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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과 李
곽 학 송
1
너비 오 미터도 채 안 되는 개울이 이른바 삼팔선의 경계였다. 지금은 의젓한 콘크리트 다리가 놓여 있지만 육이오 전엔 통나무를 가로 세로, 아무렇게나 엉켜 놓고 그 위에 흙을 덮었었다. 그리고 개울 북쪽에는 소련군 막사가, 남쪽에는 미군 콘세트가 서 있었다―—고, 김(金)은 조용한 시선을 차창 밖에 둔 채 속삭이듯 말한다.
삼십여 명의 낚시꾼을 태운 관광 전세 버스는 시방 춘천(春川), 양구(楊口) 간의 군용 도로 위를 시속 사십 마일의 속도로 달리고 있다.
서울에서 사백여 리를 격한 이 지방까지 낚시꾼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은 지난 늦봄부터였다. 화천 수력 발전(華川水力發電)의 수원지인 댐에 한 자짜리 붕어가 우글거리고 무게 칠 관이나 되는 잉어가 낚이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낚시꾼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고 웬만한 태공은 모두 입맛을 다시며 기회를 노리게시리 되었다. 나와 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긴 김에겐 엉뚱한 계산이 없지도 않았다. C 일보 정치부 기자인 그는 육이오 당시의 역전 용사(歷戰勇士)였다. ×연대 소속이던 김은 삼 년간의 전투 기간을 중동부 전선(中東部戰線)에서 보냈다. 남으로는 영천(永川)까지, 북으로는 압록강 연변인 초산(楚山)까지 김이 밟지 않은 땅은 없었다. 그 중에서도 수십, 수백 차의 격전이 거듭된 화천, 양구, 김화 일대에는 이 년 가까이 머물러 있었다. 말하자면 일종의 향수어린 기분으로 나설 법도 한 노릇이나, 그러나 김에게는 보다 더 구체적인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일천 구백 사십 칠 년 가을, 제이차 미·소 공동 위원회(美蘇共同委員會)가 결렬되어 삼팔선을 사이에 두고 있던 소련군의 막사와 미군의 퀀셋이 철수한 지도 두 해 반쯤 지난 어느 날, 이야기는 비롯된다. 그 때, 김은 ×연대 정보부 하사관으로 삼팔선에 파견되어 있었다. 경계를 이루고 있는 개울에서 남쪽으로 가장 가까운 고지에 공산군의 확성기가 장치되었고, 마찬가지로 반대쪽 고지에선 공산군의 마이크가 매일같이 시끄러웠다.
그 날도 한종일 떠들어 대던 양쪽의 마이크는 한결같이 지쳐 목쉰 소리를 내다가 그치었다.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고지와 고지 사이마다엔 안개가 자욱했다. 그 안개가 차츰 걷히자 김은 술 생각이 났다. 병풍의 그림처럼 전혀 음향이 없는 계곡을 바라보며 그는 마이크에 입을 가까이 댔다.
“너이들 소주 있지! 입씨름은 그만하고 한잔 하는 것 어때?”
“감자 소주쯤 있다! 맛있는 안주 있나?”
“통조림 있다! 소주 한 병에 통조림 한 통 어때?”
“좋다! 교환 장소는?”
“개울 한복판!”
“앞으로 삼십 분 후, 어떤가?”
“좋다!”
양측 진지에서 잠시 웅성거림 이 있었다.
어떤 사소한 협상에도 손해는 이 쪽이 보게 마련이다. 아군측에서는 김의 엉뚱한 장난에 이맛살을 찌푸리는 사병도 있었으나 김은 무관했다. 이 지역의 첩보 공작 책임자인 그를 정면으로 나무랄 상관은 없는 것이었다. 물론 군기에 어긋나는 행위임은 모르는 바 아니로되 무슨 일이든 마음이 내키면 참을 수 없는 것이 그의 성품이기도 했다. 하긴 직책에 관한 목적도 없지 않았다. 그 무렵 삼팔선을 드나든 민간인 첩자(諜者)들은 한결같이 낡은 정보만 전해 왔다. 두 해 동안이나 첩자 누릇을 하며 남북을 왕래하는 사이에 그들은 모두 이중 첩자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첩자 각기의 비열한 인간성의 탓만이 아니다. 피아(彼我)의 언어 소통이 자유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미구에 그 어느 쪽에 의해 말소되기 마련이다. 김이 의식적으로 침실인 농가 방바닥에 꺼내 놓은 허위 병력 배치도를 훔쳐 간 첩자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다른 첩자의 보고는 그 놈이 아예 마음이 달라져서 평양 지방에 영주할 목적으로 가 버렸다고 하나 얼마 뒤에 그 시체가 경계선 근처의 골짜기에서 발견되었다.
또한 터무니없는 ‘인민군 병력 이동표’를 품고 내려온 북쪽 출신 첩자도 김 스스로의 손에 이 근처에서 사라졌다, 동료와 부하들은 김이 그를 상부의 명령대로 처치한 줄로 안다. 보고도 그렇게 하였다. 순진한 농촌 출신의 청년이었다.
자기가 훔쳐 온 문서가 바른 것인 줄로만 믿고 있는 그 시골 청년은 제 앞에 다가온 운명도 모르고 다시 북으로 되돌아갔다간 죽는다고 눈물로 호소했다. 김도 속으로 울었다. 약간의 노자를 주어 서울로 보냈다. 성이 도(都)이어서 도 서방으로 불리던 그 청년은 서울에 가면 지게를 져서라도 밥을 먹을 수 있다는 말에 소년처럼 좋아하며 야반에 이 고장을 떠나갔다.
그 후 김은 당분간 첩자 파견을 중지하였던 것이다. 적군 병사의 모습이나 언사에서 무슨 정보를 얻을 재간은 없을까?·…· 직책에 관한 목적이란 바로 이 점이었다.
삼십 분 후, 김은 한 사병을 대동하고 개울가로 갔다. 공산측에서도 특무장(特務長) 계급장을 붙인 자가 졸병 하나를 데리고 내려왔다.
소주 다섯 병과 통조림 다섯 통―— 그 금전적 가치를 놓고 이손(利損)을 따질 계제는 아예 아니다. 대동한 사명과 적의 졸병이 물품을 교환하는 동안 김은 특무장의 아래위만 살피었다. 군복이 말쑥하다. 군화도 새 것이다. 녀석들은 이런 경우에서마저 선전을 누리는가? 그뿐이 아닌 것 같다. 졸병의 군복과 군화도 새 것이었다. 그리고 특무장의 허리의 권총과 졸병 어깨의 장총도 새 것이다. 보급을 강화하여 병력을 '정비하고 있는 생생한 증거일 수는 없는가.
그 때, 통조림을 한 통 치켜 들며 특무장은 말하였다.
“미제국주의의 것이로군.”
“맞았어. 그 통조림은 미국에서 온 거야. 미국 친구들은 그 밖에도 엄청난 물건을 갖다 주지.”
“뭣 때문인지 아오? 동무!”
“간단하지. 자유를 사랑하는 우방끼리의 친선 선물이야.”
“동무 철저한 반동이군. 미제국주의자들은 우리의 조국 조선을 다시 식민지화하려는 거요.”
“글 쎄……. 이북에 들어온 소위 붉은 군대라는 ‘로스케’들은 그럴지 모르지만…….”
“동무 말조심하오. 붉은 군대는 절대 그런 일 없소. 무산 대중을 위해 미제국주의를 우리 조국에서 몰아내기 위해 온 것이오.”
“천만에, 로스케들의 행동을 나는 내 눈으로 똑똑히 본걸. 부녀자의 강간이나 강탈 따위는 점령군에겐 따르는 현상이라 이해도 되지만 소위 로스케놈들은 겸이포(兼二浦) 제철소 기계, 수풍(水豊) 발전소 시설까지 헐어 가더군.”
“동무! 동무! 그건 악질적인 모략이오!”
“하하, 우리 이럴 것 없이 서로 인사나 하고 지내지. 너와 내가 언쟁을 한댔자 소용이 뭐겠나?”
“……”
굳게 입을 다물고 있던 특무장은 한참 뒤에,
“동무 성이 뭐요?”
하였다.
