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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나고 싶었습니다 - 대담 / 본지 편집주간 임 애 월
조금씩 열리는 문을 통해 아름다움과 화해하기
김 영 자 시인
- 《한국시학》 부채시 전시회가 열리던 5월 하순 무렵
수원 팔달문 옆 <가빈> 갤러리에서 김영자 시인을 만났다.
참 오랜만인데도 시인님은 여전히 소녀처럼 맑은 모습으로
다정하게 손을 내밀어 주셨다. -
임애월 : 김영자 시인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십니다. 요 몇 년 코로나 때문에 서로 격조했지요?
김영자 : 임애월 편집주간님, 안녕하세요. 길고 지루한 코로나는 그동안 문학 활동에도 거리감을 두게 하고 많은 아픔을 주고 갔지만 어려움을 꿋꿋하게 이겨내고 건강하게 마주 뵙게 되어 정말로 반갑습니다.
임애월 : 공직에 계시다가 퇴직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근황이 궁금합니다.
김영자 : 조직생활을 마친 이후에 주부로 재취업(?) 했어요. 30여 년 직장을 다니면서 사실 김치 한 번 담그지 않고 주변의 도움만 받고 살아왔는데요. 요즘은 작은 텃밭을 가꾸면서 직접 기른 배추, 무로 김장도 하고 오이소박이, 깍두기 등등 살림살이에 새로운 재미를 붙여가고 있는 중이에요.
임애월 : 와우, 정말 좋은데 취업하셨네요.(웃음)
김영자 : 네, 그러면서 책을 읽으며 시 창작에 집중하기도 하고 가끔씩은 여행을 하거나 밤새워 영화를 보기도 합니다. 다음날 아침에 시간을 맞춰서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평일의 자유를 마음껏 즐기면서 사는 지금이 내 인생의 황금기 같아요.(웃음)
임애월 : 아주 좋아 보입니다. 30여년 공직에 충실하셨으니 그만한 보상은 당연히 받으셔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지금 살고 계시는 평택이 시인님 고향인가요?
김영자 : 아니요. 경기도 안성시 공도읍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평택은 제가 공직생활과 결혼을 하면서 정착해 살기 시작한 곳입니다. 제2의 고향이지요.
임애월 : 아하, 안성이 고향이군요.
어린 시절이나 중·고등학생 때 이야기 중에서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으면 들려주세요. 독자들은 시인님들의 성장기가 왠지 궁금하거든요. 참하고 모범적인 소녀였을 것 같긴 합니다만....(웃음)
김영자 : 제가 태어난 마을은 저수지가 있는 마을이었지요. 특히 저의 집은 저수지 언덕에 자리 잡고 있어서 보름달이 뜰 때면 수면 위로 달빛이 몽환적으로 피어올랐어요. 초등학교 가는 길은 논밭을 지나 산도 넘고 과수원 길도 지나야 학교에 도착할 수 있는 십리길이었지요.
임애월 : 십리면 4km 정도인데 어린 나이에 꽤 먼 길을 걸어 다니셨네요.
김영자 : 통학 길에 사계절의 꽃과 나무, 새와 나비, 개구리 울음, 추위와 더위 등 모든 것을 온몸으로 체험하며 학교에 다녔어요. 어린 마음에 읍내에 사는 친구들이 엄청 부러웠어요. 하지만 시를 쓰고부터는 그 머나먼 어린 시절 고향이 시 감성의 텃밭이자 저장고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학교생활은 주간님께서 보시는 눈이 정확하시네요.(웃음) 모범생으로 우등상장, 개근상장 등 모두 휩쓸었어요. 물론 글짓기상도요. 그래서 시인에 대한 꿈도 키워 갔던 것 같아요. 그런데 가난한 가정형편으로 성장기가 참으로 아프고 힘들었어요.
임애월 : 가정형편이 안 좋은데 공부는 잘 하는 모범생... 그 아픔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지요.
시인님께서는 시를 언제, 어떻게 처음 만났을지 궁금합니다.
김영자 : 어린 시절 막연히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었는데... 녹록치 않은 현실생활에 잊고 살다가 이십대 후반이 되어서야 시에 대한 지독한 열병을 앓았어요. 얼마나 지독했는지 저를 두 가지 갈림길에 내맡겼어요. 첫 번째는 더 이상 살 희망이 없다. 죽음으로 내 길을 가자였고, 두 번째로는 내 꿈인 시인이 되어서 어떻게든 살아가자. 물론 저는 두 번째 길을 선택했지요. 상처 난 한 마리 짐승처럼 많이 아프고 견딜 수 없는 삶을 살아내야 해서 죽을 만큼 치열하게 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첫 시집 해설을 맡아주신 김경린 선생님께 3년간 공부를 했는데 그때가 시를 처음 만나게 된 시간이지요.
임애월 : 1991년 《문학공간》으로 등단하셨는데 그 무렵이었나 봅니다.
