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출근합니다》
제66화 「통역보다 중요한 것」
도쿄 국제 패션박람회 둘째 날.
오전 10시.
한빛패션 부스 안에는 이른 시간부터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오늘은 일본의 대형 유통기업 사쿠라 리테일과 정식 계약 상담이 예정되어 있었다.
일본 전역에 백여 개의 매장을 보유한 회사.
이번 계약이 성사된다면,
한빛패션은 일본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오대리가 넥타이를 고쳐 매며 말했다.
"이 계약만 따내면."
"우리 진짜 글로벌 회사 되는 거죠?"
박주임이 브로슈어를 정리하며 대답했다.
"그러니까 긴장시키지 말고 조용히 있어요."
최인턴은 번역기를 꼭 쥐고 있었다.
"충전 100퍼센트입니다."
이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기계만 믿으면 안 되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지."
김부장이 피식 웃었다.
"자네가 제일 기계를 믿는 얼굴인데?"
잠시 후.
사쿠라 리테일의 바이어들이 부스로 들어왔다.
상담 책임자는 쉰 살쯤 되어 보이는 일본인 여성이었다.
다나카 유키 본부장.
그녀는 예의 바르게 인사를 나눈 뒤
한빛패션의 제품들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원단을 만지고,
봉제선을 확인하고,
가격표와 생산 일정을 비교했다.
강서준은 차분하게 제품의 장점을 설명했다.
윤하늘도 준비한 영어로 발표를 이어 갔다.
상담은 순조로운 듯했다.
그러나 계약서 검토가 시작되자
다나카 본부장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녀는 통역을 통해 말했다.
"상품은 훌륭합니다."
"하지만 계약을 진행하기는 어렵겠습니다."
순간.
부스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하늘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다나카 본부장은 계약서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첫 주문 물량에 비해."
"납품 기간이 너무 깁니다."
"일본 소비자는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통역 담당자가 난처한 얼굴로 덧붙였다.
"사쿠라 리테일 측에서는."
"납품 기간을 절반으로 줄이지 않으면 계약이 어렵다고 합니다."
오대리의 표정이 굳었다.
박주임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절반은 불가능해."
이과장이 계산기를 두드렸다.
"생산 라인을 두 배로 돌려도 쉽지 않습니다."
김부장이 낮게 말했다.
"무리하게 약속하면 품질이 떨어질 수 있어."
강서준은 잠시 생각한 뒤 차분하게 말했다.
"납품 일정을 조금 조정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절반으로 줄이는 것은."
"품질을 보장하기 어렵습니다."
다나카 본부장의 표정은 단호했다.
"그렇다면."
"이번 계약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이었다.
윤하늘이 조용히 앞으로 나섰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모든 시선이 하늘에게 향했다.
통역 담당자가 급히 하늘의 말을 옮기려 했지만,
하늘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서툴지만 또박또박 영어로 말했다.
"Please."
"I want to tell you one thing."
하늘은 잠시 숨을 골랐다.
완벽한 문장은 아니었다.
발음도 매끄럽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We can make clothes faster."
"But if we hurry too much..."
"We may lose the quality."
다나카 본부장이 조용히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계속 말했다.
"Our clothes are for someone's first day."
"First interview."
"First presentation."
"First promotion."
"That day is very important."
그녀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So we don't want to make clothes only fast."
"We want to make clothes people can trust."
통역 담당자는 하늘의 말을 자연스럽게 일본어로 옮겼다.
부스 안은 조용했다.
하늘은 마지막으로 다나카 본부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조금 늦더라도."
"사람이 가장 중요한 날에 믿고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것이 한빛패션의 약속입니다."
통역이 끝난 뒤에도
다나카 본부장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잠시 후.
다나카 본부장이 천천히 다시 자리에 앉았다.
"윤하늘 과장."
"네."
"당신은 지금."
"계약 조건을 설명한 것이 아닙니다."
"회사가 어떤 마음으로 옷을 만드는지 설명했습니다."
하늘은 긴장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다나카 본부장은 작은 미소를 지었다.
"저는."
"그 마음을 믿어 보고 싶습니다."
순간.
모두의 눈이 커졌다.
다나카 본부장은 계약서를 다시 펼쳤다.
"납품 기간은 기존 일정으로 유지하겠습니다."
"대신 첫 물량을 줄이고."
"소비자 반응을 본 뒤 추가 발주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지요."
강서준은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품질로 보답하겠습니다."
하늘도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상담이 끝나고 바이어들이 돌아가자
부스 안에서는 환호성이 터졌다.
오대리가 두 팔을 번쩍 들었다.
"계약 성공!"
박주임은 하늘의 손을 꼭 잡았다.
"과장님."
"정말 멋졌어요."
최인턴은 감격한 얼굴로 말했다.
"영어 문법보다."
"진심이 더 잘 통했네요."
이민재도 고개를 끄덕였다.
"통역 없이도 마음은 전달되는군요."
이과장은 시계를 확인하며 말했다.
"계약도 성공했고."
"오늘은 정시에 끝낼 수 있겠군."
김부장이 웃음을 터뜨렸다.
"결국 마지막은 칼퇴 이야기냐?"
강서준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기뻐하는 하늘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녀에게 다가가 말했다.
"윤하늘 과장."
"네."
"오늘."
"제가 준비한 어떤 자료보다."
"하늘 씨의 한마디가 더 큰 힘을 발휘했습니다."
하늘은 쑥스러운 듯 웃었다.
"영어가 많이 틀렸을 텐데요."
강서준은 고개를 저었다.
"틀리지 않았습니다."
"상대가 정확히 알아들었으니까요."
"통역보다 중요한 건."
잠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진심이니까요."
하늘은 그의 말을 듣고 환하게 웃었다.
"팀장님이 연습시켜 주신 덕분이에요."
"아닙니다."
"저는 영어 발표만 도왔습니다."
강서준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마음은."
"원래 하늘 씨 안에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주변은 여전히 분주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시간이 조용히 멈춘 듯했다.
그날.
한빛패션은 일본 시장 진출의 첫 계약을 따냈다.
완벽한 외국어도,
유리한 조건도 아니었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숨기지 않고 전한
윤하늘의 진심이 만들어 낸 결과였다.
― 제67화 「세계가 인정하다」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