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좋아하는 박근혜
모범생 스타일의 박근혜는 정작 술을 좋아한다.
전통주를 특히 좋아하는데 혹시 전통주가 없더라도 술자리 자체를 즐긴다.
많은 사람들이 박근혜와 함께 한 술자리가 기분 좋다고 한다.
한나라당에서는 박근혜와 가장 많은 술자리를 가진 그룹은 475모임이다.
40대이고 70년대 학번이며, 50년대생들의 모임이다.
평균 두 달에 한 번꼴로 모임을 가졌다고 한다.
1차는 음식점, 2차는 노래방이다.
박혁규 의원의 말이다.
박대표는 술을 많이 마시진 않는다.
대신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먼저 집으로 가는 법이 없다.
2차 노래방에도 끝까지 같이 간다.
최근 박대표가 불렀던 노래는 김흥국의 "내게 사랑이 오면" 이란 노래다.
사실 박근혜는 오래된 전통주 애호가.
전통주는 어느 정도 술맛의 깊이와 차이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오랫동안 좋아한 술은 복분자주. 이강주와 분배주 등도 좋아하지만 목에
넘어가기 좋은 복분자주를 주로 마신다.
박근혜가 2004년 7월 기자들을 자택에 초청했을 때 내놓은 술은 백세주.
막걸리도 좋아하는 편이다.
우리 나라의 주요 지방 막걸리는 대부분 다 섭렵했다고 한다.
박근혜가 공식적으로 밝힌 주량은 소주 4잔이다.
여성의 내숭을 감안한다면 적은 편이 아니다.
박근혜는 술자리 분위기를 잘 맞추는 편이다.
사실 정치를 시작한 박근혜를 난데없이 괴롭힌 게 폭탄주다.
의원들은 박근혜를 생각해 폭탄주를 권하지 않는데, 기자들은 짓궂게
폭탄주를 권한다.
박근혜는 기자들과 러브샷을 여러 번 했지만 마시진 않는다.
기자들의 요구에 흉내만 내는 것이다.
대신 기자들이 원할 때 폭탄주를 "제조" 해준다.
박근혜는 폭탄주를 돌릴 때 이런 농담을 했다.
"술 갖고 장난치는 나라는 우리 나라밖에 없을 거예요."
박근혜의 술자리 철학은 "절대 강요하지 말라" 다.
박근혜의 검소한 생활을 말할 때 가장 먼저 예로 드는 것이 비행기
이코노미석 이용이다.
국회의원은 대체로 비즈니스석을 이용하지만 박근혜는 이코노미를 고집한다.
주로 여승무원과 마주보는 앞좌석을 이용한다고 한다.
4 . 15총선 지원유세차 지방으로 떠날 때 한 번은 앞 여승무원이 "비상시에
저를 도와 같이 승객을 구출해야 하는 것 아시죠?" 라고 말을 건네자,
"예, 그러죠" 라고 대답해 주변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대표 비서실장인 진영도 격식을 싫어하는 편인데, 지방에 갈 때는 박근혜는
이코노미석 앞쪽에, 진영은 맨 뒷자리를 예약해 따로따로 움직인다.
여성대표라서 나란히 앉기 민망하다는 게 진영의 솔직한 고백이다.
2002년 1차 자택 개방때 박근혜의 집에 있는 30년 된 "골드스타"TV와
20년 된 전화기가 보좌진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인터넷에 공개된 박근혜의 침실 화장대에는 15년이 넘은 소형 카세트만 썰렁
하게 놓여 있다.
화장대 의자도 식탁용 의자였다.
박근혜의 핸드백에는 20년 된 손거울이 재산 1호다.
박정희 시절 최장기 청와대 비서실장인 김정렴은 이렇게 회고했다.
"청와대에서는 항상 보리 와 쌀을 7 : 3 비율로 섞인 혼합밥을 먹었다.
박대통령이 사망하기 직전까지 그렇게 식사했다.
점심은 멸치국물에 비빔국수를 즐겨 먹었다.
박근혜 대표도 당시에 그렇게 살았다."
보리밥 사건은 유신시절 서강대 구내식당에서 유신에 반대하던 학생들이
박근혜의 도시락을 내동댕이친 사건이다.
바닥에 나딩굴며 속을 내보인 박근혜의 도시락에는 보리밥과 무장아찌가
담겨져 있었다.
도시락을 내던진 학생은 놀라고 미안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근혜는 군것질을 많이 하는 편이다.
총선 때는 집에서 떡을 준비해 와서 중간중간에 먹거나 과자류를 먹었다.
군중들이 먹을 것을 선물하면 예외 없이 맛을 보고 당원들에게 나눠준다.
살이 찌지 않는 게 신기하다는 사람도 있다.
운동량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박근혜는 소녀 같아서인지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
한때 고속도로 휴게소에만 서면 아이스크림 먹는게 유행이었다.
박근혜의 별명은 "바른 생활 소녀" 다
그녀의 자서전은 바른생활에 대한 강의로 가득 차 있고, 그녀의 행동 하나
하나에도 바른생활 철학이 깃들어 있다.
총선 때 2~3시간만 자고 철인적으로 지원유세에 다니고, 손에 파스를
붙이고, 다리를 절뚝거리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으려는 모습은 바른생활
주의의 소산으로 풀이된다.
바른생활은 책임감으로 연결되고 , 책임감은 강력한 추진력으로 이어진다.
박 대표는 지난해 국회에서 미국측 인사와 대담 당시 통역 담당자에게 "그런
이야기를 할 때는 그 단어 말고 이 표현을 쓰는 게 좋다" 고 훈수를 둬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최근 들어 박근혜의 영어 실력은 더 이상 논란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비밀도 아니다.
박근혜는 집에서 AFKN을 청취하거나 영자신문을 구독한다고 한다.
박근혜가 구사할 수 있는 외국어는 영어 외에도 프랑스어, 스페인어,
중국어 등이 있다.
앞의 세개는 청와대에 있을때, 중국어는 나중에 배웠다.
학교 다닐 때 외국어가 필요한 시대가 올 것이라고 생각해 짬짬이 노력했다.
박근혜는 공부를 잘했다.
성심여중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성심여고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성심여고 다닐 때 우등생에게 주는 "백합상" 을 받았고,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프랑스 유학은 박정희가 내린 수석졸업의 선물이고, 정작 유학을 가고 싶던
동생 서영에겐 외화를 아껴야 한다는 이유로 기회를 주지 않았다.
[월간조선] 2004년 5월호는 총선 당시 박근혜와의 23박 24일 밀착 취재기를
싣고 "박 대표의 고운 외모와 단아한 자세, 늘 맴도는 미소는 뭇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면서 "박 대표 본인의 대중성이 박풍의 진원지다" 라고
평가했다.
첫댓글 몰랐던 사실 이네요.. 등업부탁합니다..