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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국권회복과 근대적 시형의 모색
무지개의 징표 절정 이육사 |
매운 계절의 챗죽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
서리빨 칼날진 그우에서다
어데다 무릎을 꾸러야하나?
한발 재겨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깜아 생각해볼밖에
겨울은 강철로된 무지갠가보다.
출처 《이육사 전집 1: 이육사의 문학》 (2017) 첫 발표 《문장》(1940.1)
이육사 李陸史(1904~1944)
이육사는 시인이자 독립운동가로 일제강점기 시대의 저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의 한 명이다. 본명은 이원록(李源綠)으로, '이육사'라는 필명은 일제에 의해 투옥되었을 당시 자신의 수인 번호인 '264'에서 유래되었다. 시로써 일제의 탄압에 항거하기도 하였으나, 의열단 단원으로서 독립운동에 실제 가담하여 지사(志士)로서의 면모를 보여 주었다. 1933년 <황혼>으로 등단하였다. 그의 시 <절정>(1940)과 <광야>(1945)는 항일 저항시의 전형으로 평가받고 있다.
| 육사의 시대를 읽다
짧은 생애이기도 하였으나, 주변 사물을 분별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숨을 거두기 전까지 이육사는 일제강점기만을 살다 간 시인이다. 이 때문에 그의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인이 살았던 시대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1910년 한일병합조약에 의해 한국은 일제의 식민 지배하에 놓인다. 일본의 압력으로 늑약이 발효됨과 동시에 당시 대한제국은 피지배 국가로서의 역사를 쓰게 된다.
<절정>이 발표된 1940년 전후는 일제의 횡포가 극에 달하던 시기였다. 일본의 수탈은 물론이거니와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라는 구호로써 창씨개명과 신사 참배를 강요하며 소위 민족말살정책을 강화하였다. 식민지의 물질적 토대를 붕괴하는 동시에 정신적 근간을 흩어 놓으려는 제국주의의 야심이 노골적으로 표출된 것이다. 당시 국내에서는 이에 항거하는 민족 운동이 이어지고 있었으나, 이 또한 거의 실패로 끝나면서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진 채 전망을 잃어 가고 있었다. 그나마 국외에서는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일본을 상대로 한 민족무장투쟁이 그 맥을 이어 가고 있었다.
이 같은 시대를 살아가야 했던 이육사는 자신을 포함한 민족의 미래에 위기감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과 국가, 민족의 실존을 고민하며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지와 관련하여 누구보다 몸과 마음을 다하여 힘썼다. 그러므로 이 시를 이해할 때는 특히 창작 당시의 사회적 배경을 고려해야 한다.
ㅣ 일제강점기, 생존을 구하다
<절정>은 대표적인 항일시(抗日詩) 중 하나이다. 이 시에는 일제강점기라는 극한 상황에서도 현실에 굴하지 않고 강인한 정신으로 항거하는 화자의 항일정신이 형상화되어 있다. 또한 마지막 행인 “겨울은 강철로된 무지갠가보다.”는 그 해석을 두고 연구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일어났을 정도로, 예술적 측면에서 문학 수용자들에게 풍부한 영감을 안겨 준 시이다.
이렇듯 일제강점기 현실을 시라는 형식으로 형상화한 작품 중에서도 문학사적으로 손꼽힐 만큼 그 가치를 인정받는 <절정>은, 물적으로나 심적으로나 처참했던 시대상을 하나의 극한 상황 안에 시적으로 그려 냄으로써 ‘지금, 여기’의 현실에 대한 작가의 문제의식을 담았다. 시의 1연에 전개된 ‘북방’이 그 첫 번째 극한을 보여 준다. 화자는 “매운 계절의 챗죽”으로 형상화된 일제의 잔혹 행위에 떠밀려 ‘북방’에 이르게 된다. 이는 사방으로 난 여러 길 가운데서도 북방으로 휩쓸리어 춥고 황량한 곳으로 몰리게 된 상황을 암시한다. 더욱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선택의 여지없이 몰리어 온 이 ‘북방’은 더 이상 앞으로 내디딜 곳이 없는 극한 지점이다. ‘북방’이라는 수평적 대지의 끝에서 화자는 다시금 호되게 후려치는 일제의 억압을 뼈저리게 직면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현실이 극한의 공간으로 그려지는 또 다른 양상은 2연에서도 이어진다. 