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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8화 ― 「사라진 백만 원짜리 그림」
토요일 오전.
은솔성당 마당은 평소와 달리 시끌벅적했다.
일주일 뒤 열릴 자선바자회를 준비하느라 교우들이 집에서 가져온 물건들이 교육관으로 계속 들어오고 있었다.
옷가지.
그릇.
책.
장난감.
소형 가전제품.
직접 담근 장아찌까지.
교육관 한쪽에서는 오미자가 허리에 손을 얹고 사람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옷은 오른쪽! 책은 창가! 깨지는 물건은 절대 위에 쌓지 마세요!”
최병철이 장부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회장님, 기증품은 먼저 접수부터 해야 합니다.”
“접수하면서 옮기면 되죠.”
“그러다가 누가 뭘 냈는지 모르게 됩니다.”
“제가 기억해요.”
최병철이 안경 너머로 그녀를 바라봤다.
“지난번에 본인이 기증한 전기밥솥도 누구 건지 모르셨잖습니까.”
오미자가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을 보며 김맑음 신부가 웃었다.
“두 분이 계시니 바자회 준비는 걱정 없겠네요.”
최병철이 즉시 말했다.
“신부님도 도와주셔야 합니다.”
“저도요?”
“주임 신부님이시잖습니까.”
김맑음 신부는 슬그머니 뒤로 물러났다.
그때 교육관 입구에서 한 교우가 불렀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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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낡은 그림 한 점
칠십대 후반의 교우 **윤정자 데레사**가 그림 한 점을 들고 서 있었다.
가로 약 육십 센티미터쯤 되는 유화였다.
오래된 나무 액자에 들어 있었고, 그림에는 초겨울의 작은 시골집이 그려져 있었다.
눈이 조금 쌓인 마당.
낮은 돌담.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그리고 집 앞에 서 있는 감나무 한 그루.
화려한 그림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따뜻했다.
김맑음 신부가 가까이 다가갔다.
“직접 가져오셨어요?”
“예. 집에 오래 걸어둔 건데 이제는 정리하려고요.”
최병철이 장부를 펼쳤다.
“작품명이나 화가 이름을 아십니까?”
윤정자가 고개를 저었다.
“몰라요.”
“기증자 성함은 윤정자 데레사.”
최병철이 기록했다.
“예상 판매가는요?”
“그냥 적당히 받으세요.”
오미자가 그림을 바라봤다.
“오만 원?”
윤정자가 웃었다.
“그것도 많이 받는 거지.”
그때 한서윤이 교육관으로 들어왔다.
“신부님, 바자회 기사 때문에 사진 좀—”
그녀가 말을 멈췄다.
시선이 그림에 고정됐다.
“잠깐만요.”
서윤이 그림 앞으로 다가갔다.
“이거 어디서 났어요?”
“윤정자 데레사님이 기증하셨어요.”
서윤은 그림 오른쪽 아래를 유심히 보았다.
거기에는 희미한 서명이 있었다.
**‘한규석.’**
서윤의 표정이 달라졌다.
“설마…….”
오미자가 물었다.
“왜 그래?”
서윤이 휴대전화로 무언가를 검색했다.
잠시 후 화면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한규석.**
국내에서 꽤 알려진 원로 서양화가.
특히 1980년대 농촌 풍경을 그린 작품으로 유명했다.
최근 그의 소품도 경매에서 수백만 원에 거래되고 있었다.
최병철이 그림을 다시 바라봤다.
“그럼 이게 진짜라면…….”
오미자가 먼저 말했다.
“백만 원?”
서윤이 대답했다.
“그 이상일 수도 있어요.”
교육관 안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조금 전까지 오만 원짜리라고 생각했던 그림 앞에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윤정자가 가장 놀란 얼굴이었다.
“저게 그렇게 비싼 그림이라고?”
김맑음 신부가 안경을 고쳐 썼다.
“아직은 모릅니다.”
그가 그림의 작은 집을 바라봤다.
“서명만 같다고 같은 화가의 작품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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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백만 원짜리 그림
소문은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은솔성당 바자회에 유명 화가 그림이 나왔다.’**
누군가는 백만 원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삼백만 원이라고 했다.
오후에는 오백만 원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최병철은 결국 그림을 바자회 물품과 따로 보관하기로 했다.