“거, 우리 동무라는 말도 빼는 것 어때 ? 난 김이야.”
“…·난 리 (李)요.”
“촌놈의 성 김가 아니면 이가라더니만, 하하.”
김의 마지막 웃음은 공산군 특무장인. 그 ‘리’가를 대상으로 삼아서가 아니었다. 그저 왜 그런지 우스워서 였다.
어느덧 골짜기마다에 괴었던 안개는 걷히고 서산 마루에 해는 얹혀 있었다.
2
여름철로 접어들자 공산군 소부대는 준동이 잦아졌다. 처음 한두 번은 전군(全軍)의 신경을 곤두세우기도 하였으나 횟수가 거듭될수록 심상해졌다.
그런 상태가 얼마간 지속되는 동안 김은 삼팔선 접경에서 공산군 특무장인 ‘리’와 여러 차례 부닥치었다..
소주와 통조림을 나누어 먹은 때문인가― 이상하게 적의가 의식되지 않았다.
저 쪽도 마찬가진 모양이었다. 손을 들고 히죽 웃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세 번째 만났을 때였다.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접근하였다. 김은 어깨에 건 기관단총을 의식하지 않았다. 리도 허리에 찬 권총을 잊어버린 눈치였다.
“날씨가 더워졌군.”
“벌써 유월 아니오.”
리의 말투는 여전히 딱딱한 것이 무슨 인조 인간을 대하는 느낌이었으나 점차 둘의 대화는 부드러 워졌다.
고향이 화제에 오른 때문이었다. 둘은 개울가 바위에 나란히 앉았다.
“김은 고향이 이북인 모양이지?”
“응 평양이야.”
“학교는?”
“평양 사범 졸업반이었어, 해방되던 해. 리 고향은?”
“헤에―—.”
그는 벌죽 웃고 나서 대답하였다.
“경기도 평택이야. 물론 학교는 서울에서 댕겼지. 나도 B중학 졸업반 때 해방됐지.”
“왜 월북했나?”
“김은 왜 월남했지?”
“난 말야…….”
잠시 주저하다가 김은 솔직히 말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서 토해 버리듯 뇌까렸다.
“강 양욱(康良煜)이란 영감 있지. 최고 인민 위원회 서기장―—. 전신이 목사였어. 그 영감 집이 기림리에 있었는데 수류탄을 던졌어. 물론 밤중에 말야.”
“왜?”
“죽여 버릴려고.”
“……”
리는 약간 놀란 눈치로 입을 봉해 버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놈의 영감 살아났더군. 운이 좋은 늙은이야. 리는 왜 월북했지?“
“나?·…·.”
리는 또 벌죽이 웃으며 말하였다.
“두 가지 이유가 있어. 하나는 미군 한 놈을 죽여 버렸어.”
“왜?”
“검둥이였어. 내가 누이로 삼았던 모 여전 학생이던 여자에게 검둥이를 낳게 했단 말야.”
“흐음…….”
“또 한 가지는 어머니가 평양에 와 있었어. 왜정 땐 중국 연안에 있었지. 반일독립 투사였어. 조선의 모범적인 여성이지. 그런데 김은 어째서 강 양욱 동무를 죽이려고 했나? 김의 집 부르조아였던가 보군.”
“천만에 내 아버진 제재소 인부였어. 사범학교 댕긴 것만 봐도 알 게 아냐. 그를 죽이려고 한 것은 교회를 등지고 조 만식(曺晩植) 선생을 배신한 때문이었어.
“김은 예수쟁인가?”
“예수쟁이? 우리도 친구끼리 가끔 그런 말 쓰지만 신자라고 하는 편이 점잖지. 실은 어머니가 신자였어.”
산새 가 울었다.
그리고 시냇물 흐르는 소리.
둘은 퍽 오랫동안 침묵에 잠겨 있었다.
김은 살며시 리의 표정을 엿보았다. 전날 개울가에서 만났을 때보다 훨씬 수척해 보였다. 이 자를 납치할 재간은 없으리라一— 아니 그 때의 김은 그런 의욕도 없었다. 엉뚱하게 옛 친구 같은 느낌조차 들었었다.
“리는 상당히 바쁜 모양이군? 직책이 뭔가?”
“김의 직책은?”
“난 정보대원이야. 리도 문화 공작 대원 같군. 어때, 내 짐작이?”
“맞았어. 리 승만 도당 덕분에 체중이 한 관 줄었어. 국군이 북침을 느리고 있기 때문에 난 매일같이 각 부대를 순회하지 않으면 안 돼.”
“전엔 안 했나?”
“전에도 했지만 부대가 많아졌거든·…· 그리고…….”
리는 무슨 생각이 내켰던지 말을 중단하고 일어섰다.
“아뭏든 김은 악질 반동이군.”
“리는 진빨갱이고, 하하.”
둘은 개울의 남과 북으로 갈라져 갔다. 리의 모습이 산모퉁이를 돌아 사라질 무렵 김은 ‘잘 하게.’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었다. 역시 발을 멈추고 돌아다보는 리도 ‘또 만나세.’ 하는 것만 같았다고 김은 훗날 술회한 바 있다.
공산군이 삼팔선 접경에 병력을 보강하고 있음은 의심할 나위가 없었다. 김은 리로부터 얻은 정보를 중심으로 연대 정보과에 구체적인 보고를 하였다. 그러한 정보는 비단 김의 관할 구역에서만 입수된 것이 아니었다. 도처에서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 연대 정보과에선 각 파견대원의 정보를 종합하여 사단으로, 사단에선 또 그 상부로―— 불과 며칠 후옌 경무대에까지 보고되었으나 정부에선 무슨 이유로 그에 대한 대비를 소홀히 하였는지 모를 일이라고 김은 핏대를 세운 적이 있다.
“국군 수뇌부의 태만에서가 아닐까?”
라는 나의 말에 김은 펄펄 뛰었다.
“천만에! 당시 육군 본부 정보 국장이던 장 모 장군은 괴뢰군의 남침을 단정, 그 대비를 강력히 주장하였음을 형은 모르오?”
“하지만 참모 총장이던 채 모 장군은 첩 집에서 술을 마시고 누워 있었다지 않나?” “바로 그런 점 이오. 이상하다는 건—―. 삼팔선에서 총성이 울리고 있는 시각에 채 모라는 자가 첩 집에 있은 건 정부에서 괴뢰군의 남침설을 취하지 않은 까닭이라고 안 보오?”
“미 고문관들은 알면서도 모르는 체했다는 설도 있더군.”
“왜?”
“공산당이 얼마나 잔인스러운가를 전세계예 알리기 위해서라든가·….”
“체!”
김은 코웃음을 쳤다.
“형은 한국 동란에 미국인의 생명이 얼마나 희생됐는지 모르오? 양차 대전, 남북 전쟁 다음이라오. 인간의 생명을 중히 여기는 미국이 일시나마 그런 정책을 취할 까닭은 절대로 없었을 게요.”
김의 이론은 정연하였다. 아니 땐 굴뚝에 얻기 안 난다는 속담은 근거 없는 풍문이 없다는 뜻이 결코 아니라고 그는 말하였다. 남침설이 한창일 때 일요일이라고 해서 거의 전 장병을 외출시킨 이유가 어디 있었는가고 김은 핏대를 세운 것이다. 그리고 자기 소신을 한 마디로 피력하였다.
“간첩의 소행 이라고 나는 보오.”
3
육이오가 일어나기 전날 저녁 늦게 김은 연대 본부 주둔지인 춘천(春川)으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심상한 월남인 같지 않은 민간인 하나를 본부에 인도키 위해서였다. 일직 하사관(日直下士官)에게 그 민간인을 인계하고 야전용 침대에 누운 지 불과 몇 시간도 안 되어 포성을 들었다. 유월의 아침은 빨랐다. 거리는 불과 몇 시간 사이에 전쟁 빛으로 염색되었다. 그것은 곧 무질서를 의미하기도 했다. 어수선한 가운데 기관단총의 수입을 마치자 한결 마음이 개운했다.
춘천시의 서북방을 굽이쳐 흐르는 북한강 지류인 소양강(昭陽江)은 수심이 얕다.