앞서 1연에서는 수평적으로 펼쳐진 대지의 끝에서 ‘북방’이라는 현실의 극한점을 경험했다면, 2연에서는 높은 산지에 펼쳐진 ‘고원’에서 또 다른 극한점을 보게 된다. 이 ‘고원’은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위에 설 수밖에 없는 화자의 현실은 말 그대로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3~4연에 이르러 화자는 이와 같은 극한 상황을 “한발 재겨디딜” 곳 없는 정점(頂點)에 선 것으로 형상화하고, 바로 그곳에서 자신을 포함한 민족의 구원을 희구해 본다. 우선, 3연에서 화자는 순간 무릎을 꿇어서라도 이 고통의 극한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실존적 열망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 또한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이 곳은 두 무릎을 대고 소원하기는커녕 한 발 끝도 댈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화자는 4연에서 다시금 현재의 상황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눈을 감고, 육체의 눈이 아닌 마음의 눈으로 생각해 본다. 처참한 현실은 잠시 시야에 사라졌으나 더 깊은 영혼의 눈이 현실을 응시하게 된다. 수평적 세계의 최전방인 북방으로 떠밀리고 수직적 세계의 정점인 고원에 이르러, 발 디딜 곳조차 없는 이 현실에 화자는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화자는 잠시 숨을 고르며 자신이 처한 가혹한 상황을 말없이 바라보는 이 순간에도 꿈꾸는 일을 멈출 수는 없다. 민족의 해방은, 일제의 강점을 깨고 일어남은, 인간으로서 실존의 한계점에 다다르더라도 절대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 꿈은 저 멀리 잡을 수 없는 앙망의 대상이다. 마치 무지개처럼 눈앞에 걸려 있으나 손에 잡히지 않아 바라만 보게 되는 희망으로 빛난다. 화자에게는 광복이 그러하다. 깨고 나와 일제의 짓누름에서 벗어나고자 하나 억압의 굴레가 강철과 같다. 현실의 극한점에서 구원의 손길을 기대해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식민지라는 주물(鑄物)을 떨쳐 내는 일은 외부에 존재하는 절대자에게 무릎을 꿇는다 한들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깨달은 화자이다. 오직 안으로부터의 힘, 민족의 자강(自强)만이 나를, 우리를, 이 가혹한 주물에서 구원해 줄 따름이다. 이러한 까닭에서 민족의 해방을 의미하는 ‘무지개’와 일제의 억압을 상징하는 ‘강철’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민족 스스로의 힘으로 이 강철 주물을 뚫고 나올 때만이 공기 중에 쏟아져 부서지는 색색의 빛에 안겨 볼 수 있다. 이 시의 화자는 그 가능성을 믿는다. 강철 주물을 깨고 나와 무지갯빛의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절정의 극한 상황에서도 되뇌어 본다. 그래서 ‘지금, 여기’의 겨울과 같은 현실은 부서져야 할 강철로 뒤덮여 있을 뿐, 그 본질은 무지개일 것이라고 어렴풋하게나마, 그러나 간절히 생각해 본다.
ㅣ 생존의 방식, 절망 속 희망
화자가 인식하는 현실은 “강철로된 무지개” 이다. 단단하고 차가운 이미지의 강철과 유연하고 화사한 이미지의 무지개가 역설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강철과 무지개, 이질적인 두 대상이 한데 엮여 현실에 대한 화자의 인식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화자에게 현실은 강철 무지개와 같아서, 차디찬 철 옷을 입은 현실은 좀처럼 그 전망을 보여 주지 않는다. 그러나 이 철 옷은 벗겨내야 할 장애에 지나지 않는다. 화자는 그 옷을 떨쳐 내고자 한다. 강철로 덮여 있을 뿐, 본질은 무지개와 같을 것이라는 믿음을 담아 추측해 본다.
“강철로된 무지개”, 이는 화자에게 겨울의 극한에서도 꿈꿀 수밖에 없는, 나아가 나의 생존을 걸고 대항해야만 하는 운명적인 현실이다. 이 현실을 어떻게 살아 낼지에 따라 나와 조국의 실존이 결정된다. 그렇기에 나의 자유의지로 이 현실 속에서 어떠한 선택을 하며, 어떻게 그 선택에 책임지는 삶을 살 것인지가 실존의 방식을 평가하게 된다. 어쩌다 마주친 무지개에서 간절했던 기다림을 느낄 수 있겠는가. 우연히 보게 된 무지갯빛이, 온몸 짓눌려 가며 강철을 깨고 나와 마침내 안게 되는 무지갯빛의 부서짐만큼 절실하겠는가.
