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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대선장(大禪匠)이며, 우리나라 다도(茶道)의 중흥조(重興祖)이신 초의(草衣) 선사는 차(茶)와 선(禪)에 관한 귀중한 저서들을 후손들에게 남겼다. 선사의 《다신전(茶神傳)》, 〈동다송(東茶頌)〉과 《선문사변만어(禪門四辯漫語)》는 오늘날 차와 선을 연구하는 이들에게는 실로 목마른 사람에게 감로수와 같아서 없어서는 안 될 지침서이다.
초의 선사는 다도에 조예가 깊을 뿐만 아니라 선사로서의 명망이 더 높으셨던 분이다. 그의 선사상(禪思想)을 논하자면 《선문사변만어》를 빼놓을 수 없다.
선사는 《선문사변만어》를 통해 문제인 수행상의 참된 선지(禪旨)를 개념화된 임제삼구(臨濟三句)에 고착시켜 선의 우열을 가늠하고 선을 체계화?이론화하고자 한 백파(白坡) 선사의 선론(禪論)을 비판했다.
요컨대 선사의 선사상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선문사변만어》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인데, 지금까지 한글 번역본이 없음을 안타깝게 여겨온 지리산 칠불선원 제월통광(霽月通光) 선사가 《다신전》·〈동다송〉·《선문사변만어》를 번역 합본(合本)하고, 초의다선집(草衣茶禪集)이라 이름하여 여러 해 전에 출간하였다. 다도를 하는 사람이나 참선 수행을 하는 이들에게 감로수와 같다. 무엇보다도 《선문사변만어》의 한글 번역은 어두운 밤을 헤매는 선객들에게 횃불과 같다.
초의 선사의 《선문사변만어》는 해박한 독서로 폭넓게 고증하여 실로 칼날을 자유로이 놀리듯 하였으며, 엄정한 언어로 바르게 기록하여 근고(近古)에 보기 드문, 웅대한 문장으로 된 보배로운 책이다.
하지만 한문 실력이 없는 이들에게는 보고도 먹지 못하는 떡과 같다. 또한 《선문사변만어》는 그 문장의 글자 한 자 한 자가 심묘한 선지를 드러내는 글이라 아무리 한문 실력이 뛰어난 강백이라도 한글로 번역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통광 선사는 뛰어난 강백이면서 선지가 열린 대선사로서, 《선문사변만어》의 번역은 거의 완벽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초심자가 초의 선사의 《선문사변만어》의 본문을 읽고 이해하기보다 통광 선사가 쓴 《선문사변만어》의 해제(解題)가 더 이해하기 쉬우니 선사의 선지가 돋보인다.
본문의 내용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았고, 그러면서 이해하기 쉽게 정리하였으니, 마치 어미가 어린 새끼에게 딱딱한 먹이를 씹어서 부드럽게 하여 먹인 듯하다. 그래서 《선문사변만어》 해제를 소개하여 조사선과 여래선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
《선문사변만어(禪門四辯漫語)》 해제(解題)
지리산 칠불선원 제월통광 지음
《선문사변만어》는 초의 선사가 지은 대표적 선서(禪書)로서 백파(白坡) 선사의 《선문수경(禪門手鏡)》에 대하여 처음으로 비판한 논변서(論辨書)이다. 백파긍선(白坡亘璇·1767~1852)은 《선문수경》을 저술하여 임제삼구(臨濟三句)에 각각 조사선(祖師禪)·여래선(如來禪)·의리선(義理禪)을 배대(配對)하여 그 우열과 심천(深淺)을 분별하고 선문의 제종(諸宗)을 판석(判釋)하려는 선론(禪論)을 전개하였다.
이때 대흥사에 주석하던 초의의순(草衣意恂·1786~1866)은 《선문사변만어》를 지어 백파 선사의 《선문수경》에 나타난 오류를 지적하고, 옛 선사들의 말씀을 들어 그 잘못된 곳을 낱낱이 바로잡았다.
