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모영 묵상노트]
산상수훈(17) 마태복음 5장 25절-26절 급히 사화하라
25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만약 살다가 어떤 일로 인하여 당신을 고발하는 자가 있다 하자. 이 때 법정으로 가기도 전에 “급히 사화(私和)하라”( ἴσθι εὐνοῶν ...ταχὺ)고 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화’는 동의 또는 화해적인 의미를 갖는 단어로, 이는 좋은 이라는 εὐ(eu)와 마음이라는 νούς(nous)의 합성어입니다. 직역을 하면 좋은 마음을 갖는 것이지요. 따라서 서로 화가 치밀어 고발을 하고 송사(訟事)의 단계에 까지 나아가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기 전, 길에 있을 때에 그 고발한 자와 좋은 마음을 갖도록, 화해하라는 의미가 바로 여기서 말하는 “사화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화해는 천천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급히”(ταχὺ) 하라고 하십니다. 즉, 이러한 사화는 설사 자신이 좀 더 희생을 감수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열심히 적극적으로, 그리고 신속히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는 분쟁을 함으로써 그리스도에게 욕을 돌리는 것보다 차라리 피해를 당하는 편이 낫다는 바울 사도의 말씀과도 부합됩니다(고전 6:7).
앞에서 언급한 주님의 말씀을 오늘날 교회에 바로 적용해보면, 분쟁하는 교회는 그 분쟁을 세상의 법정까지 가지 말고 급히 화해를 하라는 말씀으로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되는 경우 옥에 가두는 것도 가두는 것이거니와, 결코 이러한 모습이 하나님의 영광은커녕, 세상 사람들의 우스갯소리만 들을 수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분쟁이 있는 교회를 보면 서로 끝장을 내겠다는 듯이 이전투구(泥田鬪狗)를 하는 모습을 종종 봅니다. 특히 이러한 모습을 우리는 서울의 대형교회에서 이뤄지고 있는 실상을 본 바도 있지요. 분명히 이곳에서도 주님의 말씀을 앞에 놓고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도, 서로 분쟁할 때에는 말씀은 뒷전으로 밀려나는 것이지요.
그리고 통상 우리들이 화해를 한다고 하면서도, “그런데”라는 미련을 두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화해, 사화는 이와 같은 어떤 조건이나 더 이상의 여운을 남기지 않고 서로를 인정하며, 좋은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26절은 “한 푼이라도(ἔσχατον κοδράντην)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라는 예화 속에, 채무자의 채무이행은 완전하고 철저해야 하는 것처럼, 또한 화해를 위한 회개 역시 그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완전하고 철저한 회개가 있을 때에 또한 상대방도 참된 용서를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일은 비단 성도들 간의 관계 속에서만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사죄받기 위한 하나님을 향한 회개 역시 완전하고 철저해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이처럼 사화를 해야 할 일을 있다면, 머뭇거리지 말고 빨리 해야 하며, 또한 사화를 했다면 다시는 뒤를 돌아보지 말고 서로를 온전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고추 먹은 소리”를 한다면, 이것은 주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을 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오늘 하루도 혹시 나에게 이와 같은 일이 있다면, 먼저 그리고 철저하게 사화를 함으로써, 그리고 이 일로 인하여 조금 손해가 온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진정한 자녀로서의 도리를 한 것으로 생각하고 말씀 앞에 서시길 기원합니다. 평안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