<절정>에서는 나라를 빼앗긴 국민으로서 이 세계의 극한으로까지 몰린 화자를 볼 수 있다. 벼랑 끝에 놓인 그의 절박함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도 조국의 독립을 갈망하며 인간으로서 온전한 자유와 존엄을 누리기를 포기하지 않는 화자의 생존 방식이 내비친다. 이처럼 <절정>은 현실의 극한 지점에서도 고귀한 인간으로서의 생존 방식을 포기하지 않는 한 존재를 그리고 있기에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현실의 존재는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없다. ‘지금, 여기’를 사는 화자는 현실의 ‘자기 자신’으로서 독자적인 존재이다. 그러한 존재가 직시하는 현재의 상황이 절망으로 뒤덮여 있다. 그러나 그 상황 속에서도 어떠한 존재로서 실존할 것인가는 선택의 몫이다. 강철로 뒤덮인 현실이 나의 눈을 가리고 있을 뿐, 눈을 감고 보면 이 세계는 달라질 수 있다. 보이는 것에 절망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에 생각이 머물면, 현실에 잠재된 가능성에 다다르기도 한다. 그 가능성의 빛을 가두고 있는 강철 주물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것은 육체의 눈이 아니다. 존엄한 인간으로서 실존하고자 하는 이의 이상과 신념이 담긴 마음의 눈일 것이다. 그러하기에 현실은 “강철로 된 무지개”라고, 걷혀야 할 절망으로 감싸인 희망이 라고 전하는 화자의 낮은 목소리에서, 그가 이 세계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실존하고자 하는지를 엿볼 수 있다.
| 무지개의 약속
이 시는 제목보다 마지막 행인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보다”로 더 유명하다. 이 구절을 읽으면 왜 하필이면 무지개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물론 무지개는 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만으로도 그 존재감을 다한다. 그만큼 무지개가 환기하는 의미는 각별하다.
이 시에서 ‘무지개’는 범박하게 조국의 해방에 대한 소망과 의지를 표상한다. 그런데 조국의 해방을 소망하는 일은 소위 정상 상태에서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한 국가가 무력으로써 다른 국가를 식민지로 삼는 상황에서 일어난다. 이 식민지 시기와 같은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인간은 근본적인 생존 기반이 흔들리게 된다. 그리고 이는 개개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처지를 더욱 날카롭게 인식하게 만든다. 국가의 권위가 부정당하고, 해당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주권이 박탈될 뿐만 아니라, 개인의 가능성마저 부인당하는 상황에서, 한 인간은 극도의 정신적 곤궁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즉 ‘지금, 여기’가 인간으로서 견딜 수 있는 한계 상황임을 직감하게 된다.
그래서 화자에게는 ‘무지개’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일제에 쫓겨 땅끝의 ‘절정’에까지 이르렀으나 발 디딜 곳조차 허락되지 않는 상황에 처하면, 유한한 인간의 처지에서 찾게 되는 것은 유한함을 뛰어넘는 신이나 대자연과 같은 절대적인 존재들일 것이다. 그러므로 화자는 ‘무지개’를 통해 현재의 한계 상황을 깨고 나아가는 일이 그 정도의 절대적 힘과 당위성이 요구되는 일임을 역설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는 대자연의 일부인 ‘무지개’와 같은 절대적 존재에 의지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만큼 조국의 광복은 유한한 인간의 능력으로는 성취하기 힘들며 절대적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상기하기 위함이다. 억압과 탄압에 의한 쫒김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어느 것도 확정되지 않고 기약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현존 조건 속에서도 조국의 광복만은 반드시 현전해야 하는 자연법칙과도 같은 당위성을 가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나라를 잃어버려 세상의 “서리빨 칼날진” 위에 비틀거리며 선 채 살아가야 하는 화자는 인간으로서 유한성을 절감한다. 현재 그의 처지는 실존하는 자기의 전부를 동요하게 하는 상황이다. 이 한계 상황에서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는지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 순간 화자는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생각해야만 하는 절체절명의 시점에 와 있음을 깨닫는다. 화자에게 한 인간으로서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이다. 해방을 맞는 일. 이는 신이나 대자연과 같은 절대적 힘이 요구된다. 그렇다고 물러설 틈은 없다. 왜냐하면 조국의 광복은 신이나 대자연과 같은 절대적 당위성을 지니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국권회복을 향한 화자의 절절한 소망과 쉼 없는 결기가 이 ‘무지개’에 담겨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으나, 성경 속 한 장면을 떠올려 보면 '무지개'는 이미 삼천 년도 전에 인류에게 미래에 대한 전망을 기약해 주었다. 어느 누구도, 아무것도 살아 나올 수 없었던 40일 동안의 홍수가 지나간 뒤 신은 노아에게 다시는 이 세계를 파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the waters shall never again become a flood to destroy all flesh", Genesis 9:15). 이때 무지개는 그 약속에 대한 신의 징표였다. 무지개의 약속 안에서, 그 순간부터 그곳은 더 이상 두려움에 떨지 않아도 되는 안전함이 함께하였다. 구영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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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이육사·손병희 편저 (2017), 《이육사 전집 1: 이육사의 문학》, 이육사문학관.
사회평론 교육 총서 19 문학 교육을 위한 『현대시작품론』
2025. 2. 11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