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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충주는 국토의 중심에 위치하며 고구려시대에는 중원경이라 불리며 현재 남아 있는 유일한 고구려 중원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신립장군이 남한강을 배수진으로 왜군의 한양 진입을 차단하려 많은 희생을 치른 곳이기도 하다. 수질이 뛰어나 왕의 온천이라 불리우는 수안보 온천과 목계나루 근처의 양성온천단지가 있다.
남한강자락은 충주댐에 이르러 넓게 퍼지다 충주댐을 거쳐 괴산 속리산에서 발원하는 달천을 합수하여 여주를 향해 북진한다. 현재의 목계대교 근처에는 조선시대 세곡선의 출발지인 목계나루와 가흥창지가 남아 있다.
서울시민의 홍수조절과 충주 일대의 용수와 전기 공급을 목적으로 세워진, 규모면에서는 둘째, 발전시설용량 40만㎾에서는 최대의 수력발전소이다. 충주댐에 하류방향으로 흘러가다보면 조정지댐이 있다. 본 댐인 충주댐에서 내려 보내는 물의 수량을 일정하게 유지하여, 하류 지방의 용수로 활용을 하는 역할을 한다. 발전소에서 나온 전기는 교류전기이기 때문에 (직류전기는 배터리 충전처럼 저장이 가능하다) 생산하면 곧바로 소비해야 하는 단점이 있어 필요시만 발전기를 돌린다고 한다. 댐 근처에 충주유람선을 탈 수 있는 나루휴계소가 있다.
충주댐 충주나루휴게소 탄금대에서 본 남한강
가야인 우륵이 신라에 귀화하여 진흥왕의 보호를 받으며 가야금을 연주한 탄금대는 천년이 지나 임진왜란 당시 신립장군의 뜨거워진 활줄을 물에 적시며 전쟁에 임하였던 열두대라는 이름으로 남한강을 바라보고 있다. 문경새재를 미리 방어하였더라면 전세는 바뀔 수도 있었으리라.
고구려는 고국원왕 때의 국가위기를 소수림왕대에 국가 기반 체제 결속 강화등을 통해 안정을 취한 후 광개토대왕의 최대국방력을 장악하고 장수왕때 한성백제를 멸망 시킨후, 이 충주 중원지역을 차지한다. 한반도의 중심지이기에 백제와 신라를 동시에 견제하기엔 적당한 지역이었으리라. 중원 고구려비, 중앙탑(중원탑평리7층석탑), 충주산성, 대림산성, 장미산성이 삼국시대의 항쟁을 말해준다.
중원고구려비 중앙탑 충주산성에서 본 충주호
한강의 교통과 물자수송의 기능은 고려시대를 이어서 조선시대에도 지속적으로 이용되어져 왔다. 조선시대 지방의 현물로 거두어들인 조세를 선박으로 한양까지 운반하는 과정을 조운(漕運)이라 말한다. 지금이야 국세나 지방세를 현금으로 은행에 납부하면 간단하였지만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이 조운제도가 조선 경제의 원동력이었다. 조선 후기에는 대동법이 실시되면서 모든 조세를 곡물로 받아 세곡선(稅穀船)을 통해 세미를 육로나 내륙의 수로 또는 해로(海路)를 이용하여 한양의 경창(京倉) 즉, 용산의 강창으로 수송하였다. 조운의 출발지와 도착지 사이에 창고 시설을 설치하여 조창(漕倉), 수참(水站)이라 불렀고, 이 조창의 조세 수납과 반출을 감독, 관리하는 해운판관(海運判官), 수참판관(水站判官)이 있어 창고 행정을 맡았다.
운수방법으로 해운과 육운이 있으나, 육운의 도로상의 문제로 인해 해운이 발달하고 후에는 잦은 세곡선의 침몰등의 문제로 내륙 수로를 통해 세곡을 운송하게 된다. 그리하여 한강물줄기에 세곡선이 등장하게 되고, 이 충주의 목계나루가 옛 세곡선의 첫 출발지가 된다. 강원도와 충청도 일대, 경상도에서 거두어들인 세미(稅米)를 육로로 이송하여 이 나루터에서부터 남한강의 수운을 이용하여 첫 배를 한성까지 띄우는 곳이었다. 현재는 충주댐으로 유량과 유속이 줄었지만, 조선시대에는 큰 황포돛배 1척에 200가마의 세미를 실어 날을 수 있었던 아주 중요한 나루이다. 이곳에서 강 따라 올라가면 가흥창터가 남아 있다. 조창의 역할을 하던 곳이지만, 일제강점기에 다리와 철도가 놓이면서 나루와 조창의 기능이 없어지게 되었다. 조선시대 조창은 모두 9개소가 있었고 그 중 한강 연안에는 충주의 가흥창, 원주의 흥원창, 춘천의 소양강창의 3개의 창고시설이 있었다고 한다. 그 중 가흥창에서 수납한 세곡 물량은 경상도와 충청북도의 세곡으로 전체의 30%에 달하는 물량이었다고 하니 가흥창의 규모나 역할이 상당하였을 것이다. 배가 모이는 곳이는 교통의 요지이니 자연 사람이 모여서 장을 이룬다. 목계장터이다. 특히, 목계장은 중부내륙에 소금과 해산물이 거래되던 장으로 유명하였고 매년 봄과 가을에 뱃길이 무사하고 내륙의 장사가 잘되게 해달라는 제사인 목계 별신제가 줄다리기와 함께 열렸다. 목계의 시대적 변화를 지켜봤던 신경림 시인의 「목계장터」시비가 남아 있다.