김영자 : 네, 어떤 것을 이루려면 3년은 미쳐야 된다고 하잖아요. 그때 저는 죽음을 생각하면서도 내면 깊숙이 살고 싶은 의욕이 있었나 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시에 빠지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심정이어서 눈만 뜨면 시집을 읽고 한 줄의 시를 쓰기 위해서 꿈속에서도 시를 생각하며 살았던 때였지요.
임애월 : 되돌아보면 그 열정의 시간이 오늘의 시인님을 존재하게 한 셈이네요. 첫 시집 문은 조금 열려 있다를 1994년에 출간하셨지요?
김영자 : 등단하고 3년 만에 첫 시집을 출간했는데 소녀처럼 설레면서 꿈을 꾸는 것 같았답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제 시집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에 등단한 시인이 400여 명 정도라고 들었어요. 지금에 비하면 시인이 많지 않을 때라서 지역에서도 등단한 시인의 시집에 관심이 많았지요. 시집을 읽고 싶어 하는 사람마다 황송해서 한 권씩 드리다 보니 제가 보유할 시집은 파본 2권밖에 남아 있지 않더군요.(웃음)
임애월 : 첫 시집에 대한 설렘이 오죽했겠습니까.
스스로 키우는 말 속에
당신은 언제나
느낌으로만 살고
절룩이는 모습으로
문은 열려도
어둠의 등줄기
돌아보는 곳, 사방은
모두 벽이다
어둠의 모서리
땅 속 깊이 뿌리 내리며
길들였으니
‘온전한 모습으로
당신의 문을 열어주십시오‘
새벽마다
깨어나는 어휘들.
- 「문은 조금 열려 있다」 전문
첫 시집 표제시를 가져와 봤어요.
여기서 “당신”이 의미하는 대상은 詩가 되겠군요. “문”이 “조금 열려 있”는 그 틈으로 수없이 기웃거려도 “사방은 모두 벽”인 그 느낌...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부분이지요. 그 “어둠의 모서리”도요. “당신” 앞에서 혹은 뒤에서 날마다 “절룩이”며 서성거리다 늙어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바로 보이는 듯합니다.
김영자 : 네, 시를 공부하고 써가는 과정 중에 수없이 절망하면서 멀고 먼 창작의 길이 고통스럽기도 했지요. 한 줄 한 줄 높은 벽을 뛰어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환하게 문을 열고서 창창하게 서 있는 시와 만나고 싶었지만 시는 조금만 게으르면 금방 시적 감수성이 저만치 물러나 있어요.
또 한발을 딛고 나면 벽이 가로막혀 있고 문이 잠겨 있어서 수없이 절망하면서 시 창작의 길을 나아갔던 시절이었지요.
임애월 : 첫 시집 해설에서 김경린 시인은 “김영자 시인의 의식세계는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요소가 강한 것이 사실”이라면서 “이미지와 이미지의 연계작용에 의한 ‘하이 이미지’ 또는 ‘매크로 이미지’의 구축에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표출기법도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새로운 노력의 시도를 엿보게 한다”고 하셨어요.
김영자 : 김경린 선생님은 김수영, 박인환 시인등과 1949년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합동 시집을 출간하고 《후반기》 동인을 결성하여 모더니즘 시 활동을 하셨어요. 그러면서 1990년 전후로 후학들에게 현대시 창작기법 이론을 모더니즘 시론을 강의하셨습니다. 당시에 공부하면서 참신한 발상 표현기법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면서 시를 써왔어요. 그래서인지 첫 시집을 출간하고는 많은 문학지에서 원고청탁을 받았습니다.
임애월: 그러셨군요. 첫 시집 출간은 어떤 형태로든 강렬하기 마련인데, 지금에 와서 돌아볼 때 그때의 시인님 감정은 어떤 종류였을지 궁금합니다.
김영자 : 시를 향한 열정만큼 치열한 글쓰기를 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설레고 떨리는 마음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미숙함이 많았던 시절이기도 합니다.
투명한 것을 보면 온몸에 전율이 인다
하늘, 시, 꽃
꽃을 보면 모두
입술을 대어보고 싶다
의미 없이 건네주던 그의 사랑
하롱하롱 잎이 지는 꽃이었을까
불투명함 속에 함몰되는 두 눈
욕망과 질투심과 시기에
눈알을 굴리며
상처가 괴어 아픈 흔적을 남긴다
상처 위에 상처가 덧나면
살들은 투명해지는 것인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추한
음부를 내보이는
꽃들
내 곁에 와서 눕다.
- 「꽃들 내 곁에 와서 눕다」 전문
임애월 : 첫 시집에 실린 첫 번째 시를 읽어볼게요. 김경린 선생님의 해설처럼 시각과 촉각의 감각적 시어들이 짜릿한 어떤 감각을 불러내고 있네요. 이를테면 “전율” 같은 것 말입니다. “꽃”은 식물의 “음부” 맞는데... 사람들은 추하다고(?) 감추려드는 그곳을 식물들은 활짝 열어 당당하게 내보이며 자랑하지요. 아름다운 것들을 대부분 꽃으로 비유하고 상징하는 걸 보면 꽃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부”인 셈이네요.
