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부통령 알 고어 부부가 헤어지기로 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클린턴 부부가 이혼한다면 역시 했을 텐데 그들 부부가 헤어진다는 건 상당히 충격적이다. 결코 쉽지 않을 황혼 이별인데 또한 그리 어렵지 않다는 실례를 보는 듯하다. 오랜 시간 진지하게 생각한 결론이라지만 이혼을 결심한 후 단행을 지연해 왔다는 예측을 하게 만든다.
사십 년을 함께 살다가 이제 헤어져 각자의 길을 가겠다는 결정이 어디 쉬웠겠는가 싶은 이해를 보태지만 완전한 잉꼬부부로 생각하던 사람들의 기대를 허물지 않고 그런 척 살면서 이혼만은 피할 수 없었을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열리지 않은 결혼에 관한 나의 고정관렴(사랑은 몰라도 의무는 알아야 한다는) 때문인 듯하다.
그들 부부는 하이스쿨의 졸업파티에서 만나 알 고어가 스물 두 살, 티퍼가 스물 한 살일 때 결혼하여 반생을 함께 해온 사이다. 낡고 퇴색했어도 추억 때문에 버리지 않는 옷처럼, 정열은 없어도 편안한 감정으로 여생을 함께 그러나 자유를 인정해주며 살 수 없었을까 생각해 보면 대답은 내 의견으로 기울어진다. 이혼 사유가 들통난 정사(情私) 때문도 아니고 삶의 포커스가 서로 달라지며 사이가 벌어졌기 때문이라는데 그 간단한 설명은 너무 복잡해서 형용할 수 없다는 것으로 여겨진다.
헤어지는 것을 생각해 보지 않은 부부가 사실 얼마나 될 것인가.
무심(無心) 무정(無情)하여 상대에게 아무 기대가 없는 부부이외엔 이혼을 고려하지 않고 사는 부부가 없을 성싶다. 아내는 남편이 반찬 타박만 해도 저 인간과 계속 더 살까 말까를 슬쩍 가늠해 볼 수 있고 남편은 시집 흉보는 아내를 계속 봐주며 살 것인지 말 것인지를 문 닫고 고민하는 것이 부부 의 정상적인 이기심이라고 생각한다.
배우자에 대해 실망이 클 때 결혼생활을 깨버리겠다는 마지막 돌파구는 사실 결혼 생활을 다이나믹하게 만드는 숨겨둔 카드가 된다. 다만 불쑥 그 카드를 내놓지 않고 사는 것이 아내의 인내하는 기술이고 남편이 포기하는 재주라고 본다.
그럼에도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며 성장한 자식들과 사랑스런 손주들을 거느리고 이혼을 결심하는 공인(公人)의 심사는 쉽게 헤아릴 수가 없다.
이번에 내놓은 통계를 보니 20-24살 어린 나이에 결혼한 커플은 나이 들어서 결혼한 부부보다 이혼할 확률이 훨씬 높다는 사례를 내놓고 있다. 요즘은 결혼이 늦어지는 추세이니 끝까지 잘 사는 세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이야기인데 뭐 그럴 것같지도 않다.
십대에 사귀던 연인과 결혼하는 경우가 한국에선 흔하지 않은데 미국에선 드문 것같지 않다. 한국보다는 사랑 지상주의고 계산하지 않는 이곳의 젊은이들은 하이스쿨 스윗 핫(Sweet Heart)과 결혼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고 평생 해로하며 잘 사는 부부도 주위에 많다.
결혼하지 않고 살려는 독신의 수도 상당하다. 맨해튼에 사는 싱글 여성은 5백만이 넘고 싱글 남성은 1백만이라는 집계를 읽은 것이 수 년 전이다. 그 숫자에서 어느 정도 변화가 생겼는지 모르지만 혼인 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맨해튼 거주자의 절반을 훨씬 넘는다는 이야기다,
위의 통계는 함께 살면서 결혼식은 하지 않은 커플들은 독신으로 간주한 숫자다. 법적인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동거인은 아내 혹은 남편으로 사는 커플 관계를 인정하되 법적인 혼인 절차를 밟지 않은 배우자이고 동반자라는 이름으로 호칭한다. 벗이나 동료라는 의미의 동반자(companion)관계를 유지하며 혼인서약을 원하지 않는 커플이 늘어나고 있다.
함께 찍은 보도 사진의 캡션에 아내라는 표현 대신 동반자라고 알리는 것도 이젠 예사롭다. 가장 많이 언급되는 커플이 뉴욕의 불룸버그 시장과 그의 파트너다, 이번에 뉴욕 주지사 경선을 선언한 쿠오모 역시 요리방송인 샌드라 리와 동반자 관계로 소개되고 있다.
서로 사랑하고 도우며 살아가되 아내와 남편의 위치가 아니고 동반자 관계로 살기 원하는 건 혼인의 법적 절차를 밟아 후에 귀찮아지기 싫다는 복선이 깔린 듯하다. 또는 그런 제약에서 서로 자유로워지자는 배려의 의미로 생각할 수도 있다.
살다가 마음이 변해 헤어질 때 법에 얽혀 구속력을 갖는 현대의 혼인 서약 제도에 매이거나 참견 받지 말고 둘 만의 결정으로 살자는 합의는 쌍방이 서로 원한다면 상당히 이상적이라는 생각이다.
허나 대부분의 여자들은 동반자의 관계로 그냥 지내는 것보다 결혼을 원한다.
왜 여자들은 조금만 관계를 지속하면 결혼하기를 원하지? 이런 하소연을 들은 일이 있다. 새삼 그 물음에 대답하자면 결혼하지 않은 여자로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결혼 안한 남자들은 혼자 살면 독신(single)이라고 불러주는데 혼자 사는 여자는 결혼안 한 여자(unmarried)라는 의미심장한 이름으로 부른다. 남편을 잡을 기회를 놓친 실패한 여자라는 뉘앙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