삼팔선에서 후퇴한 × 연대 장병이 인도교 이 쪽 끝에 바리케이드를 쌓은 것은 의미가 없었다. 그래도 사병들은 잘 싸웠다. 서부 전선의 국군은 개성, 해주를 점령. 평양을 향해 진격 중이고 동부 전선의 국군은 이미 원산시에 진입하였다늑 연대장의 기만적 인 훈시가 주효한 것이다. 사병들은 연대장의 명예를 위해서 적의 소양강 도강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전선의 실황은 결정적으로 아군에게 불리하였다. 서부 전선의 공산군은 임진강을 도강 중이었고 중부 전선에선 의정부가, 또 동부에선 강릉이 이미 그들의 수중에 들어간 뒤였다.
소양강의 얕은 곳을 발견 못한 공산군은 인도교 위를 구름 떼처럼 밀려 오고 있었다. 다리 이 쪽 끝에 걸어 놓은 두 대의 경기관총은 이미 과열로 발사가 불가능하였다. 다리 위에 산더미처럼 쌓인 시체를 디디고 적군 병사는 밀려오고 있었다. 인해 전술은 중공군이 개입하기 전에 이미 있었던 것이다. 아군의 총소리는 완전히 그치었다. 그러나 김이 더욱 놀란 것은 다리목을 지키던 일개 소대 병력이 전멸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김은 혼자였다. 그는 기관단총을 바리케이드 한복판으로 옮겼다. 탄대(彈帶)는 아직 일백여 발이 남아 있음을 확인한 김은 그냥 방아쇠를 당겼다. 한 알은 남겨야지. 아니 그럴 필요도 없다. 적탄에 맞거나 내 총구를 목에 대고 스스로 방아쇠를 당기거나 매일반이다. 오로지 김은 저희들의 시체를 밟고 넘어오는 적병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면 그만이었다.
마지막 케이스를 갈아 끼운 직후였다. 적의 선봉은 이미 오 미터 목전에 있었다.
김은 방아쇠를 당기려다 말고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앗! 리!”
저희네 시체를 디디고 우뚝 선 리의 모습을 김은 본 것이었다.
“김!”
김도 그와 같은 외마디 소리를 들은 듯했다. 아뭏든 김은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그 확실한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리의 모습과 그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내가 보기에는 리는 진빨갱이요, 리가 보기에 나는 악질 반동이다. 서로 죽여야 할 처지에 있다. 내가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 까닭은 무엇이며 구름 떼처럼 몰려든 공산군의 구둣발에 밟혀 죽지 않은 건 어째서인가.
김이 제 정신을 차린 것은 어떤 농가에서였다. 가죽 장화가 맨 처음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 자리에 눕혀져 있었던 것이다. 그 가죽 장화의 주인이 리임을 김은 육감으로 알아차렸다.
“김!”
“……”
“기——임!”
“……”
눈을 뜬 김은 리의 얼굴을 확인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도로 눈을 감아 버렸다. 포성은 이미 남쪽에서 울려 오고 있었다.
김이 도로 눈을 감아 버린 건 굴욕을 의식한 때문만은 아니었다. 모든 것이 이대로 그치었으면 하는 엉뚱한 욕망에서였다. 전의(戰意)의 상실 ― 군인으로서는 도저히 용납 안 되는 그것이 김은 왜 그런지 아름답게 착각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순간이었다. 오랜만에 평안도 사투리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그리고 지금, 자기가 누워 있는 장소가 공산군의 야전 병원임을 알아차린 까닭이었다.
“김! 정신 들었나? 김!”
리의 세 번째 외마디 소리가 울렸을 때 김은 비로소 눈을 떴다. 리는 자기 옆에서 있던 위생병을 손짓으로 쫓아 버렸다.
“나를 왜 안 죽였지?”
바리케이드를 디디고 올라선 리가 권총 손잡이로 자기 머리를 때린 기억이 김은 되살아난 것이었다.
“이렇게 눕혀 두는 이유가 뭔가? 리가 아무리 고맙게 해 준다고 해서 내가 쓸데없는 말을 지껄일 줄 알아?”
리는 암말 않고 벌죽 웃고 있었다. 승자의 거만일까. 어쩐지 그렇게 생각되지 않아 김은 어리둥절했다. 육이오가 일어나기 전 삼팔 접경에서 교담하였을 때의 그 웃음이었다. 미소도 조소노 홍소도 아닌 웃음―—.
“김은 기관단총 탄환 백여 발을 발사했어.”
갑작스레 심각한 표정이 되며 리는 말하였다.
“김이 기관단총을 다시 복판으로 옮겼을 때 우리 부대 선두와의 거리는 불과 십 미터였어. 알겠나? 김! 김이 백여 방을 쏘는 동안 우리 부대는 겨우 오 미터 진격했을 뿐이다. 전사자가 육십 삼 명이야. 김은 두 발에 한 명씩 죽인 꼴이 되지. 그리고 내가 선두에 섰을 때 김의 기관총 총구는 내 심장을 겨누고 있었어. 왜 방아쇠를 안 당겼지?”
“……”
“왜 방아쇠를 암 당겼어. 김!”
리가 울상이 되는 까닭을 김은 알 수가 없었다.
“총이 고장났던 모양이지·…·.”
“총이 고장나?”
리는 또 한 번 웃고 나서 계속하였다.
“뻔한 거짓말임을 나는 안다. 바로 김이 누운 침대 밑을 봐. 김의 기관단총은 말짱해. 소대장 동무가 탐을 냈지만 거절했지. 그건 어디까지나 김의 것이니까……. 앞으로 김은 그 기관단총이 필요해. 호신용으로—— 즉 나는 김이 나를 죽이지 않은 댓가를 치르기로 했어.”
“……”
멀리 남쪽에서는 포성 이 그냥 은은히 들려오고 있었다.
“리 승만 도당 군대는 원주에 집결 중이라더군. 미제국주의 군대와 합류한다는 정보가 입수됐어. 그러나 그 따위와 우리 관계는 좀 달라도 좋다고 생각해. 원주까지의 길은 김이 더 잘 알 테지. 나는 애당초 김의 입에서 뭣을 알아 낼려고 한 건 절대로 아냐. 믿어 주게……. 군의관 동무의 말이 김의 건강은 완전하다는군. 그리고 임시 야전 병원이 된 이 집 앞에다 보초를 세울 필요가 없다고 나는 대장 동무에게 말했어. 김은 말야 알겠나! 내 밀령을 받고 적 후방으로 빠지는 임무를 맡은 빨치산 동무로 대장 동무는 알고 있다—— 그런 말야.”
리는 고개를 들고 문 밖을 내다보며 마지막으로 중얼거렸다.
‘며칠 사이엔 비도 내릴 것 같니 않군.“
4
절대 반대.
절대 반대.
절대 반대.
휴전을 반대하는 군중 시위는 남한 전역에 태풍처럼 일었다. 삼 년간 계속된 전쟁에 시달린 백성들은 지쳐 있었다. 그 지친 몸을 이끌고 백성들은 다시 휴전 반대 새위에 나서야 했다. 중앙청 옆에 자리잡은 외국 기자 숙박소 가시줄 울타리에 백오십 명의 여학생이 몸을 던졌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호각 소리를 신호로 여학생들은 일제히 진탕 속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비와 눈물이 뒤범벅이 된 얼굴로 여학생들은 울부짖었다. 대한민국을 팔아먹지 말라―— 고.
“호각 소리를 신호로 여학생들이 울기 시작한 것을 클라크(當時 유엔군 總司令官)는 군중 심리라고 말했어. 휴전 반대 시위는 자연 발생적 민중 봉기가 아니라 관제 운동이라는 거요. 민중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거요. 어떻게 생각하오, 형은?”
라고, 김은 훗날 비분을 토론한 적이 있다.
김이 여학생들의 시위를 목도한 것은 1953 년 6월 하순 어느 날 후방으로 전속 명령을 받고 서울을 지나면서였다. 대다수의 백성이 전쟁이 끝나기를 바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유혈이 가급적 속히 종식되기를 바란 것이지 조국 강토를 영원한 분단과 바꾸려고 한 것은 아니다. 백 오십 명의 여학생이 호각 소리에 의해 움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여학생들은 모두 마음에도 없는 눈물을 흘릴 수 있는 능숙한 연기자는 아니었을 것이다―라는 것이 김의 지론이었다.