김영자 : 꽃을 곁에 둘 수 있는 날들은 지금도 매혹적이지요. 제가 서른한 살에 등단하여 서른세 살에 첫 시집을 발간하였지요. 그때는 세상에서 마주치는 대상마다 유혹적이어서 내게로 오는 많은 것들이 꽃이 되어 부끄러움 없는 표정으로 당당하게 저와 함께 피어나기를 소망했어요. 일상의 상처와 아픔까지 들여다보고 또한 고독한 현대인들이 상처에 한 겹씩 꽃이 시들지라도 아름다운 새 잎을 피워내며 타인의 아픔까지 보듬고 함께 하려는 꿋꿋한 의지를 가진 이 시대의 여성성을 표상하고자 했어요.
임애월 : 꽃이 치명적으로 매혹적인 건 머잖아 자취도 없이 떨어지기 때문이 아닐까요.
두 번째 시집은 2000년도에 출간하셨어요. 自序에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자신도 함께 죽어가기도 했다는 대목이 있었는데 다음의 작품에서는 직접적인 이미지가 나타나 있군요.
4병동에서
누구나 지층으로 가라앉았다
부러진 다리, 멍든 육신, 위축된 세포
두려움을 안고
시간의 원형들이 굴절되어 바라보는 저 낯익은 얼굴
소리치지 않으며 흐린 눈빛들, 축축한 어둠 속을
표류하다가 기다리는 사람 막혀버린
병실에서 의사는 문을 열지 않았다
- 「길찾기 7」 전문
“4병동”과 “축축한 어둠 속”이 주는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죽음을 연상하게 됩니다. 의사도 “문을 열지 않”는 4병동, 무거운 침묵의 시간이 “지층으로 가라앉”고 있는 생과 사의 정점에서 시적화자가 받아 안아야 하는 피폐한 시간들이 모서리가 닫혀버린 “문”을 통해 그대로 멈춰버린 것 같아요.
김영자 : 인생 한가운데의 삶일 수 있는 삼십대 후반에 저는 많이 피폐해져 있었지요. 그때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는데 어린 시절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외로움 속에 시작한 결혼생활은 평탄치가 않았어요. 너무 젊은 나이에 가족의 투병 생활로 직장생활과 병간호를 병행해야 했지요. 아침 일찍 출근도 해야 했고 어린 아들의 양육과 밤을 새워 하는 병간호는 저를 처절한 삶의 현장으로 내몰았지요. 그때 생사를 넘나드는 가족을 옆에서 바라보는 고통은 환자는 물론이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까지 어둡고 암울하게 하여서 시집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처절하고 아픈 시가 주류를 이루었네요.
임애월 :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여러 번 목도한 저도 그 죽음이라는 현상과는 아직도 도무지 친숙해지지가 않습니다. 살아있는 생명체라면 누구나 거치는 통과의례인데도 말입니다.
김영자 : 사실 두 번째 시집을 낸 2000년 전후의 삶은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은 황금빛 시간을 보내며 젊고 아름다운 가정을 가꾸어가고 화목한 아이들의 웃음을 이야기하던 시절이었어요. 그런데 저는 삼십대 나이에 생과 사의 기로를 맞닥뜨리며 병실을 오가고 두려움과 죽음의 공포에 짓눌려 살아갔지요. 모든 길이 막혀 있는 막다른 삶의 기로에서 시를 통하여 죽음에 대한 성찰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어요.
임애월 : 죽음은 하나의 작은 우주가 소멸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죽음도 그저 평범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김영자 : 황동규 시인의 「풍장」을 읽고서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어요. 서른일곱 살 나이에 죽음 같은 삶을 살아가는 나와 우리 모두가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그래서 인간은 누구나 바람과 물, 꽃, 나무, 흙, 바다, 강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삶과 죽음은 공존하며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현실 삶에서 정신의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새로운 인식의 깨달음으로 가는 계기가 되어갔던 때었어요.
임애월 : 그래서 이 두 번째 시집에서는 슬프고 어둡고 눅눅한 세계에서 “문”과 “길” 두 시어를 통해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고자 모색하는 과정이 연작시 「길 찾기」에 잘 드러나고 있군요. 수많은 길들 중에서 화자가 나아갈 그 길을 찾는 일은 어쩌면 가장 숭고한 행위이기도 합니다. “그녀의 몸은 길을 원한다/수많은 열림을 원한다/길들은 세상을 향하여 쏟아진다”는 연작시의 마지막 작품 「길 찾기 33」에서 보이듯이 “길”은 세상을 향해 열려있으므로 어느 길로 걸어 들어갈 것인지 망설이고 갈등하는 시간이 곧 우리네들의 삶이 아닐까요?
