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도 참으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참혹하고 원색적이다.
세상의 왕을 세운 잘못된 시작으로 비롯된 악의 열매가 절정에 다다른다.
그나마 유다는 아사라는,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하나님 안에 거하려 분투하는 왕이 있어 명맥을 유지 중이지만
이스라엘 쪽은 정말 비참하다.
여로보암으로부터 7명의 왕에 걸친 약 50~60년의 시간은
그야말로 지옥이다.
단 한 점의 선함도 보이지 않는 듯하다.
쿠데타, 암살, 권력 살육, 금송아지 우상 숭배,
전 가문 몰살, 바알 숭배의 국가 공인, 여호와 선지자 학살,
심지어 인신 제사까지…
이쯤 되면 이런 질문이 생긴다.
도대체 이런 악은 어디서 나오는가?
몇 대에 걸쳐 반복되는 이 극단적 타락의 근원적 동력은 무엇인가?
정말 악이 유전되기라도 하는 것일까?
일단 여로보암이 만든 죄의 구조,
거역하기 힘든 강력한 ‘경향성’이 큰 몫을 차지했을 것이다.
우상을 정치와 결합하여, 거스를 수 없는 국가 시스템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여로보암이 모든 죄의 원흉이고, 이후 왕들이 단지 피해자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나님은 인간을 그렇게 창조하지 않으셨다.
아무리 경향성이 강하다 해도
사람은 그것을 인식하고 거스를 수 있는 선택의 능력을 부여받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선지자들의 경고도 들을 수 있었으며,
이미 역사 속 수많은 사례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로보암이 만든 길을 ‘따랐다.’
강요당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이 참혹함은
한 사람의 죄가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쳐 선택된 죄의 누적이다.
그런데 이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메시지는 전혀 다르다.
모든 것이 무너진 것 같은 시대에
엘리야가 있고,
오바댜가 있으며,
그리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천 명이 있다.”
지옥과 같은 시대 한가운데에도
조용히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이 절망적인 세상 속에서도
여전히 일하고 계신다.
그리고 그분을 따르는 사람은
언제나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의 과제는
이 어두운 시대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무너지거나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도 하나님을 순전하게 따르는
그 ‘남은 자’ 안에 서는 것이다.
그것은 내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사귐만이
그 자리에 설 수 있는 힘을 준다.
그리고 그 사귐을
삶의 우선순위로 둘 것인가의 선택은
오늘도 내 앞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