“클라크란 사내는 어떤 의미에선― 한국의 은인임에 틀림없소. 맥아더 이상 한국의 처지를 이해하였고, 한국을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은 것도 사실이오. 하지만 클라크는 한국인이 아니고 어디까치나 미군인이었소. 한국의 국토 통일보다는 미국 정부의 정책 이 중요했고 미국민의 의사에 충실하였소. 어떻게 생각하오, 형은?”
동란 중 김은 세 차례에 걸쳐 부상을 입었다. 어깨에 두 개의 포탄 파편이 박혔고 다리에는 세 발의 소총알을 맞았다. 그리고도 그는 후방 근무를 한사코 사양한 사내였다. 상처는 야전 병원에서 기적적으로 완치되곤 했다. 두 번째 전상을 입었을 때 한쪽 다리를 절단하게 될는지도 모른다는 군의관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후방 병원으로의 이송을 거부했다. 이유가 있었다. 휴전 회담이 시작될 무렵 김은 단 한 번 후방에 온 적이 있었다. 전쟁하는 나라의 상태가 도저히 아닌 후방 풍경에 김은 침을 뱉고 돌아섰다. 벌레만도 못한 것들, 대한민국 따위는 숫제 빨갱이에게 먹혀버려라. 일주일 간의 휴가를 포기한 김은 일선으로 향해 달리는 군용 트럭에 흔들리며 웃었다. 차라리 웃었다.
그러한 김이 후방 근무에 순응한 이유는 일 주일 후에 밝혀졌다.
1953 년 7월 18일 미명(朱明). 거제도 등지에 수용되어 있던 이만 오천에 달하는 반공 포로는 대통령 이 승만의 비상 수단에 의해 지옥문을 나서게 되었다.
그 지옥문은 미군 병사 및 미군의 지시를 받는 유엔군 병사(한국군이 대부분)가 지키고 있었다. 그 수위권을 일시 박탈하는 임무를 지닌 자 중에 김도 끼인 것이다. 절차는 손쉬웠다. 일시나마 우군의 가슴에 총구를 겨누기가 썩 유쾌한 일이 못 됐지만 김은 주저하지 않았다, 총성도 필요 없이 지옥문은 조용히 열렸다. 꼭 자기를 닮은 청년들의 무수한 얼굴이 조수처럼 지옥문 밖으로 밀려 나가고 있었다. 돼지 떼 같다고 생각했다. 아니, 실은 양순한 양 떼라고 고쳐 생각한 김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무슨 죄냐. 저희들의 죄명이 무엇이더냐.
참 잘 한 일이라는 감회와 자부심이 뒤범벅이 되어 주먹으로 눈을 비비지 않곤 못 배긴 것이다.
여남은 번 주먹으로루 눈을 비비고 났을 때였다. 김의 시선은 하나의 얼굴애 꽂혔 다.
“리!”
환각이 아닌가ㅡ 고, 김은 도사렸다. 그 얼굴이 분명, 공산군 특무장이요, 문화 공작대 책임자이던 리임이 다짐된 것은,
“김!”
하는 당연히 있은 메아리를 듣고서였다. 그가 어째서 이 대열 속에 끼이게 되었는가ㅡ고, 그런 생각에 골몰한 것은 부산의 도심 어느 민가에 임시 정착한 후였다. 마땅히 리는 친공 포로가 날뛰고 있는 77 감동(監棟)에 있어야 했다. 아니, 애초 리는 포로가 될 수 없는 신분이 아니었던가.
굽어 보이는 항구엔 전등이 었었고 머리 위 하늘엔 달과 별이 있었다. 용두산 중턱이었다. 김은 리와 더불어 나란히 앉은 채 오랫동안 말을 잊었다.
“우리 삼팔선에서 이렇게 앉은 적 있지. 벌써 삼 년 전이 되나…….”
“삼 년 하고도 한 달이 지났지. 그리고 그 땐 밤이 아니고 낮이었어.”
리는 한 달까지를 기억하고 있었다. 김은 사고력도 잃었다. 말뿐이 아니라 ‘생각’한다는 기능조차 잃고 있었다. 리가 어째서 반공 포로 속에 끼이게 되었는가를 알아내야 한다는 애당초의 의욕이 되살아난 것은 자정이 임박했을 무렵 리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고서였다.
“김은 내게 묻고 싶은 말 있지?”
“……”
“내가 왜 포로가 됐는지를 묻고 싶을 테지. 말해야지. 김을 만나면 꼭 말하고 싶었고 말하려고 했어. 한 마디로 말할 수 있지. 알겠나, 김! 나는 당의 밀령을 받고 스스로 포로가 된 거야.”
흐름별 하나가 두 사람의 눈앞에 한 오리 금줄을 그었다. 김은 리의 말을 믿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흉금을 터놓고 교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의 지령은 엄격 했어. 거제도의 친공 포로를 전투원으로 간주했으니까·…. 전선에서 방아쇠를 당기지 않는 대신 그들은 포로 수용소에서 몽둥이를 휘두르게 한 거야. 알겠나, 김!”
“……”
말투만은 전에와 조금도 다름이 없어 김은 좋았다.
대꾸는 필요 없을 것이다― 오히려 리를 주저케 할는지도 모른다― 고 김은 생각했다.
“무슨 말부터 할까? 그렇지, 역시 내 신상 얘기부터 해야 쓰겠어. 김이 알고 싶은 것도 그것일 테니까·…. 모든 원인은 어머니가 조성했어. 전에 모범적인 조선 여성이라고 김에게 자랑한 나의 어머니 말이네.”
리의 시선은 흐름별이 지나간 밤 하늘을 더듬고 있었다.
리의 어머니는 출신 성분(出身成分)이 소시민임이 평생의 한이었다. 공산 치하(특히 북한)에선 성분이 노동자 농민이 아니고선 최고 지도자가 될 수 없다. 물론 그 성분은 얼마든지 조작되지만 리 어머니의 경우엔 불가능했다. 그녀의 부친은 유명한 국문학자인 H 모씨인 것이다. 농사꾼, 특히 빈농의 딸로 태어났던들 박 정애(朴正愛)를 제쳐놓고 북조선 여성 동맹 위원장이 되었을 것이라고 리 어머니는 믿고 있었다. 그녀는 박 정애 밑에 부위원장으로 있었다. E 여전을 졸업하던 해 리를 잉태한 리 어머니는 부친의 의사를 거역하고 핏덩어리인 리를 친정에 팽개치듯 던지고 남자를 따라 중국으로 갔었다. 스무 살짜리 청년이 된 아들을 대한 리의 어머니는 반가운 눈물 대신 아들의 전신에 배어 있는 소시민의 냄새를 제거해야겠다는 욕심이 앞섰다. 그녀는 리를 평양에 두지 않고 강원도 산골로 보내기로 했다. 양구 땅의 어느 벽촌에서 한여름 밭농사 일을 리는 거의 무의식중에 치렀다. 농민 동맹 맹원에서 노동당 세포원이 된 것은 그 해 가을이었고, 다음엔 양구군 당 부간부로 승진, 육이오 전해엔 인민 문화 공작대 중추 분자가 되었다. 리 어머니의 이면 공작의 결과임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어머니는 내 성분을 농민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 셈이지. 시민증, 당원증 등. 나에 관한 모든 서류에 분명히 농민으로 기록되어 있으니까……. 알겠나, 김? 나는 어느 모로 보나 철저한 공산주의자요, 열성 당원이지. 언젠가 김이 말한 대로 진빨갱야.”
시선을 그냥 하늘에 둔 채 리는 얼음장 같은 표정으로 계속하였다.
“그러한 내가, 내가 어째서 반공 포로 틈에 끼이게 되었는가·…· 한 마디면 족해. 그러한 나의 어머니가 미제의 앞잡이라는 이름으로 숙청당했기 때문이었어. 알겠나 김!”.
그제서야 리는 시선을 김에게로 돌렸다. 푸른 달빛을 한가득 받은 리의 얼굴은 창백하였건만 어조는 차츰 흥분되어 갔다.