“확인될 때까지 판매하지 않습니다.”
오미자가 물었다.
“진짜면 경매하면 안 돼요?”
“진짜인지부터 확인해야죠.”
“진짜면?”
“그다음에 기증자 의사를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김맑음 신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가치가 큰 물건이라면 윤정자 데레사님께서 그 사실을 알고도 기증하시는지 다시 여쭤봐야 합니다.”
윤정자는 손을 내저었다.
“나는 줬으면 끝이에요.”
“그래도 확인은 해야 합니다.”
“신부님 마음대로 하세요.”
그날 저녁.
최병철은 그림을 교육관 안쪽 작은 준비실에 보관했다.
문을 잠그고—
열쇠도 직접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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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사라졌다
다음 날 오전 일곱 시 십 분.
은솔성당.
최병철의 목소리가 사제관까지 들렸다.
“신부님!”
김맑음 신부가 놀라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일입니까?”
“그림이 없습니다.”
“어떤 그림이요?”
“어제 그 그림이요!”
교육관 준비실.
문은 잠겨 있었다.
창문도 닫혀 있었다.
최병철이 직접 문을 열었다.
벽에는—
**빈 액자만 남아 있었다.**
그림이 액자에서 깨끗하게 분리되어 사라진 것이다.
오미자가 뒤늦게 들어와 입을 막았다.
“세상에.”
김하늘도 빈 액자를 바라봤다.
“액자만 두고 그림만 가져갔어요?”
최병철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
“제가 분명히 확인했습니다.”
김맑음 신부가 액자 앞으로 다가갔다.
그림을 고정했던 작은 못 몇 개가 가지런히 빠져 있었다.
억지로 뜯은 흔적은 없었다.
“급하게 가져간 건 아닌 것 같네요.”
그가 말했다.
“시간을 들여 액자를 열었습니다.”
오미자가 목소리를 낮췄다.
“그러면 정말 도둑이…….”
김맑음 신부가 빈 액자를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안경을 고쳐 썼다.
**“그림을 훔친 걸까요, 아니면 그림에 숨겨진 무언가를 가져간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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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잠긴 방
이도현 형사가 교육관에 도착했다.
도현은 문과 창문부터 확인했다.
“강제로 들어온 흔적은 없습니다.”
최병철이 말했다.
“열쇠는 저한테 있었습니다.”
“복사 열쇠는요?”
“사무실에 하나 있습니다.”
확인해보니 복사 열쇠 역시 그대로였다.
장태식이 문을 살펴보다 말했다.
“이 문은 열쇠 없어도 안에서 열립니다.”
도현이 물었다.
“어제 저녁 마지막으로 건물 확인한 사람은요?”
“접니다.”
최병철이었다.
“몇 시였습니까?”
“여덟 시쯤.”
“그 뒤에 들어온 사람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김하늘이 CCTV를 확인했다.
교육관 정문 카메라에는 밤새 들어온 사람이 없었다.
후문도 마찬가지였다.
오미자가 말했다.
“그럼 안에 숨어 있었던 거 아니에요?”
최병철이 그녀를 바라봤다.
“사람이 그림 하나 훔치려고 교육관에서 밤을 새웠다고요?”
“백만 원이라잖아요.”
“어제는 오백만 원이라고 하셨습니다.”
“소문이 그렇다는 거죠.”
김맑음 신부는 말없이 빈 액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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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그림 뒤에 남은 것
장태식이 액자를 분해했다.
그 순간 작은 종이 조각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김하늘이 몸을 숙였다.
“뭐예요?”
누렇게 변한 얇은 종이였다.
그림 뒷면과 액자 사이에 오랫동안 끼어 있었던 것 같았다.
종이에는 연필로 몇 글자만 남아 있었다.
**‘정자 아주머니께.’**
모두의 시선이 윤정자에게 향했다.
윤정자가 놀랐다.
“나?”
김맑음 신부가 물었다.
“이 그림을 어디서 받으셨습니까?”
윤정자는 잠시 생각했다.
“아주 오래됐어요.”
“언제쯤입니까?”
“40 년도 더 됐을 거예요.”
“누가 줬습니까?”
윤정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규석이라는 청년.”
한서윤이 즉시 물었다.
“혹시 한규석이요?”
윤정자가 말했다.
“성이 한씨였나……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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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가난한 화가
1980년대 초.