김영자 : 여리고 가냘프던 내적 심성은 치유할 수 없는 아픔을 겪으면서 방향을 알 수 없는 ‘길 찾기’의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현실적인 인생행로와 자신의 내면세계로 더 깊이 침잠해가는 사유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극으로 충돌하는 내적 갈등은 삶의 방향의 지표마저 잃게 되었지요.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마침내 아픔과 슬픔의 늪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모색 ‘길 찾기’를 하였지요.
고통은 사람을 더 단단하고 성숙하게 하여서 마침내 의연하게 세상과 소통하는 삶의 방향성을 찾아가게 되었지요. 사람들은 모두 세상과 연결되어 있는 길을 찾아서 아름답게 걸어가고 있는데요. 저는 그 길을 찾기 위해 참 많이 아팠던 것 같아요.
임애월 : 고통이 때로는 어떤 방향성을 제시하기도 하지요.
이 시집의 표제시 「아름다움과 화해를 하다」도 읽어볼게요.
어느 날
햇빛이 찬란한 오후
꽃피우지 못했던
음습한 터널을 지나
온몸의 실핏줄이 일어서는
그대 향한 그리움
길 위에서
아름다움과 화해를 했던 저녁
지난날은
그림자에 가려진 어둠뿐이었네
머언 길 돌아서 맨발로
걸어서 온 길
그대에게 이르러
햇살의 알갱이들 찬란하여라
- 「아름다움과 화해를 하다」 전문
“길 찾기”의 그 길이 마침내 보이는군요. 김 시인님이 찾은 길은 결국 “아름다움”이었나요. 물론 그 아름다움이 내포하는 의미는 끝없이 확장되겠지만 “맨발로 걸어서” 찾아낸 그 길은, “그대”로 형상화되는 “아름다움”이었고 그 안에서는 “햇살의 알갱이들 찬란하여” 만물이 환하게 빛나는 시간들만이 전개되는 곳이겠지요. “어둠”과 이별하고 마침내 찾아낸 “햇살” 속으로 걸어가는 화자의 뒷모습이 한결 가벼워 보입니다.
김영자 : 어느 날 살아있는 사람의 숨결은 마침내 햇빛의 찬란한 빛을 바라볼 수 있는 길을 찾아 걸어 나가는 길에 다다르게 되네요. 고통의 늪에서 벗어나 이제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 절박했던 자신과 세상을 향해 아프지만 새로운 세계로 향하려는 의지를 시에 투영하였습니다. 사실 지금은 머나먼 일이 되었지만 그때를 다시 들여다보는 시간은 쉽지가 않았어요. 하지만 그런 아픔을 거치고 나서야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한 줄기 빛을 향해서 걸어 나올 수 있는 계기를 가질 수 있었지요.
임애월 : 고통을 통해 더 견고하게 다져진 시인님의 의지가 가리키는 “길”의 방향성을 알 것도 같습니다. 뚱딴지같은 유치한 질문 하나 할게요. 시인님께서는 살아가는 가장 궁극적인 가치를 어디에 두시는지요?
김영자 : 아니 뚱딴지 아니고 어려운 질문 같은데요.(웃음) 그래서 굉장히 진지해지네요. 그동안 자기 내면에 침잠되어 주변은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시간이 많았어요. 이제는 나만의 틀에서 벗어나 시와 현실을 통하여 주변에 따뜻한 시선을 가지고 보다 더 진정성 있는 삶속에서 나와 주변인들과 더 나아가서 인류의 존재의 의미인 행복과 생명의 소중한 가치를 확대해 나아가는 일이라고 봐요.
임애월 : 답이 너무 거시적이어서... 어째 살짝 회피하는 듯한 이 느낌은 저만의 착각인가요?(웃음)
평택시민예술대학에서 시창작 강의도 하셨잖아요? 후배 시인들을 많이 배출하셨을 텐데, 비교적 기억에 오래 남는 제자는 몇 명이나 있나요?
김영자 : 부족하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열정만큼 문학을 꿈꾸는 지역주민들께 나누고 싶어서 시의 텃밭을 일구면서 평택시민대학에서 7년 정도 강의를 했어요. 그중에 많은 분들이 지금은 좋은 작품을 쓰면서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지요. 제자라기보다는 오랫동안 친구처럼 각별하게 지내는 사람이 5명 정도 있어요. 함께 문학 활동도 하고 여행도 하면서 시가 있는 삶을 더불어 행복한 동행자로 지내고 있지요.(웃음)
임애월 : 수확(?)이 좋은 편이십니다.(웃음) 함께 시의 길을 동행할 수 있는 친구 같은 이들이 5명이나 되니 부자가 따로 없네요.
2014년에 출간하신 세 번째 시집 푸른 잎에 상처를 내다 작품해설에서 박남희 시인은 ‘김영자 시인은 내면에 “바다”와 “달”을 품고 있다. 달은 스스로의 인력으로 바다에 파도를 일으킨다. 시인의 내면에서 소용돌이치는 파도의 본질은 사랑이다. 그녀의 시가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그 안에 살아서 꿈틀거리는 사랑이 있기 때문’이라고 평하셨네요.
