가장 뛰어났던 인물은 이스라엘의 첫 임금이었던 사울 왕입니다. 그도 같은 이름을 받았지요. 그런데 사울 왕은 스승으로 모시던 사무엘 예언자의 경고를 어기고 전리품에 탐을 내다가 된서리를 맞았습니다. 왕위계승권을 박탈당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왕위를 아들에게 물려주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백성들의 민심 안에서 부각된 인물이 다윗이었는데, 사울 왕은 자기 허물은 생각지도 않고 다윗을 미워하여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의 아들인 요나단 왕자가 극력 다윗을 보호하지요. 보기 드문 우정으로 요나단은 다윗을 왕으로 올립니다. 그 자리는 자기가 올라갈 자리였음에도 그러했습니다. 당연히, 다윗으로서는 요나단이 고마울 수 밖에 없습니다. 인성으로 치면,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이시고 바오로는 요나단의 후손입니다. 그 은혜를 갚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벼락을 치시면서까지 바리사이적 열성에 불타서 예수장이들을 잡아들이려고 길길이 날뛰던 사울을 돌려세우신 게 아닌가 합니다.
실제로 그 일이 있은 후로 사울은 히브리식 이름 대신 로마식으로 불리웠습니다. 그와 그의 집안은 로마 시민권을 획득하고 있을 정도로 유복한 상인 집안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오로는 그 어떤 사도보다도 열성을 다해서 예수님의 복음을 그 당시 알려진 온 세계에 전했습니다. 그는 다른 사도들이 일하고 있는 지역은 극력 피했고, 베드로를 비롯한 소위 주류 사도들이 할례 받은 유다인들을 상대로 선교하는 것을 알고는 굳이 어렵기 짝이 없는 이방인 그것도 유식한 그리스 지식인 출신 이방인이나 유력한 로마 이방인이 아니라, 무식하고 가난한 이방인들을 상대로 복음을 전하고 다녔습니다. 보통 겸손으로는 흉내내기조차 어려운 처신입니다.
그가 활동한 기간은 어림잡아 한 20년 가량입니다. 그 가운데 첫 십여 년은 활동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못했습니다. 자기 화두를 풀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다마스쿠스로 가는 그 길에서 나타나신 분의 음성을 그는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벼락으로 눈을 멀게 한 그분에게 겨우 정신을 차린 바오로가 여쭈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러자 주변 사람들 아무도 모르는 가운데 바오로만 알아들을 수 있는 그러나 천둥 같은 소리가 들려왔더랬습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신성모독자요 성전모독자로 십자가에 달려 죽은 나자렛 예수가 하느님이셨던가? 이 수수께끼 같은 화두를 풀기 위해 바오로는 고향인 타르소에서, 모세가 계시 받은 시나이 산에서 또 동족 이스라엘 백성이 사십 년 동안 하느님의 뜻을 배우고 정화되어 가던, 시나이 산 그 아래 아라비아 사막에서 묵상하고 또 묵상했습니다. 그때까지 알고 있던 성경을 다시 한번 읽어보기도 했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아무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를 한 십 여 년, 드디어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분은 그리스도이시다!”
안티오키아 교회를 개척한, 키프러스 섬 출신 바르나바가 고향으로 찾아와서 함께 일하자고 권유한 것은 그 무렵이었습니다. 아직도 박해자의 전력을 꼬리표처럼 지니고 있던 바오로의 신원 보증인 노릇을 해 준 바르나바 덕분에 그는 예루살렘에 있던 사도들과도 친교의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하지만 예전의 동료들이었던 바리사이들은 이제 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들은 바오로가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어 선교여행을 하면서 곳곳에 공동체를 건설하는 내내 사발통문을 돌려서 방해 공작을 폈습니다. 그 탓에 바오로는 처음에 디아스포라의 회당에서 만난 유다인들에게 호응을 얻었다 싶으면 원인 모르게 여론이 나빠지고 곧바로 고초를 당해야 했습니다. 2차 선교여행에서 들렀던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서는 내쫓겨서 리스트라와 데르베까지 쫓겨가기도 했고, 특히 리스트라에서는 감옥에 갇혔다가 돌에 맞아 거의 죽을 뻔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루카의 마음을 움직여주셔서 거기서 첫 제자로 삼기도 했습니다. 하도 방해공작이 심해서 눈을 돌린 곳이 유럽으로 가는 관문이었던 필리피와 데살로니카였는데, 거기서도 감옥에 갇혔지만 천사를 시켜서 예수님께서는 바오로를 끄집어 내주셨습니다. 그 바람에 그리스를 가로질러서 아테네와 코린토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별 성과가 없는 듯이 보였지만, 오늘날 유럽 복음화의 본산이 되는 기적적인 일을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선교여행을 하는 동안 사도 바오로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만났던 예수님께서 던져주신 화두였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이신가? 그 결과로 그가 가는 곳곳에서 강조했던 바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그분과 하나되는 성체성사는 생전의 그분이 보여주신 모범대로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성찬이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천막을 만드는 고된 노동을 하면서 번 돈으로 그 비싼 양피지를 사서는 이런 확신을 자기가 건설한 공동체들에게 써 보냈습니다. 그 공동체들은 모임 때마다 성찬만 행한 것이 아니고 자신들에게 성찬을 통해 그리스도를 모시도록 가르쳐 준 바오로에 대한 기억으로 말씀의 전례를 거행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오늘날 우리 교회가 거행하는 말씀 전례의 전통이 생겨났습니다.
그는 타고난 조직가였습니다. 로마서 16장에 보면, 그가 세운 공동체에서 만났던 그리고 그가 이런 저런 곤경에서 요긴한 도움을 받았던 많은 평신도 선교사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가 조직했던 선교 네트워크의 흔적입니다. 다른 편지들은 모두 그가 다녀간 다음에 썼지만, 로마서만큼은 방문도 하기 전에 쓴 유일한 편지입니다. 그런데도 가장 깁니다. 마치 여러 차례 다녀오기라도 한 것처럼, 로마 공동체를 손바닥에 보듯이 자신의 깨달음 모두를 쏟아 붓고 있습니다.
그가 생전에 그토록 염원했던 생명의 빵을 그는 20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소아시아 곳곳을 다니며 주님께서 보시기에 기뻐하실만한 공동체를 세움으로써 증거했습니다. 그래서 가톨릭 교회는 물론, 그리스와 러시아 정교회 심지어 개신교회까지 우러러보는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가톨릭 교회 안에서는 물론 온 그리스도 교회 안에서 빼어난 선교사로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이천 년 그 어느 날에 다마스쿠스로 가다가 맞은 벼락 덕분입니다.
다시 말하면 율법으로야 누구 못지 않았던 열성파였으나 나자렛 예수가 하느님이심을 몰랐던 속물 같은 사울이, 벼락을 맞고 나서부터 팔자가 바뀌어서, 진정으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선포할 줄 아는 진짜 사도 바오로로 바뀌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속물이 진국으로 바뀌게 된 역사적 계기였습니다. 은총의 벼락을 맞은 셈입니다.
우리도 이 은총의 벼락을 맞으면, 아니 지금 맞고 있음을 깨닫기만 한다면, 우리도 자기만 아는 속물 근성을 탈출해서 다른 사람들 안에서 그분의 모습을 보는 해방을 맛보게 되는 변화가 올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진국이 되는 것입니다.
저도 예수 사제회 신부들을 위해 특별히 준비된 이 피정을 통해서, 특히 베르나르다 까다비드 수녀님을 통해서 엄청난 벼락을 맞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