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어디서건 일평생 가정을 지키며 자식들을 키운다고 고생만 하고 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눈시울이 더워지는 건 나만의 감정은 아닐 터. 거리를 바삐 오가는 숱한 군중 속에서 단 한 순간만이라도 내가 사랑했던 우리 어머니를 볼 수만 있다면 하고 애절하게 그리워했던 날들도 많았었는데...그리고 나 역시 미구(未久)에 내가 사랑했던 어머니를 만나 그 따뜻한 가슴 속에 파묻혀 영원을 함께할 날이 올 것이려니...
독일의 소설가이자 2019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한트케(Peter Handke)의 산문『소망 없는 불행(Wunschloses Unglück)』은 자신이 추구해 왔던 이전의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문학 스타일에서 벗어난 전통적인 서술 방식으로 문학의 서정성을 회복한 작품이라고 한다.
책장 넘기는 소리에도 까르르 웃어대며 곧 다가올 행복을 꿈꾸던 소녀들. 하지만 그녀들은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어릴 때부터 가사일 돕는 것부터 배우다가, 결혼해서는 웃어른과 남편 모시고 자식들 먹이고 가르치는 등 가정을 꾸려 나가느라 바둥거리다 이윽고 부닥치는 늙음, 외로움, 그리고 처절한 절망감. 박상륭 선생의 단편소설 『일과 꿰미』에는 먹이를 구하러 갔다 돌아오지 못하고 죽은 남편 대신 어린 새끼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살을 뜯어먹게 하고 서서히 죽어가는 어미 갈매기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그게 바로 가족을 위해 자신을 아낌 없이 희생하는 어머니의 모습이려니...
한트케의 이 산문(수필이라고도 하더만)은 1971년 다량의 수면제 복용으로 자살한 어머니의 죽음을 겪은 후 그녀의 삶을 회상하며 쓴 글이라는데...작가는 어머니의 일생을 돌아보면서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 오스트리아의 역사, 아무 것도 바랄 수 없었던 작가 자신의 유년 시절, 어머니의 슬픈 일생을 담담하고도 냉정하게 그려내고 있단다. 사실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든 무릇 가족이 역경에 처하면 언제나 제일 먼저 희생될 수밖에 없었던 게 어머니란 이름을 가진 여인들의 숙명이었으니...독일의 판화 작가 콜비츠(Käthe Kollwitz) 역시 이러한 여인들의 슬픈 삶의 족적(足跡)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었음을 우린 그녀의 판화 작품들을 보면서 느낄 수 있으리니...
결국 한트케의 산문 『소망 없는 불행』은 그 동안 주변세계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해 왔던 작가가 어머니의 삶을 돌이켜 보면서, 자신의 과거를 긍정하게 되고 사회적 제현상들을 성찰하는 가운데 현재와 소통하게 된다는 줄거리를 갖고 있다고 하겠다. 해서리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라고 윌리엄 세익스피어가 말했다던가, 아님 막심 고리키가 말했다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