김영자 : 인생을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눈다고 하면 세 번째 시집을 발간할 때는 내 인생의 한 여름이라는 생각이었어요. 그 시절에 온 몸에 바다와 달을 싣고 다녔던 나날이었지요. 바다와 달은 상징적으로 모성성과 여성성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라고 볼 때 깊은 내면의식에 자리 잡은 모성과 욕망을 동시에 표상하면서 어머니라는 이름과 여자이고 싶은 심리상태를 이분법적으로 표현했어도 공통된 귀결점은 거친 파도를 넘어 마침내 사랑에 다다르려는 의지인 거죠.
임애월 : “달”과 “바다”는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지요. 달은 보기에는 고요하고 서늘한 모습을 지니고 있지만 그 인력으로 바다를 끌어당기거나 밀어내기도 하는, 감춰진 그 힘의 크기가 대단하잖아요. 태양은 대놓고 막강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외향적인 존재인 것에 비해 반면, 달은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는 밤하늘에 고요하게 자리 잡고서 은밀하게 그 실력과시를 하므로 내면적인 성격이나 여성성을 대변한다고 하지요. 사실 김 시인님의 작품 속에는 요즘도 “바다‘와 “달”이 자주 등장하는 걸 볼 수 있거든요.
김영자 : ‘바다와 달’은 저와 뗄 수 없는 관계 속에 있어요. 밤물결에 고요히 내려앉은 달빛은 소리 없이 퍼져나가 어둠을 환하게 비춰 주지요. 앞날이 불투명하여 이 세상 고뇌란 모두 내 것인 양 짊어지고 살았던 때에 심리불안을 토닥여 주는 유일한 안식의 대상이었어요. 바다는 더 넓은 세계로 나아고자 하는 의식의 흐름이 세상과 조우하며 스스로 파도를 헤쳐 나가고 상처까지 끌어안으며 강하게 살아가는 여성성의 주체의식의 흐름이 반영 되었지요.
그해 우리 동네 저수지에 달이 알몸으로 들어왔다 경숙이모가 빠져죽었다던 그날 밤, 떠오른 달빛이 수면 위로 가득했다 저수지에 달이 환하면 처녀가 죽어나간다고 엄마는 혀를 끌끌 찼다 내 몸이 열리는 것이 두려웠다 몸에 가시달린 붉은 꽃이 처음으로 피었다 몸을 찌르는 꽃들 저수지로 달려 나가 남몰래 수면 위를 바라보았다 칠흑 같은 수면 엄마 처녀가 되는 일이 무서워요 네게 이제 눈썹달이 들어온 거란다 점점 차오르는 네 몸 안에 있는 달을 아무에게나 보여주면 안 된다 여자는 자기 몸 안에 소중한 달을 몸에 하나씩 품고 사는 거란다 가난한 집은 고향에서 처녀가 되지 못하지, 내 몸은 타향에서 만월로 차올랐다 출렁이는 아들 둘을 낳고 몸에서 달이 조금씩 기울어져간다 몸에서 빠져나간 달이 고향 저수지에 가득 차오르자 건너 마을 처녀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저수지 수면 위에서 흰 비늘을 털고 있는 무수한 달들.
- 「저수지의 달」 전문
임애월: 몽환적인 달빛 속에서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엄마”와 “내 몸” 안에서 꿈틀거리는 알몸의 달이 한편으로는 굉장히 육감적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가시 달린 붉은 꽃”으로 표현된 여성들의 달거리는 양성평등이 요원하던 시대를 대변하는 시어로 사용되었네요. 그건 분명 ”가시“가 아니고 숭고하고도 자연스러운 모성의 출발점이니까요. 여자여서 억압되었던 시대적가치가 지층처럼 켜켜이 고여 있다가 작품으로 분출되는 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김영자 : 달빛의 강한 힘은 모성성과 수면 위에 찰랑거리는 여성의 근원적인 욕망을 통해서 본질적인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신비롭고 몽환적인 빛을 내뿜으며 어둠의 세상을 환하게 비추어 가는 모습은 주체의식을 갖고 살아가는 여성으로서의 모습을 담아가는 과정이지요.
