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9.
장마 마중
며칠 전부터 예고된 일이다. 교육생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전 굽기 전문가가 비닐하우스와 텃밭에서 추려온 채소를 정성스럽게 씻고 있다. 체류센터의 모든 일에 앞장서서 솔선수범하는 회장은 더 분주하다. 1층 자치 회의실에 오늘의 이벤트를 위한 온갖 것들을 준비하고 있다. 가스버너, 프라이팬, 식용유, 소금, 젓갈, 밀가루, 부침가루, 전분까지 쭉 늘어놓았다. 11시까지 모이라고 카톡 문자를 보낸다.
대충은 알겠지만, 전부는 모르겠다. 대파, 쑥갓, 부추, 미나리, 양파, 당근, 깻잎, 둥근 호박, 애호박, 고추까지 다 모였다. 우선 종류에 따라 호박은 길쭉하게 채를 치고 고추는 잘게 썬다. 몽땅 널따란 양푼에 담고 까나리액젓으로 밑간 겸 숨죽이는 도중에 밀가루와 튀김가루를 조금씩 보태어 가면서 버무린다. 채소에서 나오는 물기로도 충분하다면서 결국은 물 한 컵을 더했다.
식용유가 자글자글 끓다가 튄다. 한 주먹 쥐어 달구어진 펜에 올리고 넓게 펴는데 식용유 튀는 소리가 너무 맛있다. 침이 꿀떡하고 넘어간다. 눈으로 귀로 맛보고 고소함을 느꼈다면 손가락질할 것 같아 행복한 미소만 짓는다. 깻잎이 씹힌다. 호박이 달다. 양파의 아삭거리는 소리에 두 번째 미소를 보낸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세 번째 전이 종이 접시 위에 올랐다. 휴대폰으로 예쁘게 찍고 붉은색 톤으로 수정했다. 대충 봐도 겉은 바싹, 속은 촉촉해 보여 세 번째 미소를 날린다.
끝이 없다. 부족한 모양이다. 김치 두 포기로 김치전을 굽기 시작한다. 감자를 썰고 비트잎을 보태어 감자비트전을 굽는다고 정신없다. 솜씨 자랑에 산수유 막걸리 세 통이 게 눈 감추듯 사라진다. 부침개를 나누며 모두가 웃고 즐기니 이만한 행복이 어디 있을까.
장마가 시작되면 달리 할 일이 없다. 부침개나 한번 굽자던 말이 현실이 되었다. 빗소리를 들으며 막걸릿잔을 기울이는 낭만주의자에게는 안주가 필요했을 테고, 베풀면서 행복해지는 그에게는 마음의 위안이 되는 순간이다. 장마를 맞는 마음은 어떨까. 무엇을 기대하고 있을까. 눈으로 보는 비는 유리창을 따라 흘러내려야 제맛이고, 귀로 듣는 장마는 양철지붕을 두드릴 때 가장 멋지다고 한다. 등 따습고 배부르니 생각의 틀이 좁아진다. 이기적인 내가 꿈틀거려 부끄럽다.
휘몰아치는 폭풍우에 모조리 쓰러진다. 가로수가 뽑히고 전신주가 쓰러진다. 하천 제방이 무너지고 농토가 흙탕물에 잠긴다. 끔찍하다. 해마다 반복되는 여름 장마에 대한 막대한 피해를 생각하면 두렵다. 김치전 한 젓가락을 입에 넣으려다 아연실색한 피해자의 모습에 목이 막힌다.
착한 장마이길 빌어본다. 그대나 나나 이번 장마가 끝나도 조금 덜 아픈 칠월이면 좋겠다.
첫댓글 구례가 제일 비가많이 왔다는 뉴스 소리을 듣고 주노가 큰일이다 구례 비 많이 왔단다 한다
뭐가 큰일인지 모르겠다 전을 종류별로 붙여 먹고 잘 놀고 있구만 그냥 웃음이난다
ㅎㅎㅎ
산이 높아 골이 깊은 도시더라.
구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