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 <방구석 미술관2> 신간도서 코너에 있습니다.
<눈보라> 북트레일러
<눈보라>(강경수 글/그림, 창비, 2021)
쓰레기통을 뒤지는 덩치 큰 하얀 생물이 그려진 표지를 봤을 때부터 관심이 갔습니다. ‘눈보라’라는 제목과 표지만 봐도 지구온난화로 인해 얼음이 녹고 먹이를 찾지 구하지 못한 북극곰이 마을로 내려와 고개를 쳐 박고 길고양이처럼 쓰레기통을 뒤적이는 씁쓸한 내용이 떠오릅니다.
이 북극곰 옆으로 표지판이 있는데, ‘북극곰 금지’를 나타내고 있네요. 마을 사람들이 북극곰을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주인공 북극곰은 ‘눈보라가 몰아치던 날’ 태어나서 이름이 눈보라입니다. 눈보라는 쓰레기통을 뒤지다 ‘얼룩무늬 곰(판다)’이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사진을 발견합니다. 이 사진을 뚫어지게 바라보다 마을 사람들에게 들켜 쫓겨납니다.
진흙을 발라 판다로 위장한 눈보라는 마을 사람들에게 큰 관심과 사랑을 받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금세 판다를 사랑하게 됐고 가까이 두고 싶어 했습니다. 행여나 누군가 판다를 독차지할까 봐 불안해서 서로 판다를 쓰다듬고 껴안았습니다.”
남의 모습으로 위장해 관심과 사랑을 받는 기분. 과연 좋기만 할까요? 자신의 정체가 들킨다면 벌어질 일이 두렵지는 않을까요? 눈보라는 왜 판다로 위장하고 마을로 내려갔을까요? 지구온난화 때문에 사냥할 동물이 부족해서? 단순히 생을 이어나가기 위한 굶주림 때문일까요?
눈보라는 결국 마을 사람들에게 들켜 쫓기게 됩니다. 동일한 북극곰 눈보라인데 마을 사람들에겐 ‘판다 눈보라’와 ‘북극곰 눈보라’가 다른 존재인가 봅니다. 자신을 사냥하려고 쫓아오는 성난 얼굴의 마을 사람들을 보며 눈보라는 어떤 기분을 느꼈을까요?
눈발이 점점 거세집니다. 책장을 넘길수록 무거운 눈이 내리며 갑갑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감돕니다. ‘눈보라 속으로 사라’진 눈보라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눈보라는 어디로 갔을까요?
뜬금없이 요즘 읽고 있는 책의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 나혜석의 전 남편이 아들에게 남긴 편지 중 한 부분입니다.
“어느 것이 옳다 그르다, 좋다 나쁘다의 판단은 애초부터 없는 것이지만, 선택과 세월과 환경이 사람을 얼마나 다르게 만들어놓더냐. (...) 예부터 우리는 뜻이 굳으면 환경 따위는 문제가 안 된다고 들어왔지만 그 말을 믿지 말거라. 환경이야말로 우리의 마음과, 그리고 영혼까지도 주무를 수 있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방구석 미술관 2: 한국편> p.97
첫댓글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면 무엇이 되기 위해 위장하게 되진 않을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