윤정자는 은솔시장 근처에서 작은 백반집을 운영했다.
손님 중에는 스물대여섯 살쯤 된 가난한 청년이 있었다.
이름은 규석.
낡은 가방에 그림도구를 넣고 다녔다.
돈이 없을 때가 많았다.
“밥값을 자주 못 냈어요.”
윤정자가 말했다.
“그래서요?”
“그냥 먹였지.”
“계속요?”
“배고픈 사람 밥 한 그릇 주는 데 무슨 이유가 있어.”
청년은 늘 미안해했다.
어느 겨울날에는 말했다.
“아주머니, 나중에 꼭 갚을게요.”
윤정자는 웃었다.
“그림이나 잘 그려. 돈 생기면 그때 밥값 내.”
얼마 뒤 청년은 은솔을 떠났다.
떠나기 전—
그림 한 점을 가져왔다.
바로 감나무와 작은 집이 그려진 그림이었다.
“그림 뒤에 뭐라고 적혀 있지 않았습니까?”
김맑음 신부가 물었다.
윤정자가 고개를 저었다.
“몰라요. 나는 그림을 액자에서 꺼내본 적이 없으니까.”
한서윤이 말했다.
“그 청년이 지금의 한규석 화백일 가능성이 높아요.”
김맑음 신부는 그림이 사라진 빈 액자를 바라봤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단순한 유명 화가의 그림이 아니었다.
**한규석이 알려지기 전, 자신에게 밥을 먹여준 사람에게 준 그림.**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미공개 작품일 가능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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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진짜인가, 가짜인가
문제는 진위였다.
한규석 화백의 알려진 작품 목록에는 그 그림이 없었다.
제목도 없었다.
사진 기록도 없었다.
일부에서는 가짜일 가능성도 제기됐다.
오미자가 말했다.
“가짜면 훔쳐간 사람이 손해네요.”
최병철이 대답했다.
“도둑 걱정을 왜 하십니까?”
한서윤은 한규석 화백 측에 정식으로 문의했다.
사진과 서명 부분을 전달했다.
며칠 뒤—
뜻밖의 답이 왔다.
**한규석 화백 본인이 그림을 기억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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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그 그림이 아직 있습니까?”
한규석은 올해 일흔이 넘었다.
건강 때문에 외부 활동은 거의 하지 않았지만, 서윤이 보낸 사진을 본 뒤 직접 전화했다.
“그 그림이 아직 있습니까?”
김맑음 신부가 전화를 받았다.
“현재는 사라진 상태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화백의 목소리가 떨렸다.
“찾아야 합니다.”
“금전적인 가치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화백이 말했다.
“그건 내가 처음으로 돈이 아닌 마음을 받고 그린 그림입니다.”
젊은 시절의 한규석은 화가가 되겠다며 고향을 떠났지만 생활은 어려웠다.
공사장 일도 하고 간판도 그렸다.
은솔에 머물던 몇 달 동안 윤정자의 식당에서 자주 밥을 먹었다.
돈을 내지 못한 날이 더 많았다.
“그분은 한 번도 외상값을 적지 않았습니다.”
“왜요?”
“제가 물었더니 그러더군요.”
한규석의 목소리가 잠시 멈췄다.
**‘배고픈 사람 밥 먹인 걸 장부에 왜 적어.’**
윤정자가 멀리서 그 말을 듣다가 눈을 깜빡였다.
“내가 그랬나?”
박복례가 말했다.
“그런 말 하실 분이네요.”
한규석은 은솔을 떠나기 전 밤새 그림을 그렸다.
윤정자의 집을 상상해서 그린 그림이었다.
그리고 그림 뒤에 편지를 붙였다.
“무슨 내용이었습니까?”
김맑음 신부가 물었다.
한규석이 말했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마지막 문장은 기억했다.
**‘제가 화가가 되면 이 그림이 아주머니가 주신 밥값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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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없어진 것은 그림이 아니었다
김맑음 신부가 다시 준비실을 살폈다.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그림을 훔치려 했다면—
왜 액자를 남겼을까?
캔버스만 빼면 운반하기 쉽기는 했다.
하지만 오래된 유화를 그렇게 다루면 손상 위험이 컸다.
게다가 그림은 전문적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장태식이 말했다.
“이건 그림 다뤄본 사람이 한 겁니다.”
