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숙맥에서 픽업아티스트로
픽업아티스트들은 이성을 만나는 데 숙맥이었던 고객이 좋은 여성을 만났다고 알려올 때가 가장 기쁘다고 한다. 수입의 80~90%를 애인에게 쏟아부었는데도 이별 통보를 받고 아방궁을 찾은 한 남성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메이스는 그가 이별 통보를 받은 이유가 매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물론 해결책이 있다. “여자는 남자의 외모보다는 ‘이해심’과 ‘자신감’에서 매력을 느끼는 경우가 더 많거든요.” 메이스의 도움을 받은 남자는 지금 다른 여성과 열애 중이다.
메이스는 30대 직장인으로 고스트라는 별명을 가진 수강생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그분은 키가 158cm였어요. 그래서 20대 때 연애는 꿈도 꾸지 못했다고 말했어요.” 그에게는 픽업의 다양한 기술을 전수해주었다. 간접최면(대화 중 최면기법을 사용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술)·타로(카드를 통해 현혹하는 기술)·폰게임(문자·통화 등 전화로 상대를 유혹하는 기술)·콜드리딩(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상대의 마음을 읽어내는 기술) 등이었다. 마지막으로는 여성들이 선호하는 할리우드 스타일의 ‘댄디룩’과 ‘헤어스타일’까지 조언해준다. 그 후 고스트에게는 새로운 세상이 열렸음은 물론이다. 많은 여성을 만나보았고, 지금은 사랑하는 여성과 열애 중이라고 한다.
점심식사를 마친 픽업아티스트들이 방송 연습에 열중하는데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사무실을 찾았다. 9박 10일 과정인 프리미엄 강좌를 듣고 싶다고 했다. 픽업아티스트는 그에게 연애경험·나이· 직업과 수강 동기를 물었다. “도대체 이유를 모르겠어요. 연애를 두 번 해봤는데, 처음에는 3개월, 다음에는 3년 만났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다 깨졌어요.” 메이스는 그에게 이것저것을 차근차근 묻기 시작했다.
사실 메이스는 애초 픽업아티스트를 꿈꿀 처지가 아니었다. 여자를 만나본 경험이 한 번밖에 없는 연애 초보였다. 대학 시절 계속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여성을 사귈 기회도 없었단다. 그러다 2007년 어느 날 우연히 닐 스트라우스의 픽업아티스트에 관한 책을 읽고 그 세계에 눈뜨게 됐다. 그는 책에서 접한 연애 기술을 직접 적용해보면서 그 기술들을 한국 사정에 맞게 수정하고 보충해 자신 만의 ‘작업의 기술’을 완성했다. 2009년 한 해 동안 그가 만난 여성은 무려 300여 명. 믿기지 않을 정도다.
또 다른 픽업아티스트 오라클(29)은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이었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방도시에서 통닭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시나리오작가의 꿈을 키워왔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시나리오를 사겠다는 영화제작자가 나타났다. 그러나 그는 그 무렵 마침 짝사랑하던 한 여자에게 버림받고 심한 우울증을 앓던 처지였다. 시나리오 작업을 포기했다. 그의 오랜 꿈도 흐릿해졌다. 그때 그의 머리에 번쩍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픽업아티스트의 세계를 영화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연애술사 이야기를 담은 시나리오를 써보겠다고 그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간접최면분야의 최고 기술자가 됐다. 숱한 ‘작업’ 성공을 통해 쌓은 노하우와 이론 공부가 밑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픽업아트, 관계를 열어주는 마중물
요즘 오라클 밑에는 픽업아트를 배우겠다고 찾아온 문하생이 있다. 대학생인 도르체(24)다. 지난해부터 그는 오라클에게서 작업의 기술을 배우느라 ‘열공’한다. 하지만 픽업아티스트가 꿈은 아니다. “전공인 경영학을 살려 컨설턴트가 되려 합니다. 사람들과 편안하게 대화하고 매력을 발산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어서 왔어요.”
드림가이(28)는 IT회사를 다니다가 픽업아트에 푹 빠진 경우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직접 사람들을 만나기보다 컴퓨터의 가상현실 속에서 사람을 만나는 걸 보고 결심했어요. 인간관계에서 점점 외골수로 빠지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사람을 만나는 법을 전해주고 싶거든요.”
한 픽업아트 카페의 회원인 절대남자(44)는 사이트에 “픽업아트는 단순히 여성을 유혹하기보다 타인과 함께 살면서 자신의 자아를 발견하는 법을 알려준다”는 글을 써놓았다. 그는 “예전에는 별 볼 일 없는 놈으로 상대도 안 해주던 나에게 요즘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연락해온다”고 말했다. 픽업아트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픽업아트의 유용성을 알리는 수많은 일화가 올라와 있다. 그들은 “이제 여성의 심리를 알 것 같다”며 한때 참담했던 지난 경험들을 공유한다.
픽업아티스트 써커피쉬(28·본명 박순기)는 “처음에는 ‘원나이트스탠드(하룻밤 연애)’에 필요한 ‘작업’ 멘트를 익히려고 픽업아트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를 찾는 남성이 많았지만 그들도 픽업아트를 공부하면서 조금씩 생각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나중에는 여성의 심리를 제대로 파악해 진정한 사랑을 찾으려 한다는 것이다.
“‘연애를 책으로만 배웠어요’라는 광고 카피가 있지요. 그것이 우리의 현주소라고 봅니다. 픽업문화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긴 어렵지만, 이성을 유혹하고자 하는 현대인의 욕구가 녹아있다고 봅니다.”
김영수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픽업아트의 확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과거의 연애 상담은 친구나 선배를 통한 상담이 대부분이었지만 온라인 기반 사회가 오면서 직접 대인관계를 경험하는 기회가 줄어들면서 새로운 풍조가 생겨난 듯하다”고 말했다. 컴퓨터 게임이나 문자, e-메일, 채팅 등 온라인 상의 관계에 익숙해지다 보니 현실에서 인간관계가 익숙하지 않다는 진단이다. 김 교수는 “현대인은 진정한 인간관계를 체득, 체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픽업아트는 결코 ‘작업’을 위한 것이 아니다. 픽업아트는 여성에 관한 남성의 무지를 일깨워주는 듯하다. 매력적인 남성이 되기 위한 노력은 이렇게 진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