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14:24~27)
앗수르에 대한 본문. 그에 대한 심판. 하나님 맹세하심. 확고한 결심. 맹세하시는 분이 만군의 여호와. 모든 나라, 군대의 통수권자가 맹세했으므로 반드시 지켜질 일.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지 않는 한... 앗수르를 넘어 온 세계를 향한... '내가 전한 일은 반드시 현실이 되는데...앗수르의 질서와 정신을 따르는 모든 세력이 부서지리라.' 나의 땅, 나의 산에서... 하나님의 소유권을 주장하심. 하나님은 누구에게도 소유권을 이양한 적이 없다. 사람은 바람같이 지나가므로, 소유권을 가질 수 없다. 단지 사용과 관리권만 가짐. 청지기라고 불리는... 사용과 관리도 하나님의 질서를 따라야 함. 그렇게 할 때만 제대로. 물고기가 물에서, 기차가 철로 위에서처럼...질서. 그러므로 앗수르의 죄 2가지. 1. 땅이 자기 것이라고, 2.그 땅을 하나님의 질서가 아니라 탐욕과 착취의 수단으로 사용. 하나님은 그들을 불법 거주자로 정죄.
전 지구적 재앙. 시작은 digging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주장. 하늘을 보며 땅 위에서 살게 해 주셨는데, 굳이 땅을 파고 자원을 획득하려는 행동 때문에...재앙은 시작되었다는 주장. 그게 아니라 땅 위에서 얻을 수 있는 노력을 했다면 문제 없었을 것.
'용기와 회복을 위한 센터' 가입. 자기 성찰을 유도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기관. 거기 어떤 분. 표토를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 그런데 사람들은 표토를 계속 훼손. 그리고 합법화하기 위해 공무원 매수. 이 분이 개선하고자 하는 행동이 너무 힘들어,, 특히 상사로부터. 이제 태도를 바꾸어 상사를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땅에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청하는 것과 같은 원리. 세상은 땅 싸움. 꼴 사나운 일. 왜? 하나님의 것인데. 자기 것이 아니니까 방식도 폭력적. 온 땅위에 정당한 통치를 위해 오늘 본문을 통해 정당한 조치.(26~27절). 하나님은 이 땅의 주인이라는 것을 잊거나 우리에게 그렇게 기억시키는 일을 멈추신 적이 없음. 대천덕 신부님의 땅에 대한 인식을 공감. 그것이 앗수르를 징계하는 이유. 그리고 2차적 문제는 자신들의 주제 파악 실패. 하나님이 앗수르를 강하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음. 세계 경찰 노릇하도록 허락. 그런데 앗수르는 하나님의 질서를 버린 나라들에게 고통을 주었고, 몽둥이 역할. 그러나 자신의 실체를 과대포장, 자랑으로 세상을 어지럽힘. 스바냐 2장 15절, 오직 나만 있고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다고 떠들었던 죄.... 사10:12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실 것임. 우리는 자랑할 만한 것이 없다.
부끄럽고 수치스럽지만, 담임하고 있는 성도에게 "한국교회 어디에서 이런 설교를 들을 수가 있겠어요?"라는 말도 안 되는 사례. 자기 실체를 망각한 자들. 일단은 내버려 둔다. 그것이 심판. 자기만족이라는 함정으로 조금씩 파괴되어 가는... 목사는 절대적 존재를 부여할만한 존재가 아니다. 동료와 대화를 할 때, 아무리 대단한 성과를 이루었어도 완전히 하나님이 하신 일. 그런데도 그럴수로 물욕과 성욕, 명예욕이 올라와. 중요한 일을 감당할 수록 더욱 민감한 죄의 유혹이 올라올 수 있다(cs. 루이스). 신자들도 같음. 자신의 본분을 잊으면 안 됨. 나군가 헌신(십자가를 지고 진취적으로, 급진적으로), 그리고 사람들이 감탄. 그런데 급진적인 헌신이 기본 값이다. 급진적인 헌신이 없는 것이 기본 값이 되었기 때문에 감탄하는 것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6명의 자녀들을 돌보는 선교사, 자신의 사역을 밝히지 못해. 정량적인 습성. 그렇게 느낀다면 12명의 때로는 어리석은 남자들을 데리고 평생 사역한 예수님을 욕하는 것. 우리는 십자가를 등지는 반복음적인 일에 길들여 있음. 앗수르는 1800년대까지 유적이 없어서 가상의 나라라고 생각해왔음. 1846년부터 고고학자로부터 유적이 발굴되기 시작. 지금 루브르를 비롯한 수많은 유적이 보관되어 있음. 앗수르는 BC14세기부터 부흥하면서 9세기 강력한 철기문화로 번성. 8세기 전성세대. 그때 남유다 등이 고통 받음, 앗수르 때문에. 그 당시부터 앗수르는 무리수를 두기 시작. 나중에는 메대라는 나라와 협력한 바벨론(자신들이 점령했던)에게 멸망당함. 모든 나라가 이런 식의 수순을 밟음. 이처럼 얄팍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말라.