그 순간 김맑음 신부의 시선이 바닥에 멈췄다.
작은 갈색 가루.
“이게 뭡니까?”
장태식이 손끝으로 만져봤다.
“액자 뒤판입니다.”
“부서진 겁니까?”
“아니요.”
장태식이 고개를 저었다.
“누가 오래된 뒤판을 새것으로 바꾸려고 손본 흔적 같습니다.”
김맑음 신부가 안경을 고쳐 썼다.
“그렇다면…….”
그는 빈 액자를 바라봤다.
**“그림은 훔쳐진 게 아닐 수도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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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새 액자
그날 오후.
장태식이 교육관 창고 뒤편에서 커다란 종이 포장지를 발견했다.
근처 액자점 상호가 찍혀 있었다.
한서윤이 그 액자점으로 향했다.
주인은 금세 기억했다.
“며칠 전에 성당 그림 하나 가져온 분 있었어요.”
“누구였습니까?”
“할머니였는데.”
“성함은요?”
“그건 모르죠.”
하지만 CCTV에는 얼굴이 남아 있었다.
영상을 확인한 오미자가 외쳤다.
“저분!”
은솔성당 교우 **이춘자 아가타**, 일흔셋.
바자회 준비 봉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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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도둑이 아니었습니다
이춘자는 성당 사무실에 불려오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제가 가져간 건 맞아요.”
최병철이 말했다.
“왜 말씀도 없이 가져가셨습니까?”
“훔치려고 그런 게 아니에요.”
그녀는 그림이 유명 화가 작품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낡은 액자 뒷부분이 벌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비싼 그림이면 액자부터 제대로 해놔야 하는 줄 알았어요.”
그녀는 바자회 준비가 끝날 무렵 그림을 몰래 꺼냈다.
아는 액자점에 가져가 새로 손질해달라고 부탁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가져다놓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왜 못 가져왔습니까?”
“액자집 사장님이 그림 뒤에 종이가 붙어 있다고 하더라고요.”
오래된 편지였다.
종이가 너무 약해 액자점 주인이 함부로 떼지 못했다.
보존 작업을 하는 사람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그 바람에 시간이 걸렸다.
이춘자는 일이 커졌다는 것을 알고 겁이 났다.
“처음부터 말씀하셨어야죠.”
최병철이 답답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게요.”
이춘자가 고개를 숙였다.
“좋은 일 한번 해보려다가…….”
김맑음 신부가 말했다.
“좋은 뜻도 다른 사람 몰래 하면 오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춘자가 작게 대답했다.
“예,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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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그림 뒤의 편지
그림은 무사했다.
며칠 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뒷면의 오래된 편지도 손상 없이 분리했다.
윤정자는 의자에 앉아 편지를 받아 들었다.
김맑음 신부는 편지를 그녀 쪽으로 건넸고, 다른 사람들은 조금 떨어져 기다렸다.
윤정자가 천천히 읽었다.
오래된 글씨였다.
**정자 아주머니께.**
**돈도 없는 저한테 밥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젠가는 꼭 그림으로 먹고사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때 이 그림이 조금이라도 값이 생긴다면, 아주머니가 주신 밥값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그리고 마지막.
**그때까지 버리지 말아 주세요.**
**― 규석 올림**
윤정자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이 녀석이…….”
그녀가 웃으면서 눈물을 닦았다.
“밥 몇 그릇 먹고 뭘 이런 걸 써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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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백만 원보다 비싼 그림
한규석 화백 측의 확인 결과—
작품은 진품이었다.
정식 작품 목록에도 없던 초기 미공개작.
화백이 직접 윤정자에게 준 작품이라는 사실까지 확인되면서 미술계에서도 관심을 보였다.
한서윤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정확한 가격은 거래가 이뤄져야 알 수 있지만, 처음 이야기 나온 백만 원보다 훨씬 높은 가치를 인정받을 가능성이 있대요.”
오미자의 눈이 커졌다.
“얼마나?”
최병철이 막았다.
“회장님.”
“궁금하잖아요.”
윤정자는 그림을 바라봤다.
그리고 말했다.
“안 팔아요.”
모두가 놀랐다.
“바자회에 내놓으셨잖아요.”
“그때는 저게 뭔지 몰랐지.”
윤정자가 웃었다.