백파선론(白坡禪論)의 반론인 동시에 초의선론(草衣禪論)의 요지를 담고 있는 이 《선문사변만어》는 전체 분량의 반이 남는 전반부에서 항목없이 백파 선사의 주 논지인 삼처전심(三處傳心)의 살활(殺活) 문제와 이선대비(二禪對比), 삼종선(三種禪)과 임제삼구의 대비, 선문오종(禪門五宗)에 대한 조사선과 여래선의 대비와 우열(優劣) 등을 전제한 후 자신의 선론을 피력하면서 고덕(高德)의 제설(諸說)을 인용하여 논증하였으며, 후반부에서는 《이선래의(二禪來義)》, 《격외의리변(格外義理辨)》, 《살활변(殺活辯)》, 《진공묘유변(眞空妙有辨)》의 사변(四辨)으로 일목요연하게 그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1. 백파선론에 대한 초의의 총괄적 변박
1) 삼처전심의 살활 문제와 이선대비(二禪對比)
백파 선사는 다자탑전(多子塔前)의 분반좌(分半座)에는 살(殺)만 있고, 활(活)이 없으므로 여래선이고, 영산회상(靈山會上)의 염화시중(拈花示衆)에는 살활(殺活)을 함께 겸하였으므로 조사선이라 하였다.
이에 초의 선사는 백파의 설(說)이 구곡(龜谷)의 이른바 《염송설화(拈頌說話)》에서 주장한 삼처전심 중에 분좌는 살을 전하고 염화는 활을 전하고 곽시쌍부(槨示雙趺)는 살활을 함께 보인 것이라 한 것과 일치하지 않음을 지적하였다. 나아가서 살활은 기용(機用), 체용(體用) 등의 선구(禪句)와 같은 말로서 상자(相資)하여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것이며 불가분의 관계이므로, 살을 전하는 데 반드시 활을 겸하고 활을 전하는 데 반드시 살을 겸하고 있음은 필연의 이치라 강조하였다.
만약에 세존이 분반좌할 때 살만 전하고 활을 전하지 않았다면 세존은 미진한 전심(傳心)을 한 것이요, 따라서 이러한 이치는 있을 수 없으므로 백파 선사의 주장은 당치도 않은 말이라고 비판하였다.
2) 삼종선과 임제삼구의 대비
백파 선사가 선(禪)을 조사선·여래선·의리선의 세 종류로 나누어 임제삼구에 배대하여 상·중·하의 세 근기로 분류하고 근기의 우열을 논한 데 대하여 초의 선사는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다.
“불조(佛祖)가 상근기를 대할 때는 언구(言句)에 의하지 않고 곧바로 근기에 응하여 이심전심(以心傳心)하는 것인데, 백파 노사는 상근기에 대해 하나하나 언구로써 재접한다 함은 모순이다. 그리고 조사선은 언구로 주고받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또 “백파 노사가 삼처전심 중 분반좌를 제2구인 여래선에 배대하면서 동시에 격외선이라고 함은 옳지 못하다”고 규정하였다. 왜냐하면 여래선은 여러 가지 방편을 써서 도리를 밝히는 것으로서 의리(義理) 격칙(格則)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여래선을 격외선(格外禪)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리선의 정의도 잘못되었다고 비판하면서 임제삼구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임제 제1구(第一句)는 주(主)와 빈(賓)이 나누어지기 이전, 언설(言說)이 나오기 이전의 진종(眞宗)이 확연히 드러나는 활구(活句)이다. 이 1구의 소식을 얻으면 위음왕불(威音王佛) 이전의 비로향상(毘盧向上)을 투철한 것이니 불조(佛祖)의 스승이 된다.
이에 대해 백파 선사는 일우(一愚)의 입장에 따라 제1구 소식은 그 내용이 삼요(三要)이고 이 삼요는 진공(眞空)에 대한 묘유(妙有)라고 하면서 주관과 객관의 이원론으로 분리하여 묘유의 입장에서 삼요를 설명하였다. 그런데 초의 선사는 제1구는 주관과 객관으로 나눌 수 없고 언설로 표현하기 이전 언하(言下)의 활구(活句)로서 묘유를 포함하고 있는 진공으로 파악하였다.
임제 제2구는 사량(思量)이 붙을 수 없는 곳을 분석하려 하나 말을 하게 되면 진종은 감추어져 버린다. 이 제2구는 불사불활(不死不活)의 구로서 제2구를 얻은 이는 언교(言敎)의 방편으로 말을 떠난 실상(實相)을 깨달은 것이니 인천(人天)의 스승이 된다.
이에 백파 선사는 제2구는 진실무망(眞實無妄)의 경지이긴 하지만 흔적이 남아 있어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진일보(進一步)하지 못한 경지로 본 데 반하여, 초의 선사는 언교의 방편으로 언어를 여읜 실상을 깨닫는 경지로 보았다. 또한 초의 선사는 제2구 여래선을 격외선에 속한다고 본 백파 선사의 의견에 반대하였다.