섬을 한 겹 구부릴 때마다
속지로 끼여 있던 어둠이 출렁여
먼 바다로 건너간다
오랫동안 불빛이 차단되어
항로를 찾지 못해 웅크리고 있다
바람은 적막을 일으켜 세운다
접히지 않는 창문을 밀고 들어와
서로의 머리채를 잡고 흔들어대다
습관적이듯이 방파제에 이내 쳐 박힌다
불도 없는 어둠 속에서
어머니 걸핏하면 문고리에 이마를 짓찧었다
머리끄덩이 잡힌 채 술 사오라는
아버지 입속에서
거대한 성난 파도가 튀어나온다
이리 밀리고 저리 부딪치는
어머니
나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이불 속에 접혀 있었다
오랫동안 암전된 시간
바다에
해가 지고 노을빛이 방류될 때
내 몸에
불이 켜지고 있다
- 「등대의 시간」 전문
임애월 : 《한국시학》 65호에 실린 이 작품에도 “바다”가 등장하네요. 남성 중심적인 사고로 지배되던 시대에, 굳이 두 눈을 내놓고 보지 않아도 정황이 그려지는 어린 화자의 시각 속에 박혀버린, 여성이어서 겪어야 했던 편협하고 무자비했던 시대적 통증이 찌르르 제게도 전해져 옵니다. 어렸을 적 동네에서 흔하게 보았던 우리들의 이야기, 그래서 더 가슴이 아픈 광경입니다. 미친 “파도”가 이곳저곳을 아수라장으로 만들 때 “이불 속에”서 멈춰버린 “암전된 시간”... 그 상처들은 흐르는 시간이 어느 정도 치유해 주었겠지만 內傷 깊었던 흉터들은 아직도 남아있어 고요하게 평정되던 의식 속을 가끔씩 헤집어 놓기도 하지요.
김영자 : 저는 어떻게 보면 어렸을 때부터 사랑의 부재 속에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봐요. 가난한 시골에서 아버지의 부재는 평생을 따라 다니며 망망한 바다 같은 외로움에 젖게 하였어요. 엄마는 어린 5남매를 데리고 가장으로 살아 가셨어요. 제가 어릴 때는 조선시대의 유교사상이 많이 잔존해 있던 시절이라서 사회적, 가정적으로도 남편이 부재중인 여자가 가장으로 살아가는 일은 순탄치가 않았어요.
임애월 : 그랬지요. 그 시대를 함께 건너온 사람으로서 격하게 공감합니다.
김영자 : 제가 어릴 때 돌아가신 아버지는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아요. 그런데 불행하게도 아버지의 술주정을 피해서 엄마와 이웃집에 맨발로 피신을 다니던 기억은 화인처럼 찍혀서 한 번씩 가슴을 후려치고 있네요. 내적으로 어둡고 슬픈 경험과 억압된 상처를 시를 통해서 한 겹씩 벗어내는 과정이라고 봐요.
임애월 : 시를 통해 한 겹 한 겹 치유해 나가는 과정이군요.
무덤 속에서 살지 네 년이 왜 푸르러지지?
일순간 비바람에 떨어지고 있네
오라비 입에서 폭우가 쏟아지고
번득이는 눈빛에서 천둥 내리치네
손발은 번개가 되어서 주변의 나무들을 쓰러뜨리고 있네
유년시절 가족에게 술주정이 심했던 아버지의 환영
오라비에게 달라붙어있네
그녀 심장에 달려있던 푸른 잎사귀들
방바닥으로 내쳐지고 있네 울지 않았네 그녀의
오래된 나무들이 쓰러져서 울고 있네
- 「태풍의 눈이 푸른 잎에 상처를 내다」 부분
“푸른 잎에 상처를 내”는 행위의 주체는 남성이고, 억압과 폭력이 “아버지”에서 “오라비”로 대물림되고, 그 “상처”를 받는 것은 여성이라는 암시가 주로 나타나는 이 시집의 작품들을 읽으며, 저는 이래저래 융화된 ‘사랑’ 보다는 性과 性으로 대치하고 대조되는 시적화자의 오랜 통증이 제 감정 속으로 아주 쉽게 전이되는 현상을 느낍니다. 깊숙이 묻어놓고 자물쇠를 채워 금기시하던 봉인된 비밀의 빗장이 스르르 열리고 있다고나 할까요.
김영자 : 가부장적인 사회 환경 속에서 아버지의 억압과 생명의 근원에 대한 정체성의 혼돈 속에서 살아야 했던 수많은 나날도 고통스러운데 또 다른 가족구성원이 아버지의 환영으로 나타나서 태풍을 몰고 와서 가슴에 여리게 붙어있던 푸르른 잎사귀를 모두 휩쓸고 갔지요.
임애월 : 억압과 폭력과 성차별이 난무하던 시대적인 고통을 “울지 않”는 “그녀”의 입을 통해 고발하고 있군요. 전체적으로 볼 때 시인님의 작품에서는 오감을 넘어선 새로운 감각이 꿈틀대고 있는 걸 느끼게 됩니다. 김경린 시인이 말했던 ‘이미지와 이미지의 연계’를 통해 새로 구성된 ‘매크로 이미지’인 셈인가요. 슬프고 아리지만 ‘전율’ 같은 감각을 흐르게 하는 묘한 매력이 독자들을 끌어당기고 있나봅니다.
김영자 : 서로 상처받고 굴곡진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아픔과 고통은 결국 나에게로 귀착되고 있었지요. 세상의 억압에 대한 해법 찾기와 새롭게 변화하는 시세계를 창출하여 나와 세계와의 관계의 간절함을 상징의 언어로 표현하고 이미지와 이미지를 결합하여 새로운 이미지즘을 창출하며 절제된 서사가 있고 사유의 깊이가 있는 내면세계를 확장하여 개인의 시적 개성을 살려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임애월 : 외적으로는 굉장히 정적으로 보이지만 시를 통해 격정을 쏟아내고 계시는 김영자 시인님께 시는 어떤 의미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요?