만약, 교역자 중에서 담임을 엄청 욕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담임 입장에서 그가 끔찍할 것임. 목사야? 인간이야? 라고 생각할 것. 속상해서 아내에게 하소연했더니, 아내가 그 목사 욕. 위로 받음. 카페에서 책을 읽다고 아내가 그 목사와 이야기 하고 있음. 아내가 그 목사에게 그대로 욕을 퍼부음. 엄청난 위로. 자세히 들으니, "남편 혼쭐 좀 나게 해달라고 했더니 그렇게 심하게 하면 되겠어요?"라는 내용임. 그것을 들으니, 혼란스러워짐. /// 바로 하나님이 앗수르에게 그렇게 하는 것임. '앗수르를 심판해서 백성을 위로하겠다.'는 것. 나훔서에서의 내용이 그것임. 앗수르의 어의, '피의 성' 왕후는 벌거벗겨져 끌려갈 것이라고 예언. 그런데 하나님은 동시에 앗수르가 돌이켜 용서받기를 원하심. 니느웨를 보내신 이유. 설교에서는 이해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임.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이 그것임. 요나 선지자는 그것을 감당할 수 없었음. 분노했음. 수 천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같은 상태임. 하나님의 마음을 감당하기 힘듬. 혐오스럽고, 나를 너무 힘들게 하는 이들에게 '저러다 망할 것이다.'는 위로가 되지만, '저들을 용서하고 돌이키게 하겠다.'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사 19장 23~24절, 애굽, 앗수르, 이스라엘... 복이 있을지어다. 하나님의 마음.
진짜 복수는 원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통쾌는 하겠지만),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임. 우리는 감당할 수 있을까요? 이 자리에서는 가능할지도, 그러나 세상에서는 힘들수도. 스스로를 오늘 설교 때문에 정죄하지 마라. 난 그렇게 못할 것 같아. 스쿠르테이프의 편지, 악마가 조카에게
그것이 믿음. 하나님은 우리에게 대단한 것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님. 버텨라. 이해하거나 이행하기 힘들 때에도 버티면 알게 될 것야. 신앙은 때로는 힘찬 것이 아니라, 허덕거리면서도 버티고 다시 일어나는 것.
우리는 지난 주, 사람을 나와 그들로 구분하는데 익숙. 나와 적. 이런 게 제국의 영이다. 온 세상도 제국의 영에 감싸져 있다. 상대방을 악마화하지 않도록 지극히 조심해야 함. 오늘 묵상이 바로 그 말씀. 모범생인 형은 아버지의 말을 감당할 수 없음. 허랑방탕한 동생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음. 찾으러 갈 가치도 없는 놈. 그런데 그 아들을 눈빠지게 기다리는 아버지. 아버지의 사랑을 짓밟고 모욕하는 그. 오늘 아침 뉴스. 찬반 집회 양쪽. 참가한 여성이 쓰러졌는데... 지금 이게 중요해? 이 사람이 좌파인지, 우파인지가 중요하지...라고 말함. 완악한 종교집단과 똑같음. 두 패로 갈라져서 상대방을 비방하는 상태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래서 늘 분투하고 엎드릴 수밖에 없다. 십자가에만 답이 있다. 북한을 포함해 어디에도 교회는 있다. 그러니 한 가지 측면 때문에 전체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평가하는 것이 제국주의적 이념, 죄악. 실망스러워도 또 다른 면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마음을 감당하기 위해서.
너무 사랑하는 친구가 안식월. 10년 만에. 3개월 쉬고 있음. 미국에 갔음. 퀘이커 마을에 갔음. 떨면서 기도하는 교도들.
그것은 곧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 자신이 평화이시다. 예수님이 평화 그 자체임. 우리의 얄팍한 이념과 편견으로는 평화로 갈 수 없음. 지독하게 취약한 우리를 성령이 붙들고 있을 뿐. 우리는 다른 것으로 싸워서는 안 된다. 오로지 예수님의 평화의 길을 찾아가는 것으로 밖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