임제 제3구는 삼요의 기용을 설명하고 삼현(三玄)의 방편〔權〕과 실상〔實〕을 해석하는데 사로잡혀 본지(本旨)를 잃어버린 사구(死句)이다. 따라서 자기 자신도 구제하지 못한다.
이제 백파 선사는 이 제3구를 격별삼구(隔別三句)라 하여, 하근중생(下根衆生)이 참을 모르고 유(有)?무(無)?중(中) 어느 하나에 집착하거나 격별(隔別)되어 있어서 신훈(新薰)은 있으나 본분이 없으므로 자기 자신도 구제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나 초의 선사는 제3구를 제1구와 제2구와 본구(제3구)를 합한 것을 의미한다고 보고 특별히 제3구에 해당하는 별개의 선(禪)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백파의 설(說)을 부정하였다.
즉, 제1구는 격외활구(格外活句)이고, 제3구는 의리사구(義理死句)로서 활구와 사구는 차이는 있으나 서로 다른 격별삼구는 아니라고 규정한 초의 선사는 선을 세 등급으로 나누어 임제삼구에 배대한 백파 선사를 비판하였다.
3) 선문오종에 대한 조사선·여래선의 대비와 우열
백파 선사는 일우의 사상에 입각하여 임제 제1구를 조사선, 제2구를 여래선, 제3구를 의리선에 배정한 다음 송(宋)의 지소(智昭)가 편집한 《인천안목(人天眼目)》과 조선조의 환성지안(喚醒志安·1664~1729)이 저술한 《오종강요(五宗綱要)》 등에 의한 선문오종을 그대로 인정하였다. 그리고 백파 선사는 지소와 환성의 사상에 의거하여 임제종(臨濟宗)과 운문종(雲門宗)의 2종을 조사선에, 조동종(曹洞宗), 위앙종(潙仰宗), 법안종(法眼宗)의 3종을 여래선에 각각 배분하고, 그 우열을 논하였다. 이에 대하여 초의 선사는 《사변만어》에서 매우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백파 선사는 선문오종에 조사선과 여래선을 배대하여 말하기를 “임제종과 운문종은 조사선이며, 임제종은 기용이 구족하므로 조사선의 정맥이 되고 운문종은 절단(截斷)의 도리만을 밝히고 기용을 현설(現設)하지 못해 임제종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에 초의 선사는 임제의 기용과 운문의 절단수파(截斷隨波)는 둘이 아니며, 또한 우열이 있을 수 없다고 논하면서 “운문이 기용(機用)을 현설(現說)하지 않았기 때문에 임제에 미치지 못한다”고 말한다면 “부처님도 역시 기용을 현설하지 않아서 기용이 없는 것을 간주하고 임제만 못하다고 말할 것인가”라고 반박하였다.
또한 백파 선사는 종동종, 위앙종, 법안종을 여래선으로 분류하고, 이 중에서 조동종은 향상(向上)의 도리를 밝혀 불지(佛地)인 진금포(眞金鋪)에 도달하므로 여래선의 정맥이고, 위앙종은 다만 도달하지 못하므로 조동종보다 못하며, 법안종은 유심(唯心)만 밝히고 용(用)을 거두어 체(體)에 돌아가기 때문에 위앙종보다 못하다고 말하여 차례로 우열을 논하였다.
이에 초의 선사는 위앙종과 조동종이 우열이 없음을 논하기 위하여 앙산(仰山)에 관련된 일화를 인용한다. 즉 앙산은 아난존자(阿難尊者)의 후신이며 서천(西天)의 나한들이 때때로 와서 법을 물었기에 소석가(小釋迦)라고 불리었던 분이다. 그런데 여래선을 벗어나지 못하였다고 하니 참으로 슬픈 일이라고 한탄하면서, 위산은 소석가의 스승이며 조동종의 조(祖)인 동산(洞山)은 위산을 참문(參問)하여 삼삼루(三滲漏)의 소식을 얻었으니 조동종의 연원(淵源)이 위산이라고 하였다.
또한 마조(馬祖)의 일할(一喝)에 백장(百丈)이 귀가 먹고 황벽(黃蘗)이 토설(吐舌)하였다는 공안(公案)에 처음으로 손을 대어 백장은 대기(大機)를 얻었고 황벽은 대용(大用)을 얻었다고 한 분이 앙산인데, 앙산이 어찌 기용을 얻지 못하였겠는가라고 반문하고 조사선과 여래선의 출처를 밝혀 위앙종은 여래선이라는 백파 선사의 견해를 반박하였다.