김영자 : 공기 같다고나 할까요. 저에게 없어서는 안 될 생명수이지요. 저에게 보다 더 아름다움으로 세상을 보게 하고 삶의 존재가치의 소중함과 타인과 세계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으로 작은 일에도 감동받고 일상의 삶을 가치 있게 구현할 수 있게 하였어요.
임애월 : 네, 그렇군요. 시인이어서 행복할 때는 언제이고 시인이어서 외로울 때는 언제일까요?
김영자 : 행복할 때는 한 편의 완성도 높은 시 작품이 탄생되는 순간과 개인 시집을 발간했을 때, 다른 시인이 쓴 시와 교감하며 문학인들과 아름다운 만남을 가졌을 때 등, 그러고 보니 시인이라서 많이 행복한 시간을 가졌네요.
외로울 때는 문학하는 사람에게 상처 받았을 때와 멀고 먼 내 아픔을 시를 통해서 자꾸 들여다보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네요.
임애월 : 다른 분야의 문제 하나를 갑자기 짚어보고 싶네요.
지구의 생태계는 인류의 목숨과 직접 연결되는 매우 중요한 환경이잖아요. 그런 관점에서 요즘 사회적으로 가장 핫한 이슈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 방류’ 문제인 것 같아요. 수산업계 전체가 비상이 걸린 것도 사실이고요. 시인님의 생각을 듣고 싶어요.
김영자 :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 방류’는 아직 과학적으로 안전하다고 밝혀진 것도 없는 사안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안해지는 것도 사실이잖아요. 저는 지구에 심각한 오염을 초래하고 인류 안전에도 치명적인 문제라고 봅니다.
임애월 : 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섭취하는 식품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수산물을 미래에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우리의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끝까지 막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영자 : 네. 그렇습니다. 오염수 해양 방류를 하면 ‘생태계교란과 인체 내부에 들어 왔을 때는 장기간 유전적 영향을 미친다’는 기사가 아니더라도 후손들이 안심하고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깨끗한 지구 환경을 위해서 우리 모두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임애월 : 퇴직하셨으니 요즘은 시간적 여유도 좀 있으시겠네요? 세 번째 시집을 발간한 지 10년이 다 되어 가는데 그 다음 시집은 언제 묶으실 계획이신가요?
김영자 : 새로운 시집이 나올 때는 직전 시집의 경향에서 변화를 가져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퇴직 전에는 제 시에 심도 깊은 모색과 새로운 시의 경향으로 나아가지 못했어요. 앞으로 새로운 시의 방향성과 문학성 깊은 시 창작을 위해서 요즘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있어요. 2~3년 후에는 좋은 시집으로 만날 수 있도록 노력중입니다.
임애월 : 시에 대해 겸손한 김 시인님의 자세는 시를 함부로 쓰는 시인들의 귀감이 되긴 하는데... 그래도 등단하신 지 30년이 훌쩍 지났는데 시집이 세 권이면 너무 과작 아닌가요?(웃음)
김영자 : (웃음) 시에게 굉장히 미안해지네요. 게으른 제 속마음을 들켜서요. 앞으로 더 열심히 쓰라는 말씀으로 듣겠습니다.
임애월 : 시 쓰기 말고 집중해서 해보고 싶은 일이 있으신지요?
김영자: 빡빡한 현실 속에서 이제 여유로움을 가졌으니 기회가 되면 해외여행을 하고 싶어요. 여행은 늘 새로운 풍경을 만날 수 있거든요. 그리고 여태 제대로 살아보지 못한 일상적이고 소소한 행복 누리기에 집중하고 싶어요.
임애월 : 소소한 행복누리기... 참 중요한 일입니다. 코로나도 엔데믹이 되었으니 이제 좋은 여행 다니시겠네요.
바쁘실 텐데 이렇게 시간 내주시고 자리를 함께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김영자 : 임애월 주간님, 긴 시간 동안 지루하고 답답한 제 얘기 들어 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 여성이어서 고통스러웠던 시대적 모순을
내부 깊숙이 감춰두고
시로써 고백하듯이 자신의 상처를 한 겹 한 겹
스스로 치유해 나가는 김영자 시인님,
이젠 어스름 그 달밤을 빠져나와
찬란하고 아름다운 태양 빛 속으로
걸어 나갈 시간이 된 것도 같다. -
■□ 시인의 자선시
사각에 갇히다 외 4편
김 영 자
모서리들이 길을 감추고 있다. 구석진 자리에 웅크려도 사각의 무늬들은 나를 깊은 구석으로 밀어 넣는다. 무수한 모서리 속에 점점 작아져서 나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베니어판 천장을 살찐 쥐가 사각사각 갉아먹고 있다. 어둠이 내린 들 품을 파는 홀어머니를 늦게까지 기다리다 잠이 든다. 사각의 천장은 꿈결에도 내게 자꾸만 달려든다.
