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통·우유갑·우유곽·우유각·우유팩

아침에 아이들은 교실에 와서 우유를 마신다. 이때 우유를 담은 통을 뭐라고 해야 할까? 딱히 정해진 말이 없다. 우유통, 우유갑, 우유곽, 우유 팩, 우유각 같은 말들이 어지럽게 쓰인다.
우유갑부터 보자. ‘갑’은 작은 물건을 작은 상자에 담아 그 분량을 세는 단위로, “담배 한 갑, 분필 세 갑”처럼 쓰인다. 대체로 크기가 작은 경우에 쓴다.
우유곽은 어떤가? ‘곽’을 우리 말 사전에서 찾으면 '제주도에서 성냥을 일컫는 사투리 말', '북한에서 주로 마른 물건을 넣어 두는 뚜껑이 있는 작은 그릇' , '덧널(관을 담는 궤)의 한자말'로 나온다. 이에 견주어 '갑'은 '물건을 담는 작은 상자를 이르는 말'로 풀어놓았다. 그래서 우리 말 사전에서 ‘곽’을 찾으면, ‘갑’으로 나온다. 이 말은 ‘곽’은 표준어이 아니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 ‘표준어 규정(표준어 사정 원칙) 제22항’에서는 ‘고유어 계열의 단어가 생명력을 잃고 그에 대응되는 한자어 계열의 단어가 널리 쓰이면, 한자어 계열의 단어를 표준어로 삼는다’고 했다. 그래서 토박이말인 ‘곽’을 버리고 널리 쓰이는 한자어 ‘갑(匣)’을 표준어로 삼겠다는 말이다. ‘우유각’은 ‘우유곽’이라고 말할 것을 잘못 소리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우유갑’ 하면 오른쪽 그림과 같은 우유 담은 통이 퍼뜩 떠오르지 않는다.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갑’하면 성냥갑 또는 담배갑처럼 납작한 통이 먼저 떠오른다.
더러 ‘우유곽’도 ‘우유갑’도 귀찮으니 ‘우유 팩’을 쓰겠다는 사람도 있다. 팩은 ‘비닐 또는 종이로 만든 작은 그릇’을 말한다. ‘우유 팩’, ‘비닐 팩’하고 쓴다. 그러나 우리 말을 두고 ‘팩’이라는 말을 쓸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말인데 ‘우유통’으로 쓰면 어떨까 싶다. 말은 사전에 오른 우리 말을 외우고 쓰고 한다고 살아나는 것이 아니다. 말을 살리는 길은 삶에서 길어낸 말이라야 한다. 아이들이 어떤 말을 많이 쓰는가.
아, 군말 한 마디. 우리말 사전에서 ‘곽’은 버려야할 말처럼 해놓았다. 그러나 내 어릴 적에 어른들이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작은 성냥갑 말고 성냥개비를 높이로 세워 담은 통을 성냥곽이라고 했다. 또 휴지를 담은 네모난 상자는 뭐라고 해야 할까? ‘휴지 갑’은 크기가 작고 '휴지통' 하자니 쓰레기를 담는 그릇으로 이미 있는 말이다. 그러니 ‘휴지 곽’ 하는 게 맞지 않을까? 비누를 놓는 플라스틱 따위로 만든 그릇을 뭐라고 해야 할까. 이것도 비누곽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2012. 6.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