한편, 백파 선사는 법안종이 가장 미흡한 여래선이라고 보았는데, 이에 대해 초의 선사는 법안이 일찍이 조사선에 대해 언급한 것을 제시하여 반박하였다. 즉 《금강경》의 “만약 모든 상이 상 아님을 보면 곧 여래를 본다〔若見諸相非相하면 則見如來라〕”라고 한 구절에 대해 법안이 “만약 모든 상이 아닌 것으로 보면 곧 여래를 보지 못한다〔若見諸相非相하면 則見如來라〕라 함은 바로 조사선이다”라고 말했듯이 법안 역시 조사선을 설하였음을 논증하였다.
그러면서 초의 선사는 천의무봉(天衣無縫)한 옷을 이리저리 손을 대어 백결(百結)처럼 낡은 옷을 만든 사람이 바로 백파선이라고 크게 꾸짖었다. 또한 사사로운 견해로 조사선과 여래선의 계층을 두어 선문오종에 배대하는 것은 본래의 도리를 왜곡되게 천착하여 후학들로 하여금 빠져나올 수 없는 갈등의 소굴로 빠뜨린 것이니, 백파 선사의 선론이 선도로서 도저히 활용할 수 없는 사문(死文)이라고 통렬하게 비판하였다.
2. 초의선론(草衣禪論)의 사변개요(四辨槪要)
1) 이선래의(二禪來義)
조사선과 여래선의 유래와 의미를 논한 이선래의의 서두에서 보조지눌 국사의 말을 인용하여 선(禪)의 어구(語句)와 교상(敎相)에 떨어지지 말고 말을 떠난 격 밖의 소식을 깨달을 것을 강조하고 있다. 곧 33조 및 남악(南岳)?청원(靑原) 이하 모든 종사(宗師)들은 일찍이 여래선을 분별하거나 그 우열을 말하지 않았다. 조사선·여래선의 2선 구분은 앙산(仰山)과 향엄(香嚴)과의 대화에서 비롯된 역사적 사실을 밝히고 또 조사선과 여래선은 법체(法體)가 둘이기 때문이 아니라 법(法)을 주고받는 방법이 드러나는가 은밀한가에 의한 구별이라고 보았다.
초의 선사는 《능가경(楞伽經)》에 설한 여래선을 인용하여, 여래선은 부처가 중생에 대하여 의리명자(義理名字)를 설한 것이며, 조사선은 분반좌나 염화시중, 곽시쌍부 등과 같이 무언(無言)으로 이어지는 교외별전(敎外別傳)의 소식·격외의 도리라고 논변하였다.
2) 격외(格外) 의리변(義理辯)
격외 의리변에서 초의 선사는 백운수단(白雲守端)이 “일에 고사(古事)로 고찰하지 않으면 불법(不法)이고 옛것을 변화시키고 떳떳한 것을 바꾸는 것은 요즈음 사람들의 큰 병폐다”라는 말을 인용하여, 옛 조사들의 가르침에 의거하지 않고 선(禪)을 임의(任意)로 바꾸어 주장하는 것을 요즈음 사람들의 큰 병폐라고 하면서 “옛날에는 격외란 말은 있어도 격외선이란 말은 없었고, 의리란 말은 있었으나 의리선이란 말은 없었다. 그러나 중고(中古)에 이르러 사가(師家: 선지식)들이 언교(言敎)에 의지하지 않고 이심전심하는 것을 조사선이라 하고, 교격외(敎格外)의 전수(傳受)라 하여 격외선이라는 말이 생기게 되었다”고 밝혔다.
또한 언교로써 이치를 증득(證得)하는 것을 여래선이라 하는데 이는 언교와 의리로써 오입(悟入)케 한 것이므로 역시 의리선이라고도 하였다. 이렇게 격외선·의리선이라는 말이 생겼다.
인명(人名)을 기준으로 하면 조사선·여래선이 되고, 법을 기준으로 하면 격외선·의리선이 된다는 것이 통설이다. 그런데 초의 선사는 백파 선사가 일우(一隅)의 말만 의지하여 이러한 통설을 임의로 바꾸어 삼처전심 중의 분반좌를 여래선이라 규정하고는 또다시 격외선으로 논하였다고 비판하였다. 또 백파 선사가 의리를 천시하고 폄하하여 신훈만 있고 본분이 없다고 한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하였다.