어둠을 갉아먹어 몸집이 커진 쥐가 나를 노려본다. 술 취한 아버지가 사각 속에서 비틀거리며 걸어 나온다. 구석진 모서리가 나를 감춘다.
뚱뚱해진 쥐는 나를 보지 못한다.
천장들도 나를 보지 못한다. 아버지도 나를 보지 못한다. 나도 나를 보지 못한다.
만수저수지
물가에 오남매를 놓아두고
엄마는 자꾸 가슴에 열이 난다고 하였다
달빛 가득 끌어 들이는 저수지 밤 물속에서
가끔씩 붉은 꽃대가 올라오곤 하였다
엄마는 저수지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몇 번이나 신발을 벗어 놓고 수면 위를 걷다가 되돌아섰다
검은 물체가 후다닥 사라지는 어둠 저 너머로
물결이 일으키는 작은 파문만이 밤의 정적을 깨트렸다
아버지가 땅, 집문서를 하마 입으로 삼켜버린 뒤로
오남매는 저수지가에서 들꽃무더기 같이 자랐다
빚진 이웃들 가시덩굴이 엄마를 찔러서
때로는 저수지가 피로 흘러 넘쳤다
엄마 홀로 지키던 그 물가의 꽃대
어느 세월에 활짝 피워낸 오남매
물살이 상처 보듬어 주던 만수저수지에
오늘은 꽃물결이 일고 있다
화성행궁
포대 위에
검푸른 등허리로 사내들이 엎드려 있다
거친 숨결 소리를 들으면 밤을 지새운 달빛이 덮인다
돌담마다 잠자던 숨결들이 깨어나고 있다
운한각에 머물던 정조가 걸어 나오고
마구간의 말들도 어슬렁거린다
순식간에 기마병들이 연무장으로 집결을 한다
성 밖의 백성들이 눈을 부비며 쏟아져 나온다
왕이 가난한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고
흐뭇한 미소의 얼굴로 바라보다
연무대로 활을 쏘러간다
화살이 빗나간 듯 말들이 놀라서 뛰어간다
기마병이 돌담으로 숨어들고
혼미한 백성들이 성 밖으로 흩어진다
적막한 밤의 뒤주 속에서 울음소리 들리자
정조대왕도 모습을 감춘다
성을 지키던 남자들도 달빛 속으로 사라졌다
화성행궁에는 수백 년의 숨결이
성벽을 타고 넘실거리고 있다
영주 가는 길에
태양을 송두리째 삼킨 사과를 보며 어린 나는 늘 눈이 부셨다
땅 한 평 없는 우리 집은 사과 볕이 들지 않았다
사과 볕은 친구네 과수원에서만 찬란하게 빛났다
사과 몸속에 들어있는 해를
내 가슴에 자꾸 밀어 넣고 싶었다
과수원 길을 숱하게 지나다니면서도
나는 해의 몸을 딸 수가 없었다
오늘은 영주 가는 길
소백산맥의 부드러운 바람을 마주하며
가지 끝에 주렁주렁 열린 해를 본다
가을을 온통 담은 사과 볕
어느새
내 몸이 빨갛게 익고 있다
그녀 몸 안에 바다가 있다
그해 사월에 바다는 마른 갯벌 같은 그녀의 몸 안으로 들어왔다 오랫동안 썰물 진 바닷가 모래 등성이같이 서걱서걱해진 그녀 몸 안에 푸르른 바다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풀잎이 무성해지고 숲이 울창해지자 그녀 몸 구석구석까지 바다가 출렁거렸다 청명한 하늘과 해의 붉은 기운으로 그녀의 몸 밖으로 바다가 흘러 넘쳤다 사람들은 그녀에게서 넘치는 해풍냄새며 산호초며 말미잘 같은 것을 보기도 하였다 그녀가 걸어다니는 거리에는 먼 바다에서나 볼 수 있는 고래가 펄떡이며 힘찬 지느러미가 달린 물고기가 뛰어 오르기도 했다 아이들은 손을 흔들며 상어를 봤다고 소리쳤다 사람들은 섬 같은 그녀가 푸르른 바다를 이끌고 다닌다고 신기해하였다 바다인 그녀, 바다는 지금 싱싱한 알을 슬고 있는 중이다.
김영자 시인 약력
경기도 안성시 공도읍 만정리 출생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학예술학과 문예창작 석사과정 졸업
1991년 김경린 선생 추천으로 월간 《문학공간》으로 등단
1993년 『문은 조금 열려 있다』 출간
2000년 『아름다움과 화해를 하다』 출간
2014년 『푸른 잎에 상처를 내다』 출간
2014년 경기문화재단 문학창작 지원금 받음
경기도 문학상, 경기시인상, 평택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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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려운 삶의 역경들을 시로 이겨내는 김영자 시인님과
임애월 주간님의 대담이 가슴을 찡하게 하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