“어머니가 숙청당한 것은 또 좋아. 그 사실을 통고받는 자리에서 좀더 무서운 사실을 알게 됐어. 어머니는 자기 남편이요, 나의 아버지를 말살시키는 데 한몫 끼었어, 여성 동맹 부위원장이 된 것은 그 댓가였어. 해방 다음 해, 공산당과 신민당이 북조선 노동당으로 합칠 때였다는군. 신민당 최고 간부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나의 아버지는 합당 반대 공작을 했어. 그 비밀을 어머니는 김 일성에게 밀고한 거야. 알겠나, 김? 나는 아버지의 참뜻이 무엇이었던가를 알 것 같아. 믿어 주겠나, 김?·…· 세포 위원장은 내게 말했어. 그러한 나의 부모의 죄과는 나의 장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말이네. 단 이번 당의 이름으로 부과되는 중대한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지. 그 중대 임무가 무엇인진 설명할 필요도 없을 테지. 스스로 유엔군의 포로가 되어 수용소에 잠입, 제한된 조건하에서 최대 한도의 전투력을 훈육하라는 거야. 나는 어떻게 해야 옳았겠나? 김? 어떡해야 옳았어, 김?”
밤 바다에서 뱃고동이 울었다.
5
“리 동무는 현재 이 시각부터 군관으로 승진하는 것이오. 사령관 동무의 명령이 방금 내렸소. 리 군괌 동무의 임무는 그만치 중대하오. 목적지인 수용소에 도착하면 즉시 환자가 되는 거요. 며칠 굶으면 내장병 환자처럼 보일 게고, 몹쓸 음식을 취하면 복통 환자가 되오. 그렇소. 탄환 속의 화약을 먹으면 즉시 설사를 하게 되는 법이오. 화약쯤은 여성 동무가 손쉽게 구해 줄 거요. 아뭏든 병명(病名)은 동무가 적당히 창의하시오. 장교 병동에 누워 있으면 전 문일(全文一) 동무의 지시가 있을 것이오. 리 군관 동무는 전 동무의 지시에 복종하면 되는 것이오. 리 군관 동무의 임무가 얼마나 중대한지 알 만하오?”
포로 명부에 전사(戰士)로 기록되어 있는 전 문일의 본명은 박 사현(朴士賢)이었다. 그는 북한 공산 정권 내의 실질적 두목의 한 사람이다. 1945년 이차 대전의 종식과 더불어 소련은 북한에 위성 정권을 수립하기 위해 소련식 공산주의 사상이 철저한 삼십 육 명의 한국인을 파견하였다. 그 두목이 김 일성 임은 두말 할 나위도 없지만 남 일(南日) 등과 더불어 박 사현도 그 삼십 육 명 중의 하나였다. 초기에 있어선 김 일성 외의 삼십 오 명은 표면에 나서지 않았다. 국내파, 연안파(延安振=中共派)의 숙청 이 끝난 후에야 비로소 요직에 등장하였다. 육이오 당시 박 사현은 공산당 중앙 당부의 요직에 있었다. 그런 거물이 말단 졸병을 가장 스스로 포로가 되어 거제도 수용소에 침투하여 공포의 지배를 일삼은 것 이었다. 수용소장 돗드 장군 납치 사건, 반공 포로의 인민 재판 사건 등 포로 수용소 내의 유혈 참극은 모두 박 사현에 의해 조작된 것이었다. 거기에는 우선 핵심 요원이 필요했다. 공산당에서는 상당수의 남자 공작 대원을 유엔군과윅 소충돌이 있을 때마다 투항케 했다. 그들은 유엔군의 정규 포로 관리 계통(正規捕虜管理系統)을 통하여 목적지인 수용소에 무난히 도달할 수 있었다. 리도 그 공작 대원 중의 일원임은 물론이다.
“남자 대원뿐인 줄 알아? 여자 공작 대원도 많았어, 여자들은 피난민으로 가장하여 남하. 포로 병원 및 수용소 내 혹은 그 근처의 직장에 취직을 한 거야. 내 말 믿어지나, 김?·….”
리의 얼굴이 공포에 찬 표정으로 보이는 것은 비단 푸른 달빛 때문만이 아니라고 김은 단정 하였다.
대한민국은 돈이면 그만인 나라였다. 대다수의 대한민국 국민은 돈이면 움직여졌다. 그리고 대다수의 미국 군인은 여성의 살결을 즐기었고, 또 그들은 남한의 양민 출신 양공주와 북한 공산 정권이 파견한 여자 공작원을 식별할 안목이 없었다. 동족인 때문이었다.
“김! 나는 기계적으로 박 사현의 지시에 움직였어. 차라리 타당성이라 함이 옳을 거야. 엄격한 의미에서 나는 인생을 포기했어. 그 포기한 인생을 내가 되찾았다면 김은 믿어 주겠나?”
그 계기는 포로수용소 내에서 벌어진 이른바 ‘인민재판’을 목도함으로써였다.
열아홉 살에 공산당원이 된 리의 머릿속엔 공산당 이론만이 가득 차 있었다. 부모의 정을 모르고 자라난 리는 이십 년 만에 처음 대하는 어머니의 말을 전적으로 믿었었다. 그러한 어머니가 아버지를 말살시키는 데 주동적 역할을 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리의 머릿속에 염색한 붉은 물은 쉬이 탈색되지 못하였다. 인민 재판으로 타살된 반공 포로는 85 감동의 이른바 공산 지도자를 혼자서 배척하구 이중 지배를 거부한 용감한 청년이었다. 천 명에 달하는 소위 인민 재판 배심원(陪審員=親共捕虜)은 그를 둘러싸고 돌을 던졌다. 피투성이가 되어도 청년은 우뚝 서 있었다. 두개골의 파열로 의식을 잃을 직전 그는 대한 민국 만세를 외치며 쓰러졌다. 리는 한 알의 돌도 던지지 못하였다. 의욕이 없었을뿐더러 사실 던질 겨를도 없었다. 청년이 쓰러진 후에도 리는 돌을 오른손에 쥔 채 멍하니 서 있었다. 그 모양을 경비 대원(친공 포로의)에게 들켰다. 그 죄가로 리는 시체 처리의 임무를 맡았다. 리는 동료 셋과 함께 청년의 시체를 화단 속에 정중히 매장하였다.
“그 청년을 나는 김으로 착각했어.”
‘……“
리는 스스로를 변명할 의사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김은 단정하였다. 그 용감한 반공 포로를 자기로 착각한 것도 거짓이 아니라고 김은 생각했다.
밤 바다에선 그냥 뱃고동이 울어 대고 있었다. 울고 싶었다. 김은 뱃고동처럼 울고 있었다. 자기와 나이가 비슷한 동족(同族) 청년의 기구한 운명에의 동정에서만이 아니었다. 그러한 리를 적나라한 심정으로 대할 수 없는 오늘의 처지가 서글퍼서였다. 물론 김은 리의 거처를 자기 하숙으로 옮기게 했다. 모 첩보 기관 선임 하사관(先任下士官)의 직책을 맡고 있던 김은 영외에 거주하고 있었다. 가족이 없는 김은 리 하나의 식생활쯤 능히 담당할 수 있었고 그럼으로 해서 하숙방의 고적(孤寂)을 메꾸기도 하였다.
“리를 내 하숙으로 테려간 것은 단순한 동정심에서만이 아니었소. 리가 나에게 알려 준 정보의 중대성을 나는 산 것이오. 이러한 나를 형은 경멸하겠지요?”
하고, 김은 훗날 나에게 술회한 바 있었다.
김은 리로부터 들은 정보를 상사에게 보고하였다. 한국군 수뇌부에 건의하였다.
전 문일을 따로 수용하여 처치하기를 강력히 주장하였다. 유엔군 첩보대의 활동이 시작되었다. 리는 그의 요청에 따라 끌려다녔다. 친공 포로의 중견 간부였던 리의 진술은 허위가 아니었다. 미군 첩보 대원에게 한종일 끌려다닌 리는 밤늦게 솜처럼 피로한 몸을 이끌고 김의 하숙에 돌아오곤 했다.