여기서 초의 선사는 마음을 깨닫고 말을 잊으면 교가 선이 되고 말에 집착되어 마음이 미혹하면 선이 교가 되는 것이라 하여 선과 교, 격외선과 의리선이 근원적으로 일치함을 역설하였다.
3) 살활변(殺活辯)
살(殺)과 활(活)은 체(體)와 용(用)의 경우와 같아서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상의상즉(相依相卽)의 관계로 초의 선사는 해석하였다.
살·활의 어원(語源)은 문수보살이 선재(善財)가 뽑아 올린 한 포기 풀을 들고 말하기를 “이 약(藥)은 능히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또한 살리기도 한다”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보통 살인도(殺人刀)·활인검(活人劍)이라 하여 능히 사람과 부처와 자신의 마음까지도 모두 죽일 수도 있고, 지혜가 청정한 자성을 드러냄으로써 능히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미혹을 끊는 것은 살이고 진여자성이 드러나는 것은 활이며 생멸(生滅)이 그치면 살이 되고 적조(寂照)가 현전(現前)하면 활이 된다. 또한 살은 본체에서 설립된 것이요, 활은 작용에서 성립된 것이다. 따라서 살과 활은 별개의 것이 아니고 동시적이며 서로 불가분(不可分)의 상즉(相卽)관계라는 것이다.
4) 진공묘유변(眞空妙有辨)
마지막으로 진공묘유변에서 백파 선사가 《기신론(起信論)》에 입각하여 한마음 본체에는 본래 불변(不變)과 수연(隨緣)이 있는데, 명상(名相)을 여의고 끊어 남음이 없는 것을 진공(眞空)이라 하고, 인연에 따르는 모든 변화를 묘유(妙有)라 하여 이원론(二元論)으로 분리하였다. 초의 선사는 이에 대하여 진공은 공(空)이 아니요, 묘유는 유(有)가 아니다. 유에 즉(卽)한 공이어야 바야흐로 진공이며, 공에 즉한 유이어야 바야흐로 묘유라고 해석하여 진공과 묘유, 즉 실체와 현상이 분리하지 않고 상즉한 일원론(一元論)으로 보았다.
이처럼 초의 선사는 《선문사변만어》에서 선학(禪學)체계를 삼종선(三種禪)으로 분류하고 근기에 따라 우열과 심천을 논한 백파 선사의 주장에 대해서 일일이 모순을 지적하고 체계적으로 반론을 제시했다.
이를 계기로 활발한 선 논쟁이 일어나 조선 후기의 침체된 불교계에 새로운 방향모색과 활로를 열어 주었다. 이 선 논쟁은 계속되어 송광사에 주석한 백파 선사의 손상좌(孫上佐) 우담홍기(偶曇洪基?1822~1881)가 《선문증정록(禪門證正錄)》(일명 《掃灑先庭錄》)을 저술하여 《선문수경》을 비판하였다. 그는 초의 선사의 견처(見處)에서 출발하여 논쟁의 해결은 언어에 있지 않고 견성(見性)에 있음을 치밀한 논리로 강조하였다.
이에 백파 선사의 4대 법손인 설두유형(雪竇有炯?1824~1889)은 《선문소류(禪門溯流)》를 지어 백파 선사의 입장을 변론하였다. 다시 또 설두에게 배운 축원진하(竺源震河·1861~1926)가 《선문재증록(禪門再證錄)》을 지어 초의 선사와 같은 입장에서 백파 선사와 설두를 비판하였다. 1790년에서 1926년에 이르는 약 1세기 반에 걸쳐 진행된 이 선 논쟁은 조선조 말기를 장식하는 불교계의 거대한 물결이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조선의 배불정책으로 인하여 침체된 조선 후기 불교계의 올바른 선수행의 본질 이해에 일대 반성의 계기가 되었으며, 선수행의 올바른 방향을 모색하게 된 역사적 의의가 있다고 할 것이다.
33조(祖) 및 남악(南嶽), 청원(靑原) 이하 모든 종사(宗師)들은 일찍이 조사선·여래선을 분별하거나 그 우열을 말하지 않았다.
조사선·여래선의 2선(二禪) 구분은 앙산(仰山)과 향엄(香嚴)과의 대화에서 비롯된 것이고, 또 앙산이 말한 조사선과 여래선은 법체(法體)가 둘이기 때문이 아니라 법(法)을 주고받는 방법이 드러나는가〔顯〕, 은밀한가〔隱〕에 의한 구별이다.