“저건 그림이 아니라 외상값이잖아.”
박복례가 웃음을 터뜨렸다.
“세상에서 제일 늦게 받은 외상값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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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또 하나의 기증
하지만 윤정자는 며칠 뒤 다시 성당을 찾았다.
봉투 하나를 최병철에게 내밀었다.
“바자회에 쓰세요.”
안에는 돈이 들어 있었다.
“이게 뭡니까?”
“그림 대신.”
“이렇게 많이 안 하셔도 됩니다.”
윤정자가 손을 내저었다.
“그림은 내가 다시 가져가니까 대신 내는 거예요.”
김맑음 신부가 물었다.
“후회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뭘?”
“그림을 팔면 훨씬 큰돈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윤정자가 웃었다.
“신부님.”
“예.”
“내가 그 청년한테 밥 줄 때 나중에 그림값 받을 생각으로 줬겠어요?”
“아니셨겠죠.”
“그럼 됐어요.”
그녀가 그림을 품에 안았다.
“이건 돈으로 바꾸면 안 되는 물건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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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화가가 돌아오다
한 달 뒤.
은솔성당에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한규석 화백이었다.
건강 때문에 오래 머물지는 못했지만—
그는 윤정자를 만나기 위해 직접 은솔까지 왔다.
두 사람은 성당 마당에서 마주했다.
한규석이 먼저 허리를 숙였다.
“아주머니.”
윤정자가 한참 그를 바라봤다.
“규석이 맞아?”
“예.”
“늙었네.”
한규석이 웃었다.
“아주머니도요.”
윤정자가 그의 등을 한 번 때렸다.
“나는 원래 늙었어.”
두 사람이 웃었다.
한규석은 그림을 한참 바라봤다.
“정말 안 버리셨네요.”
“버리려고 성당에 가져왔는데.”
한규석의 얼굴이 굳었다.
윤정자가 웃었다.
“농담이야.”
잠시 후 한규석이 물었다.
“그때 밥값…… 이제 갚은 겁니까?”
윤정자가 대답했다.
“아직 멀었어.”
“얼마나 남았습니까?”
“죽을 때까지.”
한규석이 웃다가 결국 눈물을 닦았다.
윤정자가 말했다.
“그러니까 건강하게 오래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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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주일 강론
그 주 주일미사.
김맑음 신부는 강론에서 말했다.
“우리는 친절을 베풀 때 그 일이 얼마나 오래 남을지 알지 못합니다.”
“밥 한 그릇일 수도 있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일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잠깐 내어준 자리일 수도 있습니다.”
잠시 성당 안이 조용해졌다.
“그 순간에는 아주 작은 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받은 사람에게는 평생 잊지 못하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김맑음 신부가 미소 지었다.
**“사랑에는 가격표가 없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백만 원짜리 그림보다 밥 한 그릇이 더 비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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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회 당일.
윤정자의 그림은 판매대에 나오지 않았다.
대신 그림을 찍은 작은 사진 한 장이 게시판에 붙어 있었다.
그 아래에는 짧은 글만 적혀 있었다.
**〈밥 한 그릇의 값〉**
오미자가 사진을 바라보다 말했다.
“그래도 진짜 가격이 궁금하긴 해요.”
최병철이 장부에서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
“회장님.”
“왜요?”
“가격표가 없다잖습니까.”
김하늘이 웃었다.
김맑음 신부도 웃었다.
그날 바자회는 성황리에 끝났다.
그리고 윤정자의 집에는—
오래된 그림 한 점이 다시 걸렸다.
눈 쌓인 작은 집.
굴뚝에서 올라오는 연기.
마당의 감나무.
그림은 전과 똑같았다.
하지만 이제 윤정자는 그 그림을 볼 때마다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오래전에 건넨 밥 한 그릇이—
한 사람의 기억 속에서 사십 년 넘게 따뜻하게 남아 있었다는 것을.
**― 제68화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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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새벽, 혼자 사는 노인의 집 초인종이 정확히 세 번 울린다.
하지만 CCTV에는 아무도 없다.
김하늘이 영상을 반복해서 보다가 말한다.
“신부님, 정말 사람이 누른 게 아닌 것 같아요.”
김맑음 신부가 초인종을 바라본다.
**“그렇다면 누가 아니라, 무엇이 울렸는지를 찾아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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