자리에 누우면 김도 리도 곧 잠들어 벼리곤 했는데 그 날따라 김은 졸음이 오지 앓았다. 창문으로 스미는 달빛이 방 안 가득 고인 때문이었을까. 시체처럼 꼼짝 않는 리도 실은 잠든 것이 아니였음을 안 것은 자정이 훨씬 지난 뒤였다.
“김…….”
“아직 안 잤군…….”
김은 일어나 전기불을 켜려고 한쪽 팔을 치켜 들었다. 그 팔을 말리며 리는 말했다.
“불을 켤 건 없어. 자야 할 테니까.”
리는 매일 밤 숙면 못 하였음을 김은 알아차렸다. 영양가가 높은 음식을 취하면서도 리의 얼굴이 하루하루 여위어 가는 것은 미군 첩보원에게 끌려다닌 탓이 아니라 숙면을 못 한 결과임을 김은 알아차렸다.
그 날 밤은 뱃고동도 울지 않았다.
퍽 오랜 침묵이 흐른 뒤에 리는 말하였다.
“난 교화소에 들어가 있으면 꼭 좋겠어.”
“교화소라니?”
“참 남반부에선 교화소라고 하지 않고 형무소라고 하지, 허허.”
별나게 쓸쓸한 웃음이었다.
김은 리의 심경을 얼른 헤아릴 수가 없었다. 세상이, 인생이 그저 귀찮아진 것이거니 했다. 광야에 던져진 돌멩이와 진배 없는 리에게 자기의 존재는 너무 미력하다고 김은 생각했다.
“나를 원망하나?”
“원망은 무슨·…· 허허.”
리는 두 번째 쓸쓸히 웃으며 말하였다.
“좀 섭섭할 뿐야. 나는 김에게만 말하고 싶었고, 또 그래서 말한 건데 일이 너무 커졌어.”
“나로선 리를 떳떳한 시민이 될 수 있다는 신념 밑에 한 노릇인데 그렇지 않은가?”
“떳떳한 시민…….”
리는 시선을 어두운 천창에 꽃은 채 말하였다.“
“떳떳한 시민이 되는 건 좋지만 못 견디겠어.”
“뭐가?”
“배신자가 되는 것이 말이네. 내 행동―—이라기보다 김의 처사는 나를 배신자로 만들었어. 적어도 나 스스로 배신자라는 의식을 갖게 한 것만은 사실이야.”
밤은 그냥 조용했다.
그럼 리는 스스로 반공 포로 틈에 끼인 게 아니었단 말인가ㅡ고, 묻고 싶은 걸 김은 참았다. 리의 심경만은 이해된 까닭이었다. 악자(惡者)간의 배반도 배신임에 틀림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해서 리의 의사에 공명이 간 것은 아니었소.”
하고, 김은 리에게 말하였다.
“리가 스스로 배신한 것은 아직 중심을 못 잡은 때문이 아니겠소. 악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악에서의 탈출과 그 악을 복멸하기 위한 행동이 어째 배신 행위란 말이오. 리를 나는 믿고 싶었고 진정 믿었소. 리가 제공한 정보가 거짓이 아니고 엄연한 사실이었기 때문이오. 그러나 리는 다시 악의 세계로 되돌아가고 말았소. 그것을 나는 그 다음 날에 알았소.”
미군 첩보 기관의 심문은 그 다음 날로 끝이 났다. 다음 날 리는 하숙방을 혼자 지키고 있었다. 김의 퇴근은 늦기가 일쑤였다. 그래도 그 날은 일찍 돌아온 셈이었다. 여덟 시경이었다. 리와 더불어 술집 구경이라도 나설 생각이었는데 방 안에 리의 그림자는 없었다. 다음과 같은 간단한 메모가 책상 위에 달랑 놓여 있었다.
‘김! 그 동안 고마왔소. 아무래도 내 갈 길은 따로 있흩 것 같아 떠나오.’
6
‘적기가(赤旗歌)’를 실은 열차가 부산 개성 간의 궤도 위를 달렸다.
“리는 숫제 북으로 돌아가는 것이 옳았을지 몰라요. 그렇지! 않으면 리가 원한 대로 나는 리로부터 얻은 정보를 상사에게 보고하지 않았던 편이 옳았을지 몰라요.”
하고 군복을 벗은 김은 말하였다. 포로 교환 열차가 지나가는 철로 연변에서였다.
“리의 정보는 아무런 효과도 나타내지 못하였기 때문이오. 저 열차 속엔 박 사현이란 자가 타고 있소. 저들로 하여금 적기가를 고창케 하는 자가 타고 있소. 적어도 리의 정보는 저와 같은 난동을 저지할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던 거요, 리가 제공한 정보에 의해 유엔군 사령부에선 전 문일로 가장한 공산 두목을 격리 수용하긴 했소. 클라크란 사내는 훌륭한 반공주의자엔 틀림없었으며, 자유를 사랑하고 옹호하려는 자유인이긴 했소. 클라크는 박 사현 등을 공판에 회부할 수 있는 권한을 본국 정부에 요청하였던 것이오. 인민 재판이라는 미명 아래 반공 포로를 구타 치사토록 명령한 자들을 처벌키 위해 유엔 재판소도 설치하였소. 클라크의 계획은 그 범죄자들을 유엔측에 억류할 목적으로 본국 정부에 상신하였소. 그러나 와싱턴에선 그 자들을 공산측으로 송환하라는 지시를 내렸소. 왠지 아시오? 그 자들을 억류하면 공산측은 그 보복으로 저희네가 억류하고 있는 월리암 F 딘 수장을 비롯한 유엔군 고위층 포로를 석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이유에서였소. 어차피 밑지는 흥정이었소. 그럴 바에야 숫제 리를 놓치지 않아야 옳았단 말이오.”
리는 두 번 다시 김의 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C 일보 기자가 된 김의 소식을 리는 어디메에서든지 알았을 것이지만 리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한 리와 김은 삼 년 후 엉뚱한 장소에서 부닥치었다. ×× 방직 공장에서였다. 삼천 명의 종업원이 연좌(連座) 데모하는 장소에서였다. 공장 울타리는 그대로 기마 경찰대의 경계망이 되었다. 그 날은 기자들의 출입도 일체 금지되어 있었다. 김은 경계가 소홀한 틈바구니를 찾으려고 공장 울타리를 돌기 시작하였다. 서너 바퀴째 돌았을 때였다. 기마 경관의 시선이 잠시 닿지 않은 울타리에서 뛰어내리는 그림자가 있었다. 김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밤색 잠바에 사냥모를 쓴 사내였다. 어느 모로 보나 공장 종업원 같진 않았다.
울타리 밖은 골목이었다. 사냥모의 사내는 유유히 골목을 벗어나 한길로 나섰다.
김은 조심스레 그 뒤를 따랐다. 설마 그럴 리야…· 세상엔 걸음걸이쯤 비슷한 사람이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하였던 김의 예상이 적중하기까진 한 시간도 요하지 않았다. 영등포 역전에 있는 사창굴 골목에서였다. 한길에서 골목 안으로 접어든 사냥모는 잠시 김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초조를 달래며 김은 골목 안을 배회하였다: 그 때 돌연,
“김!”
하는, 외마디 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역시 리였군.”
침착을 차리느라고 김은 무진 애를 썼다.
“오랜 만이야.”
리는 몸을 숨겼던 전주를 비로소 버렸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은 리가 어떻게 나의 미행을 알아차렸을까―—고, 김은 기이한 느낌 속에 리의 얼굴을 관찰했다. 누렇게 들떠 있었다.
김은 무슨 말부터 해야 옳을지 몰랐다. 리의 신상은 뻔했다. 그렇지 않아도 ×× 방직 파업엔 배후 조종자가 있다는 정보가 입수되었다. 적어도 리는 연락자인 것만은 틀림이 없었다. 어쩌면 주동자인지도 모른다ㅡ—고, 내켰을 때 김은 긴장의 도를 지나 허탈 상태에 빠졌다. 유월 하오의 태양은 눈부셨다. 리는 그 태양을 등에 지고 있었고 김은 가슴에 안고 있었다.
“그래도 김은 나를 찾았더군. 하지만 내가 고향 근처에 어른거릴 줄 안 건 잘못이야.”
리라면 고향에 돌아가 있겠어.”