향엄의 첫 번째 게송
去年貧未是貧이요 지난해 가난은 가난한 것이 아니오
今年貧始是貧이라 올해의 가난이 정말 가난이다
去年貧猶有卓錐之地러니 지난해 가난에는 오히려 송곳 꽂을 땅이 있었지만
今年貧錐也無로다 올해의 가난은 송곳조차 없다.
이 게송은 법이 드러나지 않고 은밀함이요, 그래서 평등지(平等智)라고 한다.
또 다자탑 앞에서 부처님과 가섭존자가 반좌(半座)로 나누어 앉아 묵묵히 말이 없음 또한 법이 은밀함이니 역시 평등지이다.
향엄의 두 번째 게송
我有一機하니 나에게 일기(一機)가 있어
瞬目視伊라 눈을 깜빡하여 그대에게 보였네
若人不會면 만약 그대가 알지 못했다면
別喚沙彌라 사미야! 부르리라.
이 게송은 법이 드러남이니 차별지(差別智)이다.
백파 선사는 “의리선은 제삼구(第三句)이니 신훈(新薰)뿐이고 본분(本分)이 없기 때문에 이 언구에 깨달으면 자기조차 구제하지 못한다”라고 하니 아마 백파 선사는 의리선(義理禪)과 갈등선(葛藤禪)을 혼돈한 것 같다.
그러나 초의 선사는 이렇게 말했다.
“의리선은 부득불 입을 열어 말로서 의를 설하고 말로인해 이치(理致)를 증득하고 언교의리(言敎義理)로 말미암아 깨쳐 들어가는 것을 말함이요, 또한 이를 여래선(如來禪)이라고도 하는 것이 통설이다.”
갈등선은 대혜종고(大慧宗○) 선사가 《서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칡[葛]과 넝쿨[藤]이 얽히듯이 언구(言句)의 지엽(枝葉)에 얽혀 종지(宗旨)의 근원(根源)에 통달하지 못한 언구갈등이며 직절근원(直截根源)의 본분겸추(本分鉗鎚)를 보이지 않고 타니대수(拖泥帶水), 노파설(老婆說) 따위를 갈등선이라 한다.”
지금까지 말한 백파 선사 논지와 초의 선사 논지를 간추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백파론(白坡論)
1. 제일구(第一句) - 조사선(祖師禪) - 격외선(格外禪) - (殺, 活) - (體, 用) - (眞空, 妙有) - (大機, 大用) - 상신실명(喪身失命) - 불조위사(佛祖爲師) - 여인인공(如印印空) - 염화미소(拈花微笑) - 임제종(臨濟宗)·운문종(雲門宗).
2. 제이구(第二句) - 여래선(如來禪) - 격외선(格外禪) - (殺, ○) - (體, ○) - (眞空, ○○) - (大機, ○○) - 미개구차(未開口錯) - 인천우사(人天爲師) - 여인인수(如印印水) - 반분좌(半分座) - 조동종(曹洞宗)·위앙종(○仰宗)·법안종(法眼宗).
3. 제삼구(第三句) - 의리선(義理禪) - 분기소추(糞箕掃○) - 여인인니(如印印泥) - 자구불요(自救不了).
초의론(草衣論)
1. 활구(活句) - 조사선(祖師禪) - 격외선(格外禪) - (殺, 活) - (體, 用) -
(大機, 大用) - (眞空, 妙有) -- 말후구(末後句) - 차별지(差別智) - 상신
- 최초구(最初句) - 평등지(平等智) - 미
실명(喪身失命) - 염화미소(拈花微笑) - 아유일기(我有一機) -
개구차(未開口錯) - 반분좌(半分座) - 거년빈미시빈(去年貧未是貧) -
- 여인인공(如印印空) - 불조위사(佛祖爲師).
2. 불사불활구(不死不活句) - 여래선(如來禪) - 의리선(義理禪) - (殺, 活) - (體, 用) - (大機, 大用) - (眞空, 妙有) - 여인인수(如印印水) - 인천위사(人天爲師).
3. 사구(死句) - 갈등선(葛藤禪) - 노파선(老婆禪) - 구두선(口頭禪) - (但空, 假有) - 분기소추(糞箕掃○: 똥 담는 삼태기와 똥 쓰는 비) - 타니대수(拖泥帶水: 진흙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