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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이야기 | <조선시대>- 제15대 광해군, 대북파의 정적제거, |
광해군과 대북파의 정적제거 대북파가 영창대군 지지파인 소북파를 몰아내기 위해 꾸민 첫번째 사건은 1612년 일어난 '김직재의 옥'이었다. 이사건은 황해도 봉산군수 신률이 병역 회피를 위해 어보와 관인을 위조한 김경립을 체포하면서 시작 된다. 신률은 그를 체포한 후 유팽석을 고문하여 김경립이 모반을 획책하기 위해 어보와 관인을 위조했다는 내용의 자백을 받아내고 다 시 김경립을 문책하여 거대한 역모 사건 계획을 자백 받기에 이른다.
김경립이 자백한 내용을 요약하면 8도에 각각 대장, 별장 등을 정하여 불시에 한양을 함락시키고 대북 세력 및 광해군을 축출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김경립의 아우 김익진의 입을 통해 팔도도대장으로 내정된 사람이 김백함이라는 자백이 나오자 사건은 급속도로 확대되었다. 김백함이 팔도도대장으로 내정되었다는 진술을 받아낸 대북파는 김직재와 김백함 부자는 물론 김직재의 사위 황보신 및 그 일족을 모두 체포하여 모진 고문을 가한다. 이 고문 과정에서 김백함은 아버지 김직재의 실직에 불만을 품고 모의를 했다는 자백을 강요받았으며 고문을 이기지 못해 결국 모든 내용을 시인하게 된다. 또한 김직재는 자신이 역모의 주동자이며 연흥부원군 이호민, 전 감사 윤안성, 전좌랑 송상인, 전 군수 정호선, 전정언 정호서 등 일군의 소북파 인사들과 모의하여 특정한 날을 잡아 도성을 무너뜨리려고 했다고 허위자백하기 까지에 이른다. 이 사건은 소북파의 거두이자 선조의 유명을 받든 일곱 신하 중 하나였던 박동량의 반대 상소에도 불구하고 옥사 로 이어졌고 그들 역모 세력이 추대하려던 왕이 선조의 아들 순 화군의 양자인 진릉군 이태경이라고 함에 따라 그도 처형되었으며, 그 들과 관련이 있는 대부분의 인사는 모두 숙청되었다. 이 옥사로 김직 재, 김백함 부자가 처형당하 고 김제, 유열 등 1백여 명의 소북파 인 사들이 대거 숙청당했다.
대북파의 능창군 제거작업 신경희 는 당시 수안군수로 재직 중이었는데 1615년 그가 양시우, 소문진, 김 정익 등과 함께 모반을 획책하고 있다 는 소명국의 말에 따라 이들에 게 역모 혐의가 씌워진다. 그리고 이 때 이들이 추대하려고 한 사람 이 바로 능창군이 라는 자백을 얻어내고 능창군을 유배시켜 죽여버린 다. 이 때 죽은 능창군은 후에 반정을 통해 왕이 된 능양군(인조) 의 동생이다. 따라서 이 사건은 능양군이 반정을 도모하게 되는 직접적 인 원인이 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북파는 정권을 독점하게 되자 1618년, 5년 전의 계축옥사를 다시 거론하며 이를 빌미로 인목대비를 폐위시켜 서 궁에 유폐시킨다. 이 과정에서 이이첨 등의 강경론자들 은 인목대비를 사사시킬 것을 간언하지만 광해군의 반대로 실현에 옮 기지 못한다. 이 후 이이첨은 몇 번에 걸쳐 인목대비 암살 계획을 세우기도 하지만 다른 대신들의 방해로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이렇게해서 광해군은 왕권을 위협하던 세력들을 거의 모두 제거했고 대북파의 이이첨, 정인홍 등은 세력을 독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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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쏠쏠한 재미 좋은글 사랑합시다.
전주향교/鶴田/옮김/한문희총대장 감사합니다.
본래의 마음,자유인 한문희총대장, 백두대간의 전설 자유인 백두대간종주대한문희총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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