지금 땅을 디디고 선 피차의 위치에 신경을 쓰지 말자고 김은 생각했다.
“김이 내 입장이라면 말이지·…·흥! 나도 김의 입장이라면 그런 말할 수 있을 거야.”
물색옷을 입은 창녀가 잠이 채 깨지 않은 눈을 비비며 지나간다. 골목 안에 마주선 두 사내의 존재를 묵살하고서다. 리와는 다른 의미에서 그 창녀는 피곤한 것이라고 김은 그런 엉뚱한 생각이 내켰다.
“김이 왜 나를 찾았는진 알지. 언젠가 말한 대로 떳떳한 시민을 만들기 위해설 테지. 안 그래? 김은 나에게 떳떳한 시민의 자격을 주려고 하지? 하지만 김! 나는 그 때가 차라리 좋았어. 감자 소주와 통조림을 바꾸어 먹은 그 때가 딸이네.”
김은 눈을 감고 있었다. 어쩌려구 리는 그런 말을 태연히 지껄이는가ㅡ—고, 속으로 뇌이며 김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리, 장소를 옮기지 않으려나?”
“……”
리의 얼굴엔 회의와 노기의 빛이 감돌았다.
“별다른 생각 말고 한 시간만 시간을 줘. 나와 조용히 한 시간만 이야기를 해 리!”
“김은 나와 다르군. 여기선 왜 말을 못 해? 김하고만은 난 어디에서나 무슨 말도 할 수 있는데, 김도 그러리라고 여긴 내가 잘못이었나?”
“리! 잘잘못을 따질 계제가 아니라고 봐. 날 못 믿겠나, 리?”
김은 리를 설득할 심산이었다. 자수(自首)케 할 생각이었다. 리를 구출할 길은 그 한 길뿐이라는 결론을 김은 내린 것이었다. 그러나 리는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
“김, 알겠나! 오늘 나는 김을 피할 수도 있었어. 김을 이리로 데려오지 않을 수도 있었단 말야. 도망칠 수도 있었단 말야.”
태양을 둥에 지고 섰지만 리의 이마에 땀이 배이었다. 전신이 땀에 젖어 있을 것이라고 김은 생각했다.
리는 김의 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물러설 수는 없다고 김은 생각했다.
“그런데 왜 김을 이리로 데려온 줄 알아? 김의 얼굴을 한 번만 똑똑히 보고뇨 싶었던 때문이야. 그리고 한 마디 할 말도 있었지. 부선서 내가 김의 하숙을 떠날 때 말야, 쪽지에는 그렇게 썼지만…….”
김과 리는 서로 이마를 맞댈 정도로 접근되었다.
“쪽지에는 그렇게 썼지만 내 의사는 아니었어. 알겠나, 김! 내 주위는 늘 감시의 눈이 있어. 지금도…… 믿어지나, 김? 난 형무소에 들어가 있으면 꼭 좋겠다던 내 말 이젠 알겠지, 김!”
동시에 리의 오른쪽 주먹이 김의 두부를 향해 날았다. 쇠망치가 부딪치는 느낌이었으나 실은 연약한 주먹이었다. 다만 턱밑의 급소를 노렸기 때문이었다. 차츰 몽롱해지는 의식 속에서 김은 울부짖었다.
“리, 다음에 리를 만나면 이렇게 헤어지진 않을 테다!”
4 · 19 에서 횃불 데모까지는 일 년도 채 안 걸렸다. 김은 참된 자유와 방종스러운
자유의 구별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거나해지면 김은 으례 핏대를 세웠다. 왕대폿집에 서다.
“무슨 소리요, 형은.”
부러 핀잔을 주는 나에게 김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럼 형은 원시적안 자유를 원한단 말이오? 금수가 되시오. 미국에도, 영국에도, 프랑스에도 통제는 있소. 서울이 온통 불바다가 돼도 좋단 말이오? 무슨 소리요, 형은!”
그럴 때의 김을 나는 좋아했다. 그런 소리를 더 듣기 위해 대꾸했다. 서울이 불바다가 됨을 좋아할 자가 어디 있겠는가. 횃불 데모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자유를 향유한 상태를 사자는 거지. 형태는 다를지 모르나 프랑스도, 영국도, 미국도 그런 과정을 밟지 않았을까.
“이제 우리가 그들과 비슷한 과정을 되풀이하잔 말이오? 어림도 없는 소리. 횃불 데모의 조종자는 필시 공산당이오. 과정을 거치기 전에 공산당이란 아가리가 기다리고 있어요.”
“하지만 대다수의 데모 대원은 공산당원이 아닐걸. 데모 대열의 의사와 목적은 시인해야 옳지 않을까. 또 공산당의 조정이란 것은 김의 추상일 테지.”
“그럼 말하리다. 횃불 데모의 선두에 선 자는 바로 리였소.”
그 날 김은 데모대의 출발 예상 지점에 취재용 지프를 대기시켜 놓고 있었다. 횃불을 높이 들고 뛰쳐나온 사내가 차마 리인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 리의 출현과 더불어 데모대가 움직이기 시작하지만 않았던들 그런 실수를 거듭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김은 말하였다.
“리!”
한, 김의 목소리는 데모대의 함성에 흡수되어 버리었다. 김이 탄 지프는 데모대와 병행으로 굴러갔다. 선두에 선 리에게 접근하려고 지프 차는 인파를 헤치었으나. 리는 저만치 거리를 두고 달리고 있었다.
“리!”
한, 김의 두 번째 목소리는 분명 들렸을 텐데도 리는 고개 한 번 돌리지 않았다. 소방차 앞에 횡대(橫隊)로 선 기마 경찰대와 부딪칠 때까지 횃불을 하늘 높이든 리는 그냥 달리기만 했다. 기마대의 함성과 소방차의 요동이 시작되자 겨우 데모대는 흩어지기 시작하였다. 김은 지프 차를 버렸다. 리를 향해 돌진하였다. 소방차에서 발사된 물은 폭우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김은 분명히 리의 한쪽 팔을 붙들려고 했고 그런 줄로 알았다. 기마대의 곤봉이 김의 어깨를 때렸다. 김은 손에 잡힌 팔을 한사코 놓지 않았다. 그러나 거리가 다시 정상을 되찾았을 때 김의 손에는 스무 살쯤 된 청년의, 팔이 잡혀 있었다.
“그리고는 며칠 전에야 나는 리의 소식을 들었소. 도 서방이 전해 왔소. 리는 양구에서 뱃사공을 한다는 거요.”
삼십여 명의 낚시꾼을 태운 전세 버스는 시방 춘성(春城) 땅을 지나 양구 땅에 들어서고 있었다.
7
양구 입구에서부터 시작되는 댐 저수지는 해발 1,198 미터의 사명산(四明山) 줄기를 양측에 끼고 서서남(西西南)으로 조용히 흐른다. 양구의 북면(北面)과 화천의 간동(看東) 두 면을 완전히 분단한 물줄기는 화천면에 이르러 바다처럼 넓어지면서 그친다. 관광 버스의 종점은 중류에 있다―—고, 김은 잉어를 낚기 위한 보조줄을 낚시에다 감으며 설명하였다. 줄을 감고 난 김은 잠바 주머니에서 잭 나이프를 꺼내 줄 끝을 설컥 자른다. 칼날이 시퍼런 나이프였다:
“리는 어째서 양구에 돌아가 있을까요? 고향으로 돌아온 기분으로 사는 것일까요 ?…….”
차창 밖에 유동하는 준령들을 바라보며 김은 말했다.
“도 서방은 리의 거처를 알리기 위해 사백 리 길을 부러 왔소. 그러한 도 서방을 신문사 현관에서 대하였을 때 나는 왜 그런지 도 서방이 미워졌소. 도 서방은 나와 리가 피차 이용하던 첩자였소. 이중 첩자였소. 그는 말했소. 리는 저수지 주변의 습지를 논으로 만들고 뱃사공을 하여 먹고 산다는 거요. 전에 부치던 땅은 애당초 리의 것이 아니었으며 주인 손에 돌아갔다는 거요. 리는 고향으로 돌아온 기분으로 그렇게 사는 것일까요…… 다른 데 발을 붙일 곳이 없어서일까요?”
