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에 대해서는 아주 조금은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박찬국 선생의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만을 확인한 것 같아
씁쓸하기 그지없다는 말로 이야기를 펼칠 수밖에 없습니다.
근대로 넘어오면서 철학이 복잡하고 까다로워졌다는 것을 처음 느낀 것은
아주 오래 전 칸트의 세 비판을 읽을 때였습니다.
읽어도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었는데
읽다 보면 조금은 알게 되지 않겠느냐 싶어 끝까지 다 읽는
미련한 시간 소모가 바로 그 세 권의 책 읽기였습니다.
책을 읽다가 중간에 놓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읽었던 건데
나중에 신학을 하기 위해 필요해서
슈라이엘마허와 키에르케고르, 우나무노 같은 이들의 책을 읽다 보니
헤겔을 읽어야 했고, 헤겔을 읽다 보니 결국 칸트까지 가다가
이전에 읽은 칸트의 세 비판서 앞에서 느꼈던 어려움이 떠올랐고
결국은 그 앞에 주저앉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근대철학의 경향들을 살피면서 칸트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지만,
아직도 칸트의 세 비판서를 읽을 엄두는 나지 않습니다.
까다롭고 복잡한 근대철학은 현대로 넘어오면서 난해해지기 시작한 것 같고
난해함의 문을 연 것이 하이데거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미뤄두었다가 지난 여름에 겨우 읽고는 조금 맛은 보았다 싶었고
그러다가 이 책이 눈에 띄어 얼른 뽑아 들었던 건데
읽으면서 오히려 더 미궁에 빠진 것 같은 어수선함,
쌓이고 엉킨 개념들을 정리해낸 하이데거의 천재적 재능은 위대하지만
이것이 철학의 울타리가 높아진 것이고
현대철학이 갖고 있는 극단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까다로움과 복잡함 그리고 난해함은
일반인과 철학을 갈라놓고 만 것이 아닌가 싶은 겁니다.
간명한 철학을 꿈꾸어보기도 하지만
그런 게 나올지는 알 수 없는 일,
삶의 한 복판에 ‘정신’을 세우고 살고 싶은 모두에게
길을 일러주는 이정표 같은 철학이 필요한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읽는 중에 하이데거의 중요한 개념을 정리할 수 있었던 것은
큰 수확이었습니다.
물론 어마어마한 그의 용어들을 다 정리하지 못했던 것은
내 불성실함이기도 하지만
정리하는 동안 약간은 질렸기 때문에
많은 것들을 놓치거나 흘렸다는 것은 미리 밝혀 둡니다.
백일흔, 통섭(統攝)의 인문학, 『지식의 통섭』
또 한 권의 참 좋은 책을 읽었습니다.
‘통섭’이라고 하는 주제가 좋았고
여기에 소개된 내용들 또한 모두가 그렇게 매끄러워 보인 것은 아니지만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훌륭한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프란시스 베이컨에 대한 사후 엇갈리는 평가에 대한 것도
전혀 몰랐던 일인데 새로움으로 다가왔고,
우리 근대사회를 살았던 학자 최한기의 학문적 세계를 살필 수 있었던 것도
가슴에 와서 꽂히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보다 중요하고 눈에 띄는 것은
윌러스틴이라는 위대한 인물이 있다는 것을
비로소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는 것은
그동안 내가 얼마나 얕은 지식의 물에서 헤엄치고 있었는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으로
두고두고 남을 만한 소중한 재산 하나를 얻은 일이었습니다.
윌러스틴의 책 『근대세계체제』 전 4권은
올해에 읽어야 할 책으로 머릿속에 담았습니다.
‘통섭’이라는 말은 몰랐지만
이에 대한 관심은 벌써부터 있었고,
『지식의 통섭』은 우리 시대의 다양한 학문 분야들이
서로 담을 쌓고 있는 듯한 분위기에서
학문이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정신을 회복하자는 말로 들려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는 것,
그리고 이에 대해 먼저 말을 꺼낸 윌슨이라는 이가 있고
그가 낸 책이 바로 『통섭: 지식의 대통합』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전문화된 각 분야들을 서로 꺼내놓고 이야기한다는 것과
분야를 넘나들며 이해를 도모한다는 것이
결코 간단하지 않을 것이지만
이 작업은 그것이 아무리 어렵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 열린 세계를 꿈꾸며 시도한 통섭의 학문적 마당에서 펼쳐낸
각 분야의 학자들이 그때 쓴 발제 자료들을 묶은 이 책은
우리 학문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이정표를 세운 일일 것이며
이 작업이 계속 이어져
훌륭한 한 그루의 나무로 자랐으면 좋겠다는 기대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그것을 정리하는 시간들에 있었던 모든 것이
참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날마다 좋은 날!!!
- 키작은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