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궁락도(宮樂圖)
대만 국립박물관에 소장된 작가 미상의 궁락도(가로 69.5cm, 세로 48.7cm) 는 당나라 귀족 여인들의 차 마시는 장면을 비단에 그린 것이라고 한다.
원래 그림에는 '원인궁락도(元人宮樂圖)'라고 적혀 있었으나, 전문가들의 분석 결과 그림 속 여인들의 머리 모양과 머리빗의 형태, 여인들의 장식, 악기를 타는 손 모양 등이 틀림없는 당나라의 형태이기에 '당인궁락도(唐人宮樂圖)'로 개명하였다고 한다.
그림 중 당나라 시기의 찻잔은 크기가 작은 청자 사발이다. 만일 송을 지난 원나라의 음다라면 청자 사발이 아닌 건잔(建盞 검은 색의 천목다완)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그림은 당나라 음다 문화의 특징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큰 그릇에 차를 가득 따르고 국자로 떠내는 내용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육우 다경의 칠지음(七之飮)에
'대저 향기롭고 맛있는 차는 석 잔의 분량이고 그다음 것은 다섯 잔의 양까지이다. 만일 찻자리에서 다섯 사람이 있으면 사발 석 잔 분량의 차를, 일곱 사람이 있으면 다섯 잔 분량의 차로 마신다(珍鮮馥烈者其盌數三次之者盌數五若坐客數之五 行三盌至七 行五盌 )'고 하였다.
위의 해석을 석 잔의 차를 돌려 마시고 등으로 해석하는 곳이 있는데, 이는 신분제 사회에서 잔을 돌린다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그림에서처럼 많은 사람이 차를 마실 때는 차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그림에는 보이지 않지만, 옆의 다른 장소에서 화로를 여러 개 준비하여 차를 끓인 후 맛있는 수량만큼의 차를 중앙에 있는 큰 그릇에 붓고 이를 다시 국자로 떠서 각 사람의 잔에 나누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송대의 말차 다법도 초기에는 지금처럼 한 잔씩 격불해서 마신 것이 아니라 큰 그릇에 격불하여 작은 천목 잔에 나눈다는 것을 앞의 글에서 말한 바가 있다.
당나라 시기는 이런 청자잔에 차를 마셨다.
중앙에 놓인 큰 찻사발에서 차를 떠내 작은 잔에 나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