김의 두 눈은 빛나기 시작하였다. 횃불 데모를 겪고 온 날 저녁때의 눈이 되며 계속하였다.
“오일륙 후 간첩들은 지하 깊숙이 묻혀 버렸다고 하오. 필시 리는 줄이 끊어진 거요. 리는 월북할 기회를 노리고 있을지 몰라·…·아니, 리는 도망칠 사내가 아니오. 리는 월북자의 안내 역할을 맡고 있는지도 모르오. 양구에서 휴전선까지 불과 오십 리요. 나는 리를 어떻게 대해야 옳을까·…·어떻게 대하겠소, 형이 내 입장이라면?”
그럭한 김을 나는 일찌기 본 적이 없었다. 그의 두 눈엔 애원의 빛이 감돌고 있었다. 나는 암말도 할 수가 없었다. 결코 검은 그릇된 행동을 취하지 않으리라고 믿는 데서 였다.
“나는 리가 경찰의 손에 체포되기를 바라지 않았소. 내 손을 거쳐 자수케 할 생각이었소. 전에 리의 거처를 알았더라도 나는 밀고 따위는 못 하였을 게요. 그러나 지금은 자신이 없어요. 만약에, 만약에 내가 리를 경찰에 고발하면 리에게 지는 셈이 될까요, 형? 자수도 않을 바에야 리는 숫제 월북해 버리는 게 편한 노릇이오.”
댐 처수지의 낚시터는 북면 주막리(酒幕里)에서 비롯된다. 수초가 깔린 수변엔 으례 보트가 몇 척씩 매어져 있었다. 해는 어느덧 서산에 걸려 있었다. 태공들은 성급했다. 저물기 전에 밤낚시 준비를 마치어야 한다. 버스는 둘씩, 셋씩, 다섯씩 태공들을 내려놓고 물줄기를 따라 하류로 하류로 홀렀다.
버스가 정차할 때마다 김은 뱃사공들의 얼굴을 살피었다, 수변은 바로 길가였다.
사공들은 하나의 태공이라도 더 자기 배에 태우려고 서성거렸다. 그 얼굴들을 김은 샅샅이 살피는 것이었다. 버스 종점까지는 삼십 리 길이었다. 그 앞엔 길이 없었다. 물줄기는 거기에서도 오십 리쯤 더 내려간다고 한다. 사명산 주봉이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종점엔 십여 척의 보트와 그만 수의 사공이 태공들을 맞이하였다. 거기에서도 사공들은 앞을 다투어 태국들의 도구를 뺏어 들었다. 맥작(麥作)이 그른데다 감자마져 시원치 않아 서울 태공들의 왕래가 주민들에겐 중요한 수업원이었다. 민첩한 사공은 이미 태공을 태우고 대안(對岸)으로 떠나고 있었다. 보트에 벌렁 누워 콧노래를 부르는 사공이 있었다. 태공 수에 비해 배가 너무 많았다. 다음 버스를 기다리기로 한 그 사공 곁으로 김은 다가가고 있었다.
“리…….”
“요오, 김!”
고개를 든 리는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동물의 신음처럼 토하며 일어나 벌죽 웃었다. 하류 쪽에서 밀려 온 파도가 뱃머리에 철썩인다. 서풍이었다.
“잘 있었나.”
“응, 국무 총리 기자 회견하는 김 모습을 며칠 전 뉴스 영화에서 봤어.”
“이 근처에도 영화관 있나?”
“춘천에 농구나 야채 종자 같은 것을 사러 갔던 길에 구경을 했어.”
“춘천엔 가끔 나가?”
“응, 농구나 야채 족자 같은 것 사러 한여름에 두어 번 가지.”
“그러면서 서울엔 왜 한 번도 안 왔어?”
리는 대답 대신 벌죽 웃으며 노를 젓기 시작하였다. 십대 소년들의 대화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리는 짐작한 바와는 달리 온순한 얼굴을 가진 사내였다. 지금까지 나는 무슨 꿈을 꾸고 있은 것 같은 자각에 사로잡혔다. 아니면, 김은 리에 관한 거짓말을 한 겻이라는 엉뚱한 착각이 들기도 하였다. 리는 김에게 방향을 묻지 않고 그냥 노를 젓는다. 김도 낚시터 선택을 리에게 위임한 듯 붉게 타오르는 서쪽 하늘에 시선을 던진 채로였다.
서쪽으로 십 리쯤 내려왔을 것이다. 태공들의 모습이 눈에 띄지 않는다. 수변은 양쪽이 모두 경사 구십 도 가까운 절벽이었다. 리는 비로소 입을 열었다.
“이 골짜기를 벗어나면 바다처럼 넓어지지. 입질은 상류가 잦지만 씨는 역시 깊은 데래야 굵어. 칠 관짜리 잉어도 아래쪽에서 올렸어. 군단장 전용 낚시터가 있지. 그 친구 오늘 안 나왔거든. 기동 훈련이 있다던가. 하루 실례하자는 거지.”
리의 말대로 골짜기를 벗어나자 바다처럼은 아니라도 폭이 오백 미터 이상으로 벌어진다. 굴곡도 심한 것이 낚시터로선 십상이었다.
“군단장 낚시터란 덴 아직 멀었나?”
“응, 좀더 내려가야 해. 여기서부터 화천 땅이야.”
웬만치 큰 정원을 열 개쯤 합친 정도의 면적을 수초가 덮고 있었다. 내가 거기 자리잡고 싶다고 생각하였을 때 김의 시선이 왔다.
“형 ! 여기 마음에 드시면 앉구료.”
“그럴까…….”
김은 리와 단둘이 되고 싶은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어떨까? …… 김의 의사대로 내버려 둘까. 나는 조금 전에 지나온 험한 계류를 생각했다. 리는 수초를 피하며 보트를 수변에 대었다. 리도 김과 단둘이 되기를 바라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나는 결심했다.
“시원치 않으면 내려오시오, 리를 보낼 테니까요.”
그 말에 다른 뜻이 없음을 나는 다음 순간에야 다짐할 수 있었다. 김은 리에게서 노를 뺏다시피 하였다.
“좀 교대해.”
“괜찮아, 김에겐 힘들걸.”
“뭘 그래, 한강에선 선수였어.”
“내가 되는 대로 만든 배라서 성질이 까다로와.”
나는 낚시 도구를 풀고 자리를 잡았닥다 김과 리에게 신경을 쓸 필요는 없다―—
고, 나는 생각했다. 단둘이 되면 필시 과거 이야기에 꽃을 피우리라. 그 결과 김과 리 사이엔 언쟁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지금까지도 리에게 보이지 않는 선이 연결되어 있다면 김은 그를 경찰서나 그와 같은 곳으로 끌고 갈지도 모른다. 적어도 리는 김에게 거짓말을 안 할 것이다. 자수를 안 할 바에야 숫제 월북해 버리는 게 자기에겐 편한 노릇이라고 말한 김은 리를 월북시킬지도 모른다. 또한 김은 잠바 호주미니 속에 있는 예리한 나이프를 꺼내 리의 가슴을 찔러 버릴지도 모른다―—고, 나는 오뚝 선 찌를 바라보며 여러 가지 궁리를 했다. 시방 김과 리는 인기척이 전혀 없는늑 하류로 하류로 흘러가고 있다. 불안한 노릇이지만 왠지 나의 마음은 흐뭇했다. 김과 리 간에 어떠한 사태가 벌어지더라도―— 설사 둘 중의 어느 하나가 고기밥이 뒤는 한이 있더라도 김과 리 간의 우정은 절대 변하지 않으리라는 신념이 솟아서였다.
찌가 수욱 솟는다. 낚아 챘다. 뜰망을 펴 놓을 걸 하는데 저만치서 김의 목소리가 울려 왔다.
“커 ― 요?”
“그렇지도 않아!”
“몇 ―치ㅡ쯤?”
“여덟 치쯤 ― 될 ― 까…….”
“자―-----=올려요! 자 짜리를!”
김과 리를 태운 보트는 산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바람마저 자자 호면은 명경처럼 호젓해졌다. 그 위에 서서히 황혼이 서리기 시작하였다.
낚시 도구가 들어 있는 백에서 나는 간데라 등(燈)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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