목계나루 가흥장지 표지석도 없다 표지석 부근이 목계장터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 서리 맵차거든 풀 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민물 새우 끓어 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짐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하네
근대화로 인해 목계나루는 몰락의 기로에 서고 이로 인한 이곳 서민들의 삶의 애환이 담겨져 있는 시이다. 잠시 쉬었다 가더라도 목계의 인심을 기억하고, 말하고 싶어 했던 신경림 시인의 마음이 담아 있다. 남한강은 다시 흘러 흘러 아름다운 여주로 향한다.
여주
태백에서 발원한 한강은 백두대간을 따라 서향을 하다가 안산 칠현산에서 한남금북정맥으로 갈리어 지는 산세를 따라 북쪽을 향한다. 충주의 목계를 지나 남한강은 여주부근에서 청미천과 원주의 아름다운 섬강을 받아 여주에 들어서 새로운 여강이 된다.
남한강의 중류에는 한강의 상류에서 쓸어 온 퇴적물이 유량과 유속에 따라 작은 하중도를 형성하게 된다. 여의도, 난지도, 밤섬, 선유도, 미사리, 여주에서는 양섬 등이 대표적이다. 강원도의 첩첩산중을 휘돌아 가던 강물은 어느덧 산을 넓직히 밀어내고 넓은 평야 사이를 달려간다. 여강은 한강이 만들어 놓은 자연스러운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더 꾸미지도 않고 수수하지만 더 화려하게 우리들을 감싸 안는다. 조선시대에 여주는 나루를 통한 교통수단과 물자수송이 주류를 이뤘고 18개의 나루가 있어 전국 물류수송의 중심지였다. 지금의 도(道)에 해당하는 목(牧)으로서의 여주는 남한강의 4대 나루인 마포, 광나루, 이포, 조포나루 중 이포나루와 조포나루를 가지고 있을 만큼 물류거점지로서 한양으로 통하는 관문이었다.
남한강과 섬강이 만나는 지점에 흥원창지가 있다. 원주 인근의 평창, 영월, 정선, 횡성의 세곡을 수납, 보관하고 있다가 한양 경창으로 운송하던 곳이다. 강 건너 은담포의 고운 은빛 백사장이 햇살에 빛을 내고 뒷산자락의 절경과 함께 뽐내며 손짓을 한다. 여강에 비친 산자락은 섬강의 합수를 너그러이 받아들이며 강에 멋진 그림자를 드리운다. 명작가의 사진첩에서나 볼 수 있었던 절경이었다.
흥원창표지석 흥원창에서 본 섬강과 여강사이의 은담포 양섬
영릉(세종대왕릉)의 원찰이며 사나운 용마를 신력의 제압하였다는 신륵사는 깊은 산속과는 달리 강가에 세워져 있는 보기 드문 사찰이다. 남한강의 범람을 부처님의 신력으로 극복하고픈 간절한 기원에서 세워진 사찰이라 생각한다. 신륵사는 고려말 나옹선사, 목은 이색과 무학대사의 자취가 남아 있다. 그 중 나옹선사는 선(禪)과 교(敎)가 둘이 아님을 일컫는 불이사상(不二思想)의 토대 위에서 선을 이해하는 새로운 선풍을 일으키고 조선시대 불교 초석을 세우신 분이다.
「그대 무겁지 않은가, 탐욕도 성냄도 벗어놓게」 라는 시가 맘을 꽂는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남한강가에서 이뤄진 성스러운 나옹화상의 다비식에 문득 오버랩되는 갠지스강의 화장모습. 성스러운 강가의 여신 품에 들고 싶어하는 인도인의 생의 마지막 절실함이 연상된다.
여강의 하류에 이르면 삼국시대의 항쟁에 피해 갈 수 없는 전략적 요충지인 이포나루 근처에 파사산성이 있다. 삼국시대 산 정상을 감아 싼 파사산성은 남과 여장군의 내기에서 진 여장군의 형상을 한 마애여래불이 남아 있다. 무수히 오고가는 뱃사공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여래불의 염원이 여강을 보살피고 있는 듯하다. 파사산성 정상에서 본 여강은 끝에서 끝까지 눈길을 이어준다. 근처의 이름난 천서리막국수가 여강의 유명세를 대신한다.
4대강 사업에서 이포보 설치를 두고 환경시민단체들과 정부, 주민들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다. 허옇게 드러나는 강변의 속살들 위로 지나다니는 수 십대의 트럭과 포크레인이 내 마음도 긁어낸다. 누구를 위해야 하나, 인간일까, 자연일까........
신륵사 파사산성 이포나루 앞 이포대교
여강은 강물결 따라 햇살에 반짝이는 여울들을 볼 수 있다. 강속 생물들에게 새 숨을 불어주는 역할을 충실해 주느라 쉼 없이 들거럭거리며 흘러내리는 여울. 그 옆으로 생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수많은 하중도와 넓은 모래밭, 그 하늘을 미끄러지듯이 날아가는 이름 모를 새떼, 그리고 보이지는 않지만 수풀속의 수생, 수서 생물체들이 서로의 존재를 알리며 남한강에서 한데 잘 어우러져 신명나게 살아가는 모습에서 한강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살아있음을 느끼며 과연 남한강은 우리 조상들에게 베풀어 준 대 자연의 사랑이요, 은혜스러움이요, 너그러움임을 알게 한다.
여강은 넘어 넘어 양평으로 올라가 천(川)이 아닌 새로운 강(江)과 한 몸을 이루어 낸다.
첫댓글 내공녀 이시군요 역시나~